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템빨(1)
45화. 템빨(1)
- 스파아앗!
“으아아악! 씨발!!”
- 쿠당탕!! 텅.텅.
“아이고. 엉덩이야...”
곳곳에 붉은 화염이 치솟아 있는 마력 관제실의 부서진 담벼락 너머의 허공에 균열이 일어나며 오색빛깔 스파크와 함께 나타난 원형의 차원문은 핑크색 머리의 인간을 뱉어내듯 쏟아내고 제 할 일을 마친 듯 서서히 사라졌다.
- 시진. 괜찮은 것이냐?
“씨발...거 신이라는 양반이 쪼잔하게 곱게 보내주면 어디가 덧나? 투스칸. 마르쿠탄이 원래 이렇게 쫌생이였어?”
오랜시간 공석이 된 자신의 사도가 되어달라는 운명의 신 마르쿠탄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기에는 다혈질인 마르쿠탄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시진을 토트넘으로 되돌려 보내주었다. 하지만 자신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지 않은 시진이 못마냥한 마르쿠탄의 마음을 대변하듯 오색빛깔의 차원문은 시진을 바닥에 침을 뱉듯 툭 뱉어내고 사라졌다.
“시진...오빠?”
“응? 타르웬? 이 난장판은 뭐야? 분명 피아종 성당에 있었는데?”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마물들을 상대하는 타르웬의 머리 위에 나타난 차원문에서 강력한 몬스터가 나타날까 잔뜩 긴장했던 타르웬의 예상과는 다르게 허공에서 떨어져내리며 바닥을 굴러 자신의 앞으로 다가와 일어서는 핑크색 머리칼을 가진 인간의 얼굴을 확인한 타르웬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오빠?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이 난리가 났는데 오빠를 찾을 수가 없어서 얼마나 걱정했는줄 알아요?”
“어...그게...많이 걱정했어? 금방 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이 좀 생겨버렸거든. 그보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여관이 있는 제3지구에서 제 1지구의 마력 관제실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시진을 찾을 수 없었던 타르웬은 겉으로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못내 신경 쓰였던 타르웬은 시진의 얼굴을 확인하고 재빨리 달려와 시진의 품에 안겨 참아왔던 눈물을 흘렸다.
시진의 품에 안겨 눈물을 훔치는 타르웬의 등을 토닥이는 시진을 바라보던 투스칸의 감각에 불현듯 느껴지는 아주 미세한. 그러나 쉬이 무시하기는 꺼림칙한 직감의 경각심이 포착됐다.
- 크흠...
투스칸은 잠시 눈을 감고 주변으로 감각을 넓혔다. 부딪히는 병장기 소리 사이에서 들려오는 신음과 괴성 사이로 스며드는 복잡하고 다양한 냄새들. 마력을 머금은 바람에서 느껴지는 세밀한 변화들이 핑크빛 검 투스칸의 뇌리를 파고 들었다.
그 자극들을 버무리고 뒤섞으며 내놓은 결과는 미약하지만 익숙한 이전보다 더 짙어진 트리엘의 마기가 보내는 경고였다.
- 시진... 아무래도 놈들이 먼저 움직인 것 같구나. 옅은 트리엘의 마기가 느껴지는구나.
“트리엘? 갑자기? 아직 봉인도 못 풀었는데... 도망가긴 이미 늦은 것 같고... 괜찮겠지?
마르쿠탄과의 만남에서 몇몇 스킬을 얻었지만, 아직 투스칸의 두 번째 봉인을 풀지 못한 시진은 트리엘의 마기가 느껴진다는 투스칸의 말에 긴장된 표정으로 품에 안긴 타르웬을 떼어내며 물었다.
- 네놈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놈들과 함께 움직인다면 괜찮을 것이야.
* * *
“저 놈이다! 저놈을 잡아라!”
“바르쿠스님. 반드시 살려서 데려와야 되는 것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허공에 나타난 오색빛깔 차원문에서 떨어져 내리는 인간을 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바르쿠스의 손목을 붙잡으며 반드시 생포해야 된다는 에밀리의 지시를 섀넌이 덧붙였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조금만 더 몰아 부친다면 금빛 기사단을 잡을 수 있었는데 아쉽게 됐군. 루카스 가자!”
