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리버사이드 타운(2)
8화. 리버사이드 타운(2)
[여관 : 바람의 숲]
-딸깍.
문을 열고 들어선 경비병이 추천해준 바람의 숲 여관의 1층은 주점을 함께 겸하고 있는지 오래된 포도주냄새와 세월이 흐른 나무냄새가 가득 올라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낡은 나무로 만들어진 원형 탁자에 나무 밑동을 슥슥 베어 갖다 놓은듯한 나무의자가 있었고, 그 곳에 옹기종기 앉아 나무로 만들어진 잔에 맥주처럼 보이는 술을 채워 건배사를 외치며 얘기하는 테이블이 대여섯은 되어 보였다.
여급으로 보이는 여성이 서 있는 ‘바 형식’ 으로 된 곳은 벽면에 조금씩 마시고 맡겨 놓은 와인이 한가득 진열되어있었고, 남색 원피스차림에 하얀색 앞치마를 두른 여급으로 보이는 여성은 방금 만들어낸 음식을 손에 들고 구석진 테이블의 남자를 불러 가져가라고 소리치며 시진을 바라보았다.
“술? 방?”
“... 둘다요. 일단은 식사부터요. 여기 스튜가 일품이라던데 따뜻한 스튜와 시원한 맥주부터 주세요.”
여급이 서 있는 바 근처의 빈 테이블에 자리 잡은 시진에게 남색 원피스의 상단에 [잔느] 라는 명찰을 단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금발 단발머리의 여급 잔느가 다가와 음식점 혹은 숙박업소에서 보일 법한 ‘어서오세요.’ 혹은 ‘주문은 뭘로 할까요?’ 라는 인사치레는 집어치우고 대뜸 본론부터 들어오는 화끈함에 시진은 당황했다.
“흠... 딱봐도 초행인게 티 나는데 우리 집 스튜가 여기 리버사이드에서 유명한 건 어디에서 들었을까?”
“... 검문소 경비대원이 알려주던 걸요. 그런데 여긴 음식을 주문할 때 이유도 말해야 되는가보죠?”
“호호호. 뭐 꼭 그런 건 아닌데. 못 보던 분이라서... 방은 어떻게 하룻밤?”
“후..우.. 일주일 정도 있을 예정이고, 식사 후에 목욕을 할 수 있게 따뜻한 목욕물도 준비해주시죠.”
“따뜻한 목욕물? 우리 집은 선불인데 괜찮죠?”
“후...우... 이 정도면 충분 할 것 같은데? 혹시 모자라신가?”
잔느와 대화가 길어질수록 중세시대의 화끈함이 점점 모욕적으로 다가 온 시진은 깊은 심호흡을 통해 감정을 다스리며 아미를 찌푸렸고, 신분증과 함께 습득한 돈주머니에서 2실버를 테이블에 올렸다.
“호호호. 네~ 손님. 아름다운 요른 강이 흐르는 리버사이드 타운의 저희 바람의 숲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손님. 요청하신 목욕물은 식사하시는 동안 따뜻하게 데워 놓을께요~.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잔느를 찾아주세요~.”
행동하는 것을 보면 초짜인데 그런 것 치곤 걸치고 있는 장비는 싸구려는 아니고, 어디서 몬스터 피라도 뒤집어 썼는지 닦여지지 않은 핏자국이 남아있는 갑옷 그리고 전체적으로 일관되지 않은 어디서 노획이라도 한 장비를 착용한 시진의 모습이 의심스러워 잔느는 처음부터 쌀쌀하게 대했다.
하지만 테이블에 올라 온 리버사이드 타운의 평민들이 보름은 생활 할 수 있는 은빛 동전 2개를 보는 순간. 잔느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눈웃음을 지으며 5성급 호텔에서나 볼 법한 친절한 몸짓을 선보이며 주방으로 사라졌다.
“와...태세전환 보소. 역시 이카루스 차원도 돈이 좋긴 좋네요. 투스칸이 있던 마계도 저래?”
- 크흠... 거기도 생명체가 사는 곳인데 마계라고 별 다를 것이 있겠느냐.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지.
식사를 마친 시진은 바텐더 잔느에게 부탁했던 여관 3층의 목욕탕이 딸린 방으로 올라가 따뜻한 욕조 안에 몸을 담갔다.
