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좀비 킹(1)
65화. 좀비 킹(1)
시진 일행이 다시 찾은 짙은 먹구름이 드리운 도시는 매케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변이된 좀비들에 의해 내성이 함락되었거나 도시의 경비대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듯 했다.
하늘 높이 솟은 거대한 성벽 위에는 말라붙은 핏자국만이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고, 성문 너머 많은 사람들로 붐볐을 도시는 텅 빈 건물과 가끔씩 마주치는 좀비들만이 시진 일행을 맞이한 탓에 마치 유령 도시를 방문한 듯 한 착각이 들게 했다.
- 그오오오오오.
- 서걱. 퍽.
살아남은 사람들은 좀비들을 피해 모두 지하로 숨어들었거나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 여긴 시진 일행은 갑옷의 이음새를 조이며 기르틴과 에런을 앞세워 드문드문 마주치는 좀비들의 머리통을 깨부수며 텅 빈 도시를 가로질러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내성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나마 드문드문 보이던 좀비도 모두 내성으로 가버린 것인지 시진이 도착한 텅 비어버린 중앙광장은 부서진 집기들과 말라붙은 피딱지들만 가득했다.
“에런 그리고 샐리. 너희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 알지? 준비가 끝나면 저기 보이는 첨탑에 큰 거 한 방 날려주는 거 잊지말고.”
- 시진. 회복한지 얼마되지 않았으니 네놈도 너무 무리하진 말거라.
“알았어. 나도 조심할테니 다들 몸 조심하고. 우리가 내성으로 들어가면 다들 움직여.”
일행과 헤어진 시진과 잿빛 남매가 내성에 가까워지자 굉음과 함께 불기둥이 치솟았다. 도시가 좀비들에게 완전히 점령당했다는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에 안도하며 바닥을 박차 빠르게 움직였다.
- 그오오오오...
“막아! 더 이상 뒤는 없다! 무조건 버텨라!”
에런의 예상대로 놈들은 높고 단단한 내성벽을 뚫고 영주성 인근을 포위하듯 넓게 퍼져 있는 수천 아니 수만을 웃도는 좀비들.
그리고 제 몸만한 방패에 몸을 맡긴 경비대원들이 좀비들을 돌격을 막아내고 나면 장창을 이용해 밀려나는 좀비들을 공격하는 강철 갑옷을 입은 기사단과 경비대원들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으아악...크윽..”
- 피슈슛! 슈슛!
장창에 의해 쓰러진 좀비의 사체를 발판 삼아 경비대를 뛰어 넘어 영주성으로 진입을 시도는 좀비 러너.
- 그오오오...켁..
- 푸푸푹.
“화살을 아껴라! 방패병을 뛰어넘는 놈들에게만 발사하라!”
어기적거리는 좀비들 사이를 비집고 빠르게 달려와 방패병의 머리 위로 높이 도약하는 좀비 러너들에게 영주성의 담벼락 위에서 날아든 화살 세례를 버티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한 놈들에게 날카로운 창날이 박혀들었다.
- 그오오오오오!!!
하지만, 강철 기사단과 경비대만으로 좀비들을 막아내기에는 놈들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뒤이어 나타난 일반 좀비들보다 배는 더 큰 덩치와 근육으로 뒤덮힌 좀비 구울이 등장하며 상황은 반전되었다.
- 퍼퍼퍽!
“으아악! 살..”
그동안 일반 좀비들의 돌격을 잘 버텨내던 방패병들이 좀비 구울의 주먹질 한 번에 뚫리기 시작했고, 경비대의 방패병이 쓰러진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수 많은 좀비들에 의해 경비대의 진형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싸~~~바~~알~라~~!”
- 그오오? 커켁.
시진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투스칸의 마기와 트리엘의 마기 그리고 진혈의 혈청을 흡수하며 자연스레 묻어난 날 선 기운이 시진의 의미없는 함성에 피어처럼 스며들어 놈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참격!”
- 서걱. 퍼퍽.
시진의 함성에 경직된 놈들을 향해 날아든 반월형의 참격은 후열의 좀비들을 도륙했고, 그 뒤를 이어 시진과 타르웬의 공격에 영주성으로 향하던 놈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시진과 타르웬에게로 집중 되었다.
“마카도닉 제 3식 난격!”
- 파파팟. 서걱. 서걱.
