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불타는 도시(5)
43화. 불타는 도시(5)
자신의 흡혈 마물들만 뒤로 물린 체 바르쿠스와 루카스의 항의를 무시하고, 금빛 기사단과 내성에서 지원 나온 병력에 의해 절반이 넘는 바르쿠스의 키메라와 루카스의 구울이 갈려나가는 것을 지켜보던 섀넌이 두 눈을 빛내며 주문을 외웠다.
“블러드 엑스터시!”
키메라와 흡협 마물들을 상대하며 생긴 찢기고 베인 상처를 통해 놈들의 피가 스며들었고,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신관들이 외운 신성주문이 매개체가 되어 트리엘의 유물을 이용해 혈액속에 심어놓은 트리엘의 마기가 신성주문과 충돌하며 혈관을 타고 정수리의 신경계를 조작해 일시적이나마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불사군단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 두근.두근. 죽여. 피...피가 필요해.
“끄어어억!”
“제임스! 정신차려!”
- 서걱.
“으아악..”
방금 전까지 함께 마물들을 상대하며 등을 맡겼던 동료가 치료를 위해 후방으로 물러난 잠깐의 시간동안 적이 되어 나타나자 경비병들은 동요에 빠졌고, 심지어 은빛 기사단조차 붉게 변한 눈으로 아군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광경에 금빛 기사단 마저 술렁거렸다.
- 두근.두근. 죽여. 모두 죽여버려!
“끄어어어어각!”
머릿속에 계속해서 들리는 목소리에 저항할수록 두통이 심해졌고, 결국 두통을 견디지 못해 구울로 변해버린 동료를 향해 차마 검을 휘두를 수 없어 망설이는 동안 놈들은 붉게 변한 눈을 번뜩이며 다가와 스스럼없이 검을 휘두르며 아군을 공격했다.
- 퍼퍼퍽!
- 쿠웨웨엑!
뒤이어 괴성을 지르며 다가오는 키메라와 구울 그리고 흡혈 마물들을 발견한 골든 단장은 구울화가 진행되고 있는 은빛 기사단장 설레반을 검집으로 후려쳐 기절시킨 뒤 마음의 결단을 내린 듯 공격 명령을 내렸다.
“모두 공격! 구울화가 진행된 이상 눈앞에 있는 자들은 더 이상 아군이 아니다! 모두 공격하라!”
“단장님! 하...지만...”
“닥쳐라! 명령이다! 금빛 기사단! 구울화가 진행된 아군을 모두 제압하라!”
골든 단장 또한 아군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자신마저 망설인다면 아군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것을 염려해 이를 악물며 금빛 마력을 머금은 검집을 휘둘러 구울화가 진행된 아군을 두들겼다.
- 퍼퍼퍼퍽퍽!
“크으으악!”
눈앞에서 구울화가 진행되고 있거나 이미 구울화된 은빛 기사단을 골든 단장이 두들기며 팔과 다리를 모두 부러트리는 것을 기점으로 금빛 기사단 전원이 검집에 금빛 마력을 담아 구울화가 진행된 은빛 기사단을 두들겼다.
한때는 친구였고, 이웃이었고, 친구의 아버지였던 동료에게 차마 검을 내밀지 못해 망설이다 구울화가 된 사람들의 공격을 받아 죽어가는 또 다른 동료를 바라보던 경비대원들은 굳은 얼굴로 한때 아군이었던 사람들을 두들기며 제압하는 금빛 기사단을 보며 하나, 둘 정신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쓰러진 동료의 핏물을 밟으며 금빛 기사단을 따라 무기를 들어 구울화가 진행된 동료였던 아군을 제압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금빛 기사단으로 하여금 동료를 공격하게 만든 원흉을 찾아 눈앞의 아군의 팔,다리를 부러트리면서도 주변을 살핀 골든 단장이 마침내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혈마법을 날리는 섀넌을 찾아냈다.
“금빛 기사단! 좌측 11시 방향으로 전원 돌격!”
골든 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분노한 금빛 기사단은 섀넌을 향해 일직선으로 놈들을 뚫어내며 달려갔고, 금빛 기사단이 지나간 자리에는 비산하는 놈들의 살점과 쏟아지는 핏물이 바닥을 질퍽하게 적셨다.
