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심판 2

제 2 화
처음 해보는 일이라 술을 먹고 들어와 시비를 걸어오는 진상 손님들로 인해 고통이 있었지만 오빠에게 말을 하면 그만하라고 할까봐 특유의 인내로 참아가며 지내왔었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난 그날도 손님이 몇 방이 있었으나 1번 방에 있던 손님이 영업이 끝이 났는데도 계속하여 사용하겠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보통 영업이 끝나면 오빠에게 그날 수입된 것을 보고하고 퇴근을 하는데 연락이 없어 친구가 전화했다.
"숙아! 오늘 손님 좀 있었나?"
"별로 없다가 늦게 두 방 들어왔다가 한방은 가고 이제 한방 남았다."
"어떤 손님인데?"
"남자가 혼자 왔는데 술 한잔 했는 것 같더라"
"손님한테 영업시간이 끝났다고 하고 일찍 마쳐라."
"알았다 오빠!"
그렇게 전화를 하고 나서 잠시 잠이 들었는데 동생에게 전화가 안 와서 시간을 보니 새벽이 되었다.
다시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혹시 시간이 늦어 전화를 안하고 바로 집에 갔는가 싶어 집으로 전화를 해도 아직 집에 안 왔다 했다.
이상하다 싶어 노래방에 오니 카운터 앞에 동생이 피를 흘린체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수사 지휘부에서는 피해자의 상태로 봐서 초범의 짓이 아니고 분명히 전과자의 짓인데 여러 명은 아닌 것 같았고 단독범으로 판단했다.
사건 발생 후 여러 갈래의 수사를 하였지만 피해자는 치정에 엮일만한 그런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알고 있어서 치정관계는 아니라고 단정했다.
이는 분명히 변태 성욕자의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달 넘는 수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하고 북부서에 전담반만 설치하고 우리는 철수하게 된 것이다.
안타깝고 안타까운 사건이었지만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그리 능력이 없었던가 생각하며 자책하기도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10년 6월 어느 날 고향에서 과수원을 하는 친구(대구에 있던 피해자 오빠는 동생 사고가 자신으로 인하여 일어난 것으로 자책을 하며 귀향하였음) 명수로 부터 전화가 왔다.
“야! 김형사!”
“어! 그래 명수야 왠 일이고?”라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전화하게 된 이유는 친구의 조카이자 사건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피해자의 아들이 엄마 사건이 아직 미제로 남아 있어 자신이 경찰에 들어가 잡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형사가 되겠냐고 하여 일단 경찰 시험을 치고 들어와 교육을 받은 후 파출소 근무를 하고 난 뒤 형사계를 지원 하면 된다고 했다.
그 뒤 2012 내가 경찰청 광역수사대 팀장으로 근무를 할 때 경찰 시험에 합격을 하고 교육을 마쳤다고 연락이 왔다
“아저씨 저 종훈(가명)인데요 아시겠습니까?”
“누구? 종훈이?”
“상주 중동 명수 외삼촌 조카입니다”
“아! 그래 경찰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작 연락을 좀 하지”
“저는 00경찰서 00파출소에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 웬일로?”
“경찰서 형사계에 들어가고 싶은데 아저씨가 알아봐 주세요.”
“알았다. 내가 알아보고 다시 연락할게”
매년 1-2월이 되면 경찰에는 승진하는 사람들이 있고 해서 보직 이동이 있었는데 마침 00경찰서 수사과장이 나랑 예전에 서부서에 같이 근무를 하였던 과장이라 종훈이를 형사계로 받아 달라고 부탁하게 되었다.
"과장님 잘 계십니까?"
"아이구! 팀장님 저는 잘있습니다."
"아쉬운 소리 한번 하겠습니다."
"뭔데요?"
"형사는 스스로 할려고 하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 해야 되는데 추천을 한 명 하려고 합니다"
"누군데요? 팀장님이 추천 하신다면 틀림없으니 받아야지요."
"지금 00파출소에 있는데 꼭 형사가 하고 싶다고 하니 한번 살펴 주세요."
"알겠습니다."
신임 경찰들은 처음에 영화에 나오는 멋있는 형사만 생각하고 형사를 하기 위하여 경찰을 지원하지만 교육 중이거나 실무 교육 때 형사가 힘이 들고 자기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형사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없는데 종훈이는 엄마가 자신의 과외비를 벌기 위하여 일을 하다가 사망한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험난한 길이 될 지언정 해보겠다는 열정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종훈이는 00경찰서 형사계에 발령을 받아 형사 일을 하나씩 배우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나는 2016년 초에 경정으로 승진을 하여 대구 성서경찰서 형사과장을 하고 있었다.
형사과장은 경찰서 출입기자들과는 매일 아침에 만나 전날 발생 사건이나 사고를 설명하며 티타임을 갖는다.
2017. 11월말 대구 00에서 귀가 중인 여성이 둔기에 맞고 손가방을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했다.
00경찰서에서 발생한 노상 강도사건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우리 관할 사건이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외근 형사들에게 전달 하며 외근 할 때 참고 하라고 지시를 했다.
