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육합
순양진인의 단도직입에 항응은 고민을 거치고 신중히 대답했다. 의형들의 사부가 되니 자신에게도 존장이다. 그리고 진중한 표정을 보니 형의권이 종남파에서도 무척이나 대단한 무공인 것 같았다.
"장문인께는 죄송하오나 제가 중요한 할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마치면 다시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항응의 말에 순양진인은 빙긋 웃었다.
"소협, 곧 겨울입니다. 겨울에 여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 소검공자는 나이가 어려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날이 풀릴 때까지만 여기에 머물면서 형의권을 배워봄이 어떠하겠습니까."
항응은 다음 목표를 청성으로 잡았다. 청성파와 아미파도 유명한 검술들이 있다. 청성이 있는 촉나라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지역이 한정적이다. 그러니 노숙을 자주 해야 하는데 순양진인의 말대로 소월이 버티기 힘들다.
차라리 형의권을 배우면서 봄이 되기를 기다리는게 나을 수도 있다. 빠르게 생각을 바꾼 항응은 순양진인에게 포권을 올렸다.
"스승님, 제자의 절을 받으십시오."
소검도 곧이어 순양진인을 사부로 모셔서 종남파의 속가제자가 되었다. 항응은 순양진인으로부터 형의권을 배웠고 소월은 유신장(遊身掌)을 배웠다. 유신장은 동작이 부드럽고 발경을 통한 공격이 많아 힘이 약한 소월에게 적합했다.
형의권은 형의육합권이라고도 한다. 육합에 기본을 두고 삼재와 오행 그리고 십이형을 추가하여 형의권을 만들었다. 형의권은 동공의 하나로 삼재를 인용한 삼장식(三檣式)은 내공을 모으는데 유용하다.
오행을 이용한 오권은 각각 금벽권(金劈拳), 수찬권(水鑽拳), 목붕권(木崩拳), 화포권(火砲拳), 토횡권(土橫拳)으로 나뉜다. 오행의 상생과 상극을 통해 다섯 권법은 무수히 많은 투로(套路)를 만들어낸다.
십이형은 용(龍)형, 호(虎)형, 웅(熊)형, 사(蛇)형, 후(猴)형, 마(馬)형, 계(鷄)형, 연(燕)형, 응(鷹)형, 요(鷂)형, 태(駘)형, 타(鼉)형으로 나뉜다. 요는 매보다 덩치가 작으나 성질이 포악한 새이고 태는 느리고 아둔한 말을 가리킨다. 타는 양자강에 사는 민물악어를 뜻한다.
그리고 삼식, 오권, 십이형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육합이다. 형의육합권에서 육합은 마음(心)과 뜻(意)이 하나(合) 되고, 뜻과 기(氣)가 하나 되며, 기와 힘(力)이 하나 되는 내(內)삼합과 어깨(肩)와 허벅지(胯)가 하나 되고,팔꿈치(肘)와 무릎(膝)이 하나 되며 손(手)과 발(足)이 하나 되는 외(外)삼합으로 나뉜다.
자세 하나 잡을 때마다 육합을 염두에 둬야 하고 동작을 하는 과정에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삼장식은 단순하나 정확한 동작을 해야만 내공수련이 된다. 오권은 하나하나가 수백가지 동작으로 이루어졌고 십이형의 복잡함은 오권보다 훨씬 더했다.
그래서 종남파에서도 형의권을 배우려는 자가 드물었다. 기본 동작을 숙지하는데만 삼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그 동작을 몸에 새기는데는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 순양진인은 형의권이 세번째 전인으로 항응의 자질을 아껴 순수한 마음으로 형의권을 전수했다.
형의권을 배우면서 항응은 자신의 무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항응은 익힌 무공들의 운기를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해냈다. 그래서 초식의 동작이 조금 어긋나도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형의권의 엄격한 요구에 따라 수련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무공의 초식들을 제대로 펼쳐내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날이 선 검을 들었다면 자신은 조씨 형제의 검에 죽었을 지도 모른다.
거기에 항응은 맨날 서고에 박혀 있고 무공수련도 남들 몰래 수련하였기에 무공의 경지에 비해 체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래서 항상 일격필살의 초식으로 전투를 빠르게 끝냈다. 하지만 수십의 무인을 적으로 만난다면 체력부족으로 죽을 수도 있다.
항응은 새벽에 삼장식으로 내공수련을 한다. 그리고 낮에는 오권과 십이형을 수련하고 저녁이 가까워 오면 삼장식으로 마무리를 한다. 저녁에는 맹룡도와 선기불신으로 자신만의 내공심법을 만들어갔다. 달이 반달보다 큰 경우에는 맹룡도만 수련했다.
형의권이 추구하는 방향은 굳이 운기를 하지 않아도 초식을 사용할 때 내공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오권과 십이형은 초식에 따른 운기법이 없다. 항응은 단순 초식의 수련에는 내공운용에서처럼 천재적인 자질을 보여주지 못했다.
초식이 점점 익숙해지던 어느날 항응은 오권과 십이형에 알맞는 운기법을 자신이 만들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운기법을 만들어서 사용하다가 부족한 곳이 있으면 수정하면 된다.
