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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양

아이 엠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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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흑산양
작품등록일 :
2021.05.12 15:23
최근연재일 :
2021.12.21 18:20
연재수 :
1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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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79,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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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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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pisode 43. 무너진 경계 (2)

DUMMY

붉은 노엘이 폭풍을 일으킨 순간.

심상치 않은 상황에 밀려난 함대의 면면은 시선을 향했다. 하늘을 뒤덮은 흑룡(黑龍)과 그 아래에 마주한 작은 인간.

폐함선을 조종해 분신을 쓰러뜨리는 모습은 대단하다. 하지만 천재지변(天災地變) 그 자체인 폭풍을 앞둔 상황이, 마치 바람 앞 촛불과도 같이 보였다.

선원을 돕던 슬리벤 왕자도, 함대를 재편성하던 함장도 숨을 죽여 최후를 짐작한 상황이었다.


‘섀도우 공.’


폭풍을 앞둔 섀도우는 한없이 작게 보인다.

게다가 폭풍의 영향력은 한참 떨어진 함대까지 미치고 있다.

그 누구도 섀도우의 승리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붉은 노엘이 움직이는 모습이 엿보였다.

흑룡(黑龍)을 이끌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붉은 노엘. 그 모습은 인간과는 아득히 멀리 떨어진 무언가로만 보였다.


“충격에 대비하라!”

“각자, 주변을 붙잡고 버텨라!!”


천재지변의 흑룡이 떨어진 순간.

전장에서 먼 함대의 주변까지 흔들리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가끔 들리는 천둥소리와 벼락의 반짝임.

일전의 뇌룡(雷龍)이 떨어진 것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에 선원들은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함선을 붙잡았다.

함장과 슬리벤 왕자 또한 주변을 붙잡으며, 시선만은 어떻게든 전장으로 향했다.

지금 함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것은 섀도우가 싸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번 전투에서 섀도우가 패배한다면 붉은 노엘이 향할 곳은 당연히.


‘다음은 우리 차례겠지.’


천지를 호령하는 천둥과 해일을 일으키는 거대한 바람에 유령 함대는 대열을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함장은 흔들리는 도중에도 전선의 모습을 살피고,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함장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섀도우의 승리를 바라는 것뿐이다.

유령 함대가 벼락에, 해일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한참 이어졌다.


“부디···.”


폭풍은 쉽게 그치지 않고 그 세를 늘려만 가고 있다.

함대를 뒤흔드는 충격은 더욱 거세지고, 하늘을 뒤덮은 암막은 이미 그 끝을 알 수 없어졌다.

세상이 어둠에 물든 착각마저 일으키는 상황이다. 단순한 인간이 폭풍에서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섀도우는 최적의 순간을 기다렸다. 폐함선과 자재를 방패 삼아서 기다렸다.

함대의 선원 대부분이 섀도우의 죽음을 직감한 것도 이때. 세상을 뒤엎으려는 강인한 힘 앞에서 삶을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구우웅.”


섀도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붉은 노엘의 울음소리에 당황한 선원이 전선으로 시선을 되돌린 그 순간.

마침 붉은 노엘과 섀도우가 시선을 마주한 순간.


섀도우는 준비한 모든 폭탄을 사용했다.


그렇게 해서 일어난 것은 현대의 전술 병기를 떠올릴 정도의 폭발이다.

폭풍에 대비하던 선원은 물론, 그나마 멀쩡하던 함선마저 완전히 무너질 정도로 커다란 폭발.

일어난 해일은 폭풍으로 일어난 것보다 거대하며, 거셌다. 충격 대부분이 해일로 변환된 덕분에 선원은 즉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폭발의 충격과 연기. 그 성대한 빛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 바운티 왕국과 에체르티 왕국의 항구를 넘어, 왕성에서조차 볼 수 있을 정도로 성대히 빛났다.


“저게 뭐냐!”

“경비병!”

“국왕 폐하를 모셔라!”

“감시!”


이날.


“저건···.”

“세상이···. 무너진다···.”


두 국가를 넘어.

일부 남은 플레이어조차, 거울 세계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가장 중요한 주민들의 반응은 지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같다. 그저 공포에 떨뿐.

하지만, 지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이들. 그중에서도 각 국가의 왕족은 한 가지 잊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세계의 끝이 깨어나는 건가.”


누군가는 공포를 떠올렸고.


“···예상대로, 인가. 그렇다면 지원은 이대로 움직이면 되겠어.”


누군가는 예상한 상황에 고개를 끄덕이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공통으로 그들은 한 조직. 정확히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섀도우 공의 이야기가 사실이었어.”

“섀도우라 하는 자를 찾아라!”

“바삐 움직이게 되겠어, 섀도우 공.”