금빛 기사단장 골든을 처리할 수 있는 기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느닷없이 나타난 놈을 발견한 바르쿠스는 아쉬운 마음을 밖으로 내뱉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를 잊으시면 안됩니다. 금빛 기시단 따위야 언제든 처리할 수 있지만 저 놈만은 절대 놓치면 안됩니다.”
“알았다니까. 바가지 긁는 마누라도 아니고 잔소리는...설마... 네년도 내 밑으로 들어오고 싶은 거야?”
“바르쿠스님! 농담이 과하시군요. 어서 가서 놈이나 잡아오시지요.”
거사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계획에 없던 바르쿠스가 참여한 것부터 탐탁치 않았던 섀넌은 자신을 향해 추파를 던지는 바르쿠스에게 뱀파이어 퀸 에밀리 만큼은 아니지만 가면 아래로 드러난 날렵한 턱선과 오똑한 콧날을 자랑하던 섀넌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지며 음성이 날카로워졌다. 냉기를 넘어서 독기까지 느껴지는 말투였다.
“흠.흠. 알았어. 알았다고. 가서 잡아오면 될꺼아냐. 여기 여자들은 하나같이 사납단 말이야. 뭐 그게 매력이긴 하지만... 루카스. 자네 생각은 어때?”
“섀넌의... 흡! 어서 가시죠.”
바르쿠스와 잡담을 하며 몸을 일으키던 루카스는 냉기를 넘어 살기를 풍기는 섀넌과 눈이 마주치자 다급히 키메라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 내렸다.
* * *
“투스칸. 어째 저놈들이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 놈들도 너의 존재를 인지한 것 같구나. 어서 담벼락 안으로 합류하거라.
금빛 기사단을 3중으로 포위하며 압박하던 놈들이 돌연 시진이 있는 방향으로 맹렬히 달려오는 것을 본 투스칸은 담벼락 안에 있는 마법사들과 합류하라고 말했다.
“타르웬. 기르틴을 찾아서 세븐 핸즈님과 함께 움직여.”
“시진 오빠는요? 혼자 또 어디 가려구요?”
시진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끔찍한 몰골의 각종 키메라들을 가르키며 말했다.
“저놈들 보이지? 아무래도 날 쫓아오는 것 같거든. 괜히 옆에 있다 불똥 튀지말고 세븐 핸즈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
“오빠!!”
시진은 타르웬에게 세븐 핸즈와 합류하라는 말을 남기고 앞을 가로막는 구울 키메라들에게 투스칸을 휘두르며 무너진 담벼락을 향해 달렸다.
- 시진. 지금이다!
무너진 담벼락의 잔해를 뛰어넘은 시진은 투스칸이 보내는 신호에 맞춰 아공간에서 화염병을 꺼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던졌다.
- 콰아아앙! 화르륵!
“크에에엑!”
담벼락의 잔해를 뛰어넘으며 시진이 놈들을 향해 투척한 화염병들이 연이어 폭발하며 무너진 담벼락의 입구가 뜨거운 불길로 막혔다.
“네 이놈! 놈을 잡아라! 절대로 놓치면 안된다!”
무섭게 번져가는 화염 장벽 뒤로 숨어버린 시진을 쫓는 루카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키메라들을 다그쳤다.
루카스가 외치는 고함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검을 휘두르는 시진의 검에 바람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마카도닉 검술에 스톰거쉬를 섞기 위해 행했던 동작이 스킬화되어 온몸 구석구석에서 피워오르기 시작했다.
스킬화된 스톰거쉬는 시진이 머리로 생각하기에 앞서 몸이 먼저 움직였다. 물론 아직 익숙하지 않아 생각이 뒤따랐지만, 시진의 허리춤에서 시작한 검이 상단으로 이어지는 동안 바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카도닉 스톰!”
