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30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30
“시간은 반나절이다. 여기에 있는 나무들로 모두 천 개의 화살을 만들어라. 당연히 내공과 도구는 사용할 수 없고, 하나라도 불량품이 생기면 안 된다. 이상!”
그 말을 끝으로 무진은 사라진다. 나머지 사람들은 충격으로 그를 막을 생각도 못한다.
“당했다. 그것도 완벽하게.”
“화살은 그렇다 치고 촉은 어디서 구합니까?”
“그건 저기 있다. 여기 살던 사람들이 쓰던 건데 천 개는 넘을 것 같더라.”
“천 개요? 여기가 병참기진가? 뭔 화살촉이 그렇게 많지?”
태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집을 쳐다본다.
“하긴 이런 깊은 산중에 저렇게 큰 통나무집이 있다는 것도 조금은 이상해.”
“안 그래도 정랑이 그런 말을 했어요.”
“뭔 말입니까?”
“사천당가가 사용하던 곳인가? 라고 말이에요.”
“그럴 수 있지. 여기도 사천성이니까.”
“이렇게 되면 정말로 대형에게 당한 거군요.”
“저 여우같은 늙은이를 우리가 어떻게 이기겠냐?”
“오라버니!”
늙은이라는 말에 호란이 버럭 화를 낸다.
“아..아닙니다. 늙은이란 말은 취솝니다. 취소!”
“여우같단 말은요?”
“그 말도 취소요. 취소!”
“흥! 전 화살촉을 가져올게요.”
일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란은 집으로 사라진다.
“하하하! 형님은 누님이 그렇게 무섭소?”
“당연하지. 넌 아직 여자들을 몰라서 그러는데,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 특히 미인들은 정말 무섭다.”
“이유라도 있습니까?”
이번에는 태민의 질문이다.
“생각을 해봐라. 미인들은 세상에서 난다 긴다 하는 놈들 차지다. 그녀들이 그놈들을 자극해서 누군가를 괴롭히려 한다면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있겠냐? 설사 견딘다 하더라도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이유 때문인가요?”
“당연히 아니겠지.”
“사형은 알고 있소?”
“형님이 누님을 쳐다보는 눈빛을 봐라.”
“눈빛을 요?”
“그래. 만약 누님이 대형의 여자만 아니었으면 일초형님이 절대 그냥 있진 않을 거야.”
“정말입니까?”
“나만 그렇겠냐? 니들도 나이가 많고 형님이 없다고 생각해봐라. 아가씨를 그냥 둘 거니?”
“당연히 내 여자로 만들려고 하겠죠.”
“그러니까 미인이 무서운 거야.”
일초의 말에 태민 사형제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세 사람의 머리에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있다.
‘일초, 너 애들한테 좋은 거 가르친다. 그러다가 화살 만드는 게 늦어지면 그땐 알아서 해라. 1:1로 한 시진 대련이다.’
무진의 전음이다.
“허억! 1:1로 한 시진요? 아..알았소. 야! 뭐하냐? 빨리 하자. 빨리!”
“예에? 예!”
일초와 태민 사형제는 황급히 나무들이 쌓인 곳으로 달려간다.
다음 날 아침, 마당에는 화살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정확하게 천 개예요.”
호란이 숫자를 센 모양이다.
“겨우 천 개 만들고 울쌍은? 쯧쯧, 그러고도 무림을 찜 쪄 먹겠다고?”
무진은 뒤에서 죽는 시늉을 하며 서 있는 동생들에게 핀잔을 준다. 그들은 모두 손에 붕대를 감고 있다.
“그걸 지금 격려라고 하는 거요?”
“격려 같은 소리하고 있네. 대체 네놈은 뭐가 될 생각이냐? 적어도 네놈 정도가 되면 작은 산 정도는 단숨에 날려버릴 정도의 꿈과 포부를 가져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고작 화살 몇 개 만든 거 가지고 붕대를 감고 지랄을 하고.... 당장 안 풀어!”
무진은 소리치며 동생들을 질타한다. 순간 동생들은 황급히 붕대를 푼다.
“일초, 너 이리와 봐.”
