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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고려시대 궁궐

고려 만월대
919년(태조 2) 태조가 송악산 남록에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창건한 이래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진될 때까지 (350년간) 고려 왕의 주된 거처였다. 고려시대의 궁궐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며 흔히 만월대라 부르는 궁궐터(사적 48호)만 남아있다. 만월대의 위치는 개성의 송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높은 언덕에 있으며 좌우에 구릉이 둘러 있어 용호지세(龍虎地勢)를 나타내고 있다. 그 앞에는 주수(主水)와 객수(客水)가 합류되어 흐르고, 남으로는 주작현(朱雀峴)을 넘어서 멀리 진봉산을 바라보고 있어서 사신상응(四神相應)하는 명당의 터이다. 일반적으로 평지에 건립되는 왕궁과는 달리 산의 지세에 따라 몇 개의 단지를 형성해 세웠으므로 매우 특이하다. (주: 이러한 형태는 최근 진도에서 발굴된 삼별초의 임시고려궁궐과 일치합니다- 고려 오랑국(삼별초) 궁궐)

동서로 445m,남북150m정도의 대지에 건립된 궁성 주위에는 13개의 문이 있었는데, 그 중 正東門인 광화문(廣化門)은 주요도로와 연결되어 있다. 광화문의 위치는 1940년경에 있었던 남성병원의 북쪽 기슭과 인삼제조장 사이에 있는 광화교 부근이라 추측되나, 그 유지는 찾아 볼 길이 없다.

광화문을 지나 서쪽으로 가면 궁궐의 정남문(正南門)인 승평문(昇平門)에 이르고 이곳을 지나면 주수가 되는 광명천의 다리인 만월교가 있다. 만월교를 건너 신봉문(神鳳門)을 들어서면 넓은 뜰이 있고 동에는 세자궁으로 통하는 춘덕문(春德門)이 서에는 왕의 거처로 통하는 태초문(太初門)이 있다. 북쪽으로 10여보 더 가면 창합문( 闔門)이 있어 왕의 조서를 봉인하던 곳이라 하며, 그 좌우에 승천문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 3의 문인 창합문을 지나면 지세 때문에 뜰이 협소해지고 정면에 50여척 이나 되는 높은 단 위에 정전인 회경전(會慶殿)이 있다. 왕궁터의 가운데 있는 거대건물로, 정사를 처리하는 정전(正殿)이 회경전(會慶殿)이다. 회경전은 정면 9칸, 측면 4칸의 규모이며 전면에 4개의 계단을 만들었고 좌우에는 동행각(東行閣)·서행각(西行閣)이 있었다.회경전 뒤에는 지세가 더 높아진 곳에 장화전(長和殿)이 있었으며, 이곳에는 궁내의 진귀한 보물과 금, 옷감 등이 저장되어 있어 경비가 엄하였다고 한다.

(주: 회경전을 묘사한 고려도경에는 "회경전은 창합문(閶閤門) 안에 있는데, 따로 전문(殿門)이 있고, 규모가 매우 웅장하다. 터의 높이는 5장(丈)이 넘고, 동․서 양쪽의 섬돌은 붉게 칠하고, 난간은 동화(銅花 구리로 꽃무늬를 만든 것)로 꾸몄는데, 웅장하고 화려하여 모든 전(殿) 중에 제일이다. " 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건물높이가 15-20미터가량 되는 대건축이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장화전 뒤 지세가 더욱 높은 곳에 원덕전(元德殿)이 있어서 건물규모는 크지 않았었으며, 왕이 상거 하는 곳이 아니고, 유사시에 근신들과 의결하는 처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회경전 서북쪽에는 천자의 조서를 받고 사신을 대접하는 건덕전(乾德殿)이 있고, 북쪽에는 침전인 만령전이 있다. 이 밖에 사신 등이 바치는 물품을 받던 장령전(長齡殿)과 뒤에 집현전(集賢殿)으로 개칭된 연영전(延英殿)이 있었으며, 회경전의 서쪽에는 왕의 침전이, 동쪽에는 세자가 거처하던 좌춘궁(左春宮)이 있었다. 만월대는 궁궐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넓지 않은 공간에 많은 건물을 계단식으로 배치했으며, 지금은 문과 문 사이를 연결하는 계단, 기단지, 초석등이 남아 있다 (덕분에 아래쪽에서 바라보면 굉장히 웅대한 궁궐이었습니다- 거의 전반적인 모습이 다 보이는).

 

고려 초기에는 개경의 만월대 이외에 서경에 태조이래 만수대(萬壽臺) 밑에 장락궁(長樂宮)이 있었으며, 문종 35년(1081)에는 장락궁에서 동서 10여 리 되는 곳 명당의 터에 좌궁(左宮)과 우궁(右宮)을 세우고 순어(巡御)하였다. 예종11년(1081)에는 용언궁(龍堰宮) 만들었으며, 고려 중기에 들어서서 인종 6년(1115)에는 대화궁(大化宮)을 만들었다.


황성에는 13개의 성문과 15개의 궁문이 있었다고 하며 성문 중에는 동문인 광화문(廣化門), 궁문으로는 왕궁의 정남문인 승평문(昇平門)과 신봉문(神鳳門)·창합문·의봉문(儀鳳門)이 유명하였다. 승평문은 정전인 회경전으로 연결되는데 이 문을 들어서면 신봉문이 있었고 그 동쪽에 세자궁으로 들어가는 춘덕문(春德門)이, 서쪽에 왕의 침전으로 들어가는 태초문(太初門)이 있었다. 신봉문 안에는 왕이 천자의 조서를 받들던 창합문이, 그 안에 다시 회경전의 전문(殿門;會慶門)이 있었다. 건덕전 앞에는 건덕전문·흥례문(興禮門)·의봉문이 있었으며, 의봉문 밖에 구정(毬庭)이 있었다고 한다. 중앙의 회경전터에서 동벽까지 135m, 서벽까지 230m, 승평문까지 250m 정도이며, 궁궐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하여 좁고 긴 경사면에 많은 건물을 계단식으로 배치하였고 (밑에서 보면 건물의 지붕이 서로 장관을 이룬다), 문과 문 사이를 연결하는 계단이 지금도 남아 있다 (네이버대백과 및 다움 발췌).

궁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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