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 온 편지(악연도 인연) 1

겉 봉투에 광주시 우체국사서함 63호 0000 최주영이라며 교도소 검인 도장이 찍힌 편지가 사무실로 날라 왔다.
가끔 교도소에서 편지가 한, 두번씩 오는데 진정성이 없는 글들이라 대수롭게 생각지 않지만 그중에는 언변이 일치하는 글들이 있어 소개 할까 한다.
◆ 덕분에 잘지내고 있습니다. ◆
형님!
그동안 별고 없으신지요?
형수님과 아이들도 잘 지내시지요?
저는 염려 덕분에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자주 연락을 드리고 싶었는데 안에 있는 몸이라 특별히 하는 것이 없어서 그런것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개미 쳇바퀴 돌듯이 돌아가는 일정이지만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하루라도 빨리 형님들이 보고 싶습니다.
운동시간이 되어 나가면 대구에서 온 낯익은 건달들을 가끔 볼 수 있지만 아직 친한 교도관들이 없어 직접 대화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있는 방에는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데 저보다 세 살 어린 동구연합에 있는 정식이가 있어서 객지의 서러움은 반감하고 있습니다.
정식이는 저보다 한 달 먼저 이감을 와서 있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같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정식이는 동네에서 술을 먹다가 옆자리 손님과 시비가 되어 주방에 있는 칼로 일을 내는 바람에 5년을 받아 이감을 왔다고 합니다.
술에 너무 취해 기억을 못한다고 하는데 상대편이 안 죽은 게 다행이라고 하며 동네 선배들이 십시일반 도와주워 겨우 합의를 했다고 합니다.
같이 생활을 해보니 저를 잘 챙기고 있으며 괜찮은 놈이라 생각되어 나중에 출소하면 형님에게 인사를 시키겠습니다.
저는 아직 3 바퀴를 더 돌아야 하는데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있으니 동네 소식도 궁금하고 형님들과 아우들의 소식도 궁금합니다.
형님!
뭐 제가 잘못하고 법을 어겨 이곳에 들어왔지만 항상 형님의 고마움을 가슴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형님이 그 어려운 길을 마다 하지 않고 먼길을 오셔서 용돈과 물품은 넣어주신 것은 평생 잊지 않겠으며 살아가면서 차차 갚아 나가겠습니다.
이제 나가면 좀 더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제가 그동안 딱히 배운 것은 없지만 열심히 살겠습니다.
글 솜씨도 없고 쓸 말도 없어 이만 줄입니다.
건강하십시오.
멀리 광주에서 동생 주영이가
◆ 악연도 인연이다 ◆
최주영(당시 32세)은 반 건달, 반 도박꾼 이었다.
주영이를 알고 지낸 것은 오래되었다.
형사계에 들어와 선배들에게 일을 한창 배울 때였다.
당직을 하게 되면 24시간 전, 후반 교대를 하며 신고 전화부터 각파출소에서 검거하여 온 잡다한 사건들을 맡아 처리를 하는데 구속사건이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대게가 저녁밥을 먹고 나서부터 시작하는 취객들의 행패로 새벽녘이 되면 거의 진이 빠진다.
술이 조금 취한 사람이 들어오면 이성을 찾게 하여 빠른 마무리가 되는데 만취한 자들이 들어오면 나이와 관계없이 뒤치닥거리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여느때와 같이 전반당직을 하는 도중 파출소에서 검거한 폭력 피의자를 인계하는데 경찰관 여러 명 같이 왔다.
그 정도 되었으면 파출소에서 엄청 행패를 부린 것으로 보인다.
“뭔교?”
“아이고 말도 마이소. 이놈은 동네 건달인데 술만 한잔 먹으면 파출소에 무슨 원한이 있는지 찾아와 횡설수설하며 행패를 부립니다. 참말로 죽겠습니다.”
술만 먹으면 깰 때가지 동네를 휘저어며 다니는 주영이었다.
평상시는 젊잖고 예의 바른데 무슨 원한을 졌는지 술만 먹으면 난리를 치는 동네 건달이었다.
“야! 이자슥아 정신 차려라.”
“씨발 너는 뭐꼬?”
“이거 안되겠네 보고서 한번 봅시다.”
“여기 있습니다.”
보고서를 보니 공부집행방해와 상해였다.
경찰관들에게 수갑이 채워져 끌려 왔음에도 여전히 큰소리로 욕설을 하며 난동을 부렸다.
“됐으니까 수갑 풀어서 가져 가이소”
“여기 이 사람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가이소” 라며 인수인계서에 서명을 해서 보냈다.
“어이 주영아 봐라! 이 자슥이 여기까지 와서 지랄이고.. 저쪽으로 앉아라.”
“너는 뭐고?” 눈을 게름칙하게 뜨고 쳐다 보기에 옆으로 가서
“이게 이제는 아래위도 없고 내가 안보이나?”며
어깨 위 근육 승모근을 지긋이 눌렀더니 아파 죽겠다고 소리를 쳤다.
피의자들을 구타하면 상처가 남고, 독직폭행이 되기에 승모근을 눌리면 상처가 안 나고 제압을 할 수 있어 주취자들에게 자주 써 먹는 나만의 비법이었다.
파출소와 다르게 형사계에 와서 술이 조금 깨었는데다가 급소를 눌러 기를 죽여 놓으니까 조금 얌전해 졌다.
“저쪽에 앉아 있거라..”
그리고 다른 전화를 받고, 서류를 보고 있는 사이에 누가 연락을 했는지 동네 선배 종혁이와 진태 2명이 찾아왔다.
“어이구 형님 오늘 당직이십니까?”
“늦은 밤에 여기 웬 일이냐?”
“저 자슥 주영이가 파출소에 가서 난리를 치다가 경찰서로 왔다고 하기에 왔습니다.”
“잘 ~ 한다. 저 자슥은 술만 쳐 먹으면 파출소에 가서 지랄하나?”
“우리가 교육시키겠습니다. 우째 안 되겠습니까?”
“안 된다. 저 자슥 전과도 있고 파출소 경찰관에게 행패를 부리며 걍찰관을 때려서 안 된다. 너거들 볼일이나 봐라. 가봐라.”
“여기까지 왔는데 주영이를 두고 어째가겠습니까?”
“안 가면 우얄낀데? 가라 빨리.. 지금 바뻐다. 주영이는 오늘 못나간다”
“좀 봐 주이소.”
“안 된다 안 카나? 가라.”
“합의해서 오면 되겠습니까?”
“공집방해이면 국가가 피해자인데 누구하고 합의를 한다는 말이가?”
“일단 알았습니다. 내일 올께요” 동네 건달들을 보내고 술에 취해 대기석에 고꾸라져 잠을 자는 주영이를 깨워 유치장에 입감을 시켰다.
다음 날 아침, 간밤에 일어났던 일들을 지휘부에 보고를 하니 주영이에 대하여 전과와 범죄사실을 묻고는 파출소 경찰관 상태를 알아보라고 해서 파출소에 알아보니 병원에 갈 정도 아닌데 자주 파출소에 와서 행패를 부리기에 입건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한번 고생을 시켜야 다음에 조심할 것 같아 구속 영장청구를 준비했다.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면 여러 가지 서류를 준비해야 하기에 일이 많아 집에 들어갔다가 오후에 나와서 하기로 했다.
집에 가서 쉬다가 옷을 갈아 입고 오후 늦게 사무실에 나와 유치장에 있는 주영이를 불러 조사를 하기 위해 의자에 앉혔다.
“너 정신이 드나?”
“잘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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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단장한 광주교도소 외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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