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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안밀
작품등록일 :
2020.03.27 08:37
최근연재일 :
2020.04.18 12:00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307
추천수 :
3
글자수 :
76,461

작성
20.04.1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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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치트키

DUMMY

재진을 진정시키건 몹시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무언가 숨기는 날 보며 화를 냈다.

그런 그를 진정시키려면 상세한 자초지종이 필요했는데, 난 할 수 없었다.

이 모종의 계획에 관해 발설하지 말라는 작가의 엄명이 아니어도 할 수 없었다.


너와 난 한번 죽었다. 근데 운이 좋아서 시간을 되돌렸다.

나는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다. 박유철과 송채은이 우릴 죽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게 말했더라면, 재진은 날 정신과에 입원시켰을 것이다.


나와 재진 사이에 쌓인 신뢰가 곤란에 빠진 날 구출해주었다.

간신히 화를 가라앉힌 재진. 그는 두 눈을 번뜩이며 날 노려보았다.


“너. 숨기고 있는 그거. 그거 대체 언제 말할 건데.”

“···. 말해도 네가 안 믿을 걸 알아서, 말할 계획 없어.”

“대체 왜 그러냐···.”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믿어줘라. 응? 내가 설마 너한테 해 되는 일을 시키겠어?”

“하···.”


간신히 어르고 얼러 재진을 사건현장으로 돌려보낸 뒤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은 몹시 괴로웠다.

사건 현장은 보지도 못했건만, 온몸이 파헤쳐진 피해자가 날 계속해서 노려보고 있었다.

죄책감과 공포심이 뒤범벅된 악몽이었다.

그다음 날 아침. 몇 번이고 작가를 찾았다.

하지만 그는 정오가 넘어서야 내 부름에 답을 했다.


“작가야. 작가 나와라. 오바.”

[응.]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퍽 차분한 목소리였다.


“하···. 이제 나오냐. 계속 찾았잖아. 어디 갔다 온 거야?”

[미안. 좀 바빴어.]

“글 안 쓰는 작가가 바쁠 게 뭐가 있어?”

[미팅이 있었거든.]

“뭐. 그래 좋아. 묻고 싶은 게 있어.”

[뭐?]

“뭐든 해줄 수 있다는 거. 아직도 유효한 거지?”

[음. 아마도?]


작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난 작가가 자리를 비운동안 생각했던 것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일단 첫 번째. 나한테 해명을 해줘.”

[해명? 무슨 해명?]

“네 그 잘난 스토리 때문에, 엄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잖아. 꼭 그래야 해?”


작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작은 한숨 소리를 들려줄 뿐이었다.

하지만 대화는 침묵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너한테 미안해 해야 하는 건가?]


작가는 화가 난 듯했다.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이곳이 픽션이든 아니든, 그건 잘못된 것이었다.

모르면 몰랐지, 알면서도 그냥 눈 감고 지나칠 순 없었다.


“논점 흐리지 마. 내가 이 정도 반발은 해도 되는 거 아닌가? 넌 악역인 박유철과 송채은을 돋보이게 하려고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죽었어. 아무것도 몰랐을 때야 그저 사건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뭐가 아니지?]

“그 희생자들. 네가 죽인 거잖아. 그 두 연놈을 시켜서.”


이곳은 글의 세상.

난 멀쩡한 살갗과 숨결을 가진 활자였다.

하지만 이곳이 내 세상이고, 내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이곳에 사는 이들은 잔뜩 열 받으면 화를 냈고, 칼에 찔리면 시뻘건 것들을 쏟아냈다.

'작가와의 소통'이라는 치트키를 쓰고 있는 나 또한 그랬다.

난 개죽음 당하고 싶지 않아서 작가의 리메이크 제안에 응한 것이었다.


하지만 편집자와 독자들을 위한 리메이크는 몹시도 자극적이었다.

악역들은 한층 더 잔혹하게 날뛰었고, 주연은 죽을 만큼 괴로워했다.

이 모든 것들을 알고 있는 나는 어째야 하는가.

누구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려야 하는 걸까?


[멍청한 새끼···.]

“뭐?”

