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트라이앵글(1)
34화. 트라이앵글(1)
“살..살려...”
마법사는 반쯤 풀린 눈을 한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상반신을 가리고 바닥에 깊게 박힌 배틀 액스 사이로, 진득한 젤리 같은 피가 왈칵 새어 나왔다.
비록 투스칸이 품고 있는 어둠의 마기로 인해 상처를 치유하는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것 같지만, 아마도 저 진득한 젤리 같은 피가 상처를 치유하고 세포를 재생시키는 물질인 것 같았다.
“네놈 혼자 벌인 짓이냐?”
“사..살아...래..ㄱ..탱...”
- 크흠. 시진. 네놈은 왜 시체와 얘기하고 있는 것이냐?
“뭐? 시체?”
- 네놈 몫은 남겨두었으니 심장 안에 있는 마석을 뽑아내고 어서 포식을 사용하거라.
그제서야 투스칸의 의도를 알아챈 시진은 마법사의 목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마법사의 반쯤 풀린 눈이 다급히 요동쳤다.
- 콰직!
몸을 잃은 머리가 제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며 지하도시의 사람들을 납치하여 흡혈 마물들을 양산하던 이름 모를 마법사는 그걸로 끝이었다.
마법사의 머리가 제단 아래로 떨어지자 살아남은 흡혈 뉴트리아 무리는 더 이상 이곳에 미련이 없다는 듯 하수도의 공동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후우..”
마법사를 해치운 시진은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깊은 숨을 내쉬었다. 높은 스탯으로 인해 단단한 몸을 가졌으나, 마물들과 같은 재생력이 없는 시진은 바닥에 주저앉아 체력을 회복하며 마법사의 심장에서 뜯어낸 검붉은 마석에 단검으로 변화시킨 투스칸을 찔러 넣어 투스칸이 마력을 흡수하게 했다.
[띠링!]
[이름 : 유시진]
[레벨 : 9 ]
[근력 : 70 민첩 : 47.5 체력 : 48 마력 : 100]
[스킬창] [인벤토리]
[미분배 포인트 : 20]
[띠링!]
[스킬 각성: 기초 투척술(E)]
[띠링!]
[스킬 각성: 기초 액스 마스터리(E)]
[띠링!]
[스킬 각성: 기초 블런트 마스터리(E)]
“할렐루야. 아스라엘!”
투스칸이 마법사의 마석을 흡수하는 동안 포식을 사용하기 위해 마법사의 사체를 가리키는 순간. 레벨이 두 개나 오르며 시야를 어지럽히는 수 많은 알림창을 바라보며 시진은 아스라엘을 찬양했다.
“포식!”
[포식의 어금니가 먹이를 포식합니다.]
- 우적!
머리 잃은 마법사의 사체 위로 상어의 톱날 이빨을 닮은 반투명한 핑크빛 이빨이 나타나 마법사의 사체를 통째로 집어 삼켰다. 지난 번 흡혈 뉴트리아 때처럼 바닥에 붉은 피웅덩이를 만든 진득한 젤리 같은 피 한 방울조차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먹어치웠다.
[마기에 오염된 하급 뱀파이어 피에르 호비에르를 포식하였습니다.]
[양분을 흡수하여 마력이 5 상승합니다.]
[띠링!]
[마기에 오염된 하급 뱀파이어 피에르 호비에르의 특성 : 흡혈을 포식하였습니다.]
“포식! 포식!... 포식! 포식!”
[올바른 대상이 아닙니다.]
[마기에 오염된 흡혈 뉴트리아를 포식하였습니다.]
[양분을 흡수하여 민첩이 0.01 상승합니다.]
포식을 사용 할수록 스탯의 상승 폭이 점점 줄어들어 급기야 처음 흡수했던 스탯의 1/100 정도로 크게 줄었지만 시진은 포기하지 않고 제단을 맴돌며 연이어 포식 스킬을 사용하며 아스라엘을 찬양했다.
“할렐루야. 아스라엘!”
- 크흠. 시진! 네놈이 기분 좋은 것은 알지만, 아스라엘을 찬양하는 소리는 듣기 거북하구나.
