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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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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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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6,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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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7.27 22:25
조회
3,056
추천
78
글자
9쪽

< #13. 낙성(落城) 1-2 >

DUMMY

기사 셋이 달려들자, 무슬림 기병들은 혼비백산해 흩어지기 시작했다. 도망치려 말을 돌리던 녀석 하나가 알폰소의 창에 꿰뚫린 채 바들거리며 허공에서 몸을 떨었다.


"아···. 알폰소. 오랜만이오."


알폰소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창에 꿰뚫린 시체를 흔들어대며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그러다 제레미를 쳐다보고는 방긋 웃었다.


"고마워, 레널드의 네 명의 수호기사들···. 어? 단짝처럼 몰려다니던 건 넷이었는데······."


"우린 티베리아스로 가지도 못하고 졌소. 아모리는 그때 같이 오지 못했고······."


"그렇군. 어쩐지 미친 듯이 무슬림 군대가 쳐들어오더라니. 나도 겨우 사흘을 버티다가 도망쳤어."


알폰소도 자신의 성채를 결국 지키지 못했다. 일렌느의 신상을 걱정한 알폰소를 위해, 병사들은 한밤중 수적열세를 무릅쓰고 기습을 가했고, 알폰소와 일렌느를 도주시키는 데 성공했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했는데···. 괜찮을까?'


다음에 공격해왔던 아미르에게 몸값을 내고 병사들을 어떻게든 돌려받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마차 안에는 일렌느와 시녀 둘 말고도 돈이 될만한 것들이 가득했다.


이런 알폰소의 생각과는 달리, 그 시간 우스만의 광신도들은 포로들을 산채로 땅에 파묻고들 있었다.


"그럼 모두 알 카락으로 갈 생각인 건가? 그건 그만두게."


"알 카락도 공격받고 있나요? 어떻게 됐습니까?"


제레미는 예상은 했지만 이리 빨리 무슬림들이 들이닥칠지 몰랐다. 살라흐앗딘은 예루살렘의 전 병력을 상대하면서도 밖으로 돌릴 병력이 있었던 것이다. 바보 같은 짓이다. 웅크리고 있었어야 그나마 버틸 수 있었을 텐데.


"내 사정이 다급해 확실치는 않지만, 내 성채가 공격을 받을 때 무리가 나뉘어 알 카락으로 갔어. 저 멀리 밤새 불이 환하게 켜져 대낮 같더군. 거기로 가는 건 자살행위야."


"그러면···. 알폰소. 어디로 간단 말인가?"


"한군데밖에 없지 않나? 우리들의 왕국, 우리들의 성도."


쫓겨갔던 무슬림 기병들이 다시 수를 채워 멀리서 다가오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마부는 기사들의 대화에 더이상 시간을 빼앗기기 싫다는 듯이 고삐를 후려쳤고 마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알폰소는 추격병들을 맞으러 다시 뒤편으로 말을 몰아갔다. 제레미와 다른 기사들도 말머리를 맞추며 멈춰섰다.


"아말릭이 예루살렘 경비대장인데 별로 믿을만한 사람은 아니야. 레널드의 동생이니 비슷비슷하지. 차라리. 아크레나 가보는 게 어떨까?"


"너무 멀어. 제레미. 그리고 티베리아스에 가깝잖아. 살라흐앗딘의 군대가 며칠 내로 떨굴걸?"


"그렇네. 이러다가 바다로 밀려나 빠져 죽는 게 아닐까?"


이렇게 두런두런 말을 나누던 사내들은 이십 명이 넘는 무슬림 기병들을 계속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오자, 알폰소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더니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가운데 다섯은 내 거야."


그 모습을 본 제레미도 박차를 가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



확실히 진중은 잔치 분위기다. 성전에 나섰다고 모두 술은 금하고 있지만, 이맘들이 보지 않는 곳에선 몰래 술잔을 나누고 있을 것이다.


살라흐앗딘의 천막은 경비가 대단하다. 천막 앞에는 무장한 병사가 넷이 서 있다. 충성심 강한 쿠르드족이다. 평소 무슬림 세계에서 쿠르드족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 하나가 술탄에 올랐으니 얼마나 영웅이겠는가?


