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놈과 도둑님 3

장물인 보석류를 보이며 범죄사실을 추궁하였으나 전혀 협조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보내줄 리 없는 우리는 여러가지 수사(?)를 하면서 같이 있던 남자 박영수를 분리 수사하여 일부자백을 받아냈다.
여자들은 일단 여관으로 보냈고 같이 있던 박영수도 공범으로 구속을 시켰다.
구속을 시킨 후 여죄가 있어 장물 처분한곳을 확인 중에 있는데 형사계장이 이재수를 서비산파출소 관내 발생 사거과 관련이 있는가 알아보기 위하여 데려 오라고 했다.
박영수는 경찰서 유치장에 두고 이재수만 서비산파출소에 있는 형사계장과 다른 반장들 3-4명에게 맡겨 놓고 우리는 장물 수사를 해서 일부는 확인하고 돌아오니 피의자가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사무실로 데려 들어간 줄 알았는데 수갑을 찬 체로 도망을 하였다는 것이다.
수사 간부라는 사람들이 난로 옆에 둘러서서 잡담만 하고 있다가 도둑놈이 도망치는 것을 못 보고 문을 나선 순간 알고 뒤 따라 갔지만 젊은 놈을 따라 갈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참 난감 했다.
다시 잡아야 하는데 집도 절도 없는 놈을 어디서 잡는다는 말인가?
도둑놈을 잡았다고 표창 받는게 아니고 도리어 징계를 먹게 생겼다.
그렇다고 마냥 넋을 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 처음 여관에 있을 때 있던 여자를 다시 만나 공작을 시작했다.
이재수가 금은방을 털어온 후 반지나 목걸이의 보석들은 그냥 두었었지만 여자용 시계는 여자들을 만날 때 한 개씩 선물로 주면서 환심을 샀던 것이었다.
그 와중에 월배에 살고 있는 매형이라는 자를 만나러 가니까 피의자가 훔쳐 놓은 물건을 다시 처남 몰래 가져가 손가락에 몇 개나 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이 봐라! 이자슥도 똑 같네.. 처남이 훔쳐 온 것을 뭐가 좋다고 손가락 마다 끼워서 폼을 잡고 있나.. 어이구.. 니 처남은 어디갔나?”
“연락이 없던데요. 경찰서에 없습니까?”
“없으니까 여기 찾으로 온 것 아이가? 지랄하지 말고 똑 바로 이야기 안하나?”
우리는 약이 올라있었다. 낚시꾼들이 항상 하는 이야기 이지만 잡았다가 놓친 고기가 세상에서 제일 큰 고기 였듯이 우리도 여죄가 많은 도둑을 잡았는데 놓쳤으니 엄청 아까웠다.
당시는 휴대폰이나 연락처가 없을 때라 여자에게 전화가 오기만 기다렸다.
1개조는 여관에서 여자랑 같이 있고, 1개조는 누나집에 같이 있었다.
필요한 물건도 있고 해서 분명히 전화가 올 줄 알고 있던 차에 여관으로 전화가 왔다.
다음날 북구 성북교 다리 옆 변전소 앞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작전회의를 했고 이놈이 젋고 빠르고 힘도 좋으니까 전경을 동원 하자고 해서 전경 4명을 지원받아 형사 1명에 전경 1명씩 붙여 4개 조로 편성하여 변전소 주변에 배치를 하고 나와 조장은 얼굴을 알아서 안 되니까 멀리 떨어져 있기로 했다.
시간이 되어 피의자가 모자를 쓰고 변전소 쪽으로 오는데 멀리 있던 내가 무전기로 피의자가 나타났다며 알려주는 순간 알아채고 도주하는 것을 1차 검거 조에서 길을 막고 검거 하려고 시도를 했지만 실패를 했다.
도망치는 이재수를 보며 “잡아라”는 소리를 들은 2차선에서 길을 막았으나 변전소 쪽으로 피하면서 옆에 깔아둔 자갈에 발이 미끄러지며 넘어지는 것을 보고 형사랑 의경들이 위에서 덮쳤다.
