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불상
"똥 싸고 싶다."
삼장이 회복을 끝냈다. 백마를 타고 걷다가 뜬금없이 똥 타령을 해댄다.
"똥은 왜?"
호기심 많은 저팔계가 대화 상대가 되어줬다.
"이거 입고 나서 감각이 사라졌잖아. 사람의 기본 욕구가 의식주야. 의는 옷이고 주는 잠이고 식은 먹는 거야. 그런데 이 식이 단지 입안으로 쏟아 넣는 것만 말하는 게 아니라 싸는 것도 포함되어 있어. 오곡이 입으로 들어가 위와 창자를 거쳐 똥이 되어 항문으로 나오고, 그 똥이 퇴비가 되어 다시 곡식을 키우는 것. 이것이 바로 윤회야. 진리는 우리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가깝고 평범한 일상 속에 있다고."
이것도 재능이다. 꽤 심오하고 철학적인 말인데 저렇게 싼 티 나게 하는 것도 타고나지 않으면 어렵다.
"이러한 순환이 무의미하지 않냐고? 그건 절대 아니지. 순환이 거듭되어 일말의 흐트러짐 없이 늘 똑같이 되면 그게 법칙이 되는 거야. 법칙이 되면 강제성이 생기지. 강제성은 다시 말하면 구속이야. 사람들이 왜 수련자가 되려는지 알아? 구속이 싫어서야. 법칙에 구속되지 않으려고 수련하는 거야. 법칙을 거스를 힘을 얻으려고."
"그런데 말이야. 의식주는 사람의 기본 욕구일 뿐이지. 사람은 그 외에도 소유욕 명예욕 같은 수많은 욕구가 있어. 어떠한 욕구든 채우려면 상응하는 힘이 있어야 해. 그 모든 것을 충족하는 힘이 바로 법력과 법술이지."
지구에서는 그게 돈 혹은 권력이라고 볼 수 있겠군.
"그렇게 법칙을 거스르고 비틀고 속이고 하다 보면 말이야. 사람이 욕심에 먹혀. 자기가 법칙을 만들고 싶어져. 나에게 유리한 법칙을 만들어 군림하고 싶어지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겠어? 힘을 키워야 해."
"그런데 사람은 그릇이라는 게 있어. 그릇은 넘쳐나는 힘을 담을 수 없지. 그릇보다 작은 힘만 담을 수 있는 거야. 그렇게 한계에 부딪히면 두 부류로 나뉘지. 하나는 자기 그릇을 넓히려는 이상주의자. 하나는 다른 사람과 협력해서 그릇 숫자를 늘리려는 현실주의자."
"이상주의자 중 넷이 후보가 되었어. 그리고 현실주의자들은 가능성이라는 줄을 잡고 있고. 이제 각축이 벌어진 거야. 능력이 중요한 게 아니야. 야망이 있고 자기 존재를 서슴없이 던질 수 있는 놈이 열매를 따 먹겠지."
혼원대라금선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저팔계가 짜증을 냈다.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멍청이. 미리 말했잖아. 똥 싸고 싶다고."
이건 내게 하는 말이다. 삼장은 내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빙빙 돌려 말했지만, 나는 알아들었다. 나도 삼장을 똥 싸게 할 생각을 품고 있었으니.
"근데 똥 싸면 혼날 것 같은데."
내 말에 삼장이 썩소를 지었다.
"안 들키게 잘해야지."
"거기, 제발 절 풀어주세요."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여자가 나무에 높이 묶여 있다. 눈동자가 머리카락과 똑같은 까만색이다. 짙은 쌍꺼풀 때문에 눈이 동그래 보인다. 박 씨 같은 이가 가지런하여 무척 보기 좋다. 갸름한 얼굴은 어느 위치에서 봐도 미인형이다.
옆구리와 허벅지 쪽에 살짝 째져서 하얗고 보드라운 살결이 은근슬쩍 노출됐다.
"이상해. 산적이라면 산채로 끌고 갔을 거고, 요괴라면 잡아먹었을 텐데."
"시어머니, 시어머니가 날 여기 묶어놨어요."
"왜?"
"시집가서 한 달 만에 남편이 죽었어요. 그런데 시어머니가 남편 동생에게 재가하라고 강요하는 거예요. 제가 말을 안 들으니 짐승 먹이로 준다면서 저를 이 높은 곳에 묶었어요. 제가 겁먹고 동생에게 재가하길 바라는 거죠."
