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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양

[Ego]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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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흑산양
작품등록일 :
2021.02.19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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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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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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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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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Ego] 3장 95화

DUMMY

“---살릴 수 있어.”


완전히 밋밋한 목소리.

감정 하나 담기지 않은 리온의 목소리는 혼란스러운 공간에서 기묘할 정도로 쉽게 울려 퍼졌다.

리온의 목소리를 들은 주변의 하인들은 한순간 지나치게 달라진 분위기의 리온을 알아채지 못하고 반응이 늦어졌다. 그러나, 유일하게 세븐즈 만큼은 리온의 분위기를 신경 쓰지 않고, 아니, 신경 쓸 수 없었다.

그저, 살릴 수 있다는 리온의 말에만 집중했다.


“그건, 정말인가? 거짓 하나 없는 사실인가?”


리온에게서 한 걸음 뒤로 떨어진 위치에 있던 집사장조차 분위기가 변한 리온에게 이질감을 느꼈다. 그렇기에 분명, 곁에 있는 세븐즈가 리온의 변모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세븐즈는 리온에게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세븐즈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엄숙함과 진지함으로 물은 질문은 리온의 변모가 아닌. 리온이 내뱉은 말의 사실 여부를 묻는 말이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죄인의 죄를 판가름할법한 목소리였지만, 세븐즈의 목소리를 들은 하인들은 그저 리온에게 매달리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세븐즈의 태도와 모습에도 리온은 여전히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체, 고개를 끄덕였다.


“살릴 수 있어. 다만, 본인의 동의가 필요해.”

“본인···?”


감정을 철저하게 숨긴, 리온의 말. 쓰러진 체 의식 없이 당장이라도 죽을 듯한 프레이야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살릴 수 있다는 말이었다.

리온의 말을 들은 세븐즈는 말을 똑같이 되뇌고는 의미를 이해한 순간 리온을 향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짜증을 느꼈다.


“본인에게 동의라? 쓰러져 있는? 프레이야에게서? 어째서냐. 어째서인가? 내가 명령해도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봐라, 리온. 나는 수장이다. 이 세븐즈 가문의 수장인 로이드다. 그녀는 세븐즈 가문의 하인이자, 로이드의 친우다. 그런데, 친우이자 주인인 나의 말로는 불가능하다는 건가?”


말 한마디 한마디에 분노와 짜증을 숨기지 않은 체, 어디까지나 형식만을 차린 세븐즈의 말은 어느 의미로 당연한 말이었다.

신분으로서 세븐즈가 압도적인 우위. 친구라는 명목도 있고, 당사자인 프레이야는 의식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를 구하기 위해 친구이자 주인인 세븐즈가 허가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리온은 수긍하지 않았다.


“어째서냐! 리온!”


미처 참지 못한 세븐즈는 리온을 향해 적의와 가까운 감정을 내뱉으며 물었다. 리온에게 손대지 않은 것은 마지막 남은 이성을 동원한 덕이다.

세븐즈의 적의를 한 몸에 받은 리온은 여전히 침착하게. 그러나, 감정을 엿볼 수 없는 꺼림칙한 분위기로 세븐즈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치유 마법으로는 살릴 수 없어. 지금 당장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 일류를 넘어선 치유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불가능해. 그러니, 내가 사용할 방법은 다른 방법이야.”

“그러니, 이 내가! 허락한다고 하지 않았나!”


리온의 침착한 설명에도 세븐즈는 이해하기보다 앞서 점차 눈에 띄게 늘어지는 프레이야의 모습에 시선을 향했다.

프레이야의 숨은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극히 미약한 정도였고, 그마저도 산소가 부족한지 얼굴은 창백을 넘어 새하얗게 질린 모습이었다. 그 이상으로 몸 전체에서 흘러넘치는 출혈이 심상치 않았다.

세븐즈의 고함에도 리온은 차분한 모습으로 있다가, 아주 천천히. 텅 빈 공허한 시선을 세븐즈에게 향했다.


“···.”

“읏···!”


공허한 시선.

인간을 넘어선 무언가가 담긴 어둠. 그 어둠으로 뒤덮인 리온의 시선을 마주한 세븐즈는 지금껏 자신의 마음속에 휘몰아치던 수많은 감정이 단번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 잠정들을 쉽게 뛰어넘을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

흡사 심연과도 같은 리온의 시선은 세븐즈에게 이미 인간 이상의 무언가. 그야말로 사신과도 같은 모습으로 보였다.