그들은 이런 잔치 분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차분히 경계를 서고 있었다.


"하아···."


샤아는 한숨을 내쉬고는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봐도 좋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 예전처럼 잃을 게 없을 때는 지나쳐가다가 술탄의 가슴에 단검을 꽂고는 사로잡혀 죽었겠지만, 지금은 목숨을 가볍게 버릴 수 없었다.


샤아는 갑자기 성난 목소리에 우물쭈물하다 산으로 달려간 덕윤이의 얼굴이 생각 나버렸다.


그러니, 살아야겠다. 잘 처리하고 꼭 살아남아야겠다. 그렇게 다짐하고는 다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나 눈치채이지 않을까 봐 아주 잠깐 짐을 들고 스쳐 지나가며 곁눈으로 살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길을 찾았다.


몇 명의 맘루크가 음식을 여러 쟁반에 나눠 들고 들어섰다. 쿠르드 경비병과 눈인사를 하는 걸 보니 구면이다. 그러니 저쪽에 섞여들어 가는 건 포기.


다시 어깨에 짊어졌던 짐을 내려놓고 그 위에 주저앉아 쉬었다. 한참을 쉬다가 다시 짐을 다른 어깨에 짊어지고 지나쳤다. 머리칼을 숨기는 터번도 다른 색깔로 바꾼 후에 말이다.


그때 흙먼지를 뒤집어쓴 사내 하나가 급히 말을 몰고 술탄의 천막 앞에 서더니 부리나케 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내는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목소리로 고하듯이 외쳤다.


-티베리아스의 전황입니다.-


전선에 뿌려진 수많은 전령. 시시각각 변하는 전황을 알려주는 술탄의 눈과 귀들. 이들은 특유의 검은색 옷에 가슴에는 강철로 된 목걸이를 걸치고 있다. 경비병들도 그들을 막지는 않는다.



***


술탄에게 티베리아스의 전황을 알린 전령은 다시 천막을 나섰다. 밖에 있던 경비병이 그동안 말의 고삐를 잡아주고 있었다.


"고마워."


"그래, 그쪽은 어떻게 됐어?"


경비병은 궁금한 걸 못 참고 조용하게 물어보았다. 전령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수고했어. 이젠 예루살렘이다. 몇 개 남지 않았어. 이 이교도들을 몰아낼 날들이 말이야."


쿠르드 경비병이 검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커다랗게 웃었다. 경비병의 환한 미소에 전령은 기분이 한껏 좋아져 그간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 것 같았다.


손을 휘휘 젓고는 고삐를 넘겨받아 다시 말을 몰았다. 진을 떠난 지 얼마 안 될 때 인적이 드문 길이 나왔다. 속도를 올리려는 순간,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여자아이가 튀어나왔다. 깜짝 놀라 고삐를 당겼지만, 미처 서지 못한 말이 여자아이를 스쳐 지나가며 살짝 부딪쳐버렸다.


작은 체구의 아이가 부웅 뜨더니 땅에 털썩 떨어져 버렸다.


"으으윽"


놀란 전령은 뛰어내려 아이의 목을 받쳐 들었다. 자그마한 체구. 아직 여자가 되기에는 조금 모자란 아이. 다친 게 아픈지 눈살을 찌푸린 채 자그맣게 신음을 뱉고 있었다.


"괜찮으냐? 갑자기 튀어나와 길을 막으면 어쩌라는 거냐?"


"죄···. 죄송해요. 아버지가 이번 전쟁에 나섰는데, 어머니가 아프세요. 그래서 이리저리 아버지를 찾고 있어요. 어머니가 죽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여기에 우리 편 사람들이 모였다는 얘기에 달려왔는데······."


전령은 얘기를 들어보니 동정이 가기 시작했다. 크나큰 전쟁에 모두 들뜬 마음으로 전쟁터로 향했지만 이런 소녀의 사정같은 것은 삶이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승전보를 전하러 왔던 전령의 마음도 조금은 가라앉았다. 갑자기 고향에 있는 아이와 아내가 생각났다.


