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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불사의 무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南風
작품등록일 :
2022.05.11 15:30
최근연재일 :
2022.06.16 09:59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160
추천수 :
135
글자수 :
152,061

작성
22.05.12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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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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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
10쪽

불사의 무사 - 2

DUMMY

제 2 화 용병 무명(無名)


갑옷의 사내가 탄 우마차가

하남성 바깥 남쪽 성벽 근처의

마을에 도착했을 때,

해는 완전히 져서 밤이 되어있었다.


다스리는 자들과

다스려지는 자들을

명확히 나눠주는,

깊고 넓은 해자(垓字)의

시커먼 물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사내는

해자의 바깥 경계를 따라

낡은 판잣집들이 길게 늘어선

허름한 동네 어귀의 창고 옆에

마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낡고 비좁은 창고 안은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쓰는

농기구가 가득 들어차있었고,

한쪽 구석에 몸을 눕힐 만한

작은 잠자리도 마련되어있었다.


창고의 낡은 지붕 여기저기가

조금씩 부서져

차가운 밤바람이 스며들어왔지만

밤이슬을 피하기엔 충분했고,


사내는

구석자리에 편히 몸을 뉘였다.


부서진 지붕의 틈을 통해

별이 빛나는 밤하늘의 풍경이

사내의 시선에 들어왔다.




갑옷의 사내는

얼마만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이렇게

인간이 만든 구조물 안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 것은

도대체 몇 년을

땅속에서

잠들어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농부의 심장을 먹고

인간의 이성(理性)을 되찾은 뒤로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도덕과

생활양식을 따라

자신의 육체가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농부의 심장을 빼앗고

농부의 장기들과

근육을 뜯어먹은 후,

미칠 듯이 밀려오던

갈증과 허기가 가셨다.


그러자

사내의 뇌는

인간의 뇌처럼

변해가기 시작했다.


소변이 마렵다거나 하는

정상적인 생리현상을 느꼈고,


여기저기

헤지고 찢어진 옷차림 같은

비루한 자신의 외양(外樣)에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그 무엇보다도

자신과 아무런 은원(恩怨)도 없는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는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




천천히 사람들의 온기를 찾아

이곳까지 이동하는

반나절동안,


새로운 심장이

다시 몸 안에 자리 잡던

어마어마한 육체의 고통보다,


자신이 죽인

무고한 농부에게 드는

죄책감이


훨씬 더

사내를 아프게 괴롭혔다.


사내의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농부의 기억과 경험,



농부가 살면서 느낀

가장 강렬한 감정의 순간들이

자신의 머릿속으로

마구 흘러들어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던

시간들이었다.


농부가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희로애락의 순간들이나,


가장 행복했던 기억,


자신의 손에

죽기 직전의 공포까지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 전체를

몇 시간에 걸쳐

자신의 기억 속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새로운 마음이

급하게 탄생하는 과정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순리를 거스르면

반드시 탈이 나는 법,


사내는

마치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자신의 존재에 대해

거의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라는 자아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무언가 단상처럼 떠오르는

강렬한 장면 몇 개는 있었다.




숨이 막힐 듯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


어둡고 거대한

창고 같은 곳에 모여 있는

백여 명 정도의

어린 소년과 소녀들.


인간의 사지(四肢)와 핏줄기가

천지사방으로 튀어 날아다니는

전장(戰場)의 잔혹한 풍경.


검은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며

그 속을 휘젓고 다니는

빨간 갑주를 두른 자신의 모습.


그리고

나머지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의 나이도, 이름도, 아무것도...


그저 ‘나’라는 존재만

인식할 수 있었고,


‘살아있다’라는

느낌만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이 심장을 빼앗은

농부의 모든 것을

짧은 시간 속에

강제적으로 받아들이며,


농부가 살면서 겪었던

강렬한 순간들에 대한

감각과 기억까지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나 아닌 남,



타인의 삶의 모든 것을

‘강제로 공감(共感)’하게 되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밤하늘을 보면서

도대체 얼마만인지 모를

편안한 잠을 청하려했던 사내는,


자신이 죽인 농부의 기억이

하나씩 떠오를 때 마다,

엄청난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농부와 아내가

결혼식 날 환하게 웃는 모습,


아이가 걸음마를 떼며

처음으로 걸었을 때의 기쁨 등등


그런 장면들이

마치 송곳처럼

사내의 머리를

간헐적으로 찔러댔다.


사내는

농부의 기억 하나 하나에

온몸을 덜덜 떨 정도로

괴로워했다.


난 도대체 왜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가...


아니 그 전에,

난 도대체 누군가?


사람인가? 아님 괴물인가?


설령 가족처럼

피로 이어진 사이일지라도,

사람과 사람사이에

적절한 거리감이 존재하고

인류의 역사 속에서

‘자아와 타인’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으리라.


내가 아닌 ‘남의 모든 것’을

공감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고


설령 된다하더라도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다.


세상의 법칙에 거스르는

이질적인 존재,


갑옷의 사내는

새벽하늘이 밝아올 때까지

계속 고통과 죄책감에 휩싸여

결국 잠들지 못했다




아침이 되자

사내는 허기를 느꼈다.