시진과의 거리를 가늠하며 검의 궤적을 파악하는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하급 뱀파이어는 시진의 검이 닿기도 전에 일어난 바람에 의해 머리가 쪼개지고, 바람을 뒤따라 온 투스칸이 쪼개진 머리를 뚫고 들어가 놈의 심장을 꿰뚫었다.
“이 무슨...크윽...”
- 서걱.
시진의 검을 따라 일어난 바람을 무협지의 고수가 검기를 날리듯 전방을 향해 쏘아보내며 흡혈 마물들과 키메라 무리를 헤집고 다닌 시진이 마침내 토트넘의 마법사들과 조우했다.
“하아... 안녕하세요. 세븐 핸즈님의 의뢰를 받은 C등급 용병 시진이라고 합니다. 지금 상황이 급해서 자세한 사정은 추후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저기 무너진 담벼락에 붙은 불이 꺼지면 놈들이 들이닥칠 거예요. 그때 놈들에게 마법 포격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다짜고짜 찾아와 그런말을 하는...아니 한낱 용병에 지나지 않는 자네의 말을 우리가 왜 따라야 하지?”
온 몸에 피칠갑을 한체 눈앞을 가득메운 흡혈 마물들을 순식간에 베어내며 나타난 C등급 용병이라는 사내의 실력에 놀랐지만, 마법 포격이 동네 새총 쏘듯 쏘면 되는 줄 아는 사내의 부탁에 어이가 없는 마법사들이 꼬장꼬장한 눈으로 시진의 말을 되받았다.
- 푸욱.
- 째애액.찍.
“제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알지만, 저기 보이시죠? 어? 지금도 몇 놈이 뚫고 들어오네요. 저거 뚫리면 못 막아요. 저보다 더 잘 아실 것 같은데... 부탁 좀 드릴께요.”
시진의 말을 되받는 마법사의 발치에서 아가리를 들이미는 놈의 머리통에 역수로 잡은 투스칸을 박아 넣은 시진이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흡... 거... 말을 하고...하던가... 흠.흠... 우리가 포격을 가한다해도 전부를 막을 수는 없네.”
온 몸에 마물의 검붉은 피로 흠뻑적신 눈앞의 사내가 역수로 잡은 검을 자신의 다리 사이로 내려찍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오므리며 헛숨을 들이킨 마법사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네. 그 정도면 충분해요. 놈들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것만 막아주시면 돼요. 나머지는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그럼 마법사님만 믿고 갑니다.”
* * *
- 크오오오!
“마카도닉 스톰!”
시진이 마력을 흘려보낸 투스칸을 전방을 향해 휘두르자 투스칸을 감싼 바람과 함께 바닥을 뒹굴고 있던 조각난 마물들의 사체가 떠올라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 퍼퍼퍽!
- 크..웩..!
시진이 만든 불길을 뚫고 나오며 괴성을 내뱉는 놈을 향해 날아든 마물들의 파편에 얻어맞은 놈은 다시 불길 속으로 넘어지며 전신에 불이 옮겨 붙어 단말마를 지르며 생을 마감했다.
- 취리리리릭.
“이놈! 어디있느... 무엇..”
마르쿠탄의 분신체와 비슷한 덩치를 자랑하지만, 민머리였던 분신체와는 달리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놈이 시진의 팔뚝만한 사슬에 연결된 앵커를 맹렬한 속도로 휘둘러 불씨를 꺼버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 콰콰콰콰쾅!
“크..악..!”
시진이 어둠에 스며드는 것과 때를 맞춰 앵커를 휘돌리며 의기양양하게 모습을 드러낸 해적왕 루카스를 향해 파이어 볼을 앞세운 수십여발의 마법 포격이 날아와 폭발했다.
- 시진. 저 놈이 가진 무기에서 트리엘의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으니 조심하거라.
“은신!”
불씨를 꺼트리며 등장한 루카스는 마르쿠탄의 분신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낮았다. 기껏해야 리버사이드 타운을 습격했던 오르쿠 정도의 존재감을 느낀 시진이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에 투스칸의 권능 은신을 사용해 어둠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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