- 서걱.
검에서 2m에 가까운 금빛 마력을 뽑아낸 골든 단장이 앞을 가로막는 늑대 몸통에 황소의 머리를 이어붙인 키메라를 통째로 잘라내는 것을 기점으로 골든 단장의 뒤를 이어 금빛 기사단 전원이 금빛 마력을 담아 검을 휘둘러 앞을 가로막는 키메라를 베어내며 전장을 누볐다.
- 서걱. 푹.
“크아아악!”
* * *
- 쿵.쾅.쿵.쾅.
“제니퍼 언니. 무슨 소리 안 들려요? 쿵쾅되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은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요.”
“으음...혹시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아까 그놈 때문에 그러는 거야? 괜찮아. 좀전에는 방심해서 그런거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돼.”
제니퍼의 그림자에서 나온 하급 뱀파이어의 목을 잘라낸 후 들려오는 쿵쾅거리는 소리가 신경이 쓰인 타르웬은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없었다.
‘가만 이 소리는 설마... 내 심장이 뛰는 소리였어? 왜 이러지?’
하급 뱀파이어의 피가 타르웬의 몸 안에 들어가 벌어진 현상임을 알리 없는 타르웬은 갑자기 쿵쾅대며 뛰는 심장소리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세븐 핸즈의 지시에 따라 놈들을 향해 달렸다.
세븐 핸즈는 구울화가 진행되는 경비병과 은빛 기사단을 보며 경악했지만, 1천에 달하는 용병을 이끌고 있는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우리는 구울 키메라를 뚫고 청동 기사단과 합류한다! 모두 공격!”
- 슈슈슈슈슉!
세븐 핸즈의 지시에 따라 궁수들이 일제히 루카스 휘하의 구울 키메라를 향해 백여발의 화살을 발사하는 동안 세븐 핸즈를 선봉으로 한 1천의 용병들은 구울 키메라의 후미를 향해 달렸다.
손이 있어야 할 곳에 강철 칼날을 이어붙인 구울 키메라가 양팔을 교차하며 제 몸만한 칼을 내리치는 민머리 용병의 대도를 막았지만, 관성과 중력을 더한 대도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서걱.
- 끄어어억. 콰직!
“으아아악”
힘껏 내리친 민머리 용병의 대도는 구울 키메라의 양팔을 잘라내며 놈의 쇄골뼈를 부수고 가슴뼈까지 파고들고 나서야 멈췄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죽음을 겪었던 구울 키메라는 양팔이 절단되고 나서도 물러서거나 움츠러들지 않고 오히려 날카로운 이빨로 민머리 용병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 푸욱.
- 꾸어어억. 푹
“꺄..악.. 이.. 무슨..”
정리되지 않아 지저분하고 뻣뻣한 털이 가득한 몸통에 사람의 다리를 네 개나 이어붙인 구울 키메라의 이빨을 방패로 쳐내며 고개가 돌아가며 빈틈을 들어낸 놈의 목덜미에 곧게 뻗은 검을 쑤셔 넣었지만, 목덜미에서 검붉은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던 놈은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꼬리에 달린 강철 칼날을 자신의 목덜미에서 검을 뽑아내고 있는 포니테일을 한 용병의 옆구리에 박아 넣었다.
“놈들의 머리나 심장을 노려라!”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반격을 가하는 놈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용병들의 모습이 곳곳에 보이자 전투 도끼로 자신에게 달려는 놈의 머리통을 깨부순 세븐 핸즈가 크게 외쳤다.
- 차아아악!
- 꾸르륵...
“하아..하아...”
몸을 회전하며 창대를 크게 휘두른 궤적에 놓인 악어의 주둥이를 가진 구울 키메라의 목이 통째로 떨어졌다. 놈의 머리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반대편의 창날을 놈의 그림자에서 솟아나는 하수인으로 보이는 하급 뱀파이어의 심장에 찔러 넣은 타르웬이 숨을 골랐다.
- 두근.두근.두근
‘뭐지? 꽤 격렬하게 움직인 것 같은데...몸이 너무 가벼워... 쓸데없이 두근대는 심장은 또 뭐야...’
