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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금사 오아속

兄子康宗,諱烏雅束,字毛路完,世祖長子也。遼清甯七年辛丑歲生。乾統三年癸未,襲節度使,年四十三。
(목종穆宗 영가盈歌의) 형의 아들 강종(康宗)은, 휘(諱)는 오아속(烏雅束)이고, 자(字)는 모로완(毛路完)이니, 
세조(世祖/핵리발劾里缽)의 장남이다.
요(遼) 청녕(清甯/淸寧 요도종의 연호) 7년(1061년) 신축년(辛丑年) 생이다.
건통(乾統/천조제의 연호) 3년(1103년) 계미년(癸未年)에, 절도사(節度使)를 이어 받았으니, 43세 였다.

穆宗末年,阿疏使達紀誘扇邊民,曷懶甸人執送之。穆宗使石適歡撫納曷懶甸,未行,穆宗卒,至是遣焉。
목종의 말년에, 아소(阿疏)가 달기(達紀)를 보내 변경 백성들을 속여 선동하였는데, 
갈라전(曷懶甸) 사람이 잡아 보냈다. 
목종이 석적환(石適歡)으로 하여금 갈라전을 어루 만지고 거둬 들이게 하려 하였는데, 시행치 못하다가, 
목종이 졸(卒)하자, 이때에 이르러서야 보내었다. 

先是,高麗通好,既而頗有隙,高麗使來請議事,使者至高麗,拒而不納。五水之民附於高麗,執團練使十四人。語在《高麗傳》中。
이전에, 고려(高麗)와 통호(通好/친분을 맺음)하였는데, 이윽고 틈이 상당히 벌어져, 
고려에서 사신을 보내 의논할 일이 있다고 청하자, 사자를 고려에 보내었는데, 거부하고 들이지 않았다.
오수(五水)의 백성이 고려에 붙자, 단련사(團練使/당관제중 절도사의 예하관명) 14인을 보내 잡아오게 하였다.
《고려전(高麗傳)》에 그말이 전한다.



二年甲申,高麗再來伐,石適歡再破之。高麗復請和,前所執團練十四人皆遣歸,石適歡撫定邊民而還。
2년째 되던 갑신년(甲申年/1104년/고려 숙종9년)에, 고려에서 두번이나 쳐들어 오자, 석적환이 다시 이를 격파 하였다.
고려에서 다시 화의를 청하며, 전에 (오수의 백성을) 잡으러 갔던 단련사 14인을 모두 돌려 보내니, 
석적환이 변경 백성을 평정하여 어루만지고 돌아왔다.

蘇濱水民不聽命,使斡帶至活羅海川,召諸官僚告諭之。含國部蘇濱水居斡豁勃堇不至。斡准部、職德部既至,復亡去。
소빈수(蘇濱水)의 백성이 명을 거부하자, 알대(斡帶/알새斡賽)를 보내 활라해천(活羅海川)에 이르렀는데, 
여러 관리들이 요에 청하여 고유(告諭/타이름을 고함)하였다.
함국부(含國部) 소빈수에 거주하는 알활(斡豁) 발근(勃堇/여진 관명)이 오지 않았다.
알준부(斡准部)와 직덕부(職德部)가 이미 이르렀는데, 다시 도망갔다.

塢塔遇二部于馬紀嶺,執之而來,遂伐斡豁,克之。斡帶進至北琴海,攻拔泓忒城,乃還。
오탑(塢塔)이 마기령(馬紀嶺)에서 두 부족을 만나 , 잡아서 데려오고, 드디어 알활을 정벌 하였는데, 이겼다.
알대가 나아가 북금해(北琴海)에 이르자, 발홍특성(拔泓忒城)을 공격하고, 이내 돌아왔다.



四年丙戌,高麗遣黑歡方石來賀襲位,遣杯魯報之。高麗約還諸亡在彼者,乃使阿聒、勝昆往受之。
4년째 되던 병술년(丙戌年/1106년 고려 예종 원년)에, 
고려에서 위를 이어 받은 것을 하례하기 위해 흑환방석(黑歡方石)을 보내 오자, 배로(杯魯)를 보내 보답케 하였다.
고려에서 저쪽으로 도망간자를 되돌려 준다는 약조를 하자, 
이내 아괄(阿聒)과 승곤(勝昆)로 하여금 거둬 들이기 위해 보냈다.

高麗背約,殺二使,築九城於曷懶甸,以兵數萬來攻。斡賽敗之。斡魯亦築九城,與高麗九城相對。
고려가 약조를 배반하고, 두명의 사신을 죽이고, 갈라전(曷懶甸)에 9성을 축성하고, 병 수만명이 공격해 왔다.
하여 알로(斡賽/알대의 후임)가 깨뜨렸다. 알로 역시 9성을 축성하고, 고려의 9성을 상대 하였다.

高麗復來攻,斡賽復敗之。高麗約以還逋逃之人,退九城之軍。復所侵故地。九月,乃罷兵。
고려가 다시 공격하여 오자, 알새(斡賽/알대)가 다시 패배 시켰다.
고려가 도망간 사람들을 돌려 준다고 약조하고, 9성의 군대를 퇴각시켰다. 하여 다시 빼앗겼던 땅을 되 찾았다. 
(1109년 추정) 9월에, 이내 군을 물리었다.