수갑을 채울려고 양손을 뒤로 꺽는데 힘이 워낙 좋아 꺽을 수가 없어서 얼굴에 가스분사기를 뿌리고 나서 팔을 뒤로 하여 수갑을 2개나 채워 검거를 했다.
나중에 안 일 이지만 이놈이 북부경찰서에 검거되어 현장검증 하면서 도주를 했었다고 하고, 여관에 있는 텔레비전도 북구 복현동 영화 상영관 대기실에 있는 것을 훔쳐 10여 킬로미터 되는 거리를 들고 올 정도였으며 진짜로 500원짜리 동전을 맨손으로 구부릴 정도라고 했다. 그야말로 통뼈를 가진 천하장사였던 놈이었다.
사무실로 데려온 이재수는 도망쳤던 댓가를 혹독하게(?) 치뤘다.
여죄를 밝혀낸 뒤 구속하여 검찰로 송치했고,
서비산 파출소관내에서 발생한 강도사건은 해결하지 못하여 보름정도 지나 미제사건으로 처리하면서 우리는 경찰서로 복귀를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몇 년 뒤 대구 여관에 강도사건이 빈발했는데 말씨나 행동이 이재수하고 같아서 추적을 해보니 비산동에서 결혼은 안했지만 아이를 낳고 산다고 하여 며칠간의 수사를 통하여 집을 확인하였다.
집은 확인하였지만 이재수는 집에 없었고 수소문 해보니 남해안 어디 어촌에 미역채취 하러 갔는데 구정 설이 며칠 남지 않아 그때 온다는 것이었다.
집에 온다고 해도 막연히 검거 할 수가 없었는데 중부경찰서에서 절도죄로 수배를 시켜 놓은 게 있었다. 그래서 아마 검거를 피할려고 남해안 바닷가로 간 것 같았다.
어찌되었던 간에 이재수를 잡아 여관 강도 사건을 추궁해 봐야 할 것 같아 수사를 계속했다.
집은 가정 주택이었는데 단칸방에 세를 얻어 살고 있었다.
워낙 신출귀몰한 자라 새벽에 검거 할려고 생각을 했는데 집 구조가 대문 외에는 들어갈 방법이 없어 주인에게 협조를 구하였으나 반응이 안 좋았다.
그래서 새벽에 잠복을 하는데 주인이란 자가 집을 나와 폐지 수거를 하는데 남의 집 앞에 쌓아둔 박스를 가져가는 것을 보고 잡았다.
“당신 것도 아닌데 왜 남의 집 앞에 있는 물건을 가져가느냐? 절도로 사건을 해야 하는데 협조를 하면 봐 주겠다”고 해서 협조를 받기로 했다.
형사 여러 명이 검거하는데 고생한 기억이 있어 전날 상황실에서 권총을 대여 받아 품속에 넣어 집에 가보니 안 왔는지 없었다.
분명히 집에 올 것을 계산하고 갔는데 없어서 설날 새벽 04:00경이 되어 조장과 같이 집 앞에 가니 주인이 나오더니 이재수가 어제 늦게 집에 왔다고 하며 대문을 열어 주고 들어갔다.
우리는 컴컴한 피의자 방문 앞에서 ”재수야“라고 부르니 눈치 빠른 놈이 불도 켜지 않은 체 방에 붙어 있는 부엌 쪽 문으로 가는 것 같아서 아무 소리도 안하고 부엌문을 열고 권총을 겨누며 제압을 하고 수갑을 채워 검거를 했다.
다시 사무실에 데려와 대구에서 발생한 여관 강도 사건을 강하게(?) 추궁을 하였는데 죽어도 여관 강도는 하지 않았다고 하여 수배관서인 중부서로 인계를 하였다.
전생에 무슨 악연이었는지 두 번이나 검거되어 중형을 선고 받고 수감 생활을 했는데 출소를 하고 보니 처와 자식마져 어디 가고 없으니 원망을 많이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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