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16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16
“잘 아시겠지만 구룡은 과거 대형이 무림에서 활동할 당시 무림의 지배자들로 대형에게 제압당해 충성을 맹세한 자들입니다. 그들의 맹세 중 한 가지가 후손들이 다시는 무림지배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근데?”
양문이 되묻는다.
“대형! 혹시 중원의 빛이란 조직을 아십니까?”
“중원의 빛이라...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구나.”
무진은 아는 눈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그게 무엇이냐?”
왕명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한다.
“중원의 빛은 대형이 은퇴 직전에 만든 비밀조직입니다.”
“조금의 숨김도 없이 말해 봐라.”
무진도 관심을 보인다. 얼굴에는 분노가 드러나 있다. 이미 추개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중원의 빛도 구룡처럼 조직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구룡이 얼마 전 이들의 핵심인물들을 제거하고 그 조직을 이용해서 구룡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건 여기에 오기 전에 들은 얘기입니다.”
“후후후! 구룡이 중원의 빛을 무너뜨리고 구룡단을 만들었다? 맹세를 어겼을 뿐만 아니라 내가 만든 조직까지 흡수했단 말이지?”
무진은 말은 차분하게 하지만 얼굴은 크게 일그러져 있다. 순간 방안엔 돌풍이 분다. 무진이 화가 나서 자신도 모르게 주위의 기운들을 자극한 것이다.
“대..대형!”
왕명이 황급히 소리친다.
“추개는 당장 가서 방주와 소방주를 끌고 오너라. 당장!”
“방주를 알고 계십니까?”
추개는 무진의 입에서 개방 방주가 거론되자 당황한다. 놀라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호란만 빼고.
“이틀이다. 이틀 안에 오지 않으면 개방은 문을 닫게 될 거라고 전해라. 명심해라. 이틀이다.”
“예, 대형!”
갑자기 방안 분위기가 살벌해진다. 무진의 서슬에 추개는 도망치듯이 달려 나가고, 호란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방을 나선다.
무진은 지난 이틀 동안 마음의 안정을 찾느라 두문불출하고 있다. 오늘도 왕명의 수련실에서 명상을 하고 있다.
‘.... 그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난 지난 세월 동안 과거를 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실패했고, 난 아직도 과거에 갇혀 있다. 중원의 빛은 나에게 버림받았다. 내겐 지금 주인입네 하고 그들 앞에 나설 자격이 없다.
엄밀한 의미에선 구룡도 마찬가지다. 선조들이 내게 맹세를 했다는 이유로 오랜 세월 어둠속에 살아온 것이 오늘의 결과를 낳은 것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내가 그들에게 맹세를 강요한 것이 문제였다.
후세들이 다시 나선다 하더라도 당당하게 무림의 지배자로 군림한다면 존중해줘야 한다. 그들이 잘못하면 그때 응징해도 늦지 않다.’
무진은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금방 고개를 가로 젓는다.
‘설사 그게 맞다 해도 맹세를 어긴 건 용서할 수 없다. 또한 중원의 빛을 공격한 것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건 나에 대한 모독이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순간 무진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진다. 동시에 사방의 문이 열리며 바깥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들이 몰려들어온다. 자연의 기운이다.
우다당탕탕!
기운은 아예 몸속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방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상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진이 음파를 차단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선 이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다.
‘으음! 흥분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피하거나 남에게 책임을 떠넘길 일도 아니다. 결국은 내가 풀어야 한다. 으음! 이건 또 뭔가?’
그제야 무진은 수련실의 상황을 살핀다.
‘흥분해서 나도 모르게 기운을 끌어들인 모양이다. 근데 기운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으음! 굳이 기운을 몸속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도 이렇게 사용할 수 있다면 몸속의 그릇을 키울 필요가 없지 않을까? ....
그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연의 기운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무조건 자연무예를 익히면 모든 기운을 다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무진은 다시 고민에 빠진다. 자연의 기운을 몸속으로 끌어들이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건 좋은데, 자연무예를 익혔다고 자연의 기운을 무한대로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시험을 해본다. 처음엔 몸속의 그릇을 최대한 비워서 기운을 사용한다. 물론 기운을 몸속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용한다. 그 다음엔 그릇을 일부만 비운 상태로 자연의 기운을 사용한다.
‘차이가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다지 크지도 않다. 그렇다면 다른 요인이 있단 건데.... 새로운 숙제를 안게 되었구나.’
무진은 다시 고민에 빠진다. 그렇게 한참을 명상에 잠겨 있던 그가 갑자기 눈을 뜬다.
‘후후, 처음 보는 놈인데... 태양장의 둘째 도련님이시군. 후계 경쟁을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군. 오호! 위험한 물건까지 준비하셨군. 그럼 내가 재밌게 해드려야지.’
왕명의 수련실 옆 건물 지붕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이는 무진과 비슷해 보이지만 분위기가 음산하다. 얼굴도 회색빛이고, 몸에서 풍기는 기운도 무겁다. 외모로 봐선 정파의 인물이 아닌 것 같다. 무진은 그를 태양장의 둘째 공자라고 말했다.
태양장의 둘째 공자 유호.
당금 25세. 형인 소장주 유현의 배다른 형제. 다섯 형제 중에서 현재 유현과 함께 차기 장주직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유현에 비해서 무공은 다소 떨어지지만, 상당히 영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흐흐흐, 저놈이냐?”
