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45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45
“그 말은 우리 위치가 노출됐다는 뜻이냐?”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이런! 여기서 시간을 끈 게 실수였다. 바로 출발했으면 벌써 천라지망을 벗어났을 텐데...”
유현은 천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리며 여기서만 삼 일 째 머물고 있다. 그 동안 그는 무려 열 명이 넘는 계집을 취했다.
“소장주님, 지금 상황에선 물건을 가지고 갈 수도 없습니다.”
“그 사이 천라지망이 강화되기라도 했단 말이냐?”
“개방이 개입했습니다. 빠져나갈 수는 있지만, 추적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방법이 없단 말이냐?”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근본적인 방안은 아닙니다.”
“근본적인 방안?”
“예, 그렇게 하려면 본가에 연락해서 황금상단을 대대적으로 공격해야 합니다.”
“안 돼! 그렇게 되면 내 실수가 장주 귀에 다 들어가게 된다.”
“그럼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말해봐라.”
“지금 이곳으로 달려오는 자들을 제거해서 시간도 벌고 이목을 그곳으로 집중시키는 겁니다.”
“그 사이 우린 빠져나간다?”
“그렇습니다.”
“좋다.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라.”
“예, 소장주!”
천소는 곧바로 밖으로 나간다.
한편 이곳은 황금상단을 떠난 무진 일행이 삼 일만에 도착한 곳이다. 이들은 황금상단의 배려로 그들과 관련된 주루와 객잔에서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하고 있다. 지금도 황금상단의 한 분타에 머물고 있다.
“대형! 개방으로부터 몇 개의 서찰이 도착했습니다.”
“어떤 내용들이냐?”
“일단 개방에 의해서 우리가 원한 소문들이 중원 전역에 퍼졌다고 합니다. 태양장까지도 말입니다.”
“다른 건?”
“예, 두 번째는 개방이 독자적으로 황금상단에서 태양장까지 연결되는 전체 도로와 지역을 조사한 결과 몇 군데 이상한 곳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자세히 설명해봐라.”
“그와 관련된 서찰이 계속해서 도착하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태양장의 소장주가 이번 일에 개입된 것 같습니다.”
“그 겁쟁이가?”
“예.”
“그놈 정도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텐데....”
“그게 좀... 여자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태민은 호란의 눈치를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여자?”
“예! 그 놈이 지나간 곳은 사창가의 창기는 물론이고, 여염집 아가씨들이 남아나질 않는다고 합니다.”
“후후후! 개방이 쉽게 찾아낸 이유가 있구나. 우리로선 고마운 일이지.”
“전 그게 이상해요.”
일초의 말에 호란이 끼어든다.
“뭐가 이상하오?”
“태양장주가 그런 자를 후계자로 지명할지도 모른다니 말이에요. 그게 말이 되나요?”
“후후후, 태양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오.”
“그 말씀은 다른 자가 물려받을 수도 있단 말씀인가요?”
“태양장엔 후계자는 후손들 중에서 제일 뛰어난 자가 된다는 전통이 있소. 만약 겁쟁이 그놈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있으면 그자에게 넘어갈 거요.”
“그럴 만한 인물이 없으면 어떻게 되나요?”
태운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글쎄? 지금까지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으니... 두고 보면 알겠지.”
일행이 얘기를 하는 사이에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나으리, 개방으로부터 서찰이 도착했습니다.”
황금상단의 식솔이 쪽지만 전하고 급히 사라진다.
“후후후, 재밌군. 재밌어.”
“무슨 내용입니까?”
“직접 봐라.”
일초가 서찰을 태운에게 넘긴다.
“대형께서 보셔야겠습니다.”
태운은 확인하고선 무진에게 건넨다.
< 대형께 두 가지 소식을 전해 올립니다. 하나는 태양장에서 좌호법과 부하 열 명을 급파했다는 소식입니다. 좌호법은 장주도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의 핵심인물입니다. 다른 하나는 소장주가 직접 대형이 계신 곳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 사이 물건을 저희들이 처리할까 합니다. 대형의 결정을 기다리겠습니다.
