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44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44
“뭐...뭐라고? 지금 농담하는 거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설사 고금제일인이라고 해도 그건 불가능하오.”
“이 사람아, 지금이 농을 할 땐가?”
“물론 지금 무림에 그런 사람이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에 태양장이 관련된 이상 그걸 전혀 배제할 순 없습니다.”
“그렇지. 태양장이 있었지. 그 말은 태양장에 고금제일인과 비슷한 경지에 오른 자가 있단 말이오?”
단주는 일초의 말에 조금씩 빠져든다.
“꼭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설사 그런 자가 있다 해도 이번 사건에 관여했을 가능성도 높지 않습니다. 다만 태양장의 호법과 같은 무림 절대고수들이 개입했다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갔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으음!”
“그럴 순 있겠지.”
천호상과 공청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 대한 대비책은 있소?”
“대비책은 지금부터 세워야죠. 형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일초가 무진의 의견을 묻는다.
“난 후자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이유가 뭡니까?”
“만약 단숨에 멀리 갈 수 있다면 소부인을 이용하지 않았겠지.”
소부인은 공청의 며느리를 말한다.
“옳거니!”
“바로 그거야!”
천호상과 공청은 동시에 반응을 보인다. 자신들이 원했던 답을 무진이 내놓았기 때문이다.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자신들로선 막기 어렵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오?”
“지금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말씀해 보시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다 하리다.”
“그건 대원장도 마찬가지요. 설사 상대가 태양장이라고 해도 우릴 농락한 자들은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오.”
단주와 장주, 두 사람은 무진을 신뢰하는 눈치다.
“하나는 보안 유지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곤 이 사실을 아무도 몰라야 합니다. 이게 지켜지지 않으면 두 번째 일은 물론이고, 금괴를 되찾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건 염려 마시오. 이건 황금상단과 대원장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니까.”
참석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좋소이다. 두 번째는 유인책입니다.”
“유인책?”
“그렇소. 아무리 황금상단과 대원장에서 많은 인원을 투입해도 태양장이 개입했다면 찾아내긴 힘들 거요. 현재로선 놈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방법밖에 없소.”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세요.”
현호는 작전에 대해서 관심을 보인다.
“일단 상단의 식구들이 증거를 찾았다고 믿게 만들어야 하오. 동시에 개방을 통해서 최대한 빠르고 멀리 퍼져나가도록 하는 거요.”
“그런 다음에는 요?”
“여길 보시오. 황금상단과 태양장을 직선으로 연결하면 한 곳이 나옵니다.”
무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커다란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을 한다. 그의 손가락은 황금상단과 태양장의 중간 지점에 가 있다.
“오림(烏林)이군.”
단주 천호상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소.”
“누구든 물건을 태양장으로 옮기려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할 곳이오.”
“허허허! 하루 종일 지도를 보며 지냈건만, 우리 눈에 왜 저런 게 안 보였지?”
“넋이 나간거지. 넋이. 헐헐헐!”
천호상과 공청은 허탈하게 웃는다.
“중요한 건 여기서부터 요. 우린 크게 세 조직으로 나눠서 신속하고 긴밀하게 움직여야 하오.”
“어떻게 말입니까?”
“일조는 지금 즉시 오림을 향해서 출발해야 하오. 그리고 이조는 이곳에서 바람을 잡아야 하고, 마지막 삼조는 이곳을 감시해야 하오.”
“알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잘 안 되는구려.”
“나도 그렇소.”
천호상과 공청은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무진을 쳐다본다.
“일조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요. 하나는 증거를 잡고 범인들을 추적하는 척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을 유인하고 도발하길 기다리는 거요.”
“이조는 요?”
이번에는 태민이 묻는다.
“이조는 소문을 퍼뜨리는 일과 일, 삼조의 연락을 담당하고, 삼조는 만약 이곳에 감시자가 나타나면 그들을 추적하는 임무를 맡게 될 것이오.”
“좋소. 좋아. 이제 역할 분담만 하면 되겠군.”
천호상은 마음이 급하다. 혹시라도 도둑들이 포위망을 빠져나갈까 봐 그런 것이다.
“1조는 우리 가족이 맡을 거요. 2조는 단주와 장주가, 삼조는 총관이 책임지시오.”
“알겠습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는데 그건 두 분이 해결해줘야겠습니다.”
“그..그게 뭡니까?”
공청의 목소리가 약간 떨린다. 혹시나 큰 문제라도 있을까봐 그런 것이다.
“너무 긴장할 건 없소. 혹시라도 관부가 움직이면 곤란하니까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란 말씀이오.”
“아, 그런 거라면 걱정 마십시오. 그 동안 놈들에게 투자한 게 얼만데.... 허허허!”
공청은 뇌물을 먹였다는 말을 하곤 멋쩍었던지 머쓱하게 웃는다.
“우린 황금상단의 옷을 입고 움직일 거요. 연락은 총관이 일초와 하던 방식대로 하시오.”
“알겠습니다.”
현호가 대답하자마자 무진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바로 출발하실 생각이오?”
“그렇소. 우리가 출발하면 곧바로 소문을 퍼뜨려 주시오.”
“그건 염려 마십시오. 소문은 바람보다 더 빠르게 퍼질 테니.”
단주는 처음과는 달리 자신감을 되찾는다. 지난 보름동안 그는 노심초사하며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다. 그건 공청도 마찬가지다. 그의 며느리와 손녀는 무진 일행이 나가자 정중하게 인사한다.
“자네 저러다 조만간 손녀사위를 보는 거 아닌가?”
“바라는 바일세.”
“에잉? 겨우 한 번 보고 그런 말을 하다니 자네답지 않군.”