그는 허공을 향해 독백처럼 말한다. 그러자 곧바로 한 사람이 그의 옆에 나타난다.
“그렇습니다. 최근 소장주님의 일은 대부분 저놈에 의해서 좌절됐습니다.”
“내겐 상당히 고마운 놈이긴 한데, 이번에는 날 위해서 제물이 돼 줘야겠다. 네가 보기엔 어떠냐?”
이들은 지금 집무실의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무진을 살피고 있다.
“분위기가 묘한 놈입니다. 소문처럼 내공이 없는 건 분명한데, 왕명도 자세를 낮추는 걸 보면 쉽게 볼 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제거할 놈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시간 끌 필요가 있니?”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이걸로 하지.”
유호는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부하에게 건넨다.
“이게 뭡니... 폭약, 아니 화탄이 아닙니까?”
주머니엔 화탄이 다섯 개 들어 있다. 심지에 불만 붙이면 자동으로 터지게 돼 있다. 그 정도면 웬만한 작은 언덕도 날려버릴 수 있다.
“이걸 다 사용하면 시신도 찾기 힘들 겁니다.”
“지저분한 걸 가지고 다니는 것보다 이런 데 쓰는 게 더 낫지.”
“현명한 결정이십니다. 이번 건으로 후계 경쟁에서 도련님이 완승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미리 감축 드리옵니다.”
이게 바로 두 사람의 목적이다. 소장주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둘째 공자가 처리함으로 해서 후계 구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의도이다. 그 희생물로 무진이 선택된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일이 그들의 뜻대로 될까?
치지지직!
부하는 한꺼번에 다섯 개의 화탄의 심지에 불을 붙이더니 유호의 눈치를 본다.
“깔끔하게 끝내라!”
“예, 도련님!”
유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부하는 화탄을 정확하게 수련실 안으로 던진다.
슈아아아아아!
동시에 두 사람은 이십여 장이나 떨어진 담장을 향해 몸을 날린다.
콰콰콰쾅쾅!
그들이 채 담장 위에 올라서기도 전에 연속 다섯 번의 폭발이 일어난다. 그 영향으로 두 사람은 담장 너머로 날아간다.
“우웃! 세 개만 사용해도 충분했을 것 같습니다.”
“귀한 놈이지만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하는 게 더 중요하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하고 싶으면 니가 해라. 간다!”
“아..아닙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무진을 죽음으로 몰아넣곤 유유히 사라진다. 근데 잠시 후, 그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폭발 사건 후, 청운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일부는 장주의 수련실을 비롯한 다섯 채의 무너진 건물을 치우고, 다른 사람들은 건물 안쪽을 열심히 뒤지고 있다. 혹시라도 사람이 있을까 해서 조사하는 것이다.
이곳은 청운장의 별관.
지금 방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침대 주변에 몰려 있다. 침대에는 호란이 누워 있다.
“내 잘못이오. 내가 장난을 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무진은 자책을 한다. 그는 화탄이 폭발하기 전에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잠시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근데 그 사실을 모른 채 폭발 현장을 본 호란이 충격을 받고 쓰러진 것이다. 그녀는 무진이 건물 안에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어떻습니까?”
왕명도 옆에서 걱정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양문과 추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추개는 개방으로 갔고, 양문은 무진의 명으로 유호와 그 부하를 추적하고 있다.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 왜?”
쓰러졌느냐는 말이다.
“다쳤던 머리의 혈맥이 조금 막혔다. 그래서 정신을 잃은 거야. 당장 치료해야 될 것 같다.”
“알겠습니다. 서희야!”
왕명은 서희를 비롯한 시중드는 사람들을 물리려 한다.
“아닐세. 서희도 옆에 누워라. 자네도 봐 두는 게 좋을 거야.”
“예. 근데 서희는 어쩌시려고요?”
“단전의 기운을 푸는데 도움이 될 거야. 자네도 기운의 움직임을 잘 지켜보게. 아니야. 자넨 내 옆에 서게.”
“알겠습니다.”
무진은 향후 왕명과 서희를 함께 운기조식을 시킬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기운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언니의 손을 잡고, 편안하게 누워 있으면 된다. 기운은 내가 말한 혈도를 따라 움직인다. 자네도 이리 오게.”
무진은 왼손은 서희의 오른손을 잡고, 오른손으론 왕명의 왼손을 잡는다.
“많은 걸 얻으려면 그만큼 자신의 것을 많이 내놓아야 한다. 비운만큼 채울 수 있단 말도 잊지 말고. 시작한다.”
무진은 우선 자연의 기운을 왕명의 몸으로 받아들인 다음 자신과 서희의 몸을 거쳐 마지막에 호란의 머리로 보낸다. 머리의 혈도를 치료한 다음 다시 반대 방향으로 해서 기운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다음에는 처음보다 조금 더 강한 기운을 받아들여 똑 같은 방식으로 호란을 치료한다. 그 과정에서 왕명의 혈도는 더욱 넓고 강해지고, 단전도 단단해진다. 서희는 단전에 뭉쳐 있던 구음절맥의 기운을 조금씩 녹인다.
그렇게 열 번 정도를 하자 호란은 정신을 차리고, 그 뒤부터는 적극적으로 운기를 한다. 똑 같이 열 번을 더 하고서 운기를 중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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