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개혁
보타문의 문외제자 강녀라는 이름으로 영웅대회에 참석한 소월은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깨닫고 번개처럼 물러났다. 항응은 소월이 떨어지자 아쉬움이 느껴졌다. 소월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참으로 상쾌했기 때문이다.
항응은 소월에게 따로 얘기하자 말하고 장영덕과 고회덕 그리고 항룡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항응이 한살 형이기는 하지만 현재 항룡은 주황실의 부마이니 항응이 먼저 인사를 건네도 딱히 안될것은 없었다.
항응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한 굉태와 굉자의 얼굴은 딱딱해졌다. 하지만 굉후는 후련한 표정이었다. 사실 그날 굉태와 굉자는 잘못한 것이 없었다. 잘못한 것은 이 일을 덮어버리고 항응을 찾는 자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오히려 굉후는 살계를 저질렀다고 생각해 삼년동안 죄책감에 시달려 있었다. 몰래 공격한 죄는 여전하지만 살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굉후의 마음은 많이 좋아졌다. 이제 항응에게 처벌을 맡기고 마음 편하게 살든가 죽든가 하면 된다.
장영덕은 눈치로 항응의 삼년 실종이 소림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을 빌미로 소림에게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영은 소림의 방장을 국사(國師)로 모시고 소림 고수들의 호위을 받을 생각이다. 날이 갈수록 강성해지는 주나라는 모든 주변나라들의 눈엣가시이다.
소림은 아직 천하의 정세를 읽는 것이 서투르다. 그래서 아직 주나라와의 협력에 소극적이다. 하지만 항응의 일을 빌미로 소림을 협박하여 주나라의 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듯하다.
굉자의 조사가 다 끝날 무렵 반야당의 굉현과 그 제자들에 대한 조사도 끝났다. 굉후는 조사한 결과를 글로 적어 지호에게 건넸다. 지호는 굉현이 진술한 내용들을 확인한 후 서신을 가볍게 움켜쥐어 없애버렸다.
"우선 손님으로 소림을 방문해주신 여러분께 소림의 불찰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사과를 드립니다. 그 책임을 통감해 원 소림방장 굉태스님이 방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군웅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지호는 말투가 변했다. 이제부터는 소림의 방장으로서 소림의 일을 처리해야 한다.
"지객당의 당주 굉자는 본인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죄로 당주직을 박탈하는 바이오. 굉자는 삼일안으로 후임 당주를 물선하여 방장에게 보고하시오."
"이번 사건의 직접 개입자인 소림의 반야당 당주 굉현과 그 제자들은 단전을 부수어 무공을 폐하며 소림의 다섯 조직중의 하나인 반야당은 부처님의 뜻에 위배되는 행동을 일삼아 왔기에 해체를 선포하오."
달마원은 소림방장의 관할범위 밖에 있고 지객당은 선임당주가 후임당주를 결정한다. 나한당은 소림나한들이 선출하는 것이고 계율당은 전임당주가 몇몇 후보를 추천하면 그중에서 소림방장이 한명을 결정한다.
"굉현과 그 제자들은 무공을 폐한 뒤 소림의 불경을 필사하는 벌을 내리니 모든 불경을 한번씩 필사를 하기 전까지는 죄인의 신분으로 소림의 감시하에 지내야 할 것이오."
굉현과 그 제자들은 죄를 달갑게 받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단전을 부수는 작업은 항시주께서 고생해 주시오. 소림의 제자라 직접 손을 쓰기가 저어되어 미안한 부탁을 하오."
항응은 지호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항응의 경지와 지동산요의 무공은 저들의 단전을 아무런 후유증이 없이 부술 수 있다. 항응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호는 말을 이어나갔다.
"소림의 반야당은 그간 강호의 무공들을 수집하고 연구해왔소. 이는 강호의 도의에 어긋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위배되는 행동이오. 이제 소림은 반야당이 수집하고 분석한 결과를 해당 문파에 일일이 전달할 것이오."
"소림은 이제부터 타 문파의 무공을 익히는 것을 금지하오. 더불어 타 문파의 무공을 연구하고 참조하는 것도 정식으로 금하오."
지호의 말에 군웅들은 갈채를 보냈다. 아마 소림이 보낸 무공에 대한 분석을 보면 자파의 무공을 진일보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호의 결정에 의해 강호의 수많은 문파의 무공이 진보하게 되었고 그 문파들은 오히려 소림에게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되었다.
굉태는 난세에 소림의 방장직을 맡을 정도로 영특한 자이다. 지호의 결정이 소림에게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다줄지 계산이 끝나자 자신이 방장직을 물려준 것이 참으로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천하무공출소림이라는 말이 명실부합하게 될 것이다.
굉태는 강호 여러 문파들의 무공을 흡수하여 소림무공을 살찌우고자 했다. 하지만 오늘 지호의 금강부동신과 화엽공을 보자 소림의 무공은 굳이 다른 문파들의 무공에서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할 필요가 없음을 느꼈다. 소림의 무공은 이미 무학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완성되어 있다.
미리 방장이 될 것을 알고 준비라도 해둔 것처럼 지호는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일련의 조치를 취한 후 지호는 군웅들에게 반장을 올렸다.
"여러분의 독은 목숨을 해치지 않는 독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독될 것이니 소림의 제자를 제외한 분들은 소림을 떠나주시기 바랍니다. 소림은 이제부터 문내의 반도들을 징치할 것입니다."
