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인연은 여기까지.. 5

제 5 화
사무실로 오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가 처음 이갑이를 잡을 때는 빨리 잡아가라고 하더니 그사이 공범이었던 동생에게 전화를 하여 도망을 가게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야 조 형사 사무실에 가지 전에 우선 이갑이 집으로 가보자, 왜 석수에게 연락을 해주었는지 알고 들어가자”
“알겠습니다”
집에 가니 이갑이 처가 있었다‘
“아줌마! 왜 석수에게 연락을 했어요”
“처음에 형사들이 갑자기 오는 바람에 겁을 먹고 그랬는데 이갑씨가 걱정이 되어 동생에게 전화를 했었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까?”
“미안합니다”
“석수는 뭐라고 하던가요?”
“그냥 알았다고만 했습니다”
“앞으로 석수가 연락이 오면 어짜피 잡힐것이니 시경 강력계로 들어 오라고 하이소”
“알겠습니다”
사무실로 향하던 우리는 이갑이의 진술대로 남은 피해품이라도 회수를 하기 위하여 대명동 부모 집으로 향했다.
일갑이를 검거하고 난 뒤 세월이 흘렀으니 송현동에 있던 집은 대명동으로 이사를 했고 일갑이 아버지는 몇 해 전 병으로 사망하였다고 했다.
대명동 부모 집에 도착을 하니 나이가 많은 노모가 있어 둘째, 셋째 아들의 범죄사실들을 이야기 하고 피해품을 내어 놓으라고 했으나 모른다고 하여 집안을 수색했다.
분명히 엄마 집에 두었다고 하니 집에 있기는 있는데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하는 엄마의 심정은 알기는 하겠지만 윽박 질러 가며 내 놓으라고 하지는 못할 형편이라 집안을 구석구석 뒤졌다.
장롱과 서랍에는 없었고, 한 시간 가량을 수색하여 화장실 천장 위에 있는 보석 종류를 압수했다.
사무실로 돌아와 왜 금붙이는 없고 보석류만 있느냐고 하니 장물아비들은 귀금속 중 금만 사고 나머지 보석류는 갑을 쳐주지 않는다고 하여 엄마 집에 갔다 두었었다고 했다.
밤이 되어 이갑이를 경찰서 유치장에 입감 시킬려고 하는데 이석수가 엄마와 누나랑 같이 정문에 도착하였다고 하여 형사들을 정문으로 보내어 사무실로 데려 온 다음 간단한 조사 후 수성경찰서 유치장에 입감 시켰다.
다음날 다시 사무실로 데려와 조사를 하면서 이갑이보다는 조금 똑똑한 석수에게
“왜 지산동에 있는 금은방을 택하였느냐?”
“제가 사기죄로 대구교도소 수감 중 알게 된 감방 동기 중에 한 명이 골동품에 대하여 일가견이 있어 서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자신은 서울에서 금은방을 하는데 물건을 가져오면 제대로 값을 쳐 주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지만 별 대꾸를 안 했습니다. ”
“그런데 어떻게 하여 그 금방을 털게 되었냐 말이야?”
“출소 후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가 서울에서 금방을 하고 있다는 감방동기의 말이 생각나서 집에서 놀고 있던 형에게‘ 형 우리 딱 한탕만 하자고 하니”
“물건을 가져 오면 어디에 보낼려고?”
“안에 있을 때 같이 있던 놈이 서울에서 금방을 하는데 물건을 가져오면 값을 넉넉히 쳐 주는데 패물은 필요 없고 금만 산다고 하더라’
“ 니말이 맞나? 자신있나?”
“안에서 말할 때는 진짜 같은데 우선 전화로 확인 해볼까?”
“지금도 살란가 알아보고 일을 하자”
며칠 뒤 감방 동기이며 장물 처분을 할 수 있다고 한 양준태(당시 47세)에게 연락을 하여 보니 언제라도 연락만 하면 된다고 하여 다시 석수가 형인 이갑이에게 처리가 된다며 조금은 아둔한 형을 꾀어 같이 금은방을 물색하게 되었다.
형과 같이 여러 금은방을 다니며 물건을 사는 같이 하면서 몇 군데 방범 상태를 확인했는데 지산동 금방에 오니 방범 시설은 해 놓았지만 출입구 쪽에 샷시도 없었고, 허술하게 되어 있었으며 물건을 전부 금고 안에 넣지 않고 그대로 두고 퇴근을 하여 사설업체 경비원이 오기 전에 충분히 처리 할 것 같아서 그곳을 택하였다.
지산동 00주얼리를 털기로 하고 저녁에 모인 형제는 앞산 밑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주차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사설 경비업체 근무자들 근무가 느슨한 시간인 03:00경 범행을 하기로 했다.
