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33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33
“그 새끼 그거 하다하다 이젠 준다는 데도 지랄이네. 그럼 주지 말까?”
“그 말이 아니잖소? 우리가 지금까지 형님을 위해서 한 거라곤 쫓아다닌 것밖에 없소. 하지만 형님은 만날 때마다 무공을 가르쳤고, 내공을 증진시켜줬소. 말로는 우릴 부려먹기 위해 그런다지만, 그것도 믿을 순 없소. 오지 않는 미래니까요. 말씀해보시오. 우릴 이렇게 대하는 이유에 대해서.”
“간단하다. 우린 형제다. 형제는 원래 그런 것이다. 서로가 가진 걸 같이 나누는 것이야 말로 형제가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이다.”
“정녕 그뿐이오?”
“물론 있지. 난 거의 200년 만에 세상으로 나왔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복수를 위해서다.”
“복수요?”
“그래. 난 지금도 날 죽음으로 내몬 자들이 중원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니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그렇게 믿고 있다. 설사 그들이 죽었다 해도 그 후손들이 지배하고 있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으음! 그래서 우릴 복수의 도구로 써먹기 위해 키우는 거란 말씀이오?”
“꼭 그렇게 시작한 건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그렇게 된 셈이다. 그래서 니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게 왜 형님이 미안해야 할 일이니까? 무림을 파괴하려는 자들에게 대항하는 건 전 무림인의 몫입니다. 형님이 원하지 않아도 우린 할 겁니다.”
이 순간 일초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자! 그 얘긴 그만하고, 영단이나 만들자.”
무진은 분위기가 어색한지 서둘러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하지만 일초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큰 절을 한다.
“일초가 형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태민 사형제도 대형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호란도 정랑께 감사의 인사를 드려요.”
이렇게 네 사람이 한꺼번에 무진에게 대례를 올린다.
“그래. 나도 너희랑 형제의 연을 맺어서 기쁘구나. 다 같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무진은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으며 형제의 정을 나눈다. 마지막엔 호란과 깊게 포옹을 한다. 동생들은 물론이고, 그의 눈에도 이슬이 맺힌다.
단약은 호란의 주도하에 만들어지고 있다. 과정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우선 커다란 솥에 산삼을 비롯한 영초들을 모두 넣고 끓인다. 이렇게 하루 정도 지나면 영초들이 모두 녹는다. 그런 다음에 반 잔 정도 남은 영물들의 액체를 섞는다. 그러면 일단 성공을 한 것이다. 이때부터 액체가 끈적끈적해질 때까지 은은한 불로 끓이면 된다.
“시간이 될까요?
호란이 옆에서 불을 살피고 있는 일초에게 묻는다.
“사실 오늘 아침에도 황금상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안 좋은 소식인가요?”
“좋진 않습니다. 황실과 태양장이 충돌 직전의 상황이라고 합니다.”
호란이 말하는 시간이란 황금상단으로 떠나기 전에 영단을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정랑은 뭐라고 하세요?”
“특별한 말씀은 없었습니다. 제 생각엔 두 세력이 싸운 뒤에 가실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게 언제쯤 될까요?”
“개방에선 삼, 사일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영단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양은 얼마나 나올까요?”
“지금까지 반 정도로 줄었고, 앞으론 더 많이 줄 거예요. 그래도 워낙 양이 많기 때문에 대환단에 버금가는 영단이 수백 개가 만들어질 거예요.”
“우와, 그 정도면 소림사가 지금껏 만든 것보다 더 많지 않을까요?”
“소림에서 얼마나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아마 그럴 거예요.”
“그 많은 걸 어디다 쓰죠?”
“그거야 정랑이 판단하시겠죠? 오라버니도 필요하세요?”
“아..아닙니다. 몸속에 있는 것도 감당을 못하는데, 이놈까지 먹었다가 어떡하려고요?”
“저도 그래요. 밤새 운기를 했는데도 조금의 변화도 없으니...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요.”
“이러다가 평생 다 못 녹이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기야 하겠어요? 매일같이 하다보면 언젠간 되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전 형님에게 가보겠습니다.”
“참, 오늘은 해독약을 만든다고 하셨는데... 다녀오세요.”
“예!”
무진이 태민 사형제와 해독약을 만드는 곳은 조금 떨어져 있다. 혹시라도 독이 퍼질까봐 숲속의 작은 동굴에 자리를 잡았다.
독약은 독두섬여와 만년관사의 독에 약간의 첨가물을 넣어서 만든 것이고, 해독약은 세 영물로 만든 영약으로 만들고 있다. 두 독물의 독은 무진이 십지엽초와 섞기 전에 독물들의 몸에서 빼놓았다. 각자 열 방울도 안 되는 독액으로 이미 상당량의 독을 만들었다. 지금은 해독약을 만드는데 열중하고 있다.
“콜록! 콜록!”
“켁! 켁!”
태민 사형제는 둘 다 기침을 한다. 뿐만 아니라 얼굴색이 검게 변한다. 중독증상이다.
“사형! 해독약을 안 먹었소?”
“아차! 깜빡했다.”
“나도 까먹었소.”
“고소하다 이놈들아! 내가 그랬지? 독을 만들기 전에 해독약부터 먹으라고.”
두 사람이 비록 영물들을 먹었지만, 완전히 소화할 때까진 중독될 수 있다. 그래서 무진이 가지고 있던 해독약을 줬다. 근데 그걸 까먹은 모양이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혹시 대형이!”
두 사람은 동시에 무진을 쳐다본다. 아마 무진이 독을 뿌린 모양이다. 일종의 수련과정이다.
