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패신응
조광윤은 북방에 요나라를 대비한 수비선을 확립하기 위해 병력을 북으로 보냈다. 수비에 용이한 성들을 점령한 후 수비체계를 확립하여 요나라의 침공을 막으며 강남부터 통일하려는 계획이었다.
항응은 흑풍혈로의 대장으로 출정하게 되었다. 항응이 정식으로 임관하는 것을 거절하자 조광윤은 어전대도무사(御前帶刀武師)라는 호칭을 만들어 항응에게 수여했다. 황제인 조광윤앞에서 무기를 휴대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항응은 패왕창을 무기로 사용하고 불패기를 옥조에게 맡겼다. 흑풍혈로가 출전할 때면 항상 옥조가 불패기를 움켜쥐고 항응의 머리위에서 날아다녔다. 전쟁이 길어질 수록 불패신응의 위명이 요나라 군사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다.
옥조를 탐낸 요나라 황제는 삼만의 기병을 동원했다. 요나라 장수인 요무는 전투도중 일부러 패한척 하며 병사들을 후퇴시켰다. 조광의는 전공을 탐해 수하들을 이끌고 깊숙히 쫓아 들어갔다. 그러다 요나라의 매복에 걸려 산위로 도망가 포위당했다.
요나라의 군대는 일부러 구원을 요청하러 떠난 송나라 병사들을 막지 않았다. 요나라의 삼만 기병은 십리 떨어진 곳에 주둔한 채 자신들의 정체를 송나라 군대에게 들키지 않았다. 조광의가 유인매복에 걸려 포위당했다는 말에 항응은 급히 흑풍혈로를 이끌고 출발했다.
옥조가 전장에 뜨자 요나라 병사들은 불패신응이 왔다고 싸우기도 전에 겁을 먹었다. 요나라 장수는 도망가는 자는 가족들까지 참수를 한다며 으름장을 놓아 겨우 진형이 흐트러지지 않게 유지했다. 삼만의 기마병은 옥조를 확인하자 급히 말에 올라타서 전장으로 합류했다.
항응과 흑풍혈로는 조광의를 포위한 자들을 어렵지 않게 물리치고 길을 텄다. 조광의는 부상을 입은 자들을 먼저 전장에서 이탈하게 하고 자신은 항응과 함께 뒤에 남아 수하들이 안전하게 후퇴하도록 엄호를 하였다. 그때 땅이 울리며 삼만의 기마병이 흑풍혈로를 향해 돌진해왔다.
항응은 기마병의 기세가 만만치 않고 그 숫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보이자 적구의 등에서 내려 앞으로 달렸다. 달리는 속도 그대로 허공에 훌쩍 뛰어오른 항응은 패왕창의 끝을 잡고 몽둥이로 내려치듯 바닥을 내려쳤다.
요나라 기마병들은 말에서 내려 달려오는 항응을 비웃었다. 부딪히기도 전에 항응이 허공에 뛰어오른 후 맨땅을 내려치자 그 비웃음은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항응이 바닥을 내려치자 수백줄기의 내공이 바닥을 통해 선두에 선 수백기의 말들을 공격했다.
항응이 바닥을 내려친 후 선두에 선 수백기의 말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뒤의 일부 기마병들은 놀라서 낙마했다. 항응은 다시 한번 단전에서 내공을 뽑아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항응의 소리는 해남도에서 처단한 해룡의 소리와 닮아 있었다. 내공을 한껏 담은 목소리가 얼굴에 쓴 역린을 투과하며 인간이 낼 수 없는 괴이한 소리로 바뀐 것이다. 소월은 패왕성을 떠나는 항응에게 다른 여자들도 남자보는 눈이 있으니 항상 가면을 착용하고 다니라고 신신당부했다.
항응의 소리에 또 수백의 기마가 쓰러졌다. 그때 적구가 항응을 따라 잡았다. 항응은 적구의 등에 올라탄 후 패왕창을 사방으로 휘둘렀다. 다른 말보다 머리 두개는 더 높은 적구에 올라타서 자루까지 철로 단조한 패왕창을 휘두르자 항응의 주변에는 시체만 늘어났다.
이러한 전투방식에 익숙한 흑풍혈로는 항응이 열어놓은 길을 따라 전력으로 돌진했다. 기마부대끼리 부딪힐 때는 기세가 가장 중요하다. 항응이 선두에서 빠르게 달리며 상대의 기세를 모조리 죽여놓고 흑풍혈로는 그뒤를 따라 기세가 죽은 자들을 처단한다. 이왕의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한번 왕복을 하면 적들은 항복하거나 도망가거나 두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하지만 요나라 기마병들은 숫자를 믿고 있는 것인지 전혀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항응은 상대의 대장기를 살핀후 두발로 적구의 배를 걷어찼다. 신호를 받은 적구는 전력을 다해 상대 대장기가 있는 방향으로 돌진했다.
요나라 장수들이 무리를 지어 항응을 막으려 했으나 전부 일합에 목숨을 잃고 말에서 떨어져 내렸다. 기마대를 이끄는 요나라 장군은 급히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얼마 안되어 적구에게 따라잡혔다. 요나라 장군을 찔러 말아래로 떨어뜨린 항응은 대장기를 낚아챘다.
바닥에 쓰러졌던 대장기가 날아서 항응의 손에 쥐어졌다. 내공을 운기하지 대장기가 불에 타올랐다. 요나라 기마병들은 대장기가 불에 타는 모습을 보고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갔다. 일부는 바닥에 엎드려 투항을 해왔다.