리온은 세븐즈의 태도를 예상한 듯 반응 없이 물었다.


“네가, 저 아이의 영혼을 책임질 수 있다고?”

“···영혼?”


프레이야의 일이라는 것에 다소나마 침착함을 덧씌운 세븐즈는 리온의 말에 생각했다. 영혼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삶을 물어본 것이 아니라. 영혼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는 것에 세븐즈는 의문을 품었다.

리온이 프레이야를 살리려는 방법. 그것은 리온만이 사용할 수 있는 영혼 마법을 이용해, 프레이야의 영혼을 다른 그릇으로 옮기는 것이다.

육체의 손상만이 일어난 현 상황에서, 치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리온이 프레이야를 세계에 남겨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영혼 마법과 그에 따른 책임을 알 수 없는 세븐즈는 리온의 질문에 멈췄다. 의문과 공포. 그리고, 점차 커지는 초조함. 이미 세븐즈는 정상적인 판단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리온은 세븐즈를 향한 물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 아이. 프레이야에게 행할 마법은 영혼 마법을 통한 영혼의 이동이야. 그렇게 된다면, 인간을 포기한. 다른 무언가가 되겠지. 그 이상으로,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는 능력을 지니게 돼. 삶의 시간도 달라지고, 영혼에게 향할 영향은 나조차도 쉽게 예상할 수 없어. 그런데, 그걸. 당사자가 아닌, 네가 책임질 수 있다고?”

“···.”

“너 하나만의 책임이 아니야. 변한 몸을 지닌 이 아이는 인간과는 다른 시간을 보내겠지. 그렇다면, 네가 죽은 이후에는? 이 아이는 인간과는 다른 몸으로, 죽음이 없는 상황에서 영원토록 혼자가 되어야만 해. 내 눈에는 그런 미래가 쉽게 보이는데. 넌 어떻지?”


자신의 마법을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는 리온이기에 세븐즈에게 향한 말은 무거울 정도의 현실성이 내포되어 있었다.

리온에게서 말을 전해 들은 세븐즈는 점차, 당장의 삶과 영원의 고통 속에 어느 것이 정답인지 스스로조차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영혼 마법을 통해 다른 그릇인 육체에 영혼을 옮긴다면,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지닌 이상(異象)인 것이다. 앞선 유령의 칸과 대수인 루미아와는 전혀 다른 경우였다.

일생. 그 이상인 영혼의 책임은 일개 인간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아이가 너에게 있어서 소중한 인간이라는 것은 알겠어. 하지만, 소중한 이를 잃는 것이 두렵다고, 네가 공허함을 느끼는 것이 두렵다고 소중한 이 아이를 영원에 가까운 고통 속에 내몰겠다는 건가?”

“···아, 아니. 아니다. 틀려. 나는 그럴 생각이 아니다. 그저, 프레이야가 살아주었으면 하는···.”


세븐즈를 내치려는 듯 날카로운 리온의 말에 세븐즈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에서 비롯된 말을 겨우 형태만 갖추어 내놓았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하인들과 집사장은 이 이상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침통한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세븐즈가 소중한 이를 잃는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공포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는 것 또한. 세븐즈의 곁을 지키던 그들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세븐즈의 곁을 지켜주며, 세븐즈의 심신 모두를 안정시켰던 프레이야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그 사실은 하인들과 집사장에게도 결코 내버려 둘 수 없는 문제였다.

세븐즈와 주변의 하인들의 분위기를 파악한 리온은 마지막으로 세븐즈에게 물었다.


“넌, 그 아이의 영혼을 책임질 수 있나?”


리온의 질문에 세븐즈는 깨달았다.

마지막 물음이라는 것. 이 이상 리온은 세븐즈에게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며, 프레이야에게도 시간이 없다. 그러니, 이 물음의 답이 이후의 사건을 결정지을 말이 된다는 것이다.

세븐즈는 리온에게 말로서 처참히 무너져 내린 정신으로,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으로 프레이야에게 시선을 향했다.

프레이야의 모습은, 어쩌면 이미 죽은 게 아닌지 의심할 정도의 모습이었다.


“나는···.”


영혼의 책임.

세븐즈 자신의 만족, 잃어버리기 싫다는 욕구.

