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형사를 만나다. 2

◆ 형사한테 공갈을 쳐? ..◆
점심을 먹고 나서는 근처 여관으로 가서 주인장을 불러 잠시 쉬겠다고 하며 방에 들어가 누워 휴식을 취하는데 20-30여분이 지나 나는 잠이 막 들려고 하면 “어이! 김 형사! 가자! 가자!”며 깨워서 다음부터 나는 조장이 낮잠을 잠시 잔다고 하면 그냥 밖에서 기다리거나 주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다.
오후 외근 활동을 마치고 나면 주간 활동 사항을 보고도 할 겸 지시를 받으러 경찰서로 들어간다.
그런데 하루는 외근을 하고 사무실로 들어가는데 정문 옆에서 누군가 나를 보더니
“김 형사님! 나 좀 봅시다.”
“누구십니까?”
“저 모르겠습니까?”
“글쎄요” 하고 보니 몇 달전 파출소에서 검거하여 인계 되어온 절도범이었던 차 명석(가명)이었다.
“어! 그런데 왜?”
“잠깐 차 한잔 합시다.”
“그래 내가 사무실에 가서 얘기 하고 갈테니 길 건너 지하에 있는 다방에 가있어” 하고 사무실에 들어가 조장에게
“전에 절도로 구속되었던 놈이 차 한잔 하자며 왔는데 갔다가 오겠습니다”고 보고를 하니 조장이
“별로 신찮은 놈 같던데.. 갔다가 온나”
하고 사무실을 나와 별 다방에 가니 혼자 앉아 있었다.
“차 한잔 하자! 뭘 먹을래?”며
“고생했네? 뭘로 나왔나?”
“외상(집행유예를 말함)으로 나왔습니다.”
차를 시켜놓고 있자니
“김 형사님! 경찰서에서 김 형사님한테 맞아 고막이 나갔던 모양입니다.”
“무슨 소리고? 이! 자슥이! 이제 찍자 붙으로 왔나?”
“그때 김 형사님이 다른것도 이야기를 하라며 저를 안 때렸습니까?”
“뭐 때려? 이! 자슥이! 깜방 갔다 오더니 간띠가 쎄리 부었네..”
“그만 안 되지요. 내가 안 맞았는데 맞았다고 왔겠습니까?”
80년대 중반 시절에는 절도범들을 잡아오면 거저 지나가는 일이 없이 여죄를 밝히기 위하여 여죄가 있거나 없거나 한번 쯤은 손찌검을 하던 시절이었고 또 설사 문제가 되더라도 위의 상사나 판, 검사들이 일을 하다가 벌어진 것이라 거의 보호하는 측면이 강했던 시절이었다.
“임마야! 내가 너를 때렸다는 증거나 본 사람이 있나?”
“왜 이러십니까? 형사계 사무실 구석에 데려가서 뺨을 때리고 발로 찼잖아요 ?”
“아! 자슥이! 별 소리를 다하네..”
“지금이라도 치료비를 안주면 가만 안 있을겁니다.”
“뭐 어쩐다는 말이가?”
“검찰청에 고소를 하던지 할껍니다.”라며 서로 음성을 높혀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기다리던 조장이 석회를 마치고 외근을 나가야 되는데 조원인 내가 들어오지 않고 있으니 슬며시 다방으로 오셨다.
“어! 김 형사! 여기서 아직도 뭐하나?”
“여기 이! 자슥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서..”
“뭔데 그러나?” 해서 자초지종 이야기를 했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이! 자슥이! 이제 별 지랄을 다하네. 야! 임마! 니가 김 형사에 맞아 상처가 났다면 경찰서 유치장에 있을 때 얘기를 해도 되었고, 검찰청에 가서 검사한테 얘기를 해도 되었고, 교도소에서 이야기를 해도 되었는데 몇 달이 지난 이제 와서 뭐 형사한테 맞아서 고막이 나갔다고? 이 새끼 한번 더 들어가야 되겠네.. 김 형사! 이 새끼 데리고 경찰서로 들어가자.”
“아니 신 형사님! 무슨 소리를 합니까? 내가 맞았으니 맞았다고 하지요.”
“임마! 내가 금방 얘기 했잖아 너는 그동안 뭐했어? 왜 가만 있다가 이제 와서 그래.. 우리 김 형사가 초짜로 보이니까 만만해 보이더나? 한번 해보자”며 고함을 치니 다방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쳐다 보니 차명석이 뭔가 잘못되어 가는구나 싶었던지
“알았습니다. 두고 보이소”하며 다방을 나갔다.
차명석이 나가자
“김 형사! 우째 저런 놈이 말하는거를 다 듣고 있나? 감방에 갔다가 나오면서 한수씩 배워 나오는데 오늘 너한테 써 먹을려고 했는갑다. 괜찮다. 그만 나가자”
나는 조장이 그렇게 하더라도 속으로는 저 자슥이 무슨 짖을 할까 싶어 속으로 엄청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한 달이 지나도 아무 일이 없어서 역시 우리 조장이 최고였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형사로서 또 하나 배웠다.
그렇게 엄한 조장 밑에서 일을 배우고 1년이 지나자 새로운 신임 형사가 오면서 내 자리는 또, 신임에게 자리를 넘겨 주고 자연히 다른 조장과 한 조를 하게 되었다.
새로 만난 조장은 전임 조장과 달리 1등도 싫고, 꼴등도 싫고 중간만 가자는 스타일이었다.
담당 구역도 바뀌었는데 새벽이 되면 일일근로자들이 모여드는 인력 시장이 있는 북비산파출소로 바뀌었다.
이곳은 대구의 명물 달성공원 뒤편으로 서민들이 주로 사는 동네였으며 다른 지역 보다 자그마한 범죄가 많이 발생 하는 곳 이었다.
이곳에서 나의 운명을 바꾸워 주는 사건을 하게 되었다.
제일 처음 연재하였던 “손가락 10개를 찾아라” 즉, 우리나라 최초의 엽기적인 토막 살인사건을 발생한지 6년 7개월 만에 검거하여 전국적인 뉴스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승진 자체가 없던 시절에 경장으로 특진을 하게 된 곳이다.
아무리 경찰 생활을 오래하여도 순경으로 정년 퇴직을 할 때니까 크나큰 영광 이었다.
토막 살인사건은 이미 연재(손가락 10개를 찾아라)를 하였기에 생략하기로 하겠다.
비록 한 조가 안 되고 떨어졌지만 내가 승진 할 때마다 축하의 말씀을 전해 주시고 “항상 겸손하고, 조심하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엄마 형사는 나중에 강력반이 신설되었을 때 같은 반에 있으면서 왕 조장으로서 우리 조가 여러 사건을 하며 실적을 올릴 수 있게 도와 주셔서 우리 조가 경사로 특진 할 수 있었다.(추후 '형사 파트너'에 연재 예정)
지금도 아주 건강하게 계시며 80세가 넘었는데도 학교 지킴이 활동을 하시고 계시는데 건강하게 오래 오래 장수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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