“예에? 왜요?”
“이 새끼가 오라면 올 것이지.”
“아악!”
무진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일초의 몸이 공중으로 붕 뜨다 곧바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내가 말했지? 똑바로 안 하면 1:1 대련이라고.”
“무슨 말씀입니까? 천 개를 다 채웠습니다. 아가씨가 확인도 했고.”
“흐흐흐, 란!”
“예, 정랑.”
“불량품이 모두 몇 개요?”
“정확하게 스무 개입니다.”
“들었지? 불량품이 스무 개란다. 그게 뭘 의미하는 줄 아냐?”
“.....?”
“두 시진이란 말이다. 대련 시간이.”
“예에? 형님!”
“시작이다.”
“크아악!”
무진은 곧바로 공격한다. 일초는 한 방에 턱을 맞고 뒤로 튕겨나간다.
“운이 너. 이놈한테 보법을 안 가르쳤냐?”
무진은 동작을 멈추고 태운을 노려본다.
“아..아닙니다. 대형 말씀대로 했습니다.”
“근데 몸놀림이 저 모양이야?”
“니들은 내 동작을 보고 그대로 연습하고, 당신은 저걸로 활쏘기 연습을 하시오.”
“알겠습니다.”
“예, 알았어요.”
“저걸 다 하루에 쏴야 하오.”
“저걸 다 말입니까?”
“천 개를 말입니까?”
호란의 일을 태민 사형제가 더 걱정한다.
“할 수 있어요. 할 게요. 걱정 마세요.”
호란은 입술을 깨물며 화살을 향해 걸어간다.
“전 뭘 할까요?”
“뭐하긴 나랑 1:1 대련을 해야지.”
“끄악!”
“안 맞으려면 보법을 펼쳐라. 그런 걸론 안 되지.”
“컥!”
일초는 순식간에 열 번 이상 바닥을 뒹군다.
“잘 봐라. 이건 격권을 고려혼과 융합해서 만든 생사무라고 한다. 격권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끊어짐이 거의 없다.”
무진은 일초를 공격하면서도 태민 사형제를 위해 설명을 한다. 그걸 보고 두 사람은 동작을 따라 한다.
“사형, 정말 동작이 매끄럽게 연결됩니다.”
“어어! 발이 저절로 움직인다.”
무진의 동작을 보고 따라하던 태민 사형제는 몸의 변화에 화들짝 놀란다.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움직여라. 가능하면 기운은 움직이되 사용하진 마라. 이 새끼가!”
무진은 말을 하다 말곤 쓰러져 있는 일초의 엉덩이를 걷어찬다.
“아악!”
“너 그러다 조만간에 동생들한테 밀린다.”
“흥! 형님이 동생들만 챙기니 그렇게 되겠죠. 뭐.”
“어이구, 저걸 그냥 확! 야, 이자식아! 무공을 좀 늦게 배웠다고 다 하수가 되냐?”
“그야 아니지만...”
“좋은 말 할 때 애들이랑 같이 해라. 계속 농땡이 치면 매일 두 시진씩이다.”
“1:1을 두 시진이요? 안 돼! 안 되고말고. 절대로!”
일초는 엄살을 떨며 태민 사형제를 따라서 생사무를 펼친다. 그는 절대고수답게 금방 무공 속으로 빠져든다. 그걸 보며 무진은 흐뭇하게 웃으며 호란에게 다가간다.
“아악!”
금방 일초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관절 꺾기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격권도 마찬가지지만 생사무는 그것보다 더 심하게 관절이 꺾인다. 그러다 보니 아직 초보인 일초는 시작부터 고생을 한다.
‘힘들거나 자신이 없으면 아예 시작을 하지 마라.’
인상을 쓰며 고통스러워하자 무진이 전음을 보낸다.
‘흥! 누구 좋으라고 그만둔단 말이오? 난 죽으면 죽었지 절대 그만두지 않을 거요.’
‘하긴 네 놈이 그나마 쓸 만 한 건 깡다구밖에 더 있냐?’