제각각 나뉜 조직과 국가.

그 모든 것들이 단 한 사람을 통해서 연결점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세상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


《HP가 0이 되어 사망하셨습니다.》


눈앞에 뜬 반투명한 창은 예상한 내용이다.

중요한 건 마무리를 했는가. 그게 가장 중요한 점이다.

붉은 노엘은 일반 몬스터가 아니다. 특수 몬스터다.


“뭐···. 로그를 보면 되려나.”


죽은 시점에서 로그는 플레이어의 행동을 상세히 나타낸다.

눈앞에 뜬 반투명한 창을 조금만 조작하면, 로그는 금방 나타난다.

나는 붉은 노엘의 쓰러뜨린 결과를 상상하고 손을 뻗었다.


“[개체명 – 증식과 폭풍의 고래 : 노엘]은 쓰러졌습니다.”


반투명한 창을 조작하는 사이.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지금 내가 있는 장소는 플레이어의 공간.

이 공간에 올 수 있는 존재는 창조신이라는 오버로드와 그의 수하.


“···양은 아니네.”

“처음 뵙겠습니다. 바쁜 양을 대신해 왔습니다.”


시야에 나타난 것은 양과 비슷한 차림의 남자.

다만, 얼굴 부근이 개의 형태다.


“‘개’인가?”

“네.”


떠오른 의문에 고개를 끄덕인 개를 보고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십이사도 중 만난 인물은 양뿐이다. 양 또한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나타나지 않는다.

쉽게 나타나지 않는 존재가 십이사도다.

그리고.


‘이렇게 나타났다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건가?’


평범한 분위기를 두른 개와 달리 위험한 일일 가능성도 있다.

나는 내심 한숨을 내쉬고, 개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일단 붉은 노엘은 처리했다고 하니까.’


이야기를 기다리는 내 모습을 본 개는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래 거울 세계와 지구의 차원은 다릅니다. 서로 관여할 일이 없는 차원입니다.”

“그렇군.”

“하지만, 카오스님의 힘이 성장하며 문제가 생겼습니다.”


특별한 생각 없이 듣다가 떠올렸다.

십이사도가 직접 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건.


‘신화인가.’


세상의 이야기를 담은 신화라고도 할 수 있다.


“카오스님의 나이는 인간에 비하면 아직 어린아이. 다만, 그 힘은 인간 따위와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태어난 순간 차원을 만드신 그 힘을 무분별하게 휘두르셨기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봉인으로 둔 건가?”

“···본 의도는 아닙니다.”


카오스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진 탓에 본래 연결될 리 없는 차원이 연결되었다.

그게 지금 상황인 모양이다.


‘어린아이가 차원을 만들 정도의 힘을 지녔다는 모양이니···.’


스케일이 달라서 확 와닿지는 않는다.

내심 혼란을 겪는 나와 달리, 개는 차분히 이야기를 이었다.


“지난번 사건은 카오스님의 봉인으로 잠시 완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차원이 연결된 탓에 또 다른 차원에서 간섭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버로드님께서는 지금 고차원의 간섭을 막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창조신은 나설 수 없으니 십이사도와 플레이어가 움직여야 한다는 건가?”

“정확히는 일부의 십이사도, 입니다. 제 형제 대부분은 오버로드님을 돕고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손이 부족하니 도와달라는 모양이다.

세상이 위험하다고 하니 도울 생각이긴 하다.

다만, 나는 특별한 힘이 없다. 특별한 힘을 지닌 거울 세계에서도 그리 강하지는 않다.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으니 진짜는 다른 플레이어에게 맡기는 게 좋겠지.


“그럼, 일단. 저쪽은 어떤 상황이지?”

“···일부 미약한 차원의 침공이 시작되었습니다.”

“···뭐?”


차원 침공.

분명, 조금 전 개의 이야기대로라면 오버로드와 십이사도가 막고 있을 일이다.


“···원인은?”

“양이 막고 있었으나, 혼자서 막기엔 버거운 수입니다. 그에 슬로우 씨. 본명, 강신혁 씨.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개의 이야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특별한 힘이 없는 개인일 뿐이다.

거울 세계라면 그나마 움직일 수 있지만, 지구라면 상황은 다르다.

고블린 상대로도 질 수 있는 몸이다.


“걱정하지 마시길. 전투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그럼?”

“정보의 통제. 또는 조작. 둘 중 하나를 부탁드립니다.”


확실히.

몬스터와 싸우라는 이야기보다는 훨씬 듣기 가벼운 이야기다.

이미 한 차례 흘린 고블린의 정보를 덮은 것도 있으니까.

하지만.


“간단히 말하는데.”

“부탁드립니다.”