눌러 붙은 살점이 가득한 이빨을 들이대는 아가리를 피해 뒤로 물러나며 베고, 시진에 의해 수직으로 갈리진 놈의 머리통 너머로 보이는 좀비의 미간에 검을 찔러 넣고, 우측으로 회전하며 자연스레 놈의 머리통을 빠져나오는 검을 시진의 측면에서 달려드는 놈의 목을 베어냈다.
- 휘리릭. 퍼퍽. 서걱.
- 그오오오오!!
시진의 뒤에 바짝 붙은 타르웬은 사슬 달린 단창을 마치 쌍절곤처럼 휘두르며, 시진의 후미를 노리며 달려드는 좀비들을 떨쳐내기 위해 한시도 쉬지않고 몸을 놀렸다.
시진과 타르웬에 의해 후열의 좀비들이 도륙당하자 영주성으로 향하던 전열의 좀비 러너와 좀비 구울이 비산하는 살점을 뚫고 달려왔다.
“레인보우 쉴드!”
- 그오오오...퍼퍽!
시진을 둘러싼 좀비들의 머리 위로 달려들던 좀비 러너는 시진이 만든 오색빛 쉴드에 부딪혀 튕겨나며 뒤를 이어 시진을 향해 몸을 날린 좀비 러너들과 뒤엉키며 바닥에 꼬꾸라졌다.
- 콰콰쾅!
“시진 오빠! 저길 좀 봐요.”
시진이 검을 횡으로 크게 휘둘러 서로 뒤엉킨 좀비들의 목을 베어낸 순간. 내성벽 인근에 있던 교회의 첨탑이 굉음을 내며 무너지는 광경이 타르웬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에런과 샐리의 준비가 끝났나보네. 타르웬. 이제 우리 차례야!”
“네. 오빠!”
시진의 새하얀 검신을 따라 일어나는 바람 칼날을 좀비들을 향해 날려보낸 시진은 타르웬과 함께 기르틴과 골골이 1호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 그오오오오오...
“타르웬! 거리 유지해! 너무 빨리가면 안돼!”
“네. 오빠!”
시진과 타르웬은 좀비들과 불과 2~3m의 거리를 유지한 체 놈들을 이끌고 에런과 샐리에 의해 첨탑이 부서진 교회쪽으로 달렸다.
“초마검기! 추풍낙엽!”
- 슈슈슈슛. 퍼퍼퍽!
어기적거리며 쫓아오는 좀비들의 머리를 뛰어넘어오는 좀비 러너들은 시진이 바람 칼날을 머금은 초마검기로 인해 바닥으로 꼬꾸라지며 시진을 뒤따르는 좀비들의 속도를 늦췄다.
- 콰콰콰쾅!
- 그오오오...
내성벽에서 영주성까지 이어지는 쭉 뻗은 대로를 따라 이동하는 시진을 뒤쫓는 좀비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좁은 골목길로 접어드는 놈들을 향해 미리 상인협회 건물로 사용되던 5층 건물의 지붕에서 대기하고 있던 골골이 1호가 날린 마법 공격에 무너지는 단층 건물의 잔해와 함께 놈들도 매몰되었다.
- 휘리릭. 퍼퍽!
- 그오오옹..케켁.
미꾸라지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시진과의 거리가 좁혀들지 않자 뒤처진 좀비 구울들이 근처에 있는 좀비들을 잡아 시진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눈 먼 공격에 맞아 줄 생각이 없는 시진과 타르웬은 몸을 슬쩍 비트는 최소한의 동작만으로 피해내며 놈들과의 간격을 유지하며 달렸다.
“오빠! 저기 기르틴이예요!”
“그래. 얼마남지 않았어. 조금만 더 힘내!”
영주성을 포위하고 있던 수 천을 넘어 만 단위의 좀비들이 시진을 따라 이동할 때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바닥이 들썩 거렸다.
첨탑이 부서진 교회의 맞은편 건물의 지붕에 올라 시진을 향해 팔을 흔들며 신호를 보내는 기르틴을 향해 시진과 타르웬은 달리고 또 달렸다.
“기르틴! 지금이야! 신호를 보내!”
- 피슝~!
타르웬의 키를 훌쩍 넘는 높은 담벼락과 3층과 4층으로 된 고급 주택들이 즐비한 주택가로 접어들며 시진이 기르틴을 향해 소리쳤다.
새하얀 벽돌로 된 담벼락과 자그마한 정원이 딸린 3층 주택의 지붕에서 시진의 지시에 따라 하늘 높이 쏘아올린 기르틴의 불화살이 짙은 먹구름 너머에서 목이 빠져라 도시의 잿빛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투스칸의 눈에 포착되었다.
