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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勳의 서재

잡담


[잡담] 그 해 여름

독실마을은 뒷동산을 남으로 지고 있는 북향마을이다. 북쪽으로 넓은 벌판, 사실 그다지 넓지는 않았지만, 어린 아이들이 보기에는 꽤 넓어 보이는 벌판이 펼쳐져 있고, 그 벌판 한 가운데로 젊어서 과부가 된 봉선이 엄마가 목욕하는 곳이므로, 아이들은 가까이 가면 큰일 난다고 소문난 조그만 보가 있다.

그 보를 시작으로 폭이 일이 미터 쯤 되는 실개천이 흐르고, 실개천 너머 벌판 끝에는 폭이 약 오십 미터 쯤 되는 개울이 횡으로 흘러 내리며, 개울 건너 뒷 동산을 북으로 진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이웃 마을을 더 멀리 보이게 만들고 있다.

봄이면 보리피리 소리, 가을이면 황금색으로 물들어 가는 벌판 가운데서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뛰어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벌판의 끝, 큰 개울의 둑으로 올라선다. 이 마을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에 저 마을 아이들도 자기 마을에서 놀다가 개울둑으로 올라선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 지는 모른다. 이 마을과 저 마을의 아이들이 개울 이 쪽과 저 쪽 둑에 서서 서로를 마주 보고 야유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어느 누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돌을 던지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서로를 향하여 맹렬하게 돌팔매질을 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던진다고 하더라도 저 쪽 둑에 까지 가는 일은 물론 거의 없다. 아이들은 그렇게 싸우다가 어느 한 쪽에서 중학생 형아가 나타나면 불이나게 도망쳐야 했다. 중학생 형아에게 잡히면 큰일이 나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되면 같은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친구가 되어 버리고 더 이상 이 마을 저 마을로 나뉘어 싸우는 일도 없어지지만, 아이들이 자기들을 보고 도망치는 모습을 즐기려고 중학생 형아들이 한 번씩 왕림하곤 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돌팔매질을 하며 싸우다가 그것도 시들해지면 우르르 자기 마을로 돌아가서 더 재미있는 놀이를 찾아다니곤 했다. 국이와 종이 진이와 훈이 그리고 도야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마을 뒷쪽의 연못으로 갔다.

다이빙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다이빙 연습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 연못 둑에서 물로 뛰어 내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뛰어 내리면서, 머리가 먼저 물속에 들어가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하고   배로 치기 때문에 엄청나게 아파해야 했다. 머리가 먼저 물로 들어가게 하는 자세를 잡고 뛰어 내리는데도, 좀 체로 잘 되지를 않았다.


그 중에서도 훈이가 다이빙은 가장 잘 했는데, 세번 중에 한 번씩은 머리가 먼저 떨어져서 배가 아프지 않게 물로 뛰어 들어 갈 수가 있었다. 그 놀이도 한 참 하면 시들해진다. 아이들은 다음 놀이를 궁리한다.

종이가 아랫마을 참외밭으로 서리를 하러 가자고 말했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찬성하고 런링셔츠를 모두 벗었다. 옷이 희기 때문에 밤이라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벗은 옷을  허리에 감고, 윗통을 벌거벗은 상태로 마구 떠들어 대며 아랫마을 참외밭으로 접근했다. 

밤에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는 멀리까지 간다는 것을 모르는 아이들은 참외밭에 가까이 다가가자,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하라는 표시로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갔다댔다. 그러나 아랫마을 장씨 영감님은 아이들의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아이들이 살금살금 접근해서 참외를 따기 시작했다. 벌써 몇 개를 딴 녀석도 있었다. 아이들이 참외 밭에 접근하는 소리를 듣고 부지런히 밭으로 온 장씨 영감이 아이들이 밭 속에 있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이 놈들.”

아이들은 혼비백산해서 이제까지 따서 가지고 있던 참외들을 모두 버리고 불이나게 도망쳤다. 헥헥거리며 마을로 돌아온 아이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히히 거리며 웃었다. 참외는 따오지 못했지만 매우 재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외를 영 가지고 오지 않은 것도 아니다. 진이가 그 와중에도 참외 한 개를 들고 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 참외를 돌려가며 한 입씩 깨물고 좋아라 했다.

그러나 국이가 시무룩해 있었다. 이 번에 엄마가 큰 맘 먹고 새로 사 준 흰고무신 한 쪽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는데, 흰 고무신은 비싸기도 했거니와 때가 잘 묻어서 아껴 두고 학교 갈 때나 신고 다녔다.


다음날 아랫 마을 장씨 영감이 마을로 나타나 흰 고무신 한 쪽을 들고 주인이 누구인지 수소문했다. 어른들은 누가 그 신발의 주인인지 알지못했고 아이들은 알아도 모른척했다. 장씨 영감은 그 한 쪽 신발을 들고 하릴없이 돌아가 버렸다. 우리의 국이는 엄마에게 실컷 맞고 학교 갈 때도 한 동안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녀야 했다.

...........

하! 그리워라! 그 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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