[야 이 병신아. 네가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때야? 송채은이랑 박유철 잡아 처넣은 뒤에나 그딴 투정 부리라고!!]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쏘아 붙인 건 나였지만 되레 당황한 것도 나였다.


“너···. 무슨 일 있냐?”

[···.]

“뭔데 그래.”

[됐고. 또. 뭐. 뭐가 필요한데.]


작가는 내 모든 걸 훤히 들여다보았지만, 자신의 것은 하나도 내보이질 않았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악역들이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걸 멈출 수 없다면, 실수하게 만들 수는 있나?”

[있지. 네가 도와준다면 말야.]

“그렇다면 우연과 시기도 만들 수 있고? 요행도?”

[당연히 만들 수 있지.]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작가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럼. 박유철의 다음 피해자는 이 동네에서 나오게 해줘.”

[미끼를 쓰시겠다?]

“워. 미끼라니! 그저 조금이라도 빠르게 움직이겠다 그거야. 우연히 김재진이 내 옆에 있어야겠지. 송채은도 같이 있으면 더 좋을거고,”


내 말에 작가가 흥미롭다는 듯 반응을 보였다.


[송채은까지? 넷이서 한 공간에 있게 해달라···? 괜찮겠어?]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뿐이야. 이 이야기를 빨리 끝내고 그 두 연놈을 빵에 쳐 넣어야···. 나도 다른 사람들도 두 발 뻗고 자겠지. 너 또한 그럴 테고.”

[흠···.]

“뭐 설마. 이야기가 이렇게 빨리 끝나면 안 된다느니 그런 소리 할 건 아니지?”


내심 걱정되었다. 내가 내 입장이 있듯, 작가도 나름의 입장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작가는 음흉한 웃음소리를 들려주었다.


[아니. 시간의 흐름이야 아무래도 좋아. 뭐가 됐든 분량만 채우고 재미만 있음 됐지.]

“좋아. 디데이는 일주일 뒤로.”

[바로 안 하고?]

“준비할 시간을 줘.”

[뭐 마음의 준비 그런 거냐?]

“겸사겸사.”


이야기의 진행에 있어 작가는 이 세상 최고의 스폰서였다.

시간과 장소와 우연, 요행까지 건드릴 수 있는 지상 최고의 치트키.

그게 바로 작가였다.




/




내가 작가의 권한을 등에 업고 모든 걸 조정한다 한들, 박유철과 송채은의 체포는 재진의 몫이었다.

재진을 위해서 증거 확보가 가능한 곳을 골라야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 악독한 연놈들이 고를만한 장소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유철은 철두철미한 놈이다.

그는 CCTV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시체를 유기하곤 했다.

하지만 모든 CCTV를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간신히 잡은 꼬리 하나. 박유철의 옷차림이었다.

그는 일을 저지를 때마다 검은 볼캡과 검은색 상하의를 입었다.

날렵한 하관 이외에는 보이는 게 없을 정도였다.


“자까야. 여기는 어때?”

[여기는 좀···.]

“작가 너 말고. 우리 자까한테 물어본 건데?”

[야 이···.]


자까는 내 말을 알아듣는 듯 멍! 하고 크게 짖었다.

영특한 놈이었다. 자까는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형견답게 주인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놀이터에 이어, 애써 찾은 허름한 공터도 장소 선정에서 탈락하였다.


살인사건이 일어날 장소를 고르다니. 몹시도 소름 끼쳤다.

하지만 살인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재진과 내가 막을 테니까.

모든 것은 내 관리하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한 누구도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


“엇 잠깐.”

[응?]

“좋은 곳이 있었네!”

[어디?]

“우리 집!!”


여기서 말하는 우리 집이란, 12층짜리 오피스텔을 말했다.

그 오피스텔이 내 것이었다.

그 건물에 한해서, 나는 조물주나 다름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입맛대로 세팅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별로 내키지 않아 했다.


[좀 뜬금없는데···. 설정상 박유철은 번화가의 그림자 같은 곳에다가 시신을 유기하는···.]

“여기도 번화가야!!”


내 오피스텔은 번화가 지하철역 3분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밤에는 살짝 시끄럽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날까 싶을 정도로 활력 넘치는 시끌벅적한 동네였다.