“투스칸 너 설마...이미 죽어 나의 소중한 아낌없는 나무가 된 아스라엘을 질투하는거야?”
- 뭐라는 것이냐! 내가 겨우 아스라엘 따위를 질투할 것 같으냐!
“에이~ 아닌게 아닌 것 같은데~ 하하하하.”
시진이 투스칸과 투닥거리고 있을 때 제단 아래로 굴러 떨어진 마법사의 머리를 들고 잿빛 남매와 제니퍼가 올라왔다.
“시진님. 혼잣말을 뭘 그렇게 진지하게 해요? 혹시 머리를 다쳤거나 그런 것은 아니죠?”
“흠..흠..다들 다친 곳은 괜찮아?”
제니퍼의 장난스런 말에 민망하듯 헛기침을 하며 붉게 상기된 얼굴을 가리고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포션으로 급한 불은 껐어요. 그보다 오빠는 괜찮아요? 어? 생각보다 멀쩡하네? 전부터 느꼈던 것데 인간 맞죠? 혹시 오우거와 혼혈이라던가 그런 것은 아니죠?”
그 많은 놈들을 상대하며 갑옷이 넝마가 될 정도의 격전을 치루며 뼈가 보일 정도의 상처를 입었던 사람이 타르웬이 제단을 올라오는 그 짧은 시간동안 새 살이 돋아나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진정 사람이 맞는지 타르웬과 제니퍼는 의문이 들었다.
“뭐? 타르웬 너마저 왜 그래? 너랑 같은 사람 맞으니까. 내려가서 주변을 좀 살펴봐.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어딘가에 단서가 될 만한 것이 남아있을 거야.”
“네...기르틴. 내려가자.”
계단을 내려온 잿빛남매는 X자 형태로 이루어진 보행로를 지나 공동의 가장자리에 있는 낡은 철문을 찾아냈다.
“시진이 형. 찾았어요. 빨리 와요!”
녹이 가득한 낡은 철문을 밀고 들어간 시진의 코끝을 타고 피 비릿내가 물씬 풍겼다.
“우욱...”
“세상에 저 미친 새끼는 대체 여기서 무슨 짓을 한거야.”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낡은 책장에는 오래된 서적들로 빼곡했고, 실험도구와 마법 시약이 가득 올려진 테이블의 양 옆의 벽면에는 5살쯤 되어보이는 어린아이의 배를 가르고 정체모를 관을 연결해 피를 뽑아내고 있었고, 어린 아이의 입에는 호스를 연결해 마법 시약을 투여하고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시진의 예상대로 이곳은 하수도의 오수가 모이는 벽면을 개조하여 만든 하급 뱀파이어 피에르 호비에르의 실험실이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없는 아니 애초에 제대로 된 진입로가 없는 이곳은 하급 뱀파이어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인체 실험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아가. 정신 차려봐.”
“그만둬. 이미 늦었어. 살아난다 해도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 할거야.”
시진은 사지가 결박된 체 실험체가 된 어린 아이에게 얼마남지 않은 포션을 붓는 타르웬을 말리며 고개를 저었다.
“비켜봐.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이 아이에게 더 좋을거야.”
“하지만...”
아이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거라 여기며 말을 덧붙이려 하는 타르웬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저은 제니퍼가 시진의 의견에 동조했다.
“시진님 말이 맞아.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 서걱.
시진이 아이의 목을 베어내자 실험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시진의 두어 걸음 뒤에 있는 잿빛 남매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제니퍼는 몰라도 용병으로 활동한 시간이 시진과 함께한 것이 전부인 잿빛 남매는 어린 아이의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는 듯 했다.
- 짝
“왜들 그러고있어?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있나 찾아봐. 누가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찾아서 죗값을 받게 해줘야지.”
“네...”
낡은 책장에 있는 오래된 마법서적을 뒤적이다 다시 책장에 꽂아 넣는 시진에게 투스칸이 말을 건넸다.
- 시진. 거기있는 마법서적을 전부 챙기거라.
“뭐? 이걸 다? 봉인때문에 마법 못 쓴다며?”