소개 올림 >
개방의 소방주 소개가 보낸 서찰이다.
“잘 하면 일이 쉽게 풀릴 수 있겠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장주에게 서찰을 보내라. 내용은 이렇다. 물건을 확보했으니 보관 장소가 필요하다고.”
“알겠습니다.”
태운이 대답을 하곤 사라진다.
“새벽에 몰래 빠져나간다.”
“놈들이 있는 곳으로 갈 생각이십니까?”
“가능하면 충돌 없이 일을 끝내야 한다.”
“금괴만 빼돌릴 생각입니까?”
일초다. 그의 목소리에서 섭섭함이 느껴진다.
“왜, 장난치고 싶어서 그래?”
“그냥 보내긴 너무 아깝잖아요?”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가능하면 우리가 드러나지 않아야 된다.”
“염려 마시오.”
“좋은 계획이라도 있습니까?”
“놈들끼리 싸우면 볼만 할 거야.”
“누구랑 말입니까?”
“누구긴 누구야? 소장주와 이공자란 놈이지.”
“이 공자는 거의 무력화되지 않았나요?”
“좌호법이란 자가 그 놈의 후견인이란 소문이 있다.”
“아! 그렇군요.”
“재밌는 구경을 하게 될 테니 기대해라.”
“그럼 저흰 물러났다가 새벽에 오겠습니다. 가시죠?”
태민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도?”
“예. 형님이랑 누님도 좀 쉬셔야죠.”
태민은 일초의 손을 잡고 끌다시피 밖으로 나온다.
“소미야, 너도 가자.”
“야아옹!”
소미가 호란의 품에서 나와 태민의 어깨 위에 오른다.
“야, 가란 소리도 안 하는데 가는 게 어딨냐?”
“형님도 참, 지난 며칠 동안 두 분이서 오붓한 시간을 한 번도 못 가졌잖아요?”
“그럼 우린 그런 시간을 가졌냐?”
일초가 입을 삐쭉하며 불평한다.
“형님도 결혼을 하세요. 그럼 형수님과 영원히 같이 지낼 수 있도록 해드릴게요.”
“에라이, 이놈아! 네 놈 속셈을 모를 줄 아니? 난 결혼이 아니라 결혼 할애비를 해도 절대 형제들이랑 안 떨어진다.”
“쯧쯧쯧, 형이란 놈이, 어째 동생보다 배려심이 더 없냐?”
“흥! 형이 내 나이에 혼자 돼 보시오. 배려심이 생기나?”
“알았다. 넌 그렇게 앞으로도 계속 혼자 살아라. 안 그래도 니 형수가 준비하는 것 같던데, 취소하라고 해야겠다.”
“아..아니오. 우린 빠져줄 테니까 두 분이서 달콤한 시간 보내시오.”
“후후, 알았다. 그리고 민아!”
“예, 대형!”
“어디 가서 한 잔해라. 피로도 풀고, 감시하는 놈들 시선을 돌리는데도 도움이 될 거다.”
“그리 하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소? 아님, 혹시 날 시험하는 거요?”
“그래. 네놈은 그냥 방에서 쉬어라.”
“하하하! 그냥 한 번 해본 소리요. 그럼 즐거운 시간되시오.”
일초는 황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두 사람은 서찰을 보내고 돌아오는 태운을 데리고 장원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이들은 야시장을 지나고 있다.
“뭘 그렇게 봅니까? 혹시 선물할 여인이라도 생겼소?”
일초가 여인네들이 좋아하는 패물을 구경하자 태운이 슬쩍 시비를 건다.
“니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 형님이 여자들에게 한 인기하잖니?”
“이런 걸로 작업을 거시는 거요?”
“작업이라기보다 진심을 전하는 거지. 그래서 서로 마음이 통하면 좀 더 깊숙이 사귀는 거고. 니들도 하나씩 골라봐라.”
“전 됐습니다. 사형은 마음에 드는 게 있소?”
“난 나비 문양 비녀가 마음에 드는데, 줄 여인이 없네.”
