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웠다.
‘춥다’라는 단어가 사치일 만큼 추웠다.
천으로 하나하나 감싼 손가락에 입김을 불어 넣었을 땐 연기인지 입김인지 모를 희뿌염.
와라.
빨리 끝내잔 말이다.
니가 죽든 내가 죽든.
‘철컥.’
노리쇠를 거칠게 뒤로 잡아당겼고.
손가락에 느껴지는 금속 특유의 차가움.
녀석이 이 소리를 듣고 있음을 안다.
상관없었다.
추위에 죽으나 녀석에게 죽으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어디 범잡이 인생이란 게 별거 있을까.
벌판에 떠돌다 까마귀밥이나 되면 그냥저냥 가는 것이지.
‘사각, 사각, 사각...’
순간 등 뒤로 들리는 눈밭을 가르는 두툼한 발소리.
눈을 감았다.
아무 생각 없었으면 좋으련만 빌어먹을 마누라 생각이 꾸역꾸역 머릿속을 들어차 버린다.
제기랄.
방아쇠에 천으로 뒤집어씌우지 않은 유일한 손가락을 집어넣었고.
하나, 둘,
어금니를 깨문다.
셋!
“으윽!!!”
휘이잉...
등을 지고 있던 나무둥치를 거세게 박차고 일어섰지만...
눈이 미치는 모든 것이 그저 하얀 눈밭이었다.
사방을 미친 듯이 둘러보았다.
정적.
어디 있냐.
어디에 숨었냐.
나와라, 이 호랑이 새끼야.
그때였다.
머리 위.
사각거리는 소리.
“여자가 나한테 관심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내는 줄 너 모르지? 큭큭큭.”
대답 대신 손을 뻗어 녀석의 얼굴을 문질렀고.
“키킥, 들어 봐 인마. 일단은 남자를 볼 때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왜? 셀카 찍을 때도 여자들은 항상 고개를 기울이잖아. 예뻐 보이고 싶은 거지. 말 되지 않냐? 킥킥, 두 번짼….”
“고개나 숙여, 인마. 또 날아온다.”
마치 휘파람 같은 바람 소리였다.
‘휘이잉~’
아이러니하게도 포탄이 날아올 때 들리는 긴 여운은 늘 심장을 일렁이게 했다.
누군가는 저 포탄에 맞아 뒈지겠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필욘 없었다.
적어도 지금 난 참호 속, 그것도 무릎 사이에 고개를 처박고 웅크리고 있었으니까.
덥다.
미칠 만큼.
‘쿠릉... 쾅!’
흙먼지.
“시발놈들, 졸라게 쏴 대는 구만.”
“두 번짼 뭔데?”
“새끼, 관심 없는 척하더니. 큭큭, 두 번짼...”
“또 날아온다.”
터번을 뒤집어쓴 녀석들은 덥지도 않은지 맹렬하게 공격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동티모르.
미국이 나가떨어진 지 꼭 3년이 흐른 2032년이었다.
터번 녀석들은 이걸 성전이라고 불렀고, 우리 간단히 3차대전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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