조금 불만을 내뱉으려 핀잔을 두자, 곧바로 고개를 숙인 개의 모습에 얼굴을 찌푸렸다.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몬스터가 나왔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테니까.’


뒤늦게 플레이어들이 부활하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죽은 시점에서는 간단히 외부의 연락을 받을 수 있다.

외부의 연락으로 긴급 연락을 받은 이들이 로그아웃을 선택하고, 몬스터를 마주하거나 정보를 확인한 거겠지.


“하아···.”


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선택지가 없는 일이다.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로그아웃을 부탁할게.”

“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개의 말을 뒤로, 나는 눈앞에 나타난 하얀 문을 바라봤다.

문을 지나면 로그아웃할 수 있다는 거겠지.


‘···갈까.’


갈 수밖에 없다.

문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어, 건넌다.

한순간에 어두워진 시야와 달리 의식은 천천히 깨어난다.

마치 오랜 잠이 들었던 것처럼.


“···이건 아직도 위화감이 느껴진단 말이지.”


단말기기에서 나와 거실로 향한다.

일단, 어느 정도로 몬스터가 알려졌는지 알아야한다.

만약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거라면 상당히 힘들 테니까.


“사실상 불가능하지.”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식탁에 둔 휴대전화를 들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리모컨으로 뉴스를 튼다.

뉴스에는 일상을 늘어놓고 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건가?’


휴대전화를 통해 확인한 뉴스에도 특별한 이야기는 없다.

의문을 느끼는 것도 잠시. 긴급 연락용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어째서 지금 전화가 울린 건지 의문이 조금. 긴급 연락의 용건을 예상한 게 조금.


“···일단, 받자.”


각오를 다지고, 전화를 들었다.

신호를 받은 순간.


“야 이 개새X야!”


세차게 욕을 먹었다.

다행스럽게도 전화 상대방은 여전하다.

적당히 대꾸하며 주제를 기다리니.


“너, 알고 있었지!?”

“뭘?”

“괴물 말이야! 미X 놈아!”


이미 알려졌다.

전화 상대방이 회사의 주인이라는 점에서, 정보 통제가 시작됐다는 건 파악했다.

문제는 전화 너머 악우(惡友)의 질문을 어떻게 넘길까.

아니.


‘부정할 필요는 없나?’


녀석은 이미 휘말렸다.

굳이 거짓말로 내빼줄 필요가 있는가.


‘악우(惡友)인데?’


그럴 리가.


“야! 듣고 있냐!”


목청도 좋게 크게 질러댄다.

대답이 없는 내 모습에 더욱 소리 지르려는 악우(惡友)의 모습에 조금 웃음이 난다.


“야!”

“듣고 있어.”

“너, 알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지난번에도 그 사진을 막았던 거지!?”


지난번 사진은 고블린 사진이다.

지나친 내 대응과 이번 일. 두 가지 사안으로 악우(惡友)도 조금씩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럼. 나도 할 말을 해볼까.


“그래 알고 있었어.”

“···!! 저게 뭔데! 괴물이냐?! 진짜?!”


당황한 목소리에 웃음을 참고.

정답을 떠올렸다.


“고블린.”

“뭐···? 그, 게임의 괴물···?”

“그래. 참고로, 한동안 더 나온다고 하더라.”


담담히 전한 목소리에 악우(惡友)는 단 한마디.


“지X.”


욕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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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Episode 49. 카오스 (8) 21.12.18 8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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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Episode 49. 카오스 (6) 21.12.16 8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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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Episode 49. 카오스 (4) 21.12.14 82 1 12쪽
179 Episode 49. 카오스 (3) 21.12.13 83 1 11쪽
178 Episode 49. 카오스 (2) 21.12.12 8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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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Episode 48. 마지막 봉인 (8) 21.12.08 81 1 12쪽
173 Episode 48. 마지막 봉인 (7) 21.12.07 88 1 13쪽
172 Episode 48. 마지막 봉인 (6) 21.12.06 8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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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Episode 48. 마지막 봉인 (4) 21.12.04 79 1 11쪽
169 Episode 48. 마지막 봉인 (3) 21.12.03 87 1 12쪽
168 Episode 48. 마지막 봉인 (2) 21.12.02 88 1 11쪽
167 Episode 48. 마지막 봉인 (1) 21.12.01 87 1 12쪽
166 Episode 47. 겉과 속 (4) 21.11.30 86 1 12쪽
165 Episode 47. 겉과 속 (3) 21.11.29 86 1 12쪽
164 Episode 47. 겉과 속 (2) 21.11.28 92 1 11쪽
163 Episode 47. 겉과 속 (1) 21.11.27 8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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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Episode 44. 공략 시작 (3) 21.11.23 8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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