“없으면 어때? 사 뒀다가 생기면 그때 주지 뭐.”
“그럴까? 너도 하나 골라봐라.”
“그럼 난 이걸로 할래요.”
“그건 어디에 쓰는 거냐?”
“빗이요. 이건 접은 상태고, 펴면 이렇게... 빗이 된다오.”
태운은 접이용 빗을 잡고, 태민은 나비 문양의 비녀를 선택한다. 일초는 일곱 빛깔의 작은 노리개를 집는다.
“계산은 내가 할 게. 주인장!”
“예, 손님! 모두 다섯 냥입니다. 대협! 왼쪽에 셋, 오른쪽에 다섯입니다.”
주인은 계산을 하면서 작은 소리로 말한다. 아마 개방의 제자인 모양이다.
“아이고, 이걸 어쩌나? 가진 게 이것뿐이네. 옛소! 넉 냥으로 합시다.”
“손님, 이건 안 됩니다. 다 팔아야 겨우 한 냥 남기는데, 그걸 다 깎으면 전 뭘 먹고 삽니까요?”
“얘들아, 안 된단다.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아... 아닙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물건을 돌려주려 하자 주인장은 화들짝 놀라며 일초가 쥐고 있는 돈을 낚아챈다.
“하하하! 많이 파시오.”
“감사합니다.”
“술은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하하하! 이럴 땐 막내가 좋네요. 사형, 우리 내기 어때요?”
“무슨 내기? 지난번처럼 또 저녁내기 하자고?”
“저녁 내기는 내긴데.... 형님에게 선물을 받았으니 이걸 먼저 여인에게 주는 사람이 이기는 건 어떻소?”
“야! 그거 좋다. 그런 거라면 나도 하자.”
“형님은 곤란합니다.”
“왜?”
“누님이 형님 결혼 상대를 찾고 있잖아요? 그럼 우리가 불리하죠.”
“운아! 그 말 정말이냐? 나도 여러 번 듣긴 했는데, 우리가 그럴 만 한 여자를 만난 적도 없는데 누굴 소개한다는 거냐?”
“형님도 참, 꼭 우리가 아는 사람만 소개하나요?”
“아가씨가 그런 여자들을 알고 있을까?”
“왜 그러세요? 누님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저러고 다니지만 1년 전만 해도 적마교 이인자의 딸이었습니다. 누님의 머릿속엔 중원 미녀들의 명단이 다 입력돼 있어요.”
“행동만 좀 더 자유로워지면 신부감을 찾는 건 별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문제는 형님이죠.”
“내가 왜?”
태민의 말에 일초가 긴장한다.
“가장 큰 걸림돌은 형님이 한 때 중원을 뒤흔들 정도로 유명한 살수였다는 겁니다.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장가가기가 쉽진 않을 겁니다.”
“민아, 내가 어떡하면 되겠니?”
“일단 저기 가서 가볍게 한 잔 하면서 생각을 해보죠.”
태운까지 거들고 나선다.
“그..그래.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아까 황금상단 식솔들에게 물어봤는데, 여기 오리구이하고 잉어찜이 입에 살살 녹는다더라. 가자!”
“오늘 저녁은 사형이 산다고 했는데.... 하긴 사형이 사봐야 만둔데... 그보단 오리구이가 훨씬 낫겠지. 사형! 갑시다.”
태운은 어깨에 힘을 주며 일초를 뒤따른다.
‘형님! 저놈들은 어찌할까요?’
‘마음이야 당장이라도 요절내고 싶지만 어쩌겠냐? 당분간은 참아야지. 자..잠깐! 이게 뭐지?’
일행이 전음을 나누며 주루 앞까지 왔을 때였다. 갑자기 일초가 몸을 비틀거린다.
‘형님, 왜 그러세요?’
‘도..독이다!’
‘뭐하냐? 빨리 쓰러져!’
“크윽!”
“우우욱!”
일초의 전음에 태민 사형제는 입술을 깨물며 그 자리에 쓰러진다. 그런데 세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데도, 차 한 잔 마실 시간 동안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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