이는 항응만 가능한 발상으로 웬만한 사람들은 한번 수련한 운기법을 바꾸는 것이 아주 힘들다. 등봉조극(登峰造極)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나 가능한 발상을 항응은 천부적인 자질과 여러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기연으로 하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내단의 기운을 사용하면서 내공의 수발에 지장이 없었다. 내공을 십년 수련해서 단전에 십년의 내공을 쌓았다 해도 보통 절반 정도나 끌어다 쓰는게 가능하다. 보통
무인들은 항응처럼 처음부터 내공의 양을 자기가 원하는대로 가져다 쓸 수는 없다.
거기에 맹룡도라는 희대의 운기법을 배우게 되었다. 대부분 무인은 자신의 무공에 따른 운기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맹룡도는 그저 참고용의 효용만 가진다. 하지만 항응은 무공을 독학하면서 그러한 틀을 깨버렸다.
비천등운의 구결과 오운답설을 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정말 행운스럽게 항응은 나이나 경험에 비례하지 않는 커다란 선물을 받았다. 거기에 우자무외(愚者無畏 - 아는게 없는 자는 두려울 것이 없다) 라고 항응은 자신의 시도가 실패했을 때 얼마나 큰 아픔으로 돌아올지 몰랐다.
하지만 외삽합과 내삼합을 신경쓰는 와중에 맹룡도의 운기법을 하나하나 시헙해 보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항응은 저녁시간에도 연무장에 나가 달빛을 빌어 형의권을 수련했다.
형의권을 배운지 석달즈음 되자 항응의 오권과 십이형에는 내기가 실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십년 수련해도 이르지 못할 경지를 석달만에 이룬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순양진인도 형의권에 내기가 자연스럽게 실린것이 구년이 다 되어갈 때였다.
항응만의 뭔가가 있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순양진인은 항응의 수련에 과도한 간섭을 하지 않았다. 내공과 외공, 무공과 초식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것이 정답이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순양진인은 항응이 이대로 잘 성장해서 일대종사(壹代宗師 - 첫번째 종사)가 되어 무공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항응은 삼장식에도 운기법을 만들었다. 움직이면서 정공(靜功)과 동공(動功)을 동시에 시전하는 전대미문의 기사를 항응은 하루에 두번씩 해냈다.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무공을 수련하는지 모르는 항응은 자신의 행동이 알려지면 무림에 얼마나 대단한 파장을 가져올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항응의 형의권이 생각보다 빠르게 높은 경지에 이르자 순양진인은 항응을 가르치는게 아니라 함께 형의권을 상의해갔다. 종남파는 선대가 물려준 무공을 그대로 익히는게 아니라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전통이다. 순양진인과의 토론에서 항응은 많은 것을 배웠고 순양진인 역시 나름대로 얻어낸 것이 적지 않았다.
내친김에 순양진인과 항응은 난피풍검을 쌍수검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연구했다. 항응은 자신이 사용했던 운기법을 고스란히 순양진인에게 알려주었으나 순양진인은 쉽게 따라하기 힘들어했다.
항응이 만든 난피풍검 운기법의 범용성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순양진인과 항응은 함께 좀 더 쉽게 해낼 수 있는 운기법을 연구했다. 주로 항응이 운기법을 만들어내면 순양진인이 검증하고 수정의견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종남파에는 난피풍검 쌍수검법 응(鷹)편이라는 새로운 검술이 만들어졌다. 여전히 내공에 대한 높은 자질을 요구했지만 순양진인이 직접 쌍수검으로 두가지 초식을 동시에 시전함으로 불가능한 무공이 아님을 증명했다.
항응과의 몇개월이 순양진인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생각에 제한이 없는 항응 덕분에 순양진인도 자신을 가두던 틀을 일부 깨뜨렸다. 봄이 되자 순양진인의 눈빛이 훨씬 심유(深幽)해졌고 기도가 훨씬 희미해졌다.
항응은 순양진인이 책에서 읽은 반박귀진의 경지에 들어선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 축하해 주었다. 괜히 귀뜸해주면 머릿속으로 의식하게 되어 공덕을 망칠 수도 있다. 순양진인이 자주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자 종남의 제자중 사부의 건강을 걱정하는 자들이 생겨날 지경이었다.
항응은 강호경험이 풍부한 종남파의 뭇 제자들로부터 천하 여러 문파들의 무공을 간접적으로 견식했다. 흉수가 청성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아미의 검술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어 아미로 향하는 길에 청성에도 한번 들려볼 작정이었다.
형의권의 운기법은 대체적으로 만들어졌지만 맹룡도와 선기불신을 결합한 내공심법은 진전이 크게 없었다. 한달에 보름정도만 가능한데 높은 집중력을 필요로 해서 수련시간이 반시진도 안된다.
생각을 바꾼 항응은 선기불신을 좀 더 연구하기로 했다. 다른 무공들은 같은 뿌리를 가진 것처럼 서로 연관되는 것들이 있어 빠르게 파악하고 배워나갔지만 선기불신만은 기존의 무공들과 궤를 달리했다. 선기불신을 낱낱이 파악해야 맹룡도와 더 잘 결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봄이 되자 항응과 소월은 종남파의 사부와 사형들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둘은 사부에게 큰절을 올린 후 말을 타고 빠른 속도로 장안을 향했다. 장안에서 상단을 찾아 함께 촉으로 향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장안의 상인들은 돈도 아끼고 빠르게 촉으로 가는 길들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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