내 반박에 작가는 움찔한 듯했다.


[아니···. 번화가긴 한데···. 여기는 너무 번화하지 않냐···. 뜬금없이 여기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려면 대체 무슨 말을 갖다 붙여야······.]


나야 이것저것 의견을 던지면 그만이었지만, 작가는 그 모든 것들에 개연성을 만들고 앞뒤 상황을 짜 맞춰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나와 달리 보수적인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

설득은 내 몫이었다.


“조연 윤지혁이 매입한 건물이 아니라, 그냥 길거리에 널린 흔하디흔한 공간 중 하나라고 생각해봐. 이상할 거 하나 없다고. 이유가 필요해?”

[완전 필요하지.]

“송채은이 이곳에서 살잖아. 송채은을 보러 왔다가 적합한 타깃을 발견하는 거지.”

[누구를···. 누가 있지···. 누가 좋을까···.]


또다시 벽에 막혀버렸다.

이야기를 진행하자고, 누군가를 연쇄살인마의 손에 맡길 순 없었다.

혹여나 계획이 실패해서 그 누군가가 죽어버리면 누가 책임질 건가.

자까도 끼잉 앓는 소리를 냈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난 담배에 불을 붙이며, 저 멀리에 우뚝 서 있는 오피스텔을 멍하니 보았다.

불이 꺼져 있는 송채은의 집···.


“작가야.”

[응?]

“조연 나부랭이가 건방지게 이런 말을 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뭐.]

“박유철이···. 송채은을 노리는 건 어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둘 사이가 틀어지는 거야. 우발적인 사고가 됐든, 계획적인 범행이 됐든···.”


작가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곧이어 엄청나게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우당탕 소리까지 들렸다.

의자에서 넘어지기라도 한 걸까?

한참을 그렇게 웃어젖히던 작가. 간신히 웃음을 멈췄다.


[새끼···. 이제야 밥값 하네!!! 장하다. 내 새끼!!]


반응을 보아하니 반려된 것 같지는 않았다.


“괘···. 괜찮아?”

[그 정도면 충분해. 그 뒤로는 내게 맡겨.]

“맡기라니···. 그렇게 말하니까 좀 불안한데?”

[작가 특례를 받는다 해서, 네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네가 할 수 없는 것들은 내가 만들어. 그러니까 넌 나머지 자잘한 것들을 준비하고 있어.]

“뭐야? 어디 가?”

[키워드를 받아먹었으니 글을 써야지 않겠냐. 네가 안 보이는 곳들에서도 이야기는 진행되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럼 수고!]


경쾌한 목소리를 끝으로 작가는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리 불러봐도 그는 답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찾아온 정적이 머쓱해 자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무엇을 더 준비할 수 있을까···.


그때 자까가 멍! 하고 짖었다.

내가 가만히 있으니 심심하다고 투정 부리는 모양이었다.

피식 웃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자까는 다시 시작된 산책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신나게 움직이는 통에 내가 끌려다니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에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골든레트리버. 귀여운 자까.

자까 이외에도 작가는 내게 많은 것을 선사했다.

갈림길에서 정답을 알려주었고, 수 번의 로또 당첨으로 안락한 삶을 안겨주었다.

비록 증거는 주지 않았으나 범인도 척척 알려주었고, 이제는 우연과 요행까지 주겠다 한다.

하지만 작가가 준 그것들 중에서,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돈.


재벌 2세 같은 발언이지만···.

다른 거 다 없어도 돈 하나만 있으면 뭐가 돼도 될 것 같았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절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를 슥슥슥 내려보았다.

어느 놈이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난 손끝에 걸리는 한 이름을 보고 씨익 웃었다.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했다.

지금쯤 핸드폰에 뜬 내 이름을 보고선 쌍욕을 내뱉고 있을 테니, 목소리를 가다듬을 시간은 줘야지.

신호음이 멎었다.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상택이. 잘 있었냐?!”

─···.

“최상택이. 대답 안 하네?”

─···. 잘 계셨습니까 형사님.


드디어 들리는 반가운 목소리.

하지만 그는 날 경계할 필요가 없었다.

난 이제 강력반 형사가 아니라 돈 많은 클라이언트니까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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