프레이야에게 주어질 불편. 영원에 가까운 고통. 인간으로서 포기하게 되는 것들.

한 차례, 생각을 끝낸 세븐즈는 입을 열었다. 입을 연 세븐즈에게서 새어 나온 것은 얼핏 나약한 숨인가 싶을 정도로 연약한 목소리였따.


“나는···. 책임 질 수 ---.”


세븐즈가 리온의 질문에 대답을 끝마치기 직전.


“---커, 커헉. 으···.”

“프, 프레이야!”


정신을 잃은 체, 죽은 듯이 있던 프레이야가 고통에 가득 찬 모습으로 정신을 차렸다.

그 모습에 세븐즈는 곧바로 프레이야에게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그러나 프레이야는 자신에게 닥친 고통에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저,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자 했으나. 그마저도 빠져나가는 숨에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였다.

프레이야가 고통에서 날뛰는 것조차 불가능한 모습을 본 세븐즈는 충격 이상으로, 리온의 이야기를 이해했따. 만일, 자신이 수긍하고 프레이야가 인간을 넘었다면. 지금 이상의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인 고통이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세븐즈가 각오를 다지며, 다시 한번 리온에게 말을 걸려던 순간. 프레이야는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숨으로 목소리를 자아냈다.


“···나, 는. ···직. ···을, 수···. ···없. ㅇ···. ···로, 이드···.”


그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연약하고, 당장에라도 끊어질 듯 나약해서. 프레이야에게 다가선 세븐즈조차 제대로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프레이야가 자아내고자 하는 소리와 입의 미약한 움직임으로 겨우. 프레이야의 의도를 읽은 세븐즈는 조용히. 극히, 조용히 프레이야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릴적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니, 떠올렸다.


‘로이드. 언젠가, 귀족님의 수장이 된다며?’

‘그래. 나는 자랑스러운 세븐즈 가문의 수장이 될 거야. 그렇게 된다면, 너도 고용해 줄게.’

‘그래? 그러면···. 나는 우수한 하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네.’

‘그런가? 그렇다면, 나는 우수한 하녀가 자랑스러워 할 수장이 되어야겠어.’


어릴 적.

세븐즈가 아닌 로이드와 프레이야. 두 사람이 신분에 얽매이지 않았을 무렵.

어린아이였던 두 사람이 그저, 꽃이 활짝 핀 언덕에서 놀면서 나누었던. 별것 아닌 추억.

그 추억을 떠올린 장본인인 세븐즈조차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기억. 그런 기억을 떠올린 세븐즈는 조금 전과는 다른 분위기로 프레이야를 보았다.

그리고, 프레이야가 마지막으로 자아낸 말을 일어냈다.


“···러운, 수. 장···. 는, 걸. 봐, 야···. 스···.”

“···.”


프레이야의 마지막 말은 온전하게 자아내기도 전에, 빠져나간 공기로 인해 그저. 날카로운 바람 소리로 바뀌었다.

하지만, 프레이야가 자아낸 말. 그 의지를 읽어낸 세븐즈는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되었다.

리온은 분위기가 변한 세븐즈를 앞두고도 조금의 재촉도 없이, 물음에 대한 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세븐즈는 한 차례 숨을 가다듬고, 하인들과 집사장의 표정을 둘러본 뒤. 각오를 다진 모습으로 리온을 마주했다.

리온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 그 이상으로 리온의 시선은 조금 전보다 깊은 심연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 리온을 앞둔 세븐즈는 조금 전과는 달리, 조금의 공포도 느끼지 않은 체.

자신의 각오를 내뱉었다.


“내가. 내가, 책임을 지겠다. 그러니, 프레이야를 살려다오.”


말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리온을 향해 고개를 숙인 세븐즈는 그 자세로 멈췄다.

세븐즈는 리온이 긍정을 의미하는 말을 내뱉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세븐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각오를 마친 후에. 리온 자신을 향해 내뱉은 말을 들은 리온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세븐즈를 바라보고, 프레이야를 보았다.

리온이 세븐즈와 프레이야에게서 무엇을 떠올렸는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연에. 혹은 두 사람의 처지에, 리온이 누군가를 떠올렸을지 모르는 것이다.

영원에 가까운 찰나가 지난 순간.

리온은.


“후회하지 마.”


세븐즈를 향해 경고와 되새김에 가까운 말을 남긴 체,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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