“이게 얼마만의 목욕인지...일단 오늘은 푹 쉬고 내일 확인해봐야겠네. 아~ 좋다~”
요 며칠동안 제대로 씻지도 자지도 못했던 시진은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자 나른해지며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저항하지 않고 몸을 맡겼다.
“에이취~”
곤히 잠든 시진을 깨운 것은 따뜻한 욕조의 물이 냉수로 바뀌어 있을 때 쯤 요란한 재채기와 콧물이었다. 콧물을 스윽 훔친 시진은 머리끝까지 욕조 안에 담가 정신을 깨우고 차가운 욕조를 빠져나와 방으로 들어갔다.
욕조 안에서 잠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지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는 붉은 달이 흔들리는 물결에 비춰 은은하게 붉은 빛을 내는 요른 강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름다운 리버사이드 타운의 풍경에 취해있던 시진은 칼에 찔리면 피가 나고 베이면 잘려나는 이 현실 같지 않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했다.
시진은 칼과 몬스터가 난무하는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힘이 되어 준 검보라색의 검신에 붉은 달빛이 어우러지며 은은한 검붉은 빛을 띠는 어둠의 마왕 투스칸을 바라보며 나약해지려 하는 마음을 다잡았다.
지구에서 살아 온 유시진이 아닌 게임 속 캐릭터에 빙의된 것이라 여기기로 마음을 먹기로 했다. 그 편이 피가 튀고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이 세계에 적응하기 편할 것 같았다.
* * *
[무구점 : 다있어]
-딸깍.
시장 골목 모퉁이를 돌아 방패와 망치가 그려진 무구점의 문을 열며 요란한 망치 소리를 예상했지만, 직접 무구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화로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나 쇠를 두드리는 망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몬스터 부산물을 처분하러 왔어요.”
‘다있어 무구점’ 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무기와 방패를 넋을 놓고 바라보던 시진은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접수원의 싸늘한 시선을 느끼며 인사를 했다.
“아....네. 안 될 건 없지만... 가져온 걸 저기 올리면 됩니다.”
몬스터 부산물을 처분 한다며 가방도 없이 찾아 온 초짜 용병인 시진을 짜게 식은 눈으로 훑어보던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덩치 큰 아저씨는 무구점 귀퉁이의 빈 테이블을 가리켰다.
이 마을 사람들은 불친절을 기본옵션으로 장착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외지인인 시진에게만 그런 것인지 다들 시진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인내하며 스파이럴 숲에서 루팅한 몬스터의 부산물을 하나씩 올려놓았다.
“어...이게 다 정말 자네가...아니 손님이 사냥한 것인가요?”
“네. 그럼 이 놈을 어디에서 훔치기라도 했을까봐요? 저기 보이는 숲에서 직.접. 사냥한 것이니 감정이나 해주세요.”
시진이 다이어 울프의 가죽을 시작으로 자이언트 맨티스의 갑각까지 테이블에 올려놓자 놀란 표정으로 시진과 테이블의 부산물을 번갈아 쳐다보던 불친절한 태도를 보였던 ‘다있어 무구점’ 의 덩치 큰 아저씨의 태도가 ‘여관 : 바람의 숲’ 의 잔느처럼 바뀌었다.
“음.... 확실히 스파이럴 숲의 안쪽까지 들어가야 구할 수 있는 것들이긴 하지만 다들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네요. 50 실버. 그 이상은 가격을 쳐주기가 힘드네요.”
“...”
시진은 50 실버라는 돈이 여관비를 감안해 생각해보면 많은 돈인 것은 맞지만 자신이 가져 온 부산물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 놈들 처리하느라 손님이 고생하신 것은 알겠는데 상태가 좋지 않아요. 그래도 손님이 목숨 걸고 고생했으니 조금 더 쳐서 55실버. 어때요? 어디가도 이 가격 이상은 못 받아요.”
머뭇거리는 시진의 모습이 가격을 올리기 위한 흥정을 하는 것이라 지레짐작한 무구점 주인 아저씨가 가격을 조금 더 올려 유도한 거래에 시진이 응할 찰나였다.
- 크흠... 뭔가 수상하구나. 아무리 시간이 흘렀기로서니 자이언트 맨티스의 갑각이 포함된 가격이 고작 55실버라니... 말도 안되느니라.
“네? 뭐라고요?”
“손님. 저도 더 드리고 싶어도 그러면 제 입장이 곤란해지는지라... 죄송합니다.”