"그냥 시집가지 왜 그래?"
저팔계의 말에 여자가 입을 딱 벌렸다.
"풀어주면 갈 데는 있고?"
"제 부모님이 계신 마을까지 데려다줄 수 없나요?"
"우리 바쁜 사람이야. 그냥 풀어줄 수는 있는데 호위까지 해주긴 힘들어. 그게 싫다면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계속 묶여 있어. 맹수도 닿기 힘든 높이니까 묶여있는 게 더 안전할 거야."
여자가 입을 벌렸다 닫았다 반복하다가 눈물을 떨궜다. 작게 흐느끼다가 아예 대성통곡한다. 그때 잠잠히 있던 사오정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가까이 오기 전까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요괴가 틀림없습니다."
"죽일까?"
저팔계가 구치정파를 꺼냈다. 여자가 울음을 그치고 끅끅거렸다.
"죽일 거면, 가슴이라도 만져보게 하면 안 돼?"
삼장이 진지하게 제안했다. 여자가 높이 묶여 있어서 삼장 혼자서는 저 염원을 이룰 수 없다.
"요괴 아닐 수도 있잖아."
내 말에 여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그냥 두고 가자. 요괴라면 속기 싫고, 사람이라면 죽이는 게 찝찝하고."
나무에 묶인 여자를 두고 우리는 떠났다. 삼장만 가슴에 미련이 남았는지 자꾸 뒤돌아본다. 우리가 진짜 떠나자 여자도 황당했는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우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
진해선림사.
몇십 리 더 걸으니 절간 하나 나타났다. 문을 똑똑 두드리니 커다란 절간 대문이 빼꼼히 열린다. 우리를 두 번 훑어보더니 바로 문을 닫았다.
"여긴 풍습이 이상해. 왜 손님 보고 문 닫을까?"
저팔계가 실없는 소리를 한다. 그때 곁에 담장으로 중년 스님이 머리를 내밀었다.
"요괴야 사람이야?"
"장안에서 출발해 서천으로 경을 취하러 가는 당삼장이오."
역시 고승 연기 갑. 삼장 법사의 말에 중년 스님이 합장하며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한다.
"정말 미안하오. 저녁만 되면 요괴가 와서 절간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목숨을 앗아가오. 대낮에 찾아오는 법은 없지만, 내가 그만 외모만 보고 사람을 함부로 판단했소."
"내 말을 믿으시오?"
우리는 중년 스님이 열어준 문으로 진해선림사에 들어갔다.
"부족하지만 타심통 조금 깨우쳤소."
삼장은 부처님께 예배를 올려야 한다고 먼저 대전에 들렀다. 그런데 불상이 전부 상반신이 없거나 하반신이 없었다. 중년 스님이 부끄러운 기색을 띄우며 참담한 말투로 처지를 토로했다.
"이상한 요괴가 와서 불상 상반신 혹은 하반신을 잘라갔소. 경건한 마음으로 불경을 외우던 중들은 무사했지만, 평소 행실이 안 좋아 구설에 오르던 중은 다 죽었소. 그래서 이게 부처님의 시련이 아닌지 다들 의견이 분분하다오."
부처님 중에도 가끔 과격한 존재가 있다. 비율로 따지면 무척 적어서 그렇지. 나한만 봐도 싸우는 부처다. 칼을 놓으면 나한이요 칼을 들면 나찰이다.
"우린 요괴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오늘 밤 여기 묵겠소. 밥만 넉넉히 주시면 되오."
저팔계가 염치없이 말했다. 숫제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식이다. 게다가 밥을 많이 달라는 요구도 뻔뻔하게 했다.
"최근 사람이 많이 죽어서 방도 넉넉하고 음식도 넉넉하오. 그러나 일손이 부족하고 불상들을 수선해야 하니 밥은 직접 해 먹으셔야 하오."
음식을 해 먹으니 밤이 깊었다. 산속이라 그런지 빨리 어두워졌고, 그 어둠이 깊었다. 나는 스님들이 경 읽는 소리에 이끌려 대전 쪽으로 향했다.
중들이 외우는 불경 소리가 내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부처들이 발견한 법칙을 인간의 말로 풀어놓은 게 불경이다. 불경은 전혀 공부한 적 없어 뜻을 몰라도, 듣고 있으니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도 좋아진다.