군웅들은 소림중들의 안내를 받아 무리를 지어 소림을 떠났다. 장영덕도 철방을 줄로 묶은 뒤 지호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지호의 일처리를 보고 만만치 않음을 알고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것이다.
동정어옹과 천복자도 장영덕 일행과 함께 떠났다. 함께 떠나며 항룡이 점을 봐달라고 청하자 천복자는 허허 웃으면서 종이에 글자 몇개를 써서 접어주었다.
"항공자는 서신의 내용을 보지 마시고 삼년후에 장인어른한테 건네주시오."
항룡은 알았다고 대답한 뒤 종이를 받아 품속에 간직했다. 고회덕도 천복자에게서 점을 보고 싶었지만 천복자가 점을 보기 거절한 자들의 말로를 생각하며 억지로 참았다.
"항응 시주는 남아서 반도들의 처벌을 도와주시오. 해남파의 여러분은 우선 소림의 객방에 짐을 푸시오."
시간이 흘러 비무장에는 항응과 소림의 제자들만 남았다. 지호는 항응에게 반장을 올리며 정중하게 부탁했다.
"항시주, 어려운 부탁을 해서 다시 한번 미안하오. 하지만 항시주외에 적임자가 없으니 이 불민한 중을 한번 도와주시오."
항응은 겸손하게 대답했다.
"방장스님이 소림제자들을 아끼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굉현부터 시작해 지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항응은 천천히 걸어가며 한명씩 툭툭 때렸다. 너무 가볍게 때려서 어깨를 맞은 자들은 지나쳐가는 항응을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운기가 되지 않음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항응이 굉현과 그 제자들의 단전을 전부 파괴하자 지호는 이들에게 불학당(佛學堂)에 가서 학승들의 지도하에 불경의 필사를 시작하라 명했다. 굉현과 그 제자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반야당을 해체하고 굉현과 제자들에게 벌을 준 후 지호는 차가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계율당 당주 굉후는 삼년전에 자신이 저지를 죄를 인정하시오?"
굉후는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계율당 당주 굉후, 죽음으로도 씻지 못할 죄를 저질렀습니다. 방장스님과 항시주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항시주, 피해 당사자이니 어떤 벌을 주었으면 좋을지 의견을 말해보시오."
항응은 잠깐 고민한 후 입을 열었다.
"부처님의 뜻대로 하시지요."
지호는 항응의 대답에 매우 만족했다. 하지만 꿈에서도 자신이 소림신승이라는 별호를 채택한데 대한 보답임을 알지 못했다. 항응은 주고 받는게 확실한 사내였던 것이다.
"계율당주 굉후는 삼년전 심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살심을 품어 항시주를 공격한 죄가 있소. 계율당 당주의 직을 박탈하니 평생 복마동을 관리하며 그 죄를 뉘우치시오."
"부처님의 뜻이라면 그저 따라야지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굉후는 후련한 얼굴로 대답을 하고 가사를 벗었다. 소림의 모든 중들은 똑같은 승복을 입는다. 다만 방장을 비롯한 중요인물들은 승복위에 가사를 걸친다. 굉후는 가사를 벗은 후 항응에게 공손히 반장을 올리고 복마동으로 향했다.
"이후 계율당의 당주는 방장이 겸임할 것이오."
지호의 말에 굉태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굉후를 삼년이나 계율당주의 자리에 두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소림을 위해 희생하라 했지만 정작 자신이 희생할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혜능조사의 혜안에 감탄하면서 지호가 자신에게 어떤 벌을 내릴지 궁금했다.
"지객당의 굉자는 스님으로서의 본분을 잊고 속세에 물들었소. 오늘부터 장경각의 관리를 책임지며 평생 장경각을 벗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오."
굉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반장을 올린 후 장경각으로 향했다. 장경각으로 향하며 굉자는 누구를 지객당의 당주로 임명해야 가장 적합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속세에 물들었다는 지호의 평가를 생각하고 머릿속의 후보들을 모조리 지웠다. 그리고 어느 제자의 불심이 가장 깊었던지 생각했다. 평소에 가장 마음에 안들던 제자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소림사의 제십대 방장 굉태스님, 그대는 삼십년간 소림의 방장으로서 공도 있고 과도 있소. 하지만 그대는 마음속에 부처님이 아닌 소림만 담았소."
"달마대사의 면벽동천(面壁洞天) 관리를 그대에게 맡기오. 그곳에서 달마대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깨우치기 바라오."
굉태는 말없이 반장을 올리고 면벽동으로 향했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자신이 지은 죄 하나가 떠올랐다. 소림을 위해 들였던 노력은 후회하지 않지만 재능이 부족해 자신뿐이 아니라 다른 소림제자들도 죄를 짓게 한 것이 후회되었다. 부디 지호는 자신과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게 해달라고 부처님에게 진심으로 빌었다.
모든 일처리를 마친 지호는 개운한 표정으로 항응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항시주, 이 소림신승의 일처리가 마음에 드시오?"
지호는 되로 받고 말로 주는 스님이었다.
- 작가의말
개혁이란 말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보다 육백년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고증을 철저히 합니다. 가끔 말이죠.
강녀의 이름 유래를 아시는 분 혹시 있으시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절대 댓글이 고파서 그러는 거 아닙니다. 댓글이 너무 많아 재밋어요 등 의미없는 댓글은 매일 수백개씩 지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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