- 크흠. 그럼 이제 내 차례로구나. 디그!
* * *
“투스칸님. 시진이 형은 괜찮겠죠?”
“아까부터 자꾸 재수 없는 소리할래? 시진 오빠는 피곤해서 잠든 것 뿐이라고! 그렇죠? 내 말이 맞죠?”
- 크흠. 다들 시끄럽다.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것이니 모두 밖으로 나오너라.
곤히 잠든 시진의 곁에서 시끄럽게 떠뜨는 일행들을 데리고 막사 밖으로 나온 투스칸에게 다가간 에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투스칸님... 저주술사는 이미 죽었는데 왜 좀비들은 멀쩡한 거죠?”
- 흑마법에 의해 되살아난 언데드가 아닌 생사충이 인간들의 머리에 들어가 좀비가 된 것이라 저주술사가 죽어도 이미 생사충에 의해 좀비가 된 인간들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니라.
“에엑? 그럼 어떡해요? 외성에 살던 사람들만 해도 수천 아니 만 단위는 될텐데... 그럼 저주술사는 왜 찾아 온 거예요?”
“야이 멍청아! 이제껏 뭐 들은거야! 저주술사가 좀비들의 변이를 촉진 시키는 것을 막으려고 우리가 여기 온 거잖아!”
시진이 의식을 잃을 정도로 무리를 하며 저주술사를 처치했지만, 좀비들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투스칸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기르틴을 향해 모두를 대신해 타르웬이 비난을 퍼부었다.
- 크흠. 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구나. 일일이 쳐죽이는 수 밖에...
칠흑같은 어둠을 밝히는 모닥불 곁에 모인 일행들을 바라보며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투스칸의 말을 들은 에런이 깊은 숨을 내쉬며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인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순간.
귓가에 들리는 물소리에 번뜩 치켜뜬 눈을 빛내며 개천을 따라가던 에런의 시선이 도시에 멈췄다.
“투스칸님. 숙주에 기생하는 생사충이 물에 잠기면 어떻게 될까요?”
- 갑자기 무슨 소리냐? 당연히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생사충이 밖으로... 에런!! 뭔가 방법을 찾은 것이구나! 그게 무엇이냐!
당연한 것을 자신에게 물어보는 에런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던 투스칸이 뒤늦게 에런의 의도를 눈치채며 에런의 멱살을 거며쥐고 답을 재촉했다.
“커..컥...이것..좀..”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격리시켰던 격리소를 관통하는 개천은 알카사스 산맥에서 시작된 코센트 강과 만나 뉴캐슬을 관통해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수 만명의 사람들이 생활하는 도시에서는 당연히 코센트 강물을 끌어와 생활용수로 사용을 하고 있었고, 에런은 도시로 흘러들어가는 코센트 강물을 이용해 좀비들을 처리하자고 말하고 있었다.
- 디그! 디그!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기르틴 대신 차라리 내가 갈 걸 그랬나봐요.”
“...”
투스칸의 디그 마법으로 기초를 다지고 도시로 떠난 기르틴을 부러워하는 타르웬과 침묵을 지키는 샐리에 의해 도시로 흘러가는 상수관을 막는 둑이 서서히 형태를 갖춰갔다.
에런은 뉴캐슬에서 용병 생활을 하며 익혔던 도시의 지리를 되집으며 기르틴과 함께 도시에 잠입하여 외성으로 흘러들어가는 상수관을 모두 잠궈버렸다.
* * *
시진과 헤어지고 내성에 위치한 상수도 관제실로 잠입한 에런과 샐리는 거미줄처럼 연결된 상수도관 중에서 시진과 약속된 도시의 귀족들이 거주하는 주택이 밀집한 지역을 제외한 모든 상수도관을 잠궈버렸다.
그리고 시진이 좀비들을 이끌고 주택단지로 들어오는 순간. 짙은 먹구름이 가득한 잿빛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화살을 보며 다가 올 충격에 대비했다.
- 퓨슝! 퓨슝! 피피핑!
시진을 뒤쫓아 들어온 수 많은 좀비들이 주택단지 깊숙이 몸을 들이미는 순간.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주택단지의 바닥이 들썩였고, 즐비한 고급 주택에 연결된 상수도관이 폭발하듯 지반이 약한 곳부터 세찬 물줄기를 쏟아냈다.
- 콰콰콰콰콰콰쾅!
- 그어어어어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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