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행사 준비는 힘들어.
미국의 전권공사로 푸트가 온다는 소식을 일본 영사관을 통해 전해 들었다.
봉준은 조약을 2년 앞당겼기 때문에 혹시 다른 사람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역사대로 푸트가 온다는 소식에 그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그림이 그려보았다.
실제 역사에서 푸트는 조선에 도착하기 전 나가사키를 경유할 때, 일본과 청국의 관리들로부터 조선에 대한 비방을 들었다.
미국과 수교는 맺되 친해지면 안 된다는 일본과 청국의 정치적 목표 때문이었다.
해서 이 비방이 푸트의 머릿속에 나쁜 선입견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이 선입견은 제물포에 도착하는 순간, 사실이 되고 말았다.
첫 번째는 제물포의 허접한 접안시절이 그러했다. 백번 양보해 개화가 안 된 나라이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통역이라고 붙은 사람의 영어실력이 일본에서 고작 6개월 공부한 수준이니 무슨 말이 통했을까...
이 통역은 그저 구색이었다. 일본인 통역관이 붙어 3자 통역을 주로 했기 때문에 원하는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러다보니 일본과 청국 관리들의 비방이 사실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조선에 대한 조사를 대충 15일 만에 끝내 버리고 허접한 보고서를 작성해 미국으로 보낸다.
-조선은 아무것도 취할게 없는 척박한 나라다.
이 보고서 한 장으로 미국의 태도가 돌변해 버리고 조선은 그야말로 찬밥 신세가 되어 조미수호통상조약에 근거한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 이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봉준이 19세기로 오자마자 제일 먼저 공들여 한 일이 바로 미국을 조선에 끌어들이는 거였는데 이 계획을 폭망하게 둘 순 없었다.
해서 지금부터 푸트의 선입견을 완전히 박살낼 환영식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우참령. 자넨 지금 즉시 무위영과 장어영으로 가서 키가 5척 반이 넘는 장정 100명을 선발해 오게. 물론 우리 교련병대에서 4주 군사교육을 받은 사람이 우선이네.”
“대장님. 갑자기 키 큰 병사들을 모아다 어디에 쓰시려는 겁니까?”
봉준의 뜬금없는 명령에 우범선이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이유를 물어오고 있었다.
“자네 혹시 의장대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의장대요? 그게 뭡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 조선의 첫인상이네.”
의장대(儀仗隊)는 국가 경축 행사나 국빈 방문 행사에서 기수와 의장사열 등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조직된 부대다.
미래 사회에서야 이것이 일반적인 국빈방문 행사의례지만 19세기엔 그렇지가 않았다.
만약 푸트공사가 제물포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조선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는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일본과 청나라로부터 미개하고 게으른 국가라고 들었던 조선에 이런 멋진 의장대가 있다는 사실에 입이 떡하고 벌어질 거였다.
이처럼 푸트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기 위해선 무위영과 장어영 병사들 중에서 키가 170센티 이상 되는 사람들을 모아 특별훈련을 시킬 예정이었다.
뭐 당연히 180센티면 더 폼이 나겠지만 여긴 19세기 조선이었다. 그나마 조선 사람들이 일본이나 청나라 사람들에 비해 키가 큰 탓에 170센티가 넘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 거지,
이 시절 성인 남자 평균키가 150센티 정도인 일본과 이것보다 고작 5센티 더 큰 청나라에선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이들을 모아놓고 특별훈련을 시킨다고 해도 미래의 의장대처럼 총을 돌리고, 던지고, 주고받는식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각 잡힌 ‘16개 동작’과 절도 있는 사열 정도였다.
하지만 이 정도 퍼포먼스만 보여도 푸트의 마음에 강렬한 첫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우참령. 혹시 우리 교련병대 병사 중에 노래 잘 하는 사람 아나? 사관생도라도 상관없네.”
“노래요? 갑자기요? 대체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합창대를 만들 생각이네?”
“네에~~?”
우범선은 의장대에 이어 합창대까지 만든다고 하니 그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합창이란 말도 생소하거니와 갑자기 떼를 지어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니 어찌 안 그럴까...
“대장님. 합창대를 만들어서 창부타령이나 새타령이라도 부르시려는 겁니까?”
“허허. 이 사람. 미리견 공사가 이런 노래를 알아듣기나 하겠는가. 난 이 합창대를 가지고 미리견 국가를 부를 걸세.”
“국가요? 그건 또 무엇입니까?”
“한 나라를 상징하는 노래일세.”
19세기 조선엔 국가(國歌)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아니 이건 조선뿐 아니라 청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미국엔 이 당시 국가가 있었다.
“대장님 그래서 미리견 국가의 이름이 뭡니까?”
“Hail Columbia... 쉽게 말해 ‘미리견 만세’란 말이네.”
미국은 1931년 까지 ‘Hail Columbia’라는 국가를 사용했다. 미래의 우리가 알고 있는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이후에 바뀐 노래였다.
해서 1881년에 사는 푸트에게 미국 국가는 오직 ‘하일 콜럼비아’ 밖에 없었다.
푸트는 이 노래를 듣고 반드시 감동을 먹어야 한다. 아니 감동(感動)을 넘어 감격(感激)해야 한다.
푸트공사가 제물포에 발을 들여놓는 날, 이곳에서 미국 국가를 듣게 된다면 단언컨대 벅찬 감동을 받을게 분명했다.
예나 지금이나 미래나 그리고 애나 어른이나, 관리나 국민이나, 외국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 하다못해 미래에 동남아 여행가서 태극기만 봐도 반가운 법인데...
1881년에 미국인 푸트는 말할 것도 없었다.