시간이 다 되어 타고 간 차를 주얼리에서 약 100여 미터 떨어진 아파트 입구에 세워두고 차에서 내린 이갑이는 미리 준비해간 손 도끼를 우측 손에 쥐고, 뒤따라 석수는 천으로 만들어진 쇼핑백을 들고 00주얼리 앞으로 가서 이갑이가 손 도끼로 출입문 유리창을 내리쳐 깨뜨리고 먼저 안으로 들어가면서 각자 손에 잡고 있던 신문으로 미리 파악하여둔 쥬얼리내 CCTV에 얼굴 가리고 진열장 유리창을 손 도끼로 내리치며 깨뜨리고 쇼핑백에 주어 담아 도망을 쳐 주차해둔 차를 몰고 달서구 상인동 수밭못 옆 주차장에서 벤찌와 리퍼로 반지나 목걸이에서 보석을 제거 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사이 서울에 있는 양준태에게 연락은 한 석수는 금강휴계소에서 만나기로 했다며 날이 밝아 올 즈음 서대구 IC을 통하여 경부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경부선 상,하행선이 만나는 금강휴계소 뒤편 매운탕 골목 식당에서 만나 반지등에 박힌 패물은 제외하고 금만 계량하여 시세의 60%를 받고 3,000만원에 넘겼고 나머지 귀금속은 모아서 엄마 집에 숨겨 두었던 것 이었다.
당시 피해자는 경비업체를 통하여 보험에 가입이 되어 있었는데 피해액이 3억원이었다고 하고 피의자들은 1억원도 되지 않는다고 하여 논쟁이 있었지만 우리는 피해자 진술을 토대로 하기에 피해액을 3억원으로 산정하였다.
이들 형제는 여죄 추궁을 하였더니 금은방 절도외에도 6건의 강도사건과 20여건의 절도사실이 있어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 법률위반죄로 구속 송치하였다.
말이 여죄 수사이지 이도 일이 많아 송치 할 때까지는 시간외 수당을 주지 않지만 (당시 시간외 수당은 일괄적으로 주었지 근무한 시간을 계산하여 주지는 않았음) 거의 밤을 새우며,배달 음식을 시켜 가며 일을 해야 했다.
일선 경찰서 유치장에 있는 피의자들을 경찰청으로 불러 조사를 하며 식사 때가 오면 유치장에 데려가 밥을 먹이고 올 수가 없어 같이 먹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 장부에 외상을 하고 나서 나중에 수사비로 결재를 하던지 모자라면 형사들 끼리 금액을 나누워 사비로 지불 하기도 했다.
수사를 할 때 범인만 잡어면 되는 게 아니고 그 뒤에 있는 일이 더 많다.
사건마다 피해자 확인하고 피해품 처분 장소를 찾아가서 피해품도 찾아야 하고 물건을 산 업주들을 조사하여 장물취득으로 입건 내지 참고인 조사를 해야 할 뿐더러 피해자들에게 물건을 돌려 줄려면 검사 에게 가환부 지시를 받아야 하니 이 또한 일이 많고, 강도사건 경우에는 현장 검증을 하며 사진 촬영을 하여 검증 조서 작성을 해야 하기에 이런 사건 하나 하면 거의 일주일은 밤,낮이 없이 움직이고 초 죽음이 된다.
일이 끝 난뒤에는 돈키호테가 장검을 들고 허수아비를 찌르며 승리를 환호하는 멍청이 같이 상사의 칭찬과 표창장 한 장으로 피로를 잊어버린다.
그 후 장물애비를 잡기 위하여 몇 차례에 걸쳐 서울 성북구 주거지에 출장을 가서 며칠씩을 매복을 하며 검거를 할려고 했는데 이미 눈치를 챘는지 검거치 못하고 전국에 수배를 해두었었다.
그리고 대구 MBC 아침 방송 출근 시간인 08:30부터 08:35까지 시사만평프로그램인“달구벌 만평”에 “세상에 이런 일이”라며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기에 삼형제를 모두 교도소에 보냈나”며 방송이 되기도 하였다.
출소 후 지금도 가끔 연락이 오는데 몸이 건강하고 근육질인 이갑이는 건축 공사장에서, 석수는 누나와 같이 섬유 공장에 다니고 있는 것 같다.
MBC 달구벌 만평 2002. 3. 14
최근 6건의 강도사건과 20여건의 절도 짓을 한 형제 용의자들을 붙잡은 경찰관이 지난 17년 전 이들의 맏형까지 강도치사 혐의로 붙잡은 그 경찰관으로 드러나 이 형제들과 경찰관의 질긴 인연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이들을 붙잡은 김선희 대구경찰청 강력주임 “용의자들을 잡고 보니깐 17년 전 잡아 넣은 강도하고 이름도 비슷하고 얼굴도 하도 닮아서 물어 보니깐 그 강도의 친동생이더라고요. 참 안타깝기도 하고 이게 무슨 악연인가 싶기도 하고..”하며 쓴 웃음을 지었어요.
삼형제를 모두 한 손으로 잡아 넣었을 정도면 전생에 무슨 인연이라도 있었는가 봅니다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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