그때 갑자기 검은 안개가 자욱해지더니 잿빛 구름이 달을 가렸다. 중들의 불경 소리가 더 커진다. 삼장이 걱정되어 돌아가려 했지만, 길치 속성이 발동하여 대전을 벗어나지 못했다. 안개가 시야를 가릴 뿐 아니라 방향도 헷갈리게 했다. 원래부터 동서남북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데, 안개가 불붙은 집에 부채질하듯 더 헷갈리게 했다.
바람 소리가 날카롭게 울리더니 등불이나 촛불이 모조리 꺼졌다. 차가운 바람은 언젠가 저승에 갔을 때 봤던 음계의 바람과 비슷했다. 차갑지 않은데 뼈가 시리게 만드는 그런 바람이다.
그리고 갑자기 하늘이 갰다. 검은 안개가 생기기 전과 다른 점이라면 중들의 불경 소리가 사라졌다. 똑같이 생긴 대전이지만, 이건 다른 공간이다.
왜냐면, 대전에 있던 부처들과 반대되게 하반신이 없던 부처의 하반신이, 상반신이 없던 부처의 상반신이 놓여있었다.
이 요괴는 건망증이 있는 건가? 아까 나무에 묶여있던 여자가 얼굴도 바꾸지 않고 내게 다가온다.
"잘생긴 스님. 여기서 뭐 해?"
뭐지? 내가 비록 긴고아를 쓰기는 했지만, 그건 남섬부주에서나 먹히는 관습이다. 거리가 먼 서천에서는 머리를 기른 나를 보고 스님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텐데.
"누구세요?"
"나 관음보살이야."
하나도 안 비슷한데? 내가 관음보살과 거래를 튼 게 몇 번이라고 감히 나를 속이려 해?
"관음보살이 여긴 왜 왔어요?"
"나 송자관음(送子觀音)이야. 네게 아이 만들어주러 왔지."
아하. 이래서 평소 행실이 안 좋은 중들만 당한 거였군. 부처님에 대해 믿음이 약한 중이라면 요괴 말에 속았을 거다. 그리고 이쁜 여자에게 약한 중들도 관음보살이 아님을 알면서도 속아줬을 거고.
"만들어 보세요."
"호호. 너 참 순진한 아이구나. 아이 만들려면 말이야, 네가 먼저 옷을 벗어야 해."
"왜요? 왜 내가 먼저 벗어야 해요?"
"그럼 내가 먼저 벗으마. 부처님은 자비로우니까."
요괴가 옷을 천천히 벗었다. 나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요괴 가슴에 집중했다. 음심이 동한 게 아니고, 내가 아이 만드는 능력이 없음을 들키기 전에 요괴 진체를 발견하려는 거다. 요괴는 내가 가슴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교태로운 웃음을 지으면 옷을 더 천천히 벗었다. 내 애간장을 태울 생각인 것 같지만, 너 지금 자기 꾀에 넘어가고 있는 거라고.
끝내 옷을 다 벗은 요괴가 나보고 옷을 벗으라 했다. 나는 옷섶을 꽉 잡고 버텼다. 그러면서도 눈은 요괴 가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요괴가 강제로 옷을 벗겼다. 반항하면 들킬 것 같아서 상의는 벗었다. 오른손으로 바지춤을 잡고 왼손으로는 사타구니를 가렸다. 내가 부끄러운 척 버티자 요괴가 무척 즐거워한다. 부처에게 억하심정이 있나? 스님이 타락하는 걸 즐기는 변태 같으니라고.
제길. 요괴 눈초리가 달라졌다. 나는 참지 못하고 덮치는 척 요괴에게 뛰어갔다. 화를 내려던 요괴는 내가 자기 가슴에 달려들자 다시 교태로운 웃음을 입가에 달았다. 그러나 그 웃음이 사라지는 데는 한 초식이면 되었다.
가슴에 난 구멍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이는 요괴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바로 오행인을 소환하여 머리를 때렸다. 퍽 소리와 함께 요괴가 쓰러졌다.
제길. 분신이었구나.
그럼 아까 본 것도 요괴 본체가 아닌 분신이었을 거다. 아까가 본체라면 강함이 다르기에 내가 얼굴만 같고 실질적으로 다른 존재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분신끼리도 똑같을 수 없지만, 내가 분신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얼굴이 똑같다고 같은 존재로 여겼다.
오행인을 휘둘렀다. 세 번 휘두르니 나를 가두던 공간이 깨졌다. 이 요괴는 진해선림사의 대전과 같은 위치에 이중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분신을 보내 스님을 유혹해서 죽인 거다. 오행인에 공간이 깨지자 절반 잘려서 사라졌던 불상이 모두 대전에 나타났다.
