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31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31
“그렇소. 나도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소. 하지만 분명한 건 여기가 바로 천하제일의 지기(地氣)가 모인 곳이오. 그렇지 않고선 천지음양조화정이 만들어질 수가 없소.”
“천지음양조화정이란 게 그렇게 중요한 거요?”
“우주의 참 기운이 모여드는 곳이라면 이해가 되느냐? 만약 이곳이 무너지면 중원은 물론이고, 천체(天體)의 균형이 깨지게 된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긴 포기한다.”
“예에? 이 걸 다 포기한다고요?”
일초는 물론이고, 일행 모두 낙담한 표정이다.
“물론 몇 뿌리 정도는 문제가 없을 거다. 하지만 균형을 깰 정도는 안 된다. 철수한다!”
무진은 냉정하게 몸을 돌린다. 그걸 보고 모두 감탄한다.
‘이게 형님과 우리의 차이다. 나라면 설사 천체 전체가 무너져도 포기하지 않을 텐데....’
일초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진의 결단력을 인정한다.
‘사형,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그러게. 난 대형처럼 하진 못할 것 같다.’
‘그렇겠죠?’
‘아무 것도 건드리지 마라. 그냥 물러간다.’
일초도 마음을 비우고 발걸음을 돌린다.
“누님, 우리가 잘한 거겠죠?”
절벽을 내려오자 태민이 호란에게 말을 건다.
“후회되니?”
“아니요. 다만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건드리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은 돼요.”
“그렇더라도 그건 어쩔 수가 없지. 우리처럼 순순히 물러나길 바랄 수밖에.”
“대형! 오늘은 그만할까요?”
“운이가 많이 섭섭한 모양이구나.”
“아..아닙니다.”
“괜찮다. 나도 조금은 섭섭하니까.”
“대형이요?”
“난 사람이 아니니? 그 짧은 시간 동안 수천, 수만 번도 더 고민했다. 다만 나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면 아쉽더라도 포기해야지.”
“예, 명심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진 마라. 조금만 더 가면 우리가 필요한 것들이 있을 것도 같으니까.”
“정말요?”
“후후후, 그렇다고 너무 기대하진 말고.”
“대형 말씀대로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그게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다. 가자! 놈들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다.”
“약초 냄새도 맡을 수 있으세요?”
“내 별명이 개코란 걸 잊었니?”
“저랑 사형도 요즘은 개코란 소릴 듣고 있어요.”
“호호호! 정랑한테 배웠으니 당연하지.”
“그럼 저도 개코가 될 겁니다.”
일초까지 나서서 개코를 자처한다.
“당신은 어떡할 거요?”
“우린 한 식군데 당연히 개코가 돼야죠.”
“하하하! 그럼 우린 지금부터 개코 가족이요.”
“개코 가족! 하하하하! 호호호호!”
일행은 숲속을 걸어가면서 한바탕 웃는다.
“우뚝!”
얼마나 걸었을까? 무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일초만 따라와라!”
무진은 화살보다 더 빠르게 달려간다.
“예!”
일초 역시 쏜살같이 달려간다. 그의 다리는 지금 정상이 아니다. 그와 동생들은 생사무를 익히느라 관절이란 관절은 모두 퉁퉁 부어 있다. 그런데도 일초는 잘 달려간다.
두 사람이 달려간 곳은 커다란 접시처럼 생긴 숲속의 넓은 공터이다. 주위는 아름드리나무와 사람의 키보다 더 큰 풀로 막혀 있어 보통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곳에는 지금 엄청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근데 그건 사람들이 벌이는 싸움이 아니다.
영물과 영물의 전쟁!
두꺼비와 뱀.
독각섬여(獨角蟾蜍)와 만년관사(萬年冠蛇).
두 영물은 필사의 격전을 벌이고 있다. 머리에 왕관모양의 뿔이 있는 가느다란 뱀이 역시 머리에 하나의 뿔이 달린 두꺼비를 칭칭 감고 있다.
