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룸살롱 싸인지 (조폭과의 인연) 3

우리는 이윤성을 사무실에 데려와서 작업(?)을 했다.
지금은 말 할수 있지만 태어나서 제일 많이 당했다(?)고 했다.
내가 소속되어 있던 강력반은 형사계 옆 별실인데 창고 하던 곳을 사무실로 개조하여 출입문이 철문으로 되어 있었다.
조금 있다가 보니 출입문 쪽이 시끄러워졌고 이윤성 조직의 두목부터 여러 명이 와서 이윤성를 면회 하자는 것을 안 된다고 하자 이윤성이 우리에게 당한것이 서럽고 억울했던지 울면서 “형님! 나 좀 살려 주이소!”라며 고함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런 모습을 본 조직들은 더 흥분하여 사무실로 들어 올려고 문을 여는것 이었다.
이러다가 잘못하면 이윤성을 빼앗기겠다 싶어 문을 잡고 있으면서 타격대를 동원하여 경찰서 밖으로 밀어 낸 후 다시 이윤성에게 재제(?)가했다.
“이게 어디서 까불고 있어.. 여기가 너 네들 안방인 줄 아나? 응..”
"이새끼야 너랑 같이 있었던 아이들 불어.."
우리 형사들의 뜻(?)을 거역치 못하고 있다가 결국은 잘못을 빌고 내당동 김형구 상처를 입힐 때 같이 있었던 후배들 인적사항을 불었다.
‘건달이 어떻게 당했기에 후배들 알렸냐'면서 말이 많았다고 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나중에 의리 없다며 조직의 두목 자리를 꿰차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과장이 사무실로 오라고 갔더니 “김 형사! 이윤성 봐주면 안 될까?”라며 나에게 은근히 압력을 넣었다.
“과장님! 이 새끼는 절대 안 됩니다. 어디서 천지를 모르고..”
과장이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나중에 알았지만 일을 하겠다는 나를 달래지 못하고 사무실로 내려와서 자신이 경찰봉으로이윤성을 때리며 “이 자슥 사람 망신 다 시킨다”며 욕설을 퍼붓고는 자기 사무실로 갔다.
(당시 과장은 총경 승진 후 불명예 퇴진 했다)
그리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는데 검사가 전화가 와서 담당자를 바꿔 달라고 해서 받았다.
“아니 형사가 도둑놈이나 잡지 뭐 이런 것을 하세요. 불구속 하세요”라는 것이 아닌가.
검사의 수사 지휘를 받는 우리 형사들은 방법이 없었다.
(검사가 왜 그런 지휘를 했는지는 전체 글이 마무리 할 때 기술하겠음)
이윤성이 불구속 송치되어 나간 후 이제는 도리어 나에게 독직 폭행을 당했다며 고소를 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지방청 폭력계로간 전 조장과 폭력계 선배들이 “너희들 김 형사 건들면 너거 조직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 공갈(?)로 일단락 되었다.
D호텔 룸살롱에 외상을 하였던 차00는 추적 검거하여 구속을 시켰다.
(차00는 추후 세차비 1회 미지불로 다시 구속 시켰음)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는 경사로 승진을 해서 경찰청 폭력계 외근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를 할 때였다.
외근이 6명인데 나는 서열이 5번째라서 거의 서류를 만지거나 뒤치다꺼리를 하였다. 후배가 1명 있었지만 전부 내가 일을 마무리 했다.
당시 폭력계 형사는 일당 백 이었다.
외근 6명이 시내 번화가를 나가면 물가에 놀던 고기떼들이 발을 담구면 놀라서 도망을 치듯이 우리가 나타나면 ‘우다다닥’ 소리가 날 정도로 조폭들은 움직였다.
서로의 정보망이 탄탄하여 대구시내에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30분정도가 지나면 각자의 정보원으로부터 소식을 듣기 때문에 서로 감출 수가 없었다.
이윤성은 일정한 직업이 없으니 돈을 마련 하기 위하여 유명 화가를 납치하여 BB호텔에 가두워 놓고 그림을 그리게 하여 시내 중심지 건물주와 상인들을 상대로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까지 그림을 강매 하다가 검찰 강력부에서 수사를 하자 도망을 다니고 있었다.