- 크흠... 괘씸한 놈이로다! 시진! 날 저놈에게 보여주거라.
“뭐? 투스칸을 보여주라고?”
- 다 생각이 있으니 이 검을 파는 것처럼 저 놈에게 넘겨주란 말이다.
투스칸은 시진이 목숨 걸고 사냥하며 가져 온 부산물의 가격을 후려치려던 ‘다있어 무구점’ 의 덩치 큰 아저씨의 행태를 참지 못하고 이미 시진에게 검의 소유권이 넘어가 빛의 신 아스라엘의 저주가 사라졌음에도 투스칸이 봉인된 검을 보여 주라고 말했다.
“흠...그럼 이건 얼마나 할까요?”
“이...이 검도 처분하는 건가요?”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검보라빛을 머금고 있는 검신을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덩치 큰 아저씨가 조심스레 검의 손잡이를 움켜잡는 순간.
검의 크로스가드에 박힌 푸른 보석에서 시작된 빛무리가 덩치 큰 아저씨의 몸을 집어 삼켰다.
- 파아앗.
“끄으윽...”
덩치 큰 아저씨를 집어 삼킨 빛무리가 서서히 잦아들고, 덩치 큰 아저씨는 편두통이 온 것처럼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신음만 흘릴 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 크하하하! 감히 어둠의 마왕인 날 우롱하려 들다니! 인과응보니라!!
“투스칸. 설마 아저씨 죽인거야?”
- 하찮은 인간 하나 죽이는 거야 일도 아니지만, 그러면 네 입장이 곤란해질 것 같아 기억만 조금 건드려 봤느니라.
“뭐? 기억을 건드렸다고?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 하는 짓이 괘씸해서 저 놈의 기억을 좀 읽고 하루 정도의 기억을 지워버렸을 뿐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되느니라.
“기억을 지웠다고? 하루... 정말 하루만 지운 것 맞아? 별 다른 이상은 없는 거지?”
- 날 뭘로 보는 것이냐! 크흠... 기억 조작을 오랜만에 써서 정확하진 않지만 하루정도 될것이야. 잘못된다고 해봤자 며칠 더 기억이 지워질 뿐이니 신경 쓸 것 없다니까 그러는구나.
“후..우... 그래서 원래 가격이 얼마인데 기억을 지운거야?”
- 고작 55실버가 아니라 5골드 정도는 되는 것 같더구나. 칼만 들지 않았지 날강도 같은 놈이지 않느냐. 시진. 무얼하고 있는 것이냐. 여기서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나가자구나.
“물건을 챙기라고? 그건 도둑질이잖아?”
- 뭐라는 것이냐! 감히 이 어둠의 마왕 투스칸에게 사기를 치려던 놈인데 고작 기억 조금 지운걸로 퉁치자는 것이냐!! 하찮은 인간 따위가 어둠의 마왕을 우롱한 댓가를 치루게 해줘야 하지 않느냐!
“후...우....뭐... 듣고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1실버가 대략 지구 기준으로 1백만원 정도 된다고 봤을 때 5억원 정도하는 금액을 10분의 1정도로 후려치려고 했던 무구점의 주인이 괘씸해진 시진은 무기와 방패들로 가득 채운 무구점의 한쪽 벽면을 지나쳐 부산물을 올려놓은 테이블 뒤편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곳에는 번쩍이는 무기와 방패들로 삼면이 빼곡히 채워진 방으로 연결 되어있었다. 시진은 투척용 단검과 날길이 60cm 정도의 단검이 있는 진열대 앞으로 걸어가 투스칸의 조언을 바탕으로 단검을 종류별로 아공간 반지에 집어 넣었다.
단검을 고른 시진은 가죽으로된 레더아머 베이스에 주요 부위에 사슬이 덧되어 진 갑옷과 철판이 덧되어진 가죽 장갑 그리고 가죽 부츠, 각반과 소형 활과 화살도 아공간 반지에 집어 넣고 테이블 옆에 아직도 신음을 흘리며 쓰러져 있는 덩치 큰 아저씨의 품을 뒤져 제법 무게감이 있는 돈 주머니도 챙겼다.
“남을 사기 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본인도 당할 수 있다는 것도 각오했어야죠. 이것들은 리버사이드 타운을 위협하는 몬스터를 처리하는 데 잘 쓸께요.”
사슬이 덧되어진 가슴 부위를 쓸어내리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시진은 무구점을 나와 용병 길드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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