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검수 1
“어이 이삼!”
화산의 이대제자인 중경이 열심히 장작을 패고있는 이삼을 불렀다.
“중경 사형 어디 가십니까?”
“뭐하는거야? 오늘 우리 제자들과 첫대면하는 날이잖아?”
“어이쿠! 벌써 날이 그렇게 됐나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빨리 닦고 나오겠습니다.”
“지금 시간없어! 그냥 가자고 오늘은 그냥 얼굴만 보는 날이잖는가.”
“그래도 첫 대면인데 좀 깨끗하게 하고 가야지요.”
“빨리 대충 씻고 나오게.”
“조용히하고 줄을 서라!”
인상이 험악하게 생긴 양무창의 목소리에 꼬마들이 후다닥 줄을 맞춰 선다.
오늘은 삼년에 한번씩 있는 화산의 이대제자들의 새로운 제자를 들이는 날이었다.
화산은 삼년마다 나이가 삼십이 넘는 이대제자들에게 삼대제자중 한명을 골라 제자를 들일 수 있게 했다. 제자들을 들이는데도 부익부 빈익빈의 원칙은 따랐다. 이미 제자를 들인 이대제자라할지라도 그 제자의 성취가 남다르면 또 한명의 제자를 들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물론 이대제자 스스로 더 이상 원치 않는다면 하나로 만족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십이년이 지나면 배분이 바뀌면서 일대제자가 된다. 물론 모두 일률적인 것은 아니고 일찍 입문한 제자중에는 삼십이 넘었을 때 이미 일대제자가 되는 경우도 있어서 제자를 한 명 밖에 못 들일 경우도 있긴 했다.
일대제자가 되면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의 제자를 들일 수 없고. 대신 그가 들인 제자가 제자를 들여 사조가 된다.
각대의 제자들은 삼기까지 나눠지는데 이번은 일기 삼대제자를 들이는 날이었다.
한명의 이대제자가 최대한 네명까지 제자를 들일 수 있었지만 만약 중간에 자신이 매화검수가 되거나 제자를 아주 잘 키웠다고 어른들에게 인정을 받을 경우에 한해서 한번에 두명까지도 제자를 들일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같은 기수는 같은 배분이 되어 친구로 지내던 나이로 형 아우를 하던 상관이 없지만 기수가 다르면 사형으로 깍듯이 모셔야했다.
그래서 사형이라고 부른다해도 기수가 다른 사형에게는 무척 깍뜻하고 조심스럽게 대하지만 같은 기수인데 나이 때문에 사형이라고 불리는 경우는 마치 친구같은 경우가 많았다.
이미 몇명의 이대제자들이 모여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누구를 제자로 들일까 고민하는 중이었다.
화산의 제자들에게 제자를 들이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사항이었다. 하지만 실지로 제자를 잘 키우는 것은 무재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아무리 무공에 기재라해도 자신의 제자를 키우는데도 영 젬병인 사람이 있는 반면 무재가 없어 자신은 두각을 못 내면서도 제자만은 잘 키워 화산에서 입김이 큰 사람도 있었다.
화산파에서의 권력은 첫째 배분, 둘째 자신의 무공 그리고 셋째 얼마나 많은 제자를 키웠느냐가 좌우한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배분이 높고 무공이 강해도 제자가 하나도 없으면 문파에서 힘을 쓰는데 한계가 있었다. 바로 여론이라는 것 때문이었는데 제자들은 자신의 사부의 뜻을 무조건 지지하는 경향이 강해서 많은 제자와 사손은 바로 그 사부의 힘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지로 제자를 키운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열살에서 일곱살 이따금은 서 너살 짜리를 들일 때도 있었는데 그들을 보살피다보면 자신의 수련시간을 희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서너살 짜리를 제자로 들였을 경우는 운기조식조차도 깊게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번에 제자들이는 이대제자들은 다 모였느냐?”