- 봉인이 된 것은 마왕의 고위 마법이고, 인간이 만든 하위 마법이라면 술식만 알면 사용할 수 있느니라. 그러니 잔말말고 책이나 챙기거라.
마법의 종족이라는 마족이 사용하는 마법은 복잡한 술식에 의한 별도의 캐스팅 없이 마력의 흐름을 제어하는 것만으로 쉽게 발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능력이 봉인되어 마력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투스칸은 시진을 데려오기 위해 차원석을 이용해 차원문을 여는 것만으로도 2천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럼. 나중에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나한테도 알려 주는거다.”
- 알겠으니 이제 그만 말하고 책이나 챙기거라.
시진이 투스칸과 투닥거리며 마법 서적을 아공간에 집어넣는 사이 피에르의 낡은 책상에서 단서를 찾아낸 기르틴이 소리쳤다.
“시진이 형! 빨리 와봐요!”
“찾았어? 뭔데?”
기르틴은 낡은 목재 책상 위에 난잡하게 흩어진 서류더미 사이에 삐죽 튀어나온 양피지를 꺼내 펼쳤다.
[피에르.
너의 소망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온 것을 축하하네.
3주 뒤 1천의 불사의 군단을 이끌고 2지구의 피아종 성당 지하로 오게.
그때 혈청을 넘겨 주겠네.]
기르틴이 찾아낸 검은 삼각형의 테두리 안에 피처럼 붉은 눈이 그려져 있는 양피지에는 피에르가 지하도시의 빈민들을 납치한 이유를 추측할 만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투스칸. 놈이 마지막에 말한 것에 트라이... 뭐였지?”
- 정확히는 트..라...이 애...ㅇ 이라고 했느니라.
“푸흡! 투스칸님. 이젠 성대모사도 하는 거예요?”
- 내가 언제 그딴 걸 했다는 것이냐! 난 저 놈이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말을 전한 것 뿐이다.
하급 뱀파이어 피에르가 죽기 전 남긴 말을 전했을 뿐인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일행을 보며 이유를 모르지만 왠지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아 투스칸은 기분이 나빠졌다.
* * *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천장의 샹들리에와 만나 산산이 부서지며 방 전체를 밝혔고, 중앙에 놓인 붉은 눈이 음각된 삼각형의 테이블에는 단단하면서도 거대한 근육을 전신을 가리는 품이 넉넉한 검은 로브로도 가리지 못한 붉은 가면의 사내가 앉아 맞은편의 빈 자리를 노려 보며 성난 목소리를 냈다.
“세르히오 이 놈은 도대체 언제 오는 것이오!”
“잠적한 피에르에 대해 알아 온다고 했으니 좀 더 기다려봐.”
“벌써 반나절이나 지났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이러는 것 아니오!”
“루카스! 진정해. 소리 지른다고 더 빨리 오는 것도 아니잖아.”
검은 로브를 입고 붉은 가면을 쓴 가냘픈 체구의 여인이 소란을 피우는 루카스를 싸늘하게 노려보는 눈길을 피하며 루카스가 말했다.
“험.험. 답답해서 그런 거지 다른 뜻은 없었소.”
곧 테이블을 뒤집을 것처럼 흥분했던 루카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를 말며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슬금슬금 섀넌의 눈치를 보던 루카스의 인내심이 바닥을 칠 때쯤 세르히오가 방으로 들어왔다.
“왜들 그러고 있어? 술이라도 한잔하고 있지.”
“흠.흠.”
“그래서 피에르는 찾았어요?”
붉은 가면의 여인 섀넌이 세르히오에게 피에르의 행방을 묻는 찰나 검은 삼각형의 테이블에 음각된 핏빛 눈동자에 놓여진 검은 수정구가 붉은 빛을 뿜어냈다.
- 스팟!
“거사에 차질은 없겠지?”
“...”
“다들 왜 말이 없는 것이냐?”
루카스와 섀넌은 수정구 안의 검은 가면을 쓴 여인의 눈치를 보며 어서 말하지 않고 뭐하고 있냐는 듯 피에르의 소식을 알아보고 돌아온 세르히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것이...피에르가 죽었습니다.”
- 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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