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29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29
“쯧쯧, 형이란 놈이 동생들을 이겨보겠다고 병기를 사용해? 에라이! 못난 놈아.”
“흥! 그런다고 내가 검을 버릴 줄 아시오? 간다!”
일초는 무진이 약을 올리자 공력을 더 끌어올려서 검을 휘두른다.
“이크!”
“으악! 일초 형님, 정말 이럴 겁니까?”
“대형께 혼난 걸 우리한테 보복하시면 섭섭하죠.”
두 사람은 간신히 피하며 우는 소릴 한다.
“그래. 니들도 무당파란 말이지? 같은 편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이야압!”
일초는 두 손으로 손잡이를 쥐더니 내공을 끌어올려 검에 집중한다.
“검강?”
“으아악!”
태민 사형제는 기겁하며 바닥을 구른다.
“어라! 검기도 아니고 검강을 피해? 이것들이 정말? 그래. 끝까지 가보자. 일..초..살..검!”
일초는 홧김에 전력을 다한다. 순식간에 사방이 검강으로 뒤덮이고, 검강이 지나간 자리는 제법 큰 구멍이 만들어진다. 그런데도 태민 사형제는 간발의 차이로 피한다.
“니들 정말 이럴 거야? 이 형을 봐서라도 한 번쯤은 맞는 척이라도 해줘하는 거 아니니?”
“그 말씀은 검강에 맞아 죽으라는 겁니까?”
“공격은 형님이 했는데, 우리보고 봐주라고 하면 어떡합니까?”
“그런가? 근데 보법은 뭐냐? 누구한테 배운 거야? 무당의 제운종도 아닌 것 같고....”
일초는 갑자기 몸을 홱 돌려 무진을 노려본다.
“이것도 형님 작품이오?”
“.....”
무진은 말도 못하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아이고, 저 놈 성질에 며칠은 피곤하게 생겼네.”
“에이, 씨빨! 난 안 해. 안 할 거야. 못해. 못해!
예상대로 일초살수가 검을 던지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이 새끼가 돌았나? 너 지금 개기는 거지?”
“내가 지금 안 개기게 생겼소?”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
“생각해보시오. 보다시피 동생들은 대형이란 인간한테 영물을 얻어먹고, 각종 무공까지 배우며 일취월장하고 있소. 근데 난 어떻소? 그 동생들을 쫓아다니면서 밑천까지 뺏기고 있소. 형 같으면 열 안 받겠소?”
“이놈아! 그래서 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거야.”
“뭐요?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거요?”
“쯧쯧, 나잇살이나 먹은 놈이 동생들한테 부끄럽지도 않냐?”
“흥! 불리하니깐 동생들을 끌어들이네.”
“쯧쯧! 입으론 동생이라고 하면서... 가족이 무슨 뜻인지는 아니?”
“내가 누구처럼 바본 줄 아시우?”
“그런 놈이 동생들 앞에서 밑천이 어떻고 하면서 시샘해?”
“내가 언제 시샘을 했다고....”
일초살수는 갑자기 꼬리를 내린다.
“하긴 평생 한 번이라도 친구나 형제를 위해 양보하거나 손해 본 적이 있어야 알지? 이놈아! 형제간에는 서로 양보하고, 손해 보고 그래야 가족이 되는 거야. 알았어?”
“그래. 난 무식한 데다 형제애도 없고, 시샘도 많다. 그래서 형이란 작자가 동생들한테만 보법을 가르치고 난 찬밥신세냐? 그게 형제애야? 그런 게 형제애면 난 안 할래. 안 해!”
“아이구, 머리야! 내가 왜 저런 인간을 동생으로 받아들였을까?”
“흥! 그래서 끝까지 신법을 안 가르쳐 주시겠다? 그럼 할 수 없지. 난 지금부터 여기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일 테니까 알아서 하시오.”
“아이고 무서워라.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내 더러워서라도 가르쳐 준다. 그럼 됐지?”
“흐흐흐! 진즉 그렇게 나올 것이지. 분명히 약속했소. 나중에 딴소리하면 그땐 정말 꼬장이 어떤 건지 보게 될 거요.”
