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참사】 대구 지하철 방화(방화 동기) 2

◆ 방화 동기 ◆
김 대0은 개인택시 운전을 하다가 우울 증세를 보여 대구 시내 한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2001년 4월에는 뇌졸중이 겹쳐 상ㆍ하반신 마비증세로 11월 지체장애 2급 판정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
생계를 이어 왔던 개인택시를 무작정 세워둔 채 증세가 호전될 가망이 없자 김 대0은 세상을 비관, 안방에서 1회용 라이터 2개와 자동차 세척 샴푸통(용량 4리터의 흰색 플라스틱 통)을 꺼내 검은색 가방에 넣고 집을 나와 택시를 타고 가다가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송현역 부근에서 내린 다음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 7,500원어치 상당을 구입하여 샴푸 통에 담았다.
그리고 1호선 송현역으로 들어가 안심방향 승강장에서 9시 30분경 안심역 방면으로 운행되는 1079열차의 1호차에 탑승하였다.
9시 53분경, 1079열차가 반월당역을 출발해 중앙로역에 도착할 무렵 2호차와 가까운 1호차 노약자석 옆 일반석에 앉아 있던 김 대0은 1회용 가스라이터를 꺼내 불을 켜려고 망설이던 중 맞은편에 앉은 승객으로부터 "왜 자꾸 불을 켜려고 하느냐"는 나무라는 말을 듣자 순간적으로 불을 붙이기로 결심하고, 1회용 가스라이터를 켠 다음 샴푸통에 들어 있는 휘발유에 불을 붙였다고 했다.
방화범 김 대0은 자신의 옷에 순식간에 불이 붙자 황급하게 가방을 객실 바닥에 던졌고 불길은 순식간에 객실 내로 번지면서 화재가 확산되었다.
불길이 번지자 승객들은 우왕좌왕하며 황급히 대피하는 등 혼란이 일어났다.
1079열차 기관사 최 0환은 중앙로역에 도착해 출입문을 연 뒤 "불이야!"하는 소리를 듣고, 운전실 앞에 있는 CCTV 화면에 객차 쪽에서 승객들이 서둘러 빠져 나오는 모습을 보고 운전실 옆에 있는 소화기를 들고 나와 불을 끄려 했지만 가연성 소재로 가득한 전동차 객실 내부의 불을 감당할 수 없게 되어 승객들에게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9시 55분 30초 경 1079열차와 반대방향 대곡 방면으로 운행하는 1080열차가 대구역을 출발하여, 9시 56분 45초 경 현장상황을 알지 못한 채 상행선 승강장에 진입하여 정차함으로써 1079열차에서 발생한 불길이 순식간에 1080열차로 옮겨 붙으면서 화재가 더욱 확산되었다.
화재 발생 20여초 만에 대구지하철공사 종합사령실에 설치되어 있던 승강장 감시용 CCTV의 화면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 분출량이 많았던 것으로 판단되며, 화재가 진행되면서 지하 3층 승강장과 1079, 1080의 두 열차 내부는 유독가스와 화재로 인한 열기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대피하거나 우왕좌왕하는 등 아수라장이 되었다.
1079열차의 승객 거의 대부분은 정차 중으로 문이 열려 있었고 기관사가 승객들에게 대피를 지시하여 대피한 반면, 반대방향으로 운행 중이던 1080열차는 화재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역에 진입, 정차함에 따라 화재가 확산되어 많은 사상자가 발생되었다.
1080열차의 경우 중앙로역에 진입할 때 이미 승강장의 연기로 인해 전동차 외부의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았었으며, 1079열차 1호차와 인접한 1080열차 5~6호차의 승객들은 전동차가 중앙로역에 정차 후 전동차 외부상황에 대해 알 수 없을 만큼 이미 화재로 인한 연기가 지하 3층 승강장에 꽉 차 있는 상태였다.
다만 불행 중 다행으로 1080열차에 타고 있던 대구선의 권 0섭 역장이 비상 개방 장치를 취급하여 문을 열고 주위 승객들을 대피시켜 피해를 다소나마 줄일 수 있었다.
훗날 권 씨는 이 활동을 인정받아 2013년 6월 7일 개설된 철도안전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다.
사고 당시 화재가 처음 화재 발생한 안심행 1079열차에는 방화범을 포함한 250여명이, 대곡행 1080열차에는 180여명의 승객이 탑승했었다.
지하철에서 불이 나자 중앙로역 일대는 유독가스로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으며, 환풍구와 출입구 등에서 나온 시커먼 연기는 시내 전체를 뒤덮어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정도였으며, 사고소식을 접한 뒤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사람들과 지켜보는 시민들로 아수라장을 이뤘다.
또한, 지하철에 탔을 것으로 추정되는 승객 가족들은 현장에 나와 오열하였고, 일부 가족들은 경북대학교병원과 동산병원 등을 뛰어다니다 눈물을 흘리며 현장으로 되돌아오기도 하였으며, 사고수습대책본부와 언론사에는 사고경위와 사상자 명단을 알 수 없겠냐는 문의전화가 쇄도하였다.
사고가 나자 경찰관과 소방관이 긴급 출동하여 현장지휘소를 설치함과 동시에 중앙로 일대 차량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소방인력과 장비를 동원하여 화재진화와 구조작업을 펼쳤으나, 화염과 유독가스로 현장접근이 힘들어 구조가 지연되자 지켜보던 많은 시민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수사본부에서는 대구청 산하 10개 경찰서와 지방청 수사요원들을 보강 받아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했다.
열차 불연재부터 시작해서 당시 중앙로역 CCTV분석, 지하철본부 사령실, 근무 체계도등 우리가 수사 할 가치가 없는 것도 모두 했는데 경찰청 강력계는 지하철본부 사령부와 감찰부에 대한 수사를 했다.
당시 상황이 녹음된 테이프를 분석하던 중 일부 삭제한 것을 발견하고 누가, 왜 삭제했는지, 누구의 지시였는지를 수사하여 조해녕 대구시장까지 수사를 했다.
수사를 하는 사이 피해자들은 자체적으로 “대구지하철화재사고 피해자 모임”을 결성하여 시민극장에 모여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유족들의 요청에 의하여 중앙로역 CCTV테이프를 재생시키며 보여 주다가 유족들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우리 수사팀은 아직 테이프에 대한 수사를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피해자들손에 들어갔으니 아주 난처하게 되었다.
한시라도 빨리 현장을 봐야 하는데 피해자들 손에 있어 피해자측 가족들이 몰려 있는 시민회관에 수사팀이 가서 돌려 달라고 사정을 해도 조작의 의심이 있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망자 중에는 유독 경북 북부지방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아침에 출발하는 동차로 영주를 출발하여 점촌, 상주, 김천을 경유하는 열차였으며, 대구역에 내려 영남대 부속병원 가는 지하철을 탔다가 변을 당한 것 이었다.
사망자 중에 경북 북부지방 사람들이 다수 있는 것은 이런 연유였던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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