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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명덕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악당이 아니다 빌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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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명덕
작품등록일 :
2022.01.27 18:14
최근연재일 :
2023.02.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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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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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92 세상에사 가장 든든한 벽

DUMMY

멀어지는 십여 기의 말을 바라보며 그라리스 백작의 말을 떠올리는 로즈의 표정이 굳어있었다.


-좋아. 허락한다. 나 또한 케인이 처한 상황에 대해 보고받았다. 블러드 문의 일부 병력이 먼저 움직일 수 있도록 허락한다. 하지만 로즈 남작은 안 돼. 이제는 단순히 길드장이 아닌 한 지역의 영주이며 군의 간부임을 잊지 말도록-


모두 맞는 말이었기에 그저 멀어지는 자신의 동료들을 바라 볼 뿐이었다.


-쏴아아아아-

칠흑처럼 어두운 밤에 거친 빗방울이 나뭇잎을 때리며 세상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이어졌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팔과 다리들, 주인 없이 흩어져있는 머리들, 숲 안을 가득 채운 시체들이 만든 언덕, 빗물을 따라 흐르면서도 제 색을 잃지 않는 붉은 피,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생사를 함께 넘었던 몸통을 잃어버린 동료의 머리 그리고 피처럼 붉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서있는 마왕.


-아아악. 아아아악-

주저앉아 목이 찢어져 비명과 함께 튀어나오지만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렇게 바라보던 마왕이 천천히 몸을 돌려 멀어져간다.


-아아아. 살았다. 히히히히. 난 살았다. 흐흐흐 마왕에게서 살아남았..-

정수리를 뚫고 나온 대지의 창에 부르르 몸을 떨던 병사가 곧 움직임을 멈췄다.


“하아아아.. 하아아아..”

몸이 천근처럼 무겁다.

-쏴아아아아-


“씨발.. ”

끊임없이 덤벼드는 병사들의 고함 소리와 비명 소리 그리고 거칠게 내리는 빗소리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온다. 비틀거리며 힘겹게 걸음을 옮긴다.


-머..멈춰라-

흔들리는 몸을 가누고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


-마..맞군. 역시 잘못본 것이 아니었어. 네놈 척이라고 했었나-

더글라스 백작 그가 온몸에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머리가 산발이 된 채 두 명의 기사와 함께 다가왔다.


-예를 갖춰라. 더글라스 백작님이시다-

“......”

-이놈, 어서 예를 갖추지 못할까-

검을 겨눈 기사가 작게 소리친다.


“......려”

-뭐라고 하는..-

-그만. 네가 싸우는 모습을 봤다. 나를 위해 앞장 서 길을 뚫어라-

“..... 울려”

-이노옴. 백작니ㅁ..-


사선으로 머리가 잘린 기사가 힘없이 쓰러지고 검을 뽑아들던 나머지 기사의 목이 바닥을 뒹군다.


“머리.. 울리니까 소리 지르지 말라고 이 개새끼들아”

광기에 물든 붉은 눈이 바닥을 기며 도망치는 백작을 향했다.


-철벅 철벅-

빗소리를 뚫고 다시 한 번 비명 소리가 이어졌다.


밤새 지겹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언제 그랬나는 듯이 해가 떴다. 비를 흠뻑 머금은 나무들과 풀들이 제 색깔을 뽐내며 세상에 푸름을 더하고 있었다. 숲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십여 명의 인원들이 굳어진 표정으로 숲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우리가 직접 들어가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기다려. 녀석이라면 분명히 신호를 줄 거야-

-하지만..-


손을 들어 쟌을 막은 스미스가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쟌은 모른다. 저 검은 갑옷을 입은 사내가 어떤 심정으로 숲을 지켜보고 있는지를.


-콰아앙-

멀리서 폭음이 일어나고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검은 사내의 눈이 날카롭게 번쩍였다.


-움직인다-

언덕 위의 신형이 빠르게 폭음이 일어난 곳으로 향했다.


“하아아아악.. 하악..쿨럭..꺼어어어”

-씨발, 독한 새끼-


갑옷 사이로 새어나오는 피가 바닥을 적시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검에 의지하며 힘겹게 고개를 들고 있는 크로우를 바라보며 한 사내가 씹어 먹을 듯이 내뱉었다.


-제..제르코프. 여기서 그만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더 이상 저 사람을 건들면 안 될 것 같아-

-무슨 개소리야. 저 새끼한테 죽은 길드원들이 몇 인줄 알아? 자그마치 스물 셋이다. 그 중 절반 이상이 두 번씩 죽어서 이틀 동안 접속을 못한다고. 그런데 여기서 멈추라고?-

-나..나도 알아. 그래서 더 그러는 거야. 우리뿐만이 아니라고. 도대체 몇 명이 죽었는지도 몰라. 그런데 지금 저 사람을 쫓는 건 우리뿐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해? 모두 저 사람 아니 케인을 두려워하는 거라고. 거기다 블러드 문과도 밀접한 관계야. 나중에 저들이 길드를 공격하면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을 거야. 네가 감당할 수 있겠어?-


뿌드득...