"어느 아미르를 따라 왔니? 내가 있는 곳들을 대충 아니까 말해보렴. 여기에 많기는 해도 다 있는 건 아니야."


"어느 아미르냐고요? 사실 저흰 산속에 살아서 잘 모르는데······. 아버지가 가끔 산에서 내려가시면 누구 족장 같은 분한테 일을 받고는 했다고 해서요."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전령은 머리에 손을 올리며 당황했다. 어느 정도 산골이기에? 북쪽인가? 그쪽도 산이 한두 개여야지? 겨우 생각나는 산 이름을 한두 개 입에서 굴리던 전령은 물어보려 눈을 마주쳤다.


번쩍거리는 무언가가 눈앞을 지나쳤다. 목이 따갑다.



***



"좋은 곳으로 가세요. 미안합니다."


잠시 고개를 숙였던 샤아는 전령의 목에서 목걸이를 빼내 목에 걸쳤다. 잠깐 끙끙거리며 시체를 길가 구덩이로 끌어 숨겨버리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돼버렸다.


"다행이다. 검은색 옷은 있으니 말이야."


머리를 빙글빙글 말아 정수리에 올린 후에 터번을 천천히 감기 시작했다.


크게 숨을 들이켠 샤아는 그 난리 동안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던 말이 귀엽다는 듯이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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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 #13. 낙성(落城) 6-2 > +14 18.08.07 3,162 76 9쪽
153 < #13. 낙성(落城) 6-1 > +20 18.08.06 2,929 72 10쪽
152 < #13. 낙성(落城) 5-2 > +26 18.08.05 2,910 78 9쪽
151 < #13. 낙성(落城) 5-1 > +12 18.08.04 2,877 81 10쪽
150 < #13. 낙성(落城) 4-2 > +10 18.08.03 2,842 86 9쪽
149 < #13. 낙성(落城) 4-1 > +14 18.08.02 2,988 74 9쪽
148 < #13. 낙성(落城) 3-2 > +28 18.07.31 2,957 71 9쪽
147 < #13. 낙성(落城) 3-1 > +26 18.07.30 3,038 69 8쪽
146 < #13. 낙성(落城) 2-2 > +9 18.07.29 2,971 78 8쪽
145 < #13. 낙성(落城) 2-1 > +12 18.07.28 2,951 74 8쪽
» < #13. 낙성(落城) 1-2 > +10 18.07.27 3,057 78 9쪽
143 < #13. 낙성(落城) 1-1 > +10 18.07.26 3,149 67 9쪽
142 < #12. 하틴 4-2> +14 18.07.24 3,197 68 9쪽
141 < #12. 하틴 4-1 > +14 18.07.23 3,154 74 9쪽
140 < #12. 하틴 3-2 > +13 18.07.22 3,364 75 9쪽
139 < #12. 하틴 3-1 > +8 18.07.21 3,248 82 9쪽
138 < #12. 하틴 2-2 > +8 18.07.20 3,333 89 10쪽
137 < #12. 하틴 2-1 > +17 18.07.19 3,388 83 9쪽
136 < #12. 하틴 1-2 > +14 18.07.17 3,621 82 10쪽
135 < #12. 하틴 1-1 > +4 18.07.16 3,517 84 9쪽
134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3-2 > +18 18.07.15 3,675 96 12쪽
133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3-1 > +12 18.07.14 3,480 89 8쪽
132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2-2 > +6 18.07.14 3,483 92 8쪽
131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2-1 > +16 18.07.13 3,471 89 10쪽
130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1-2 > +14 18.07.12 3,644 99 10쪽
129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1-1 > +32 18.07.10 3,744 107 10쪽
128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3-2 > +10 18.07.09 3,552 92 8쪽
127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3-1 > +19 18.07.08 3,636 105 9쪽
126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2-2 > +16 18.07.08 3,577 94 9쪽
125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2-1 > +13 18.07.07 3,636 9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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