심장의 두근거리는 박동수가 커질수록 타르웬의 움직임은 빨라졌고, 구울 키메라의 움직임을 포착하자마자 몸이 먼저 반응을 보이는 현상의 이유를 찾지 못해 제자리에 멈춰 서서 고민하는 타르웬을 향해 바닥을 쓸며 소리없이 기어오는 뱀의 몸통에 어린 아이의 팔을 이어붙인 놈이 쇠붙이를 들고 고개를 쳐든 순간.
- 슈슈슉!
- 캬아아악!
연이어 날아 온 두발의 화살이 놈의 미간과 가슴에 박혔고, 다급히 휘두른 타르웬의 창날이 놈의 목을 잘라냈다.
“아까부터 뭘 그리 멍때리고 있어? 혹시 머리에 문제 생긴거야?”
“아...괜찮아. 문제는 무슨... 그냥 숨이 차서...고마워.”
평소보다 날렵한 몸놀림을 보이던 타르웬이 한 번씩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을 목격한 기르틴이 한걸음에 달려와 걱정스레 말했다.
“혹시...놈들의 끔찍한 몰골 때문에 그런거야? 놈들이 끔찍하기는 하지만 이보다 더한 것도 봤잖아. 기운내. 한 눈 팔다 훅 가는 수가 있어.”
- 따악.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기르틴의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어른 흉내를 내는 모습에 참을 수 없는 웃음보가 밀려와 기르틴의 이마에 딱밤을 날리며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아앗! 왜 때려! 기껏 생각해서 한 말인데!”
“쪼끄만 놈이. 흥...그래도 든든하네. 이 누나 걱정도 할 줄 알고 많이 컸네. 고블린의 화살에 맞아 눈물, 콧물 흘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야. 푸하하하.”
“이씨! 내...내가 언제!”
그래. 분위기 파악 못하고 쓸데없이 나대는 심장 따위가 뭐라고. 기르틴에게 걱정이나 끼치고... 이유야 어찌됐든 몸이 가벼우면 좋은 거니까. 정신차리자 타르웬!
“기르틴. 뒤를 부탁해!”
기르틴에게 등을 맡긴 타르웬이 구울 키메라들의 무리로 뛰어들어 창을 후려쳐 워해머를 내리치는 용병의 뒤를 덮치는 놈을 떨쳐냈다.
- 서걱. 퍼퍼퍽.
- 크...아..악!
창대를 피해 몸을 낮추며 다가오는 구울을 발견한 타르웬은 눈앞의 구울의 심장에 박아 넣은 창대를 잡고 높이 뛰어 올라 공중에서 심장에 박힌 창대를 뽑아내 자신을 향해 비린내 가득한 아가리를 벌리며 뛰어 오르는 놈의 목구멍에 창을 쑤셔 넣어 심장까지 뚫어 버렸다.
- 딸깍. 푹.
- 크윽...
타르웬이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을 노리며 다가 온 구울의 심장에 분리된 단창을 작살 꽂듯이 꽂아 넣은 타르웬은 짧은 단창을 뽑아내 자신의 간격 안으로 들어오는 놈들의 목을 통째로 잘라냈다. 타르웬은 쏟아지는 놈들의 피를 온 몸으로 맞으며 단창을 짧게 끊어치며 한 번에 한 놈씩 숨통을 끊어냈다.
- 두근.두근.
‘그래. 칼 끝만 보지말고 칼을 든 상대의 움직임을 보라는 엘리나 언니의 말이 이제 이해가 되네.’
두근대는 심장박동을 따라 혈관을 내달린 하급 뱀파이어의 피가 타르웬의 온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더욱 날렵한 몸짓이 가능하게 된 타르웬은 피칠갑을 한 체 한층 빨라지는 심장박동에 맞춰 창을 내질러 놈들을 쓰러트리며 옅은 미소를 짓는 타르웬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기르틴이 궁시렁 거리며 화살을 메겼다.
“미친년...좋단다...피칠갑한 게 뭐가 좋다고 실실 쪼개긴...어째 잠잠하다 했지. 누가 광년이 아니랄까봐. 쯧.”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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