“그래. 니 진상을 누가 막겠냐? 운아!”
“예, 대형!”
“니가 가르쳐라.”
“제가 일초형님을요?”
“왜, 싫어?”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잠깐! 이게 무슨 막말이요?”
“왜, 내 말이 잘못됐냐? 쟤네는 벌써 반년이 넘도록 신법을 익히고 있다. 게다가 기초과정을 모두 마쳤다. 그 정도면 네놈이 3박4일을 공격해도 옷자락 하나 건드리기 어렵다. 그런데도 가르칠 자격이 없단 거냐?”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동생인데....”
“이래서 사람은 인성이 돼야 하는 거야. 제대로 된 놈이면 동생이 아니라 갓난아기에게도 배울 건 배운다. 싫으면 하지 마라. 운아, 니형이 싫단다. 없던 일로 하..”
“누..누가 싫다고 했소? 하면 될 거 아뇨. 하면. 운아, 가자!”
“지금 말입니까?”
“이놈아! 수련하는데 시간이 따로 있냐?”
그렇게 말하곤 일초살수는 공터를 향해 걸어간다.
“수련은 엄격해야 한다. 설사 형이라 해도 수련장에선 제자처럼 다뤄야 하는 거야. 알았니?”
“예, 대형. 염려 마십시오. 히히히!”
태운은 마치 재미난 장난감을 가진 듯이 웃으면서 뒤따른다. 그걸 보는 무진과 태민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들도 잠시 망각했다. 일초살수에게는 막강한 지원군이 있다는 걸.
“정랑!”
“허억!”
호란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일초를 제외한 모두가 동작을 멈춘다.
“왜 우리 오라버니를 괴롭히는 거예요?”
그녀는 허리에 두 팔을 올려놓고 무진을 노려본다.
“그..그게 무슨 말이오? 누가 귀여운 일초를 괴롭혔단 말이오? 그리고 저 놈이 남이 뭐라 한다고 기죽을 놈이오?”
“그건 그렇지만 일초 오라버니가 지금 잔뜩 주눅 들어 있잖아요?”
“그래도 절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가씨뿐이네요. 보시다시피 제가 얼마나 외로운지 아세요? 만약 아가씨마저 제 옆에 없다면 전 정말 견디기 힘들 겁니다.”
일초의 연기 실력은 일품이다. 거의 눈물을 흘리기 직전의 표정 연기를 잘 해낸다.
“대단하다. 대단해. 너 그러다 경극단에 입단한단 소리 나오겠다.”
“어떻게 아셨소? 하도 형제들이 왕따를 시켜서 차라리 그렇게라도 해볼까 생각 중이오.”
“까불지 말고 가져온 거 다 토해내 봐.”
갑자기 무진이 화제를 돌린다.
“칫! 뭘 좀 재밌게 하려해도 미리 다 알고 있으니까 재미가 있어야지? 여깄소.”
일초는 품속에서 서찰을 하나 꺼내더니 무진에게 건넨다.
“뭐야? 암호잖아?”
서찰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그림들이 그러져 있다. 무진의 말대로 암호로 된 서찰이다.
“누가 보낸 거냐?”
“저와 이런 서찰을 주고받는 사람은 한 명뿐이오.”
“그러니까 그게 누구냐고?”
“황금상단의 총관인 현호요. 나와는 십 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로 믿을 만 하오.”
“무슨 내용이냐?”
“간단하오. 황금상단에 보관돼 있던 금괴가 도난당했다는 거요.”
“황금상단의 금이라...”
“문제는 그 금의 반은 황실의 거라는 겁니다.”
“황실의 금이 왜 황금상단에 있는 겁니까?”
“원래 전쟁자금은 분산해서 보관하고 있다. 그 중 일부가 황금상단에 있었던 거지.”
“그럼 금액도 엄청나겠군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청부를 받은 겁니까?”
태민이 끼어든다.
“단순한 청부가 아니다. 현호의 말에 의하면 태양장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
“태양장?”
“그들이 황실 금괴를 왜요?”
“뭔가 꾸미고 있다는 거지.”
