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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왕후에서 노비로 격하되었다라는 부분이 있는데요 왕후를 왕비로 수정하셔야 합니다 조선에서 선왕비의 시호를 왕비가 아니라 왕후라고 해서 제후왕의 정실 부인 역시 왕후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요 후(后)의 명칭은 사실 황제의 정실 부인만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고려사의 기록)후(后)의 명칭은 가질 수 있는 건 황후 뿐입니다 왕의 부인은 비(妃)일 뿐입니다 조선이 명나라 청나라 몰래 왕비를 왕후로 추증한 것 뿐입니다
조선이 명나라 청나라 몰래 선왕에게 황제에게만 올릴 수 있는 묘호를 올린 것 처럼 명나라 청나라 몰래 선왕비의 시호를 황후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후를 사용한 것 뿐입니다 실제로 선조 실록의 기록을 보면 의인왕후가 승하하자 선조가 왕비의 시호를 00후로 정해야 하는데 후라는 명칭은 황제의 정실 부인 만을 뜻하는 용어인데 중국 장수가 도성에 가득차 있어서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일을 모르는게 없어서 큰일났다라고 한 기록이 존재합니다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에서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봉증(封贈)1)제도 (국역 고려사) 공양왕 3년 8월
“예로부터 천자(天子)의 배필은 후(后)가 되고 제후(諸侯)의 배필은 비(妃)가 되며 천자의 딸은 공주(公主)라 이르고 제후의 딸은 옹주(翁主)라 하여 상하(上下)의 예법을 문란하지 않게 하는 것은 그것으로 명분을 정하고 신분을 구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73601&cid=62131&categoryId=62237
선조실록 127권, 선조 33년 7월 3일 갑진 3번째기사 1600년
(생략) 지금 중국 장수가 도성에 가득차 있어 우리 나라의 크고 작은 일들을 모르는 것이 없다. 내 비록 지성으로 심력을 다해 대접한들 어찌 사람마다 다 환심을 살 수 있으며, 그들 또한 어찌 모두 나와 사이가 좋으랴. 응태가 조종(祖宗)을 모함한 것은 먼 윗대의 일이다. (생략 )다른 일은 놓아 두더라도 시호에 있어서는 반드시 모후(某后)로 칭해야 할 터인데, 후(后)자는 황제의 후에 쓰는 글자니, 그 후자가 더욱 어렵다. 승지는 알고 있으라
http://sillok.history.go.kr/id/kna_13307003_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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