아침 회의를 마치고 출입기자들과 차를 한잔 나누고 이야기하다가 마지막에 남아 있던 김 기자가 "퇴직이 얼마 안 남았는데 그동안 형사 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건을 하나 이야기 해보라"고 하여 예전 북부경찰서 노래방 살인사건이 아직 미제이고 그 피해자가 나와 가깝게 지냈던 친구 동생이며 한때는 연인이었는데 그 아들이 엄마를 살해한 범인을 잡겠노라고 00경찰서에서 형사를 하고 있다고 하며 노래방 사건에 대하여 소상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00서 형사들은 노상강도사건 현장 주변 CCTV 수사를 하던 중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현장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길에 버린 것을 알았다.
이를 확인하고 그곳 주변에 있는 담배꽁초 수십 개를 수거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냈더니 그중 하나가 미제로 남아 있던 북부경찰서 노래방 살인사건에서 나온 DNA와 일치된 것이 나왔다.
발생 당시에는 DNA 기술이 없었지만 피해자 신체에서 범인 것으로 추정되는 타액을 체취해 둔 것이 있어 13년 만에 대조하여 밝혀진 것이었다.
과학이 발전을 하고 기술이 좋아져 2010. 1. 25. DNA 신원 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징역이나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 받아 그 형이 확정되어 수용중인 사람에 적용하는 법률이 생겨 범인이 다른 범죄로 처벌을 받으면서 보관해 둔 DNA에서 노상강도 발생 사건 용의자 추정 담배에서 나온 DNA가 일치를 하였고, 또 그 범인이 미제사건의 범인이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었다.
발생사건 수사중 노상강도 용의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종훈이는 흥분이 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같이 근무를 하고 있는 조장과 반장 역시 13년 전 발생하였던 미제 살인사건 피해자가 수사중인 형사의 엄마 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고민을 많이 했다.
수사팀에서 계속 같이 활동을 해서 종훈이 손으로 범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도록 할지 아니면 수사에 배제를 시켜야 될지 고민을 하면서 소재 추적을 계속했다.
그렇지만 전과자이고 거처가 불명확한 자라 소재를 찾을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수사로 범인의 소재를 특정하고 검거 조가 편성되면서 팀장이 종훈이를 보고 “자네는 이제 되었으니 수사팀에서 빠져라”고 했다.
검거시 불상사가 날것을 미리 차단한 것이었다.
오직 그놈을 잡기 위하여 경찰에 들어와 형사가 되었고, 엄마를 불귀의 객으로 만든 놈을 자기 손으로 꼭 검거하여 엄마의 한을 풀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빠지라고 하니 억장이 무너졌다고 한다.
선배와 동료들의 위로에 마음을 고쳐 먹고 동료들이 범인을 검거하러 갈 때 종훈이는 팔공산을 한 바퀴 돌면서 조속한 검거를 기도했다고 한다.
종훈이가 빠진 뒤 00경찰서에서는 과장을 중심으로 수사회의를 거쳐 배회처를 중심으로 수사를 하여 범인인 김정배(당시 48세)를 13년 만에 신암동 여관에서 검거를 하여 구속 시켰다.
사건 당시 북부경찰서에서 범행 시간 전에 옆 건물 2층에서 늦게 까지 술을 먹고 간 피의자를 찾아 수사선상에 올려 수사를 했지만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였을 뿐 아니라 뚜렷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보내주었던 대기업 잠바를 입고 있었던 그 놈 이었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범인을 검거한들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 올리 없지만 당장 달려가 “왜 그랬냐”며 뺨이라도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늦게나마 검거한 것은 과학수사의 덕이지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싶다.
모 신문사 김 기자는 00경찰서에서 미제 살인범을 검거한 것을 알자 마자 나에게 일주일 전에 들었던 내용을 기반으로 00경찰서에서 제공한 보도 자료보다 상세히 보도를 내자 00서와 경찰청에서는 난리가 났다.
사건내용외에 다른 내용이 보도에 나가면 혹시 모르고 있는 내용들이 오보로 나갈까봐 노심초사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여 자료 제공도 없이 상세히 보도가 나갔냐고 하면서 00 과장이 김 기자에게 항의를 했지만 사건 검거 일주일 전에 들은 것 이었고, 기자가 그런 것을 기사화 하지 않으면 어떤 것을 하느냐며 대답했다고 한다. 어느 작가가 글을 쓰도 이런 운명적인 글은 못 쓸 것 같았다.
수사는 마무리를 하고 나면 항상 후회를 한다.
해결하였을 경우는 좀 더 빨리 해결 하여 망자의 혼과 유족들을 위로 할 수 있었을 것인데 라고 후회를 하고, 미제로 남겼을 때는 무엇이 부족하여 해결을 못하고 혼이 떠돌도록 하고 있을까 하고 후회를 합니다.
이 사건도 아쉽게 미제로 남겨 두었던 사건이었는데 세월이 지난 뒤에 아들이 검거하여 다행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빠야 밥 묵어라”는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다.
- 끝 -
다음에는 "악당(惡黨)들)"을 연재 하겠습니다.
- 작가의말
예쁜 동생아!
부디 이승에서 못다 한 것들은 저승에서 나마 이루기를 바라고 자네의 한이 아들에게로 전해져 해결된 것 같으니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게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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