항응과 흑풍혈로의 활약 덕분에 군사요충지를 전부 점령했고 보급지와 보급선도 전부 확보했다. 가끔 전투지역이 너무 멀어 흑풍혈로가 지원할 수 없을때면 옥조에게 불패기를 들려 그곳으로 보냈다. 불패기만 나타나면 요나라 군사들은 흑풍혈로가 온 것으로 오해해 꽁지 빠지게 도망갔다.
북방의 변경을 안정시킨 후 대군은 호호탕탕하게 개봉으로 돌아갔다. 조광윤은 군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논공행상을 진행했다. 항응은 자신의 공을 전부 다른 장수들에게 넘겼다. 조광윤도 항응이 임관에 욕심이 없음을 알기에 자신의 공을 나누어 주는 것을 눈감아 주었다.
그때 무평절도사 주행봉이 죽고 열한살짜리 주보권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초나라가 멸망한 뒤 감히 칭왕을 하는 자가 없어 당나라가 가장 세력이 강한 주행봉을 무평절도사로 임명했다. 형식상으로는 당나라의 신하지만 당나라의 말을 듣지 않고 왕처럼 행동했다.
주행봉이 죽자 무평의 곳곳에서는 반란이 일어났다. 주보권은 송나라에 반란을 평정해 달라고 청했다. 조광윤은 그 청을 받아들여 남평에게 군사가 지나갈 길을 내어주기를 청했다.
눈치가 빠른 고씨들은 곧바로 개봉에 가서 조광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강릉절도사의 직위를 받아갔다. 그전과는 달리 고씨들은 더이상 왕 행세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촉나라의 왕 맹창은 성도로 향하는 길이 험해서 대군이 침범하지 못하리라 확신하며 송나라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했다.
송나라 군대가 남평을 지나 무평으로 들어섰을때는 이미 주보권이 반란을 평정한 후였다. 주보권은 수하 장수들에게 군사를 주어 송나라를 막으라 명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전쟁에 단련된 송나라 군대는 주보권의 군사를 가볍게 처리하고 무평을 점령했다.
남평과 무평을 정리한 후 송나라는 지체없이 촉나라를 향해 진군했다. 항응은 전장에서 다시 합류하기로 하고 검동과 함께 패왕성으로 향했다. 소월과 회포도 풀고 아들인 항득과도 잠시 놀아주었다. 항득은 오랜만에 보는 항응보다 옥조에게 더 흥미를 가졌다. 쩍하면 옥조의 발톱에 잡혀 하늘을 날며 즐거워했다.
며칠간 즐거운 시간을 보낸 항응은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맹창은 송나라를 막기 위해 나름 고심해서 병력을 배치했지만 송나라로 투항한 장수에 의해 모든 배치가 들통났다. 송나라 군대는 촉의 군사배치를 피해 두갈래의 병력이 동시에 성도에 들이닥쳤다.
맹창은 고보욱의 설득에 넘어가 투항을 하고 개봉에 관직을 받으러 갔다. 개봉에 도착해 관직을 받은지 닷새만에 객사해 버렸다. 서연은 타고난 미모 덕분에 조광윤의 첩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맹창이 투항하자 항응은 검동을 데리고 아미산으로 향했다. 복호사에 가서 명경대사에게 인사를 올리기 위해서이다. 혹시라도 기회가 되어 백원과 만나게 되면 어떤 가르침을 받지 않을까 기대도 있었다.
"항시주, 몸속의 기운이 너무 왕성하네. 뭐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이네."
"대사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십년안에 여의주를 얻어 상단전을 열지 못하면 목숨을 잃던지 무공을 잃던지 둘중 하나일 것일세."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합니다. 대사님께서 방향이라도 알려주십시오."
"그대는 어디에 가면 여의주를 구할 수 있는지 알지 않는가?"
"어찌 저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겠습니까.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허허, 그대가 벌써 하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다니 참으로 대견하오. 그 마음을 잃지 않으면 하늘도 굽어 살필 것이네."
항응은 복호사에 며칠 머물다 검동과 함께 패왕성으로 돌아갔다. 패왕성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희소식이 연달아 날아왔다. 오월과 당나라의 왕들이 허리를 숙여 송나라의 신하를 자처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고 남한은 정규병력이 이만도 되지 않는다.
연이은 전투에 군사들이 피로를 호소하자 조광윤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전쟁준비는 소홀히 하지 않고 고보욱에게 배와 식량을 준비하라 일렀다. 고보욱은 우보궐 왕명과 함께 남평과 무평의 군량들과 군선들을 모아 출정준비를 착실히 했다.
남한을 공격할 병력에는 흑풍혈로가 포함되지 않았다. 남한까지 배를 타고 이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응과 검동은 남한을 공격하는 군대에 가담했다. 지금 남한의 왕인 유창이 바로 예전에 검동의 형을 죽인 유계흥인 것이다.
그날 검동이 술에 비상을 너무 많이 타서 술의 색이 변했다. 유계흥은 부친이 자신을 의심해서 제거하려 한다고 생각하고 연단하는 도사를 매통해 단약에 독을 섞게 하였다. 아비가 독을 먹고 죽자 유계흥은 유창으로 이름을 바꾸고 왕이 되었다.
유창은 왕이 된 후에도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죄수와 맹수를 우리에 가둬놓고 싸움을 지켜봤다. 그리고 임관하려는 자는 거세를 해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규정을 만들었다. 나라 운영은 환관과 시녀들에게 맡기고 매일 여색과 엽기에 빠져 살았다.
정규군이 이만도 안되지만 송나라와 인접해 있지 않기에 신하를 자처하지 않았다. 당나라와 오월이 이미 송나라의 신하를 자처했는데 유창은 그러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검동은 배를 타고 흥왕부로 향하는 길에서 매일같이 비수를 갈았다.
- 작가의말
새 떡밥 하나 투척. 첫 글도 그랬지만 마무리를 생각하면 약간 슬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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