양무창이 좌우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예, 다왔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모두가 대답을 하는데 이삼과 중경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러자 모두 고개를 저었다.
“니들은 뭐하느라고 이렇게 늦게 나타나거냐? 제자를 들이는 것은 굉장히 신성한 것이다. 일찍와서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이 통하는 제자를 느껴야 좋은 제자가 나타난다는 것을 모르느냐?”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
“변명은 금물이다.”
이삼과 중경은 양무창의 말에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이대제자들의 무리로 들어갔다.
“이제부터 삼대제자들의 주위를 돌며 아이들을 살펴본다. 이미 주의를 받았겠지만 아이들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금물이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아이들에게 물어볼 수 있는 말은 단 세마디뿐이다.”
양무창은 다시한번 주의사항을 외치고는 아이들이 줄서있는 곳을 쳐다보더니 누군가가 준비 끝났다는 듯이 손을 들자 이대제자들에게 다시 외쳤다.
“시간은 단 한시진이다. 가라!”
이삼은 아이들을 나름 자세히 쳐다보며 다녔다. 누구나 이왕 제자를 들인다면 총명하고 무재가 있는 아이를 얻고 싶을 것이다. 바로 몸에 손을 못대게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물론 보는 것만으로도 총명할지 성격이 끈기가 있을지 어느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냥 보는 것과 맥을 직접 잡아보는 것과는 정확도가 다른 법이다. 맥을 짚어보고 체력이 좋은 아이만 모두 원한다면 시작도 하기 전에 반목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질문을 할 수 있게 한 것은 최소한 스승과 제자사이에는 통하는 것이 있어야하는데 짧은 대화나마 말을 섞는 것이 그래도 가장 효율적이어서였다.
서너명의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다니던 이삼이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아이 앞에 도착하더니 다른 아이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름이 뭐냐?”
“문인걸입니다.”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문인걸을 보며 이삼이 다시 물었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아버님께 자랑스런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이삼은 뜻밖의 대답에 잠시 문인걸의 눈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화산에 제자로 들어오는 아이들은 ‘고수가 되고 싶다.’ ‘화산의 자랑스런 매화검수가 되고 싶다.’ ‘존경받는 대협이 되고 싶다’ 식의 무림인으로서의 포부를 말한다. 그런데 아버님께 자랑스런 아들이 되고 싶다는 문인걸의 대답은 이삼에게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떤 사부를 원하느냐?”
“아버님 같은 사부님을 원합니다.”
너무나도 귀중한 세번의 질문.
그중 첫번은 이름을 물으면서 사용하게되니 실질적으로는 단 두번에 불과했다. 그런데 첫번질문은 그렇다고해도 두번째의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 아쉬웠다. 무공이 강한 사부라든지 학식이 많은 사부를 원한다든지 자세한 말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대답을 했다면 이삼은 문인걸을 포기했을 것이다. 아니 누구라도 그랬다면 이삼은 그를 제자로 삼고싶다고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
거의 열달만에 다시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번 얘기는 화산입니다. 화산은 무당과 함께 무협에서는 가장 유명한 도문입니다. 특히 화산파를 대표하는 것이 매화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왜 매화가 화산파를 상징하게 됐는지 궁금했습니다. 또한 무림문파의 제자들은 어떤 식으로 제자로 뽑히고 어떻게 수련을 받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화산은 같은 도문이면서도 무당과는 달리 약간은 자유분방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화산에 대한 얘기를 써보자 계획을 잡고나서도 막상 글로 옮기는데 생각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다가 얘기의 단초를 매화검수에서 잡았습니다.
이번 주인공은 무당신선의 무한같은 모범생타입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고지식한 무한과는 달리 어려서부터 세상의 세파에 시달려 어느정도는 처세도 밝고 약은 면도 있습니다. 이번 얘기는 성장형무협이 될 것같습니다. 문인걸의 대협 성장기라고 보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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