이가 갈렸다. 여인의 말이 맞다는 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자존심을 접고 물러나야 할 때였지만 그 자존심이 그의 발걸음을 묶고 있었다. 스무 명이 넘는 길드의 최정예들이 모두 눈앞의 사내에게 당했다. 그것도 쫓기고 쫓겨 무너지기 직전의 사내에게..


-좆 까. 이대로는 못 끝내-

-제르..-

-한 마디만 더 꺼내면 너부터 죽인다-


사내의 검이 여인의 목을 향하자 머리를 감싼 여인이 뒤로 물러선다.


-너는 반드시 죽인다-

폭풍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몸이 휘청거렸다. 사내의 검이 휘두르는 방향대로 힘없이 바닥을 굴렀다.


-저기 있다. 놈을 찾았다-


-삐이이이이-

호각 소리와 함께 수많은 병사들이 크로우를 향해 달려왔다.


-콰아앙-


-모두 물러서. 저놈은 나 제르코프가 잡는다. 더 다가오는 놈은 내 손에 죽는다-

말을 탄 기사가 병사들을 뚫고 다가와 제르코프를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모두 대기하라. 이러면 되겠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크로우를 향해 다가간다. 검에 의지한 채 비틀거리던 몸이 앞으로 무너져 내린다.


-반항해 봐. 넌 반드시 내 손에..컥-

목을 감싸 쥔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온다. 무너져 내리던 몸이 다시 흔들리며 목을 감싸 쥔 손과 함께 잘린 목이 바닥을 구른다.


-언제..?-

굳은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던 기사의 손이 다시 천천히 올라갔다.


-모두..-

“흐으으.. 모두 덤벼라. 다 죽여..주마”


살을 에는 듯한 살기와 피처럼 붉은 눈이 병사들을 향하자 주춤거리며 물러난다. 겁에 질린 말이 앞발을 들어 올리며 몸을 흔들어 댄다. 그저 서있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자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다급한 기사의 명령이 떨어졌다.


-모두 공겨..-


-퍽-

이마 한 가운데 마력의 화살이 박힌 기사의 몸이 그대로 안장에서 튕겨나갔다.


언덕 위에 선 검은 갑옷을 입은 자가 손을 들어 모두를 세웠다. 두 명의 플레이어 앞에 선 척의 모습이 너무나도 위태로웠다.


(어째서 빨리 돕지 않는 거지?)


-저기까지는 녀석의 싸움이다-

검은 갑옷의 말에 누가 하나 토를 달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쟌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사내의 눈을 보고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분노하고 있는 자는 검은 갑옷의 사내라는 것을.


흐릿한 시야 속에서 기사가 말에서 튕겨나가고 주춤거리는 병사들 사이로 십여 명의 맹수들이 뛰어들었다. 스르륵 눈이 감긴다.


“힘들어....”


-툭-

무너지는 몸이 딱딱한 갑옷에 막혔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듬직하고 편안한 갑옷이었다.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베인다.


“왔..구나. 칼”

-그래. 고생했다-

“보고..싶었다. 칼”

성벽보다 든든한 팔이 가만히 감싸 안았다.


-고생했어-

작고 여린 손이 얼굴을 어루만진다.


-알.. 내 친구-

-그래. 우리의 친구-

부드러운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보고.. 싶었..어. 내 친구들-

여린 두 팔이 둘을 감싸 안았다.


비명 소리가 멈추고 일행들이 다가와 크로우의 몰골에 입을 틀어막았다.


-이..이.. 미친..새끼.. 이틀 동안 이..러고 싸운 거야?-

울먹거리던 스미스가 크로우를 엎었다. 숲을 벗어난 일행이 요하스로부터 빠르게 멀어져갔다.


-안전지대에 입장하였습니다. 로그 아웃이 가능합니다


캡슐의 뚜껑이 열리고 후끈한 열기가 순식간에 방을 채웠다.


-쿵-

“허억.. 허억..”

비틀거리며 캡슐 밖으로 떨어진 고명석이 마르고 거친 숨을 내쉬며 흔들리는 눈동자로 어둑해진 창밖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챙 챙 챙, 아아아악..-


“씨바알..”

접속을 해제하고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소리에 힘겹게 몸을 세우고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벌컥 벌컥 벌컥.. 커억..-

한번에 커다란 생수통의 물을 반이 넘게 마시다 목구멍에 물이 걸리며 토해내고 다시 물을 들이킨다.


-쏴아아아아-

샤워기에 떨어지는 냉수에 그대로 몸을 맞기고 다 마셔버린 생수 통을 던져버린다.


“하아아.. 하아아..”

갈증에 메말랐던 몸이 조금씩 숨소리가 안정적으로 변해간다. 문득 들어 올린 고개 너머로 낮선 남자가 거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나라고?”

