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 소설은 픽션입니다. 실존하는 지명, 단체, 인물, 사건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0. 프롤로그
[『그랜드 퀘스트 : 라그나로크』를 실패했습니다.]
[불의 거인이 세계에 불의 씨앗을 뿌립니다.]
[1시간 후, 이 세계는 멸망합니다.]
세계수, 〈위그드라실〉이 완전히 불에 타버렸다.
세계를 지탱하던 거대한 나무가 불타 죽어 쓰러지자, 알람이 울렸다.
【01:00:00】
【00:59:59】
내 앞에 나타난 알림창에는 그런 글귀가 써져있었다.
멸망으로의 카운트다운.
그런 의미였다.
그러자 모든 것이 불길에 휩싸였다.
63빌딩 크기 쯤 되어 보이는 〈불의 거인〉이 손을 들더니, 불꽃놀이처럼 그 손끝에서 거대한 불똥들이 흩어져갔다.
마치 세계의 멸망을 축복하듯이.
“······끝났네.”
최상위 랭커들이 최후의 전직, 《강신(降神)》 까지 하면서 불의 거인에게 맞서 싸웠으나 모두 죽고 처참히 패배했다.
불의 거인, 〈수르트〉. 이 최종보스는 너무나도 강력했다.
이세계와 차원 통합된 지 10년.
10년 전, 〈차원의 벽〉이 무너져 우리 세계와 이세계는 하나의 우주로 통합되었다.
그렇게 이세계와 물리좌표가 겹치면서 세계는 그야말로 대격변(大激變)을 겪었다.
강산이 뒤바뀌고, 환경이 완전 다른 세계로 변해버렸다.
그 탓에 수많은 사람들이 어이없게도 목숨을 잃었다.
대격변 직후, 내 아버지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이세계의 나무와 융화되어 돌아가셨고, 여동생은 이세계에서 떨어진 낙석에 깔려 죽어버렸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어머니는 잘 살아계셨지만, 그마저도 몇 년 전 목숨을 잃으셨다. 그리고 그 밖에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잃고 말았다.
난 비겁하게도 홀로 살아남았다.
모두 이 세상에 없는데, 나 홀로 이 땅에 서있었다.
‘뭐, 이제 곧 같이 따라가겠지만······.’
이세계의 법칙이 융화된 탓인지, 대격변 직후 전 인류는 각성하여 초능력이 생겨났고, 몬스터가 출몰했다.
마치 하나의 RPG 게임처럼.
용기 있는 사람들은 몬스터들을 퇴치하기 위해 사냥에 나섰고, 우리는 그들을 ‘헌터’라 불렀다.
그 중 난 D급 헌터.
직업은 로그.
뭐하나 특출 난 게 없는 도망치기의 달인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쫄보인 나는 도망치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지금도 별 차이는 없네.’
그런 나는 예비군으로서 일을 하며 종종 등급이 낮은 의뢰를 겸해서 돈을 벌었다.
보급 퀘스트, 전달 퀘스트 같이 마을 사이를 빠르게 이동, 은신할 수 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의뢰였다.
그렇게 돈을 벌면서 유튜브(Utube)의 공략파 영상들을 보면서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게 삶의 낙이었다.
그러다 마지막 가족을 잃고, 나는 결심했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죽어나가야 했는지.
이 세계의 끝을 보겠노라고.
그런 나는 공략파에 끼어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F급에서 D급으로 상승하고.
마지막 그랜드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등급 상관없이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헌터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내 두 다리로 여기 중국까지 왔건만···.
“이게 내가 보고 싶었던 거였나.”
결국 다 끝나버리고 말았다.
후방 보조이긴 했지만, 은신과 도망치는 기술로 홀로 살아남은 건 덤이고······.
“근데 놈은 어디로 간 거지?”
불의 거인은 불꽃놀이를 끝냈는지 화염에 집어삼켜지더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스마트폰을 꺼내 들여다봤다.
다행히도 아직 끊기지 않은 통신망이 있었는지 인터넷에 연결되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헤드라인들.
- [속보] 그랜드 퀘스트, 라그나로크 실패
- [속보] 불꽃의 거인, 브라질에 출현
- [속보] 거대한 유성우 경보, 빨리 방공호로 대피 요망.
놈은 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순간이동》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간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콰광! 펑! 퍼버벙!
저 멀리서 불의 거인의 씨앗들이 떨어진 소리가 들렸다.
그러곤 연결이 끊겨버렸다.
대격변 속에서 인류가 다시 구축해낸 통신망이 아까 공격에 전소되었나보다.
“제길.”
〈수르트〉가 쏘아올린 분화들이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폭음들.
난 그저 불타오르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열심히 도망치고 있었다.
다 끝나버렸는데, 아직 삶에 미련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다시 한 번만 기회가 있었으면, 좋을 텐데.
처음부터 모두 힘을 합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처음부터 강해졌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들을 하며 쉬지 않고 도망쳤다.
드드드드드.
이어 지진이 일어나고,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달리고, 또 달렸다.
거대한 세계수의 뿌리라면 지반이 단단할 것이니 세계수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불타오르는 세계수 근처까지 오자 갈라짐이 멈추고, 지반이 그나마 덜 흔들렸다.
그때였다.
“윽!”
쓰러진 세계수의 밑동 한 구석에서 푸른빛이 쏟아져 나왔다.
“포, 포털인가?”
위상이 왜곡되어 어디론가 이어진 게이트 같았다.
“신화에서도 〈위그드라실〉은 온 우주를 관통하는 나무라 했어. 그럼, 이 게이트는 다른 세계와 연결이라도 되어있는 걸까?”
망설였다.
어디로 이어지는 지도 모르는 게이트로 선뜻 들어가기 무서웠다.
그 순간 불타는 세계수의 거대한 가지가 부러져 내 뒤로 떨어졌다.
“!”
퇴로가 막혔다.
나에게 남은 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뿐이었다.
이대로 통구이가 되어 죽던지, 아니면 이 정체불명의 포탈로 뛰어들 것인지.
‘죽기보다 더 하겠어?’
난 자그마한 용기를 내어 그 빛을 향해 뛰어들었다.
“으아아아아!”
포탈에 들어서자 시야가 어두워지고, 그 어둠속에서 알림창들이 보였다.
[조건을 충족해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업적 : 나 다시 돌아갈래!
-조건 : 세계수 밑동 자리에 생겨난 포털로 뛰어들 것.
.
.
[‘나 다시 돌아갈래!’ 업적 달성 보상으로 유니크 스킬을 획득합니다.]
[유니크 스킬 : 스킬 초기화]
.
.
‘유니크 스킬? 스킬 초기화?’
내 눈 앞에 그런 알림창들이 나타나고 사라지자 어느새 정신이 돌아왔다.
새까맸던 시야가 조금씩 빛이 들어오고 선명해져 갔다.
“야······!”
낯익은 목소리, 누구였더라?
“야, 강찬!”
내 어께에 손이 올려지자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난, 그 놀라운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너 어디 안 좋냐? 갑자기 멍 때리고 그래?”
내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죽었던 내 오랜 친구, 황인성이었다.
“뭐야, 그 표정은? 무슨 귀신이라도 봤냐?”
나, 아무래도 10년 전으로 회귀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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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리메이크 작이라 전개가 아예 달라지는 10편까지 1시간 마다 업로드 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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