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말입니다
"비파 전갈은 발정기가 되면 아무에게나 교미를 시도합니다. 저는 서천으로 오는 길에 비파 전갈에게 잡혀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비파 전갈에게 물어봤죠. 왜 내 사부님을 찔렀냐고."
와, 흥미진진한데? 삼장 개차반이어도 할 땐 하잖아.
"비파 전갈이 교미를 시도했는데 사부님이 거절했습니다. 강제로 들러붙는 비파 전갈을 밀쳐냈는데, 비파 전갈이 그걸 공격으로 판단했는지 꼬리로 반격했습니다. 비파 전갈의 도마독(倒馬毒) 때문에 한참 고생하셨다 들었습니다. 제 말이 전부 사실입니까?"
"맞다. 근데 대체 뭐가 궁금한 것이더냐?"
"사부님은 출가하여 스님이 되기 전에 혼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 하나 있습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그래.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
"그 아들은 당신의 친자식이 맞습니까?"
"맞다."
"그 아들이 바로 당신의 대제자, 즉 제 사형이 맞습니까?"
웅성거림이 커진 걸 보면, 대다수 부처는 몰랐던 사실 같다. 삼장이 예전부터 여래불 싫어하는 것 같았는데, 설마 여기서 탄핵하려는 건 아니겠지?
"맞다."
"사부님의 아들, 제 대사형의 이름은 뭡니까? 왜 제 대사형의 이름이 사라졌습니까?"
"그게 궁금했더냐?"
"제가 조사한 바로, 사부님이 대사형의 심장을 빼앗아서 대사형이 죽은 거였습니다. 맞습니까?"
"아니다."
"그럼, 제가 증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래불을 등지고 돌아선 삼장이 몇몇 부처들과 눈을 맞췄다.
"관음보살께서 앞으로 나와주세요."
팝콘 추가, 콜라 리필.
"제가 서천으로 오는 길에 반절관음을 만났습니다. 원래는 관음보살이 될 운명을 얻어 수련하던 금코흰털쥐였습니다. 혹시 관음보살은 반절관음에 대해 아십니까?"
"알고말고요. 정해진 운명을 파괴한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이 서천이라는 영지, 뇌음사라는 거처를 만들어 모든 부처에게 제공한 위대한 업적으로 칭송받는 아미타불, 왜 환생하셨습니까?"
"먼저 혼원대라금선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혼원대라금선은 천궁에서 만든 용어로, 현재 태상노군이나 연등고불 등이 이룬 경지보다 한 단계 확실히 높은 경지입니다. 우리는 초월열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초월열반을 최종 경지로 여기고 노력하는 반면, 천궁에서는 혼원대라금선이 신이 되기 전 단계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신이라. 세계의 최고 관리자 말씀이시군요. 우리와 같은 세상의 부산물이 신이 될 수 있다면 정말 꿈에도 바라마지 않을 일이겠지요."
"당시 아미타불이던 저는 여래불의 협박을 받았습니다."
웅성거림이 거의 월드컵 결승전 현장이다.
"혼원대라금선이 되려면 신비한 세 번째 기운이 필요합니다. 천궁에서는 덕(德)이라 부르고 서천에서는 정(靜)이라고 부르죠. 이 기운은 수련으로 몸에 담기 정말 힘듭니다. 이 기운을 조금이라도 몸에 담으면 무극의 칭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열반이라고 하죠. 이 기운이 충분하면 초월열반, 즉 혼원대라금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아미타불께서는 그 기운을 많이 보유한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래불도 해당 기운을 많이 보유했죠. 그러나 초월열반에 도전하려고 제 기운을 탐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제 기운을 연등고불에게 주고, 저는 환생을 선택했습니다. 제 기운이 생식기에 담겼기에, 그걸 준 저는 여자로 환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관음보살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선배님이셨구나. 난 빨리 내 물건 되찾아야지. 관음보살 후배가 되긴 싫단 말이야.
"그럼 연등고불께선 이미 혼원대라금선에 도전할 자격을 갖췄겠군요?"