七年己丑,歲不登,減盜賊征償,振貧乏者。
7년째 되던 기축년(己丑年/1109년, 고려 예종 4년)에, 흉년이 들어, 
도적(盜賊)을 잡았을때 배상해주는 것을 감해주고, 빈핍(貧乏)한자를 구원 하였다.

*금사 태조전에 따르면, 이해 흉년이 들어 도적들이 들끓자 아골타의 건의로
 도적을 잡아주는 사람에게 3배로 보상하는 법안이 통과 되었는데, 
 많은 도둑들이 잡히자 배상할 길이 막막한 백성들에게 또다른 부담이 되었는바,
 아골타가 다시 건의하여 3년간 법을 유예하였다.


十一年癸巳,康宗卒,年五十三。
11년째 되던 계사년(癸巳年/1113년, 고려 예종8년)에, 강종이 졸(卒)하니, 53세 였다.

天會十五年,追諡恭簡皇帝。皇統四年,號其藏曰喬陵。五年,增諡康宗獻敏恭簡皇帝。
천회(天會/금 태종 연호/희종도 1135년~1137년간 사용) 15년(1137년), 공간황제(恭簡皇帝)로 추시(追諡)하였다.
황통(皇統/금 희종 연호) 4년(1142년), 그 장(藏/묘墓)을 이르되 교릉(喬陵)이라 불렀다.
5년(1143년), 강종헌민공간황제(康宗獻敏恭簡皇帝)로 증시(增諡/시호를 더함) 하였다.



贊曰:金之厥初,兄弟三人,亦微矣。熙宗追帝祖宗,定著始祖、景祖、世祖廟,世世不祧。
찬(贊)하여 말하길
금(金)나라가 처음에는, 형제 3인(핵리발,파자숙,영가)이, 역시 미약하였다.
희종(熙宗/금 3대 황제)이 조종(祖宗/조상)을 황제로 추시하며, 
시조(始祖/함보函普), 경조(景祖/오고내烏古乃), 세조(世祖/핵리발劾里缽)의 사당을 정하여 확립하니, 
대를 거듭하여 부조(不祧/위패를 영구히 사당에 모심) 하였다.

始祖娶六十之婦而生二男一女,豈非天耶?
시조가 60세에 장가를 들어 아내에게서 2남 1녀를 낳았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景祖不受遼籍遼印,取雅達國相以與其子。
경조가 요적(遼籍/요나라 국적)과 요인(遼印/요나라에서 임명한 관리인장)을 받지 않으니, 
국상(國相) 아달(雅達)이 그 아들과 함께 취하였다.

世祖既破桓赧、散達,遼政日衰,而以太祖屬之穆宗,其思慮豈不深遠矣夫!
세조가 이윽고 환난(桓赧)과 산달(散達)을 격파하고, 요나라 정치가 날로 쇠약해지자, 
이로써 태조가 목종에게 복종하였는데, 
그 사려(思慮/깊은 생각)가 어찌 심원(深遠/헤아리기 어려울만큼 깊다/원대)하지 않겠는가!


*함보가 나이 60세 장가들어 뒤늦게 2남 1녀를 낳은 것은 하늘의 뜻이요,
 오고내가 거부한 요적과 요인을 받은 아달의 두아들(환난,산달)이 훗날 망한것,
 즉 거란에 예속 되기를 원치 않았던 선조들에 의해, 훗날 금나라가 있지 않았나 해석되어 지고,
 아골타가 숙부 영가를 따른 후에, 훗날 요를 격파하고 황제에 오른것 등은 심오하다는 찬자의 평으로 해석됨

*금사 찬자 : 원 승상 탈탈(脫脫)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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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아골타에서 계속-

P.S) 본글은 동의 없이 어느 곳에나 담아가셔도 됩니다. 출처는 남겨주시면 고맙구요.^^


요약
-숙부 영가의 뒤를 이어 절도사가 됨
-고려와의 접경지역인 갈라전에 대한 본격적인 영향력을 발휘함
-1104년 석전환을 갈라전에 보냈는데, 고려에서 선제공격하여 2번 패퇴시킴(임언, 윤관)
-1107년 11월 고려에서 내투한 백성을 돌려준다고 사신 파견 요청하고 17만대군 출정시킴
-오아속 그말을 믿고 사신 파견하고, 자신은 마기령에서 사냥하며 기다림
-고려 관내로 들어온 사신과 추장 일행 400여명 참살 당함
-완안부로 돌아온 오아속 부족회의 주최 (동생 아골타만이 고려와의 전쟁 주장함. 이를 승락)
-갈라전을 두고 고려와 사투를 벌임
-1109년 9성을 수복하고, 고려와 화친함
-1109년에 작황이 좋지 않아 백성 대다수가 굶주리고 유랑함.
-아골타의 계책으로 도적을 줄이고, 백성을 구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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