차디차고 날카로운 시선의 사내가 자신을 마주보고 있었다. 만 이틀 동안 쉬지 못하고 이루어진 전투. 끊이지 않는 병장기 소음, 목을 찢는 듯한 비명소리, 세상을 붉게 물들인 피 그 싸움에서 살아남은 잔혹한 사내가 지금 눈앞에서 그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휘청..

머리가 띵 울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기듯이 욕실 밖으로 나와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우겨넣는다.


“하아..”

스르륵 눈이 감긴다. 물에 젖은 옷의 불편함도 감기는 눈을 막지 못했다. 그렇게 벽에 기댄 채로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끄으으응..”

앓는 듯한 신음소리와 함께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으드드득-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며 한참을 스트레칭을 한 후에야 조금은 몸이 부드러워졌다. 창문 밖에 깔린 짙은 어둠이 이미 밤이 한참 깊었음을 알려줬다.


“잠깐 졸았나?”

배속에서 천둥이 친다. 따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졌다.


-쩌저저적-


“이런 씨팔”

욕이 절로 나온다. 물에 젖은 옷을 입고 잠들어서 말라 버린 속옷이 살에 달라붙어 듣기 거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몇 시간 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옷이 이렇게 말라버린다고?


핸드폰을 들어 날짜를 확인하고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만 하루를 넘게 잠들었었다니. 속옷의 달라붙는 찝찝함을 못 이기고 샤워를 마치고 나가며 쌓여 있는 빨래더미를 보니 한숨이 새어나왔다.


“씨발, 빨래 언제 하지?”


테이블 위에 올라온 특대 순대국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모습에 꿀꺽 침이 삼켜진다. 따뜻한 국물 한 숟가락이 목구멍을 통해 들어가자 지난 이틀 동안의 고생과 피로가 한 번에 사라진다.


“허~~”

입에서 절로 나오는 감탄사에 순대 위에 새우젓을 올리고 한 입 물자 그 특유의 식감이 행복하게 만든다.


-별 일 없지?-

“네. 별 일 없죠. 이모님도 잘 지내셨죠?”

-그럼. 별 일 없었으면 됐고. 천천히 먹어. 모자란 거 있으면 얘기 하고-


정신없이 순대국을 흡입했다. 로그 아웃을 한지 벌써 만 하루가 지났고 어나더 월드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니 후딱 먹고 접속을 해야겠다. 그리고 다시 싸움이 벌어지면 그때는...


(다 죽여버린다)

마음을 다잡은 고명석이 다시 숟가락을 들어 올릴

때였다.


-탁-

소주 한 병이 테이블 위로 올라온다.


-한 잔 받아-

“어? 이모 저 안 시켰는데요?”

-그냥 주는 거니까 한 잔 받아-

얼떨결에 소주를 한 잔 받아들고 계면쩍게 말했다.


“근데 저 일이 있어서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요”

-정말 무슨 일 없는 거 맞아?-

“예?”

-들어올 때부터 평소와 다르다 싶었는데 방금 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빛이 너무 살벌해서 그래. 무슨 일 없는 거 맞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화장실에서 거울 속에서 서늘하게 웃고 있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죄송해요. 일이 있는 건 아닌데 갑자기 안 좋은 일이 생각났었어요”

-나한테 이야기하기는 좀 그럴 테고 친구들 있잖아? 친구들한테라도 이야기해서 속에 맺힌 것 좀 풀어-

“네. 감사합니다. 이모. 주신 거 한 잔은 마실게요”


소주 한 잔에 앙금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사람 사는 게 뭐 있나 따뜻한 말 한 마디와 작은 관심이면 됐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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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 278 정리하다 23.02.03 49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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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276 맞짱? 23.02.01 51 1 13쪽
275 275 사고뭉치 23.01.31 48 1 12쪽
274 274 욕심은 불만을 잠재운다 23.01.30 52 1 12쪽
273 273 로즈 아르폰 백작 23.01.27 50 1 13쪽
272 272 요새를 파세요 23.01.26 54 1 12쪽
271 271 영혼석 그리고 수월(水月) 23.01.25 56 1 12쪽
270 270 서로간의 사정(2) 23.01.24 57 1 11쪽
269 269 서로간의 사정 23.01.23 58 1 11쪽
268 268 인마족 23.01.20 59 1 11쪽
267 267 하층부의 주민들 23.01.19 57 1 11쪽
266 266 역마살 23.01.18 58 1 14쪽
265 265 다사다난(多事多難) 23.01.17 60 1 12쪽
264 264 몰려드는 사람들 23.01.16 66 1 12쪽
263 263 회상2 23.01.13 72 1 14쪽
262 262 요새 방어전 23.01.12 68 1 11쪽
261 261 회상 23.01.11 71 1 12쪽
260 260 광산 발굴 23.01.10 77 1 12쪽
259 259 어? 그리폰이다 23.01.09 7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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