"그렇습니다. 천궁에서는 원시천존과 영보천존, 하계에서는 저기 계신 손오공께서 자격을 갖췄습니다."
관음보살이 여래불이나 연등고불에게도 안 쓰는 '께서'를 손오공에게 사용한다. 역시 힘세고 나쁜 놈이어야 대접받는다. 힘은 센데 착하면 겉으로만 공경하는 척하고 실제로는 무시하는 게 사람 심리다.
"제가 알기론 혼원대라금선은 세 명이거나 아홉 명이거나 스물일곱 명일 때 도전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관음보살께서 이에 대해 아십니까?"
"맞습니다. 연등고불이 가장 먼저 도전 자격을 획득했고, 다음은 손오공입니다. 원시천존이 자격을 획득했을 때 혼원대라금선에 도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 손오공께서 거절하셨죠. 설득을 여러 번 했는데 끝내 성사하지 못했고, 그사이 영보천존도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번 서유기는 손오공의 자격을 박탈하기 위한 천궁과 서천의 합작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주요 참여자로서 말씀드립니다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표면에 내세운 명분은 그렇지만, 각자 다른 속셈이 있을 겁니다."
"손오공께 질문합니다. 내키시면 대답해 주시죠. 태상노군과 내기를 해서 졌다고 들었습니다. 내기의 내용이 뭡니까?"
"모른다. 진 사람은 기억이 지워지는 내기였다."
"그 내기의 결과로 태상노군이 꼬리를 잘라갔죠?"
"그렇다. 이젠 돌려받을 시간이군."
"그때 꼬리에 덕 혹은 정으로 불리는 기운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까?"
"몰랐지."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오공의 꼬리에도 해당 기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태상노군이 그걸 가져갔죠. 이번엔 여러분께 질문하고 싶습니다. 태상노군이 손오공 꼬리를 잘라낼 능력이 됩니까?"
수많은 부처가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와, 손오공이 가끔 나랑 실없는 소리도 하고 해서 쉽게 봤는데. 태상노군도 밑으로 보는 분이셨군.
"손오공께서는 자신의 꼬리에 그 기운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혼원대라금선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의도적으로 흡수하지 않았는데도 혼원대라금선 자격을 얻을 정도라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기운이 담겼을지 다들 상상이 가실 겁니다."
여래불을 등진 채 말하던 삼장이 몸을 돌렸다.
"사부님, 혹시 그 내기에 참여하셨고 태상노군과 꼬리의 기운을 나눴습니까?"
여래불은 침묵을 선택했다.
"혹시 그 내기의 내용이, 손오공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손바닥을 벗어나는지 겨루는 거였습니까? 삼천세계 수법으로 손오공이 손바닥을 벗어났다고 여기도록 속인 겁니까?"
침묵은 긍정으로 여겨도 되는 거겠지?
"대답 안 하시니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삼장이 다시 여래불을 등졌다. 어이없었던 첫인상부터 서천 오는 내내 보여주었던 꼬락서니와 정반대 모습이다. 후반에 잠깐 보여준 조용한 득도고승 이미지와도 무척 다른 행보다.
"서유기를 재현하는 조건으로 새로운 내기가 펼쳐졌습니다. 이 금선자를 서천까지 안전하게 호송하면 손오공 꼬리를 돌려주기로 했습니다. 맞습니까?"
"자초지종은 제가 다 아니 대표하여 대답하겠습니다. 맞습니다."
관음보살이 이번 일에 연관한 사람들을 대표해 대답했다.
"정말 그렇게 단순한 목적일까요? 천궁과 서천의 합작품인데? 겉으로는 친한 척해도 속으로는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인 두 세력인데?"
말을 마친 삼장이 방금 입은 옷을 훌훌 벗어 던졌다. 난 나체일 때 관음보살이 나타나서 무척 민망했었는데, 삼장은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초반에 몇몇 부처들이 제게 만리장성을 입혔습니다. 제가 색계를 범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겠죠. 하지만, 보호하려는 게 그것뿐이었을까요?"
삼장이 만리장성을 손으로 툭툭 쳤다.