"뭡니까?"
"요괴가 왔는데 내가 쫓아냈소."
이중 공간이 깨지자 검은 안개도 흩어지고 잿빛 구름도 사라졌다. 나는 황급히 별채로 달려갔다.
저팔계가 구치정파를 들고 씩씩거린다.
"제길. 요괴인 걸 알면서도 속아주려 했는데, 이 요괴가 일을 치르기도 전에 나를 죽이려 했어."
"저한테는 요괴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사오정이 높낮이가 없는 단조로운 말투로 말했다. 저팔계도 목표가 되었는데 자신은 무시해서 조금 화난 것 같다.
"삼장은?"
방에 들어가 보니 삼장이 사라졌다.
"이번 요괴도 요기가 없었다. 분신이어서인지 원래 요기가 없는 요괴인지 모르지만."
저팔계가 구치정파로 땅을 툭 치며 토지신을 불렀다.
"네놈은 자기가 관리하는 땅에서 요괴가 사람을 해치는데도 왜 알은체를 하지 않느냐? 우리가 왔으면 미리 나타나서 이런 요괴가 있으니 퇴치해 달라고 청해야 할 거 아냐?"
"상선께 아룁니다. 요괴의 범행 장소가 제 관할에 있지 않는 별도의 공간이기에 저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범행 결과만 확인하고 범인과 과정을 모르니 어떻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어디 사는 요괴야?"
"모릅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요괴 같습니다. 땅에 사는 요괴라면 우리 토지신이 모를 리 없죠."
소득이 없자 저팔계가 씩씩거렸다.
"내가 예전에 이름이 지워진 산을 찾을 때 토지신이 그랬거든. 산 이름이랑 사용된 기간이 안 맞는 산들 위주로 조사하면 이름 지워진 산을 찾을 수 있다고. 요괴가 일부러 멀리 다니지는 않을 테니, 근처에 토지신들이 모를만한 곳이 어디 있는지 대라."
내 말에 토지신이 귀여운 눈을 번쩍 뜨더니 지팡이로 바닥을 쿡쿡 찔렀다. 약 30초가량 대화를 나누더니 내게 대답했다.
"함공산에 무저동(無底洞)이 있습니다. 거긴 땅이 아니라서 토지신들이 모르는 곳입니다. 근처에 토지신이 모르는 곳이 그곳뿐이니, 분명히 거기에 자리 잡은 요괴입니다."
저팔계와 사오정과 함께 함공산으로 날았다. 분신술을 사용하는 요괴라 사람 하나라도 많은 게 낫다. 함공산에 도착해 토지신이 말한 곳으로 향하니 과연 무저동이 있었다. 돌멩이 하나 던졌는데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안 들렸다.
"여기 그저 들어가면 그냥 무저동일 거야. 아까 절간에도 이중 공간을 만든 걸 보면 공간을 잘 활용하는 요괴야. 그러니까 요괴 분신이나 수하가 무저동에 들어갈 때 따라 들어가야 해."
저팔계가 말을 받았다.
"그럼 나랑 사오정이 트집을 걸게. 싸우러 나오면 우리가 진 척 도망칠 테니, 넌 동굴로 돌아가는 요괴를 따라가."
"형님들, 저 너구립니다."
"뭔 소리야?"
"오소리가 너구리 찾아와서 내 굴에 같이 살아달라고 빌까요? 다 너구리가 오소리 굴을 찾아내서 비집고 들어가니까 오소리가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주는 거죠."
"들어가는 방법이 있어?"
"샛길 만들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전혀 은밀하지 않죠. 들어가는 순간 들킬 겁니다. 장안법도 소용없습니다."
"안에서 공간 깰 수 있어?"
저팔계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아까도 내가 깼어."
나와 저팔계는 휴식을 취했고, 사오정은 월아산을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너구리는 굴을 팔 줄 모른다고 했는데 사오정은 삽질이 무척 익숙했다.
"사오정, 너 삽질 잘하는데 왜 오소리 굴에서 살았던 거야?"
"이건 후천적으로 배워낸 겁니다. 육군 공병대 나왔거든요. 형님들은 어디 나왔습니까?"
"난 비만이라 면제."
"난 모르겠어. 이번에 돌아가면 영장 나왔는지 확인해야지."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말입니다. 한 번은 간첩 수색을 하는데."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