“대장님. 노래라면 아무래도 김부교한테 물어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그 친구가 병사들을 제일 잘 아니 분명히 노래 잘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을 겁니다.”
김부교는 김수복의 계급이었다. 봉준이 본격적으로 사관생도교육과 4주 기초군사훈련을 시작하면서부터 교련병대 병사들에게도 모두 계급을 부여했다.
짬밥에 따라 참교와 부교 두 개의 계급을 달아줬다. 참교는 미래의 군대계급으로 따지면 하사였고 부교는 중사였다.
김수복은 10년을 복무한 사람이라 부교를 달았고 당연히 선임이었다.
뭐 살짝 상사계급인 정교를 달아 줄 생각도 있었지만 나중에 승진이란 짜릿한 기분으로 맛보게 해주기 위한 작은 배려였다.
“어서 가서 김부교를 데려오게.”
우범선의 예상대로 김수복은 병사와 생도들 중에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이 시대 군대도 휴식시간에 장기자랑은 빼놓을 수 없는 레파토리라 선임부사관인 김수복이 모를리가 없었다.
그리고 김수복이 모아온 병사 중에 꽤 대단한 실력자가 있었다. 바로 참교 계급의 박풍년이었다.
“박참교. 자네가 노래를 그렇게 잘한다던데 맞는가?”
“네. 그냥 예전에 소리를 좀 배운 적이 있습니다.”
“소리를 배웠다고? 누구한테서 말인가?”
“신가 재효라는 분 밑에서 잠시 소리공부를 하였습니다.”
“신재효...? 혹시...?”
봉준은 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조선 판소리의 대가. 그는 미래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알고 있는 흥부가니, 춘향가니, 적벽가니 하는 판소리를 12마당으로 정리해 보급시킨 조선 판소리의 아버지였다.
여기다 1868년 경복궁 재건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낙성공연에서 성조가(成造歌)와 방아타령 등의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해 제자들에게 부르게 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원군으로부터 종3품 명예 당상관 품계까지 받는, 조선의 바흐나 헨델 같은 음악가였다.
이런 인간문화재급 사람한테서 노래를 배웠다니... 박풍년의 실력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 녀석이 왜 노래를 그만뒀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박풍년 역시 군포를 낼 돈이 없어 군대에 끌려온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연은 묻지 않았다. 가난한 예술가의 슬픔... 돈이 웬수였다.
아무튼 박풍년이 합창단에 합류한 이상 게임은 끝났다.
“박참교. 자네가 지금부터 합창단의 대장이다. 잘 부탁한다.”
사실 봉준은 합창단원들에게 어떻게 노래를 가르쳐야 할지 막막했다. 그저 조선의 운명을 위해 군인정신을 발휘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명가수를 만난 이상 무엇이 문제랴...
박풍년 앞에서 ‘하일 콜럼비아’를 직접 한번 불러주었다. 봉준은 이 노래를 역시나 너튜브에서 여러 번 들은적이 있어서 가사와 음절을 알고 있었다.
가사와 음정이 조금은 아리까리 해서 노래가 불안정했지만 박풍년은 역시나 음악천재답게 알아서 보정을 해서 노래를 소화하였다.
“대장님. 미리견 노래의 음계가 조선의 것과는 조금 다른 거 같습니다. 소리가 좀 더 많습니다.”
박풍년은 서양식 7음계를 금방 이해했다. 그리고 금방 따라 불렀다. 너튜브 보다 완벽했다.
봉준은 합창단으로 선발된 인원들에게 영어식 가사 교육만 시킨 뒤 노래 연습은 박풍년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세 번째 준비에 돌입했다. 바로 연주였다.
푸트 환영행사는 일종의 잔치였다. 잔치에 연주 음악이 빠지면 매우 섭섭했다.
봉준은 이 연주 음악을 채우기 위해 김수복을 시켜 한성에서 제일 잘나가는 광대패 악공들 20명을 모았다.
이들에게 미국인 작곡가 스티븐 포스터가 만든 ‘금발의 제니’와 ‘스와니 강’같은 미국 민요 몇 곡을 연주시킬 생각이었다.
더불어 푸트공사는 목사 집안에서 자란 기독교 신자라 찬송가에 익숙할 거 같아서 ‘주님의 놀라운 은총’과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같은 대표적인 기독교 음악도 추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악공들에게 변변한 악보는 물론 청음을 들려줄 만한 장비가 없었다.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음을 전달해야만 했다.
봉준이 악공들 앞에서 차례로 이 노래들을 불러주었다. 다행히 이 곡들은 중고등학교 음악시간이나 크리스마스 행사때마다 들렀던 교회에서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어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
해서 정확하게 부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 봉준만 잘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리. 첫 부분을 한 번만 더 불러주십시오.”
“저는 중간 부분이요.”
“지는 마지막 부분이구만유.”
악공들의 요구가 중구난방 제 각각이었다. 나름의 오케스트라 효과를 내보려고 바이올린 소리와 비슷한 해금 악공 10명과 얼추 오보에 소리를 낼 수 있는 피리와 퉁소 악공을 각각 3명 그리고 조금이나마 클라리넷의 음색과 닮은 대금과 단소 악공을 각각 2명씩 뽑았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악공들을 뽑다 보니 이들이 원하는 포인트가 저마다 달라 요구사항이 끊이질 않는다.
“이보시게들.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내 소리를 잘 들으라니까... 딴 짓 하지 말고.”
처음엔 이렇게 좋은 말로 달래 보았다. 하지만 천성이 자유로운 광대들이라 그런지 이런 합주가 몸에 맞질 않는 모양이었다.
저잣거리에서 재즈풍으로 애드립 치면서 자유롭게 놀던 이들에게 규칙에 맞춰 합주를 하라고 하니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이들을 과연 어찌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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