“자네가 그 자리에 없어서 그런 말을 하지. 있었다면 아마 오줌을 지렸을 걸?”
“그게 뭔 소리야? 첫째야!”
천호상은 대원장의 소부인을 부른다. 설명을 하란 말이다.
“호호호! 죄..죄송해요. 그 때 일을 생각나서...”
“그 정도로 인상이 깊었더냐?”
“예, 저 아이들의 기세에 아버님은.... 이런 말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한 마디로 고양이 앞의 쥐였어요. 죄송해요.”
“작은 할아버지.”
갑자기 옆에 있던 공청의 손녀 공령이 끼어든다.
“이놈아, 내가 왜 작은 할아버지냐?”
“예, 큰 할아버지.”
“에잉? 우리 령이가 어쩐 일이냐? 날 큰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헐헐헐! 들어보고 판단해라.”
“말해 봐라. 황금상단의 운명이 달린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는데 손녀 소원하나 못 들어주겠냐?”
“너 그 말 책임지려면 기둥뿌리 몇 개는 뽑힐 텐데, 괜찮겠냐?”
“얘들이 오늘 따라 왜 이러는 거야? 령아, 말해봐라. 큰 할애비가 책임지고 해결해주마.”
“감사해요.”
“에잉? 너 지금 우는 거냐? 첫째야!”
이번에는 천호상이 대원장의 소부인을 찾는다. 그녀의 눈가엔 이슬이 맺혀 있다.
“어르신, 오늘 우리 대원장은 큰 도박을 한 번 해볼 생각이에요.”
“도박? 설마 도박장을 열겠다는 건 아닐 테고, 혹시 저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냐? 서..설마... 내추측이 맞는 거냐?”
“그렇습니다. 이곳에 오는 동안 아버님과 령이랑 의견 일치를 봤어요. 아범한텐 아버님이 말씀하실 거예요.”
“어느 놈이냐?”
“태운이란 분이에요. 큰 할아버지. 전 남은 인생을 그분에게 바칠 생각이에요.”
“그 정도로 마음에 들었느냐?”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지금 상황에서 못할 말이 어딨겠니?”
“사실 지금 당장 그 분과 혼인하고 싶어요.”
“예끼, 이놈아!”
“그건 제 생각이기도 해요. 어르신도 그 아이의 신위를 봤다면 령이 또래의 손녀가 없는 게 두고두고 아쉬우실 거예요.”
“공가야! 설마 장난은 아니지?”
“미친 놈, 세상에 하나뿐인 손녀를 두고 장난칠 위인이 어딨냐? 난 지금 어디 가서 손녀를 하나 더 만들어 오고 싶다.”
“흠! 그 정도로 마음에 들었단 말이지? 근데 내가 알기론 저 아이들은 무당의 도사들이 분명한데...”
“그건 걱정 마세요. 얼마 전에 무당의 속가제자가 됐다나 봐요.”
“대제자로 차기 장문인으로 유력하던 놈을 속가제자로 만들었다고?”
“연유는 모르겠다만 무당의 제일 큰 어른인 극양자의 결정이란다.”
“허! 이렇게 되면 나도 정말 어디 가서 손녀를 하나 만들어 와야겠다.”
이들은 창문 너머로 장원을 빠져나가는 무진 일행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소장주! 천소입니다.”
다급한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온다.
“저 새낀, 항상 말을 안 들어 처먹어요.”
“아잉! 나리, 전 아직 불이 안 꺼졌단 말이에요.”
방안에선 태양장의 소장주 유현이 아리따운 여인과 함께 발가벗은 채로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
“이년아, 나라고 꺼졌겠냐?”
“그럼 기다리라고 하세요. 일각이면 돼요. 일각! 아잉?”
여인은 상체를 드러내며 유현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냉랭하다.
“일각? 으하하하하! 이년이 누굴 고자로 아나? 조용히 꺼져라. 침대에선 피를 보고 싶지 않으니까.”
“에이, 씨발. 재수 옴 붙었네. 그럼 그 물건 가지고 한 시진이라도 할 생각이었냐?”
여인은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유현의 귀엔 천둥소리만큼 크게 들렸다.
“뭐..뭐라고? 이 년이!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 봐라.”
유현은 몸을 날려서 여인의 목을 잡고 들어올린다.
“아아악! 왜..왜 이러세요? 커어억!”
“큭큭큭! 안 그래도 목이 말랐는데 잘 됐다.”
유현의 얼굴에 악마상이 떠오르며 손이 벌겋게 변한다.
“사..살려주세요. 제..제발! 아아악!”
여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현의 손이 그녀의 심장을 관통한다.
“꿀꺽! 꿀꺽!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어린년이라서 그런지 피가 신선하군. 크크크크!”
여인의 심장을 꺼내 피를 마시는 모습이 마치 악귀 같다.
“소장주!”
유현의 심복인 천소조차 방안으로 들어오며 인상을 찌푸린다.
“그러니까 계집들과 있을 땐 찾지 말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워낙 급한 일이라.”
“또 무슨 일인데?”
“황금산장에서 일단의 인물들이 이쪽으로 출발했다는 소식입니다.”
“그게 뭐 어쨌다고? 고작 그 일로 방해한 거냐?”
유현은 천소에게조차 적의를 드러낸다.
“그..그게 아니라.... 소문에 의하면 놈들이 우리의 행적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우리의 행적이라니? 그럴 만 한 단서를 남겼더냐?”
“그럴 리가 있습니까? 소장주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내가 직접 일을 관장했으니까. 근데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
“자세한 건 모르지만 개방에서 흘러나온 소문에 의하면 황금상단과 대원장을 이간시키는 작전이 실패하면서 일이 급진전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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