"저도 아미타불과 마찬가지로, 생식기에 그 기운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 기운을 노린다는 걸 알고 환생으로 남섬부주로 도망갔습니다."
연등고불, 원시천존, 영보천존은 손오공의 자격 박탈을 목표로 하고. 석가여래와 태상노군은 내기 지속하는 동안에 자기들도 자격을 얻는 걸 목표로 했다. 석가여래가 삼장 거시기를 노리는 걸 알고 관음보살 등이 일부러 만리장성을 입혀 삼장의 거시기를 보호한 거였다.
중간에 만난 요괴 중에 여래불이 보낸 요괴가 있을 수도 있다. 만리장성 덕분에 삼장이 남자일 수 있었던 거였다. 정조대는 삼장의 정조만 지켜준 게 아니라 남성까지 지켜주었다.
"자. 그런데 왜 그렇게 필요한 저를 갑자기 열 겹의 공간에 숨겼을까요? 서유기를 실패로 만들어 손오공 꼬리를 돌려주지 않으려는 속셈이었죠."
힐끗 바라보니 손오공은 무표정이다. 자신을 중심에 두고 벌어진 음모인데 남의 일처럼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아시다시피. 손오공은 누구도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음계에서 실수로 손오공 세 글자를 생사부에 올렸다가 한동안 절반 이상의 저승이 업무가 마비되어 귀신이 세상에서 들끓은 적 있습니다. 용궁도 천궁도 원하는 건 다 들어주고, 큰 세력을 이루지 않았음에도 하계에서는 요왕이라 칭송하죠. 아무리 내기라고 하지만, 그런 분의 꼬리를 돌려주지 않아 미움을 사면 혼원대라금선이 되어도 편하지 않을 겁니다."
일부 부처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삼장은 금란가사를 다시 몸에 걸치고 말을 이었다.
"이유는 제가 색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신비한 기운이 생식기에 몰렸을 때, 이성과 성관계를 하면 기운이 굳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 기운은 누구도 뺏어가지 못하고 본인만 흡수할 수 있습니다."
부처들이 술렁였다. 서천의 여러 법규 중에서도 색계에 유독 엄했는데, 이젠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기운을 뽑아내려면 상대가 총각 혹은 처녀여야 한다.
"그래서 태상노군과 사부님은 계속 손오공의 꼬리에서 기운을 얻기로 합의 본 겁니다. 이 일을 실패로 만들려고 힘을 합쳐서 수를 썼죠. 다만, 그사이 저도 삼천세계의 법술을 이룬 걸 몰랐던 게 패착이었죠."
삼장이 연극배우처럼 몸을 빙글 돌렸다. 여래불의 얼굴은 처음부터 똑같은 표정이지만, 분위기는 계속하여 바뀌었다. 다만, 그 분위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짐작 가지 않았다.
"자, 이젠 서유기가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꼬리를 원주인에게 돌려줘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여래불이 소매에서 3미터 길이의 밧줄 비슷한 걸 꺼냈다. 그 물건은 훨훨 날아서 손오공의 꽁무니에 붙었다. 손오공 키가 1미터인데 꼬리가 3미터여서 무척 언밸런스하게 느껴졌다.
"기운이 조금밖에 사라지지 않았군."
"단단하게 뭉쳐서 힘들었다. 애송이 제천대성 건 옥황상제가 이미 기운 다 뽑아냈다고 들었지."
화가 난다. 비록 내가 혼원대라금선이 될 생각이 없지만, 내 의지로 포기한 거랑 남의 수작질에 걸려 수동적으로 포기한 건 의미가 다르다.
"자. 이젠 사건의 시말을 모든 분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합리적인 추론을 합시다. 갑자기 사라지고 이름조차 지워진 대사형. 심장에 기운을 담은 사부님의 친자식. 그는 왜 갑자기 사라졌고 이름조차 말소되었을까요?"
중립에 있던 일부가 삼장을 지지하는 자들 쪽으로 이동했다.