지금은 천지개벽이 되어 대구 3호선 종점 역이 있고 버스 종점이기도 했는데 이곳 범물동에 수배중인 이윤성이 자주 나타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우리 조와 다른 조가 같이 범물동으로 갔다.
본디 종점은 언제나 한산했는데 승용차 2대를 세워 놓고 다른 조와 우리 조장은 차에서 내려 있었고 나는 차 안에 누워있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하여 눕혔던 의자를 세우며 밖을 보았다.
평소 이윤성을 잘 알고 있는 선배 형사 3명은 이윤성을 둘러싸고 수갑을 채울 생각은 안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며 서 있었다.
'어'라는 소리와 함께 나는 급히 차문을 열고 다가가서 우측 허리춤에 차고 있는 수갑을 꺼내어 채우며“이 새끼 잘 만났다 가자”고 하자 옆에 있는 선배 형사들이 “어이 김 형사 살살하자.”고 해서 우리 차 쪽으로 데려와 뒷문을 열고 승차 시키기 전 몸을 수색하니 좌측 발목에 약 15센치가량 되는 단도를 차고 있어
“이 새끼 별것 다 가지고 있네”하며 칼을 압수하고 차 뒷 자석으로 밀어 넣고 지방청으로 호송하여 흉기소지로 인지 할려고 하자 선배들이
“김 형사 안 그래도 수배 되어 있는 놈을 그냥 보내자”고 하는 것을
“안 됩니다. 이 자슥이 뭐 나를 독직 폭행으로 고소를 해?”
“한번 해보자”며 타자기를 꺼내었더니 한사코 선배들이 말리기도 하고 이윤성이 잘못했다고 비는 바람에 수배처인 대구지방검찰청 강력부에 보내고 말았다.
대구지검 강력부에서는 우리가 검거하여 인계시킨 이윤성을 유명 작가를 감금 후 그림을 그리게 하여 시내 상인들에게 강제 판매했다고 언론매체에 보도 자료를 주는 바람에 연일 이윤성에 대하여 특집 기사가 나갔고, 시내 조폭들은 움츠리고 활동이 뜸해졌다.
그 뒤 내당동 조폭 민00의 모친상이 있어 동산병원 영안실에 가서 조문을 하고 두목급들과 둘러 앉아 음식을 먹는데 4년을 살고 나온 이윤성이 어디서 나를 보았는지 달려와
“형님 그동안 별일 없었습니까?” 하면서 맥주를 한잔 따뤄 주기에
“그동안 고생했다”며 받고 보니 내 옆에 이윤성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쭉 앉아 있으니 그때서야 하나하나를 보며
“형님! 안녕하십니까?”라며 인사를 하니 그 조폭들이 조금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나이가 많은 자기들한테 먼저 인사 안하고 나한테 먼저 인사 한게 불만 이었다.
그 뒤에도 길, 흉사시 만나면 먼저 인사를 잘하고 지냈는데 나한테 당하면서 친구이던 김상수(가명)에게 조직의 두목 자리를 빼앗기게 되었고, 후배 몇 명을 데리고 다녔지만 비주류로 조직에서는 한발 물러서게 되었다.
여자를 만나 조그만 고깃집을 한다고 해서 손님들을 데리고 몇 번가서 영업에 보탬이 되기도 했지만 3년 뒤 몸이 좋지 않아 그만 병사를 했는데 의리는 있었던 친구였는데 안타깝게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당시에는 몰랐는데 이윤성 사건을 하면서 집에 며칠을 못 들어 갔었다.
당시 처는 언론에 나오는 뉴스를 보고 겁을 먹은 다음 누구에게 도움을 청 할 수 없어서 아이들 2명을 데리고 신천동에 있는 친정 큰집으로 피난을 갔었다고 한다.
일이 바빠 집에 안 들어갔던 나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야 이야기를 하여 알게 되어서 지금도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을 하고 이제는 가족들에게는 잘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는데 잘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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