이번엔

‘사람을 먹고 싶다’ 같은

비정상적인 허기가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러운 공복감이었다.


따뜻한 국과

갓 지은 밥이 먹고 싶은

그런 허기.


밤새워

마음의 고통에 시달린 탓에

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웠지만


사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창고 밖으로 나갔다.




사내는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차분히 생각해보았다.


농부의 심장을 빼앗아

다시 살아났을 때,


자신의 머릿속에

종소리처럼 울리던

무언지도 모를 것을

"반드시 찾아라."는 명령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밤새워 사내를 괴롭히던

농부의 일생도

더 이상 머릿속을

파고 들지 않았다.


사내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딱 두 개밖에 없었다.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고 싶다’와

‘북쪽으로 가야한다’는 막연한 직감.




사내는 일단 우마차를 살펴보았다.


소는

창고주변의 풀을 뜯고 있었고

마차에 실린 짐 위에는

밤이슬이 내려앉아

약간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어젯밤 내내

농부가 30년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농부의 이름은 이소준,


나이는 서른둘,


가족은 칠순을 앞둔 노모와

동갑내기 아내,

아홉 살 아들과 여섯 살 딸 하나,


아버지는 십년 전에 돌아가셨고,


형이 둘 있었지만


한 명은

성벽보수 노역에 나갔다가

사고로 죽었고,


다른 한 명은

저 멀리 장안(長安)에서

장사를 하고 있어

만난 지가 한참 되었다.


그는

농번기엔 가족과 함께

하남성 성벽 근처의

서쪽 마을에 살며

농사를 지었고,


수확이 끝난 농한기엔

상단(商團)인 ‘청루회관’의

짐꾼으로 일했다.


어젯밤

자신의 머릿속에 흘러들어온

농부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우마차에 실린 짐들은

이번 농한기에 일한 삯으로

청루회관에서 받은 쌀이었다.


실려 있는 양으로 봐선

여덟 가마니쯤,


아마 이번 겨울을

가족과 함께 버티기 위한

소중한 식량이리라.


사내는 일단

농부에게 받은 기억을 바탕으로

계획을 세웠고,

천천히 움직였다.




일각 뒤


그는

우마차를 끌고 해자 앞에서

성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고,


그의 주변엔

성문이 열리기만 기다리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잠시 후

진시(辰時)를 알리는 북소리가

성루에서 울리고


하남성의 거대한 남쪽성문이

해자 위로 천천히 내려왔다.


성문이 큰 소리를 내며

지면에 닿자


거대한 성문은

깊고 넓은 해자위에 놓인

튼튼한 다리로 바뀌었다.


성문 앞에는

경비를 서는

스무 명 남짓의 병사들과


그들을 통솔하는

관리 하나가 나와서

통행증 검사를 하고 있었다.


사내는

우마차의 수레 구석에

사물함처럼 만들어진

조그마한 상자에서

통행증을 꺼내

관리에게 보여주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사내의 우마차는

분주히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하남성의 중앙로를 지나

부유한 상인들이 모여 사는

청기와 거리로 들어섰다.


우마차가

엄청난 크기의 대문 앞에 멈췄다.


대문의 양쪽에 버티고 서있는

두껍고 큰 기둥사이에

힘 있는 글씨로

‘흑랑회(黑狼會)’라고 쓰여 있는

현판이 걸려있었다.


사내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문 옆에 있는

문지기의 처소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가늘고 긴 수염을

양 갈래로 기른

중년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갑옷의 사내가 물었다.


"여기가

막소용 대인이 운영하시는

상단이 맞습니까?


용병과 선원을 모집하고

노예들을 거래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문지기는

자신의 수염 한쪽을

만지작거리며

갑옷의 사내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대답했다.


"맞긴 한데...


무슨 일로 오셨나?"


"용병 일을 구하러왔습니다."


"오늘 심사가 열리려면

아직 한시진이나 남았는데...


어쩌시겠소?

들어와서 기다리겠소?"


"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근데

마차에 짐이 좀 실려 있습니다만..."


"그럼

요 건너편 청호객잔에 가면

마차랑 짐도 맡길 수 있고

밥이나 술도 먹을 수 있을 거요.


거기에 있다가

시간 맞춰 오시구려.


이곳은

외지인의 마차와 짐을

보관해 주지 않으니...


오늘 심사는

평소보다 많은

백 명정도가 신청했으니

꽤 오래 걸릴 거요.


배나 채우고 오시오."


"네,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지기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고,


사내는 우마차를 끌고

청호객잔으로 향했다




짐과 우마차를 객잔에 맡기고,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랬는지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고기볶음과 야채절임을 안주 삼아

술 한 병과 밥 세 공기를

깨끗이 비운 갑옷의 사내가


‘흑랑회’의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넓은 연무장은

용병 일을 구하러

중원 각지에서 몰려온

거친 사내들로

매우 북적거리고 있었다.


사내는 접수처로 걸어가

문서를 작성하였다.


나이와 경력, 가족관계, 고향 등을

거짓으로 간단히 적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이름을 적는 곳에서

사내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갑옷의 사내는

잠깐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붓을 놀려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무명(無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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