‘후후, 알아줘서 고맙소. 아무튼 열심히 해서 나도 형님 나이가 되면 고금제일인이란 양반의 경지를 한 번 넘어볼 생각이오.’
‘후후후! 꿈도 야무지네. 제발 그렇게 되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하루에 한 번씩 점검해주마.’
‘뭐..뭐요? 점검을 한다고요? 아이고, 1:1 대결에, 점검까지. 난 이제 죽었네. 죽었어.’
이렇게 생사무를 익히는 세 사람의 수련 때문에 산골짜기는 하루 종일 신음소리가 이어진다. 모두 팔, 다리의 관절이 반대로 꺾이면서 생긴 고통 때문이다.
무진 일행은 요 며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오전 시간은 수련을 하고, 오후에는 약초 캐기에 전념한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상비약과 독을 만들려는 거다. 그 일부는 팔아서 경비를 마련할 계획이다.
무진에겐 그 동안 모아둔 자금이 상당히 많다. 그것만으로도 중원에서 내로라할 정도의 부자 행세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진은 모든 걸 자급자족하려 한다.
“오늘도 허탕 치면 어떡하죠?”
수풀을 헤치며 걸어가는 태운의 목소리엔 힘이 없다. 그는 어제 영물은 고사하고 단 하나의 약초도 캐지 못했다.
“그렇게 쉽게 발견되면 영물이 아니지. 이 근처의 기운이 영험해서 차분하게 찾다보면 발견될 거야.”
“정랑!”
무진이 말을 하는 사이 호란이 소리친다.
“저길 보세요. 하수오(何首烏) 같아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십여 장 떨어진 절벽이다. 거기 바위틈엔 하수오와 비슷하게 생긴 것들이 제법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흠! 저건 곤란하오.”
“왜요?”
“잎은 비슷하지만 하수오는 아니오.”
“아! 아쉽네요.”
“대신 저걸 한 번 보시오.”
무진은 그 옆쪽을 가리킨다. 거기엔 나뭇잎이 무성한 언뜻 봐서는 잡초 같은 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호..혹시 산삼인가요?”
호란은 자세히 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굳어진다. 긴장한 것이다.
“그렇소. 나도 저렇게 많은 산삼은 처음 보오.”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얘들아, 가자!”
일초가 먼저 움직인다. 하지만 곧바로 무진에 의해서 제지당한다.
“쯧쯧, 무림고수란 놈이 단순 무식하기는...”
“내가 또 뭘 잘못했소?”
“네놈은 영물엔 그걸 지키는 영물이 있단 소리도 못 들었냐?”
“저게 그렇게 오래된 것들이오?”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그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매사에 신중해야 한다는 거야.”
“흠! 알았소. 그래도 내가 먼저 가보고 싶소.”
그 말에 무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단숨에 절벽을 뛰어오른 일초가 손을 흔들며 소리친다.
“형님! 빨리 와 보시오.”
“대형, 일초형이 뭔가 발견한 모양입니다.”
“그래. 가보자.”
태민의 말에 무진이 앞장서서 절벽을 오른다.
“이..이게 말이 됩니까?”
일초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대형! 이게 다 뭡니까?”
“정랑, 이게 모두 산삼이에요?”
절벽 뒤엔 무진 일행이 머물고 있는 통나무집의 앞마당 만 한 넓은 공간이 있다. 거기엔 산삼을 비롯한 수많은 약초들이 자라고 있다.
“이건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심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곤 약초들이 이렇게 다양하게 자랄 순 없다.”
“자연 조건은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는데....”
일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네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영물이 자랄 수 있는 조건은 하늘의 기운뿐만 아니라 땅의 기운도 중요하다. 여긴 하늘의 기운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지만 땅의 기운이 굉장히 좋은 곳이다.”
“그건 어떻게 아나요?”
“저길 보시오.”
무진은 절벽의 안쪽을 손으로 가리킨다. 그곳엔 작은 우물이 하나 있다.
“물이 좋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소. 단순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지상에 하나뿐이오.”
“지상에 하나뿐인 우물이라면.... 천(天)..지(地)..음(陰)..양(陽)..조(調)..화(和)..정(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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