우르르릉! 콰쾅쾅쾅쾅!
두 영물의 기운이 충돌하면서 주위는 완전히 초토화가 된다.
‘우우웃! 저것들이 다 뭡니까?’
현장에 도착한 일초는 충격에 몸이 흔들리는 걸 간신히 버틴다.
‘저걸 차지하기 위한 영물들의 싸움이다.’
무진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공터의 중앙에 있는 작은 화단이다. 거기엔 여러 개의 입을 가진 제법 큰 풀이 하나 자라고 있다.
‘저것도 영초입니까?’
‘십지엽초다.’
‘구지엽초란 말은 들어봤어도 십지엽초는 처음입니다.’
‘전설로만 전해오는 영초다. 하나의 입이 만들어지는데 만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십만 년이 흘러 열 번째 입이 나오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고 한다. 보아하니 꽃은 지고 이제 열매가 맺힐 단계이다. 그걸 취하려고 저놈들이 싸우는 중이고.’
‘십만 년 만에 피는 꽃과 열매라. 대단하군요. 대단해. 근데 보통 저런 영물들이 있는 곳엔 다른 영초들도 많다던데..... 허억! 이게 모두....’
일초는 주위를 살피다 말문이 막힌다. 누구나 눈앞에 펼쳐진 영물들을 봤다면 그와 같은 반응을 보였을 거다.
‘원래 천지음양조화정 주변엔 그보다는 못하지만, 또 다른 영물들이 있다고 전해진다. 야, 정신차려!’
‘아, 예. 근데 이게 다 산삼입니까? 저건 하수오고. 저건 영지버섯인데... 적어도 수백 년은 된 것 같소.’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서 들쥐나 몇 마리 잡아오너라.’
‘들쥐는 왜요?’
‘저놈들을 유인하려면 필요해.’
‘저 무시무시한 놈들을 잡으려고요?’
‘그래. 시간 없으니까 빨리 갔다 와.’
‘아..알았소.’
‘아니다. 그건 민이와 운이에게 시키고, 우린 최대한 십지엽초로 접근한다. 눈치 채면 곤란하니까 기운을 모두 죽여라.’
‘알았소. 흐읍!’
일초는 내력을 감춘 다음 무진을 뒤따른다. 당연히 바닥을 엎드린 채 기어간다. 일각 쯤 지나자 십지엽초가 꿈틀대더니 꽃을 피운다.
‘으음! 저렇게 아름다운 꽃은 처음 봅니다. 대체 저런 색깔이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예쁘기만 하냐? 향기는 어떻고? 으음!’
무진은 꽃이 발산하는 맑고 투명한 기운을 보며 한 동안 말을 못한다. 그 기운은 주위 일대를 밝힌다.
파라라라라.....랑!
‘아무래도 꽃이 지고 열매를 맺을 모양입니다.’
‘시간을 맞춰야 하는데...’
무진은 전음으로 태민에게 쥐를 잡아오라 시켰다.
콰아아아앙!
영물들도 시간이 됐음을 아는지 더욱 격렬하게 싸운다. 그들이 싸우는 방식을 간단하다. 자신의 기운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하지만 워낙 기운이 팽팽해서 쉽게 승부를 내질 못한다.
‘숨을 멈춰라!’
무진과 일초는 최대한 십지엽초에 가깝게 접근했다. 오히려 영물들보다 더 거리가 가깝다. 문제는 가까워질수록 영물들이 뿜어대는 독기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발산하는 뿌연 안개 속엔 지상최고의 독이 들어 있어서 무림고수라 할지라도 한 번만 들이마셔도 즉사한다.
‘대..대형!’
태민의 전음이다. 들쥐를 잡아온 모양이다. 그도 주위 상황에 놀랐는지 목소리가 떨린다.