“황실 금괴가 일종의 군자금이라고 했잖아요?”
“그렇지.”
“그걸 태양장은 반역을 위한 자금으로 사용하려는 거고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
“대형, 어떻게 할까요?”
이번에는 태운이 나선다.
“일단은 정보의 신빙성부터 확인해야 한다.”
“안 그래도 개방에 부탁을 했습니다.”
“개방에?”
“예, 어제 소개에게 연락을 해놨습니다.”
“답신이 언제쯤 올 것 같니?”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좋다. 그때까지 수련과 단환 만들기에 집중한다.”
“정랑, 단환을 만들려면 약초가 상당히 많이 필요할 텐데요?”
“내게 생각이 있으니까 걱정 마시오. 그보다 연락이 빨리 오네.”
무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전서구가 한 마리 날아오는 게 보인다.
“그럴 리가요?”
“개방이 알고 있는 정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소개가 보낸 겁니다.”
소개는 개방의 소방주이자 이들의 형제이다. 전서구는 허공을 한 바퀴 맴돌더니 일초의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아니, 내려앉으려다 무진의 왼쪽 어깨 위에 앉는다.
“뭐야, 이거?”
일초는 황당한 얼굴로 무진과 전서구를 번갈아 쳐다본다.
“동생아! 이런 걸 동물도 사람을 알아본다고 하는 거란다.”
“아, 씨발! 열 받아. 이젠 동물들까지 날 무시하네.”
“시끄럽다. 개방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우린 천천히 출발한다.”
“예에? 심각한 문제라면서요?”
일초의 표정이 굳어진다. 당장 설명을 하란 뜻이다.
“지금은 먼저 나서는 자가 벌집이 된다. 일단 지네들끼리 정리가 된 다음에 나서도 늦지 않다.”
“그러다 금괴가 태양장의 손에 넘어가버리면요?”
“지금 상황에서는 쉽게 움직이진 못할 게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차지한다고 해서 황실과 척질 각오를 하지 않고선 움직일 수 없다.”
“황실에 돌려줄 거 아닌가요?”
“어렵싸리 찾은 걸 왜 돌려줘?”
태운의 물음에 무진이 발끈한다.
“그러다 역모로 몰리면 어쩌시려고요?”
“그럼 진짜 역모를 일으키지 뭐.”
“역모를 요? 지금 제 정신이요!”
일초는 역모란 말에 깜짝 놀라며 소리친다.
“걱정 마세요. 정랑께서 계획이 있나 봐요.”
“쓸데없는 생각 말고 따라 와.”
무진은 앞장서서 숲으로 들어간다.
“이게 다 뭡니까?”
“정랑, 언제 이런 걸 준비했어요?”
“아이 씨! 보나마나 날 골탕 먹이려는 거지 뭐겠습니까?”
무진의 제외한 형제들이 모두 기겁한다. 그들의 시선이 머문 곳엔 수백 개의 아름드리 원목들이 쌓여 있다.
“쯧쯧, 이 형님이 지들 수련을 위해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준비한 것도 모르고.... 이런 것들을 동생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바보지.”
무진은 실망한 표정으로 몸을 돌리려 한다.
“그..그게 아니라... 대..대형!”
“나무가 너무 많아서 그냥 해본 소릴 가지고 삐치면 어떡하오?”
“그래요. 정랑. 뭘 하실지 모르지만, 이건 누가 봐도 너무 많아요.”
태민에 이어 일초와 호란까지 나서서 무진을 달랜다. 하지만 무진은 화를 쉽게 풀지 않는다.
“됐다. 니들이 싫다는데 억지로 시킬 수는 없지. 앞으론 수련은 니들이 알아서 해라.”
“아..알았소. 항복이요. 항복. 형님이 시키는 일이면 뭐든지 다 할 테니까 그만 하시오.”
“후후후! 분명히 말했다. 내가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한다고.”
무진은 일초가 꼬리를 내리자 그제야 화를 푼다. 하지만 반대로 일초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이 불길한 기분은 무엇 때문인가? 아무래도 일초 형님이 실수를 한 것 같다.’ 라는 얼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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