“그럼 말하고 뿌릴까? 무림은 약육강식의 전쟁터다. 싸우지 않으면 모를까, 일단 붙기로 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이때 파공성이 들리며 여러 개의 암기가 무진과 태민 사형제를 향해 날아온다. 동시에 한 사람이 무진을 향해 날아온다.
“커억!”
“우욱!”
태민 사형제는 각각 어깨와 옆구리에 암기를 맞고 쓰러진다. 그에 반해 무진은 한 걸음 옆으로 비켜 암기가 지나쳐간다. 이어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크으윽!”
“자식이 숨소리를 그렇게 크게 하고 기습하면 누가 모르냐?”
일초살수다.
“그건 형님한테나 들리지 얘들은 모르잖소?”
“그래서 한 번 해보자는 거냐?”
“누가 그런 댔소? 그냥 형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해서 한 번 해본 것뿐이오. 니들은 계속 그렇게 있을래?”
“그래서 할 사람이 없어서 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거요?”
“그것도 중독된 동생이죠.”
“나뭇가지에 맞은 것 가지고 엄살은? 뭐해? 해독약을 먹어야지.”
“그러는 형님은 왜 안 드십니까?”
“내가 왜? 에잉? 나도 당한 거요?”
일초는 내공을 끌어 올려 중독된 걸 확인하고는 무진을 쳐다본다.
“생각 해봐라.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하면, 그냥 당하기만 하겠냐?”
“그래서 입구에 독을 뿌렸다?”
“모든 게 실전이다. 자칫 방심했다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앞으로 우리가 상대해야 할 자들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명심해라.”
“알았소.”
일초는 대답을 하고는 동굴 안을 살핀다.
“해독약은 만들었소?”
“직접 확인 해봐.”
무진은 손가락으로 동굴의 중앙에 놓인 솥을 가리킨다. 그 속에 해독약이 들어 있다.
“됐소. 또 무슨 장난을 치려고...”
“자식이 속고만 살았나? 민이가 확인해봐라.”
“예!”
태민은 대답을 하곤 곧바로 솥으로 다가가서 뚜껑을 연다.
화라라라랑!
뚜껑을 여는 순간 동굴 안이 밝아지며 머리를 맑게 하는 향기로 가득 찬다. 이런 걸 두고 ‘향기가 소리를 타고 흐른다.’고 하는 것이리라. 네 사람은 잠시 눈을 감고 향기에 취한다.
‘천상의 향기가 있다면 이런 것일 거다. 으음! 냄새만으로도 몸속의 독기가 사라지고 있다.’
태민이 쳐다보자 태운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해독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건 일초살수도 마찬가지다. 그의 얼굴은 서서히 붉은 빛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걸 어떻게 보관할 생각이오? 냄새 때문에 어려울 것 같은데.”
일초의 말대로 향기가 너무 강해서 쉽게 발각될 수 있다.
“해독약은 이천 개 정도 만들 생각이다.”
“그렇게 많이 요?”
“생각보다 많이 만들어졌다. 저걸 사용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겠지만,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아껴야 한다. 일단 각자 백 개씩 가지고 나머지는 모두 일초 니가 가지고 있어야겠다.”
“제가요?”“
“그래. 형제 중에서 숨는 데는 니가 제일이니까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지.”
“저도 동감입니다. 형제 중에 누군가가 극독에 당했는데 해독약이 없다면 신법이 제일 빠른 형님이 움직이셔야죠.”
“운아, 그거 칭찬이지?”
“그럼요. 천하제일의 살수가 되려면 일단 은폐를 잘해야 하고, 발이 빨라야 할 테니까요.”
“하하하! 니들한테 인정을 받으니까 정말 기분이 좋다.”
“저희보단 대형께서 먼저 인정하셨지요.”
“하하하! 그렇지. 고금제일인이 인정을 했으니 이제야 말로 천하제일살수란 소릴 들어도 되겠다. 되겠어.”
“그럼 지금까진 천하제일살수란 별호가 마음에 안 드셨어요?”
“마음에 안 들은 게 아니라 부끄러웠지. 사람을 죽이는 걸로 천하제일이란 게 좀 그렇지 않니?”
“이제부턴 사람을 살리는 천하제일살수가 되면 되죠.”
“까짓것 그렇게 하지 뭐.”
“근데 전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정말로 형님이 살인교를 멸문시켰습니까?”
태운이 갑자기 화제를 바꾼다.
“저도 이해가 안 됩니다. 살인교 정도면 일류 살수들만 해도 수백 명은 될 텐데, 그게 가능합니까?”
“어떤 조직이든 마찬가지지만, 그 조직을 무너뜨리기 위해 모든 구성원을 다 없앨 필요는 없다.
“그럼 어떻게 해요?”
“먼저 그 조직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교주를 비롯한 핵심 인물들의 특징과 소재를 파악해서 차례대로 처리하는 거지.”
“교주부터 처리한단 말씀입니까?”
“항상 똑 같진 않지만 살인교의 경우는 교주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서 영주들부터 처리했다. 그러자 교주가 모습을 드러내더군. 교주와 영주, 그리고 몇몇 단주들을 처리하니까 살인교는 저절로 무너지더라. 전체 칠백 명의 살수 중에 삼십 명 정도밖에 처리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 죽인 자는 채 열 명도 되지 않지만.”
“예에? 고작 열 명이 죽었다고 천하의 살인교가 무너져요??
“으음! 핵심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바로 그거다. 살수란 직업이 겉으론 단순한 것 같지만 생각보다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전 살수는 못할 것 같습니다.”
“살수란 직업은 인간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직업이다.”
“천하제일살수인 형님이 그런 말씀을 하니 이상합니다.”
“후후후, 그런가? 아마 무림인들 중에서 죽어 지옥에 떨어질 사람을 찾는다면 단연 내가 일등일 거야.”
일초는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는지 목소리에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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