‘침착하게 행동해야 한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쥐가 든 주머니를 최대한 영물들 근처에 던져라. 그럼 놈들이 잠시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럼 일초가 십지엽초의 열매를 취하고, 난 놈들을 생포할 거다. 가장 중요한 건 각자 역할이 제 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 전 준비가 됐습니다.’
‘일초는?’
‘저도 좋습니다.’
‘운이는 약초바구니를 준비하고, 내가 놈들을 기절시키면 즉시 던져야 한다.’
‘알겠습니다.’
‘자, 준비해라. 셋을 세면 민이부터 시작한다. 하나!...두울!...셋!’
휘이이익!
무진이 손가락으로 셋을 표시하자 태민이 주머니를 던진다. 다행히 주머니는 날아가서 두 영물의 바로 앞에 떨어진다. 동시에 그 속에서 쥐들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치치치칙칙!
순간 영물들의 움직임이 정지된다. 쥐는 두꺼비와 뱀이 제일 좋아하는 먹이 중의 하나다. 그러니 당연히 반응을 보일 수밖에.
우우우웅!
동시에 십지엽초의 꽃이 떨어지고, 그 속에서 순식간에 주먹 만 한 열매가 맺힌다. 무진이 눈짓을 하자 일초가 주머니를 꺼내 그 열매를 따서 담는다. 동시에 무진은 두 영물을 향해 몸을 날린다.
파팟!
단 두 방에 영물을 제압한다. 무진은 독각섬여는 머리에, 만년관사는 눈 사이를 찍었다.
휘이이익!
그 순간 정확하게 바구니가 날아와서 두 영물은 그 속으로 들어간다.
‘이런 일은 빨리 끝내는 게 좋다. 주위에 있는 영초들 중에서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돌아간다.
‘예!’
무진이 명을 내리자 동생들은 모두 들고 있던 바구니에 산삼과 영지, 그리고 구지엽초를 비롯한 갖가지 약초들을 담는다.
“이렇게 많았어? 천 개도 넘겠다.”
“많은 것도 많은 거지만 하나같이 수백 년은 된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일행은 방안에 약초를 늘어놓고 모두 감탄한다. 일단 숫자가 엄청나다. 언뜻 봐도 천 개가 넘을 것 같다. 대충 필요한 만큼 가져온 게 이 정도이다. 게다가 하나같이 시중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영초들이다.
“대부분이 산삼입니다. 그 외에는 영지버섯과 구지엽초, 그리고 하수오 등입니다.”
“이건 분명히 누군가가 심은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선 나이가 모두 비슷할 수가 없어.”
태운이 약초에 대해 설명하자 일초는 인간에 의해서 재배된 것임을 강조한다.
“적어도 사백 년은 된 것들이다.”
무진에 의해 영초들이 수명이 확인된다.
“아닌 것도 있잖아요?”
“그런 게 어딨어?”
태운의 말에 일초가 강하게 부정한다.
“저놈들!”
독각섬여(獨脚蟾蜍)와 만년관사(萬年冠蛇)를 말한다. 두 마리는 여전히 제압된 채 바구니에 담겨 있다. 이들은 나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오래 살았다.
“하긴 저놈들은 다르지. 저놈들은 얼마나 살았을까요? 형님!”
무진은 구석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다 일초가 부르자 대답한다.
“만년관사가 최소 만년을 살았으니 그와 비슷한 능력을 지닌 독각섬여도 그 정도는 살았겠지.”
“마..만년을 살았단 말이오? 만년을.”
“그래. 방금 말했지만 우린 너무 과분한 물건들을 얻었다. 이건 크게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한다. 하나는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어진 기회만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막중하다는 것이다. 무슨 의민지 알겠느냐?”
“예!”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지금 우리 앞엔 중원무림의 평화를 지켜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가 놓여 있다. 그걸 위해서 현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힘과 실력을 키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영물을 이용해서 최대한 많은 영약을 만드는 것이다. 양은 충분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산행은 필요 없다. 지금까지 해왔듯이 오전엔 수련을 하고, 오후엔 영약을 만드는데 전력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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