"부처가 되려면 육근이 깨끗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계율을 다 범해도 부차가 될 수 있습니다. 계율을 지키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수련하는 건 부처가 되는 가장 편한 길이지 유일한 길이 아닙니다. 색계를 범하고도 부처가 된 존재가 이 자리에만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나, 부처가 되기 위해 아무 행동이나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고. 부처가 된 후에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과거의 연등고불, 현재의 여래불, 미래의 미륵불. 우리가 셋으로 나눈 이유는 누군가가 자격 미달로 자리를 비워도 서천의 체계가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목적입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사부님은 친자식의 심장을 취하고 이름을 지운 게 맞습니까?"
"아니다."
삼장 쪽으로 갔던 일부가 다시 중립으로 이동했다. 여래불의 대답에서 진실을 읽은 부처들이다. 나도 수준이 낮아서 그런지 여래불의 말이 진실로 들렸다.
"압니다. 아닌걸."
삼장 너 지금 반전 드라마 찍어?
"초반에 제가 족제비 얘기도 하고 비파 전갈 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심장 얘기로 넘어갔죠. 왜일까요?"
삼장의 기세가 갑자기 강해진다. 범부의 몸이라서 아직 금선자 때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 텐데.
"비파 전갈은 발정기만 되면 수컷을 찾아 교미하려 합니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그 수컷은 반드시 총각이어야 합니다. 몽정조차 하지 않은 순결한 총각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사형이 여래불 친자식이라는 말과 모순되지 않습니까? 설마 비파 전갈이 실수로 여래불을 총각으로 착각했을까요?"
삼장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여래대전 안을 쩌렁쩌렁 울린다.
"가진 정보를 조합해 어떤 결론에 이르려 할 때. 만약 서로 모순되는 결론을 얻는다면 가능성은 한가지입니다. 정보가 잘못된 겁니다. 내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정보가 가짜거나,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뜻이죠."
"현 여래불이 혼인하고 자식을 본 사실은 많은 부처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식을 첫 제자로 받은 걸 몇몇만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비파 전갈이 총각만 노리는 사실 역시 저만 아는 정보는 아닙니다. 즉, 모순된 결과를 도출한 두 기본 정보는 가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뒤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겁니다. 기존 정보를 부정하지 않는 새로운 정보가 있다는 뜻이죠. 그리고 그 정보를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당사자죠."
"자. 여래불께서 숨긴 정보를 꺼내 우리의 의문을 해소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이다. 여래불이 눈동자를 굴린 게. 뭘까? 어떤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뭔가 생각나는 게 없다.
"여래불께서 침묵을 지키시니 질문을 바꿔볼 수밖에 없군요. 여래불의 친자식, 제 대사형의 이름은 뭡니까? 천궁, 음계에도 기록이 전혀 없는 그 이름이 뭡니까?"
"그게 왜 궁금하냐?"
"왜 궁금하냐고? 시발. 너라면 안 궁금하겠냐? 자기 아비 가죽을 뒤집어쓰고 그 행세를 하는 인면수심의 쓰레기 새끼 이름이 뭔지 안 궁금하냐고?"
와, 시발 미쳤다. 그러니까 여래불이 자식 심장 빼앗고 죽인 게 아니라, 자식이 아비 몸을 빼앗은 거라고?
여래불은 총각 아니니까 비파 전갈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거다. 그러나 육신은 여래불이지만, 알맹이는 삼장의 사형이라면? 어린 나이에 출가한 사형이 색계를 어긴 적이 없다면?
삼장의 말이 맞는다면 모든 모순이 해결된다. 그런데 삼장 말을 믿어도 될까? 갑자기 유능해진 게 아니라면, 오는 내내 연기 했다는 뜻인데. 사오정보다 더 음흉한 놈 말을 믿어도 될까?
잠깐. 사오정 저 새끼도 삼장과 인연을 만들어뒀고, 은근히 정보를 수집했다. 게다가 혜광등 같은 등급에 비해 그 효용 가치가 어마어마한 법보도 갖고 있었고.
이거 계중계 같은데? 태상노군이랑 여래불이 벌인 판에서 온갖 잡귀들이 끼어들어 난리 피운 느낌이다.
- 작가의말
여기서 연중하면 100살까지 살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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