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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안밀
작품등록일 :
2020.03.27 08:37
최근연재일 :
2020.04.18 12:00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300
추천수 :
3
글자수 :
76,461

작성
20.04.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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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은밀하게 과감하게

DUMMY

기대와 달리 성과는 없었다.

몸이 탄탄해지고, 활력이 생기는 건 성과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송채은이었다.


“대체 왜 자꾸 캐물으시는 거예요?”


내가 송채은에 관한 걸 은근슬쩍 물을 때마다 오정혁은 난감해했다.

다른 회원의 정보를 함부로 흘릴 수 없다나.


“유명한 사람이라니까 궁금해서 그렇죠! 연예인 같은 거 아닌가?”

“아 물론 관심 가는 건 아는데···.”

“워워. 관심 아니거든요?”

“관심 가는 건 아는데! 그러면 영 곤란해진다고요. 헬스장에서 썸타다가 나가리 되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오정혁을 붙잡고 외치고 싶었다.

그 쌍년이 나와 내 친구를 죽일 거라고!

관심은커녕 죽이고 싶을 정도라고!

이 와중에 작가는 뭐가 재밌는지 킬킬거렸다. 참 얄미운 웃음소리였다.


[접근은 좋았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이거 다 네가 만든 거잖아.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닌데. 아닌데. 아닌데.]


시간이 지날수록, 놈은 점점 더 날 약 올리고 있었다.


“아 진짜. 그냥 궁금해서! 궁금해서 그러는 거라고요!”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하니, 오정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좋습니다! 제가 뭘 어떻게 해드리진 못하지만, 기회는 한번 드려보죠.”


그는 제대로 오해하고 있었다.

이쯤 되니 나도 항복선언을 외쳐야 했다.

맘대로 오해해라. 결과···. 결과만 보자.


“무슨 기회요.”

“시간은 언제든지 괜찮으시죠?”

“무슨 시간요?”

“제가 연락드리면 얼른 헬스장 나오셔야 합니다. 이번 주 중으로 송채은 회원님 이전 타임으로 넣어드릴게요. 콜?”

“콜!!!”


역시 진득하게 매달려야 성과가 있는 법이었다.

비록 약간의 오해는 있었으나, 송채은에게로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




/




오정혁의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

그가 전화하면 언제든지 헬스장으로 뛰어갈 수 있도록 늘 외출차림이었다.

이쯤 되니, 아직도 형사 시절의 버릇을 못 버렸나 싶었다.


[좋은 버릇이지.]

“꼭 그렇지만은 않아. 이젠 좀 편하게 살고 싶다고.”


난 자까에게 공을 던져주며 투덜거렸다.

자까는 신난 얼굴을 하고선 집안을 뛰어다녔다.

대형견이 뛰어놀 만큼 커다란 곳이었다.

아랫집에서 시끄럽다고 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아직 안 올라오는 걸 보면 괜찮은 모양이었다.

내가 건물주인 걸 알고 참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자꾸 늘어지면 곤란해. 죽기 직전으로 돌려줘?]

“그렇게 하진 못할 텐데? 편집자가 무섭지도 않나 봐?”

[너···. 너너!! 너 사람 약점 잡고 그러면 안 되는 거다! 난 널 그렇게 가르친 적 없다!]


이 세상 한정, 작가는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 그에게도 공포스러운 존재가 있었다. 바로 편집자.

재진과 내가 악역인 박유철의 손에 죽는 고구마 엔딩을 엎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작가와 내가 만들고 있는 이 이야기는, 무조건 편집자의 눈에 들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난 더욱더 과거의 시점으로 회귀할지 몰랐다.


[맞아. 이 이야기가 개판 되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거야.]

“네가 말하는 처음이 대체 어디지?”

[고3 시절이 좋겠다.]

“이씨···.”


잔혹한 놈이었다.

내가 칼에 찔렸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공포스러운 회귀가 틀림없었다.

시간을 돌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작가의 잔혹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빨리 받아봐.]


오정혁인가 싶어 황급히 핸드폰을 찾았다.

하지만 액정에 뜬 이름은 생각보다 김빠지는 인물이었다.

재진이었다.

물론 그가 싫은 것은 아니었으나


[BL은 안된다 했을 텐데.]


···. 친구로서!! 친구!!

여튼. 기다리고 있던 전화가 아니라 실망하긴 했다.

전화를 받았다.


“어.”

‘어? 어어?! 야이씨. 나 좀 서운하다 너.’

“뭐래. 오랜만에 전화하고선.”


친절하지 못한 대화였으나, 그 대화 속에 반가움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뭐하며 살길래 전화 한 통 없어?’

“띵가띵가 놀고 있지.”

‘부럽다 진짜. 지금 너 때문에 서가 얼마나 난리 난 줄 알아?’

“무슨 난리?”

‘다들 로또에 미쳤다고. 와···. 어떻게 로또 당첨됐으면서, 나한테도 한 마디를 안 하냐? 배신자 새끼···.’


로또에 당첨된 것도 모자라, 당첨금으로 주식을 해서 건물을 매입했다.

마치 도시 전설 같은 내용이 아닌가.

하지만 일개 소설 속 내용일 뿐이었다.

작가 특례를 받은 캐릭터만 누릴 수 있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연일 뿐이었다.

나에겐 내 시점뿐이지만, 작가는 지금 모든 캐릭터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

나와 대화를 하는 그 순간에도, 작가는 어딘가에서 박유철을 움직이고 있다.

지금 재진이 나에게 전화를 하는 것도, 사실은 작가의 뜻이겠지.


“너도 그러냐?”

‘어.'


우리는 킬킬 웃어댔다.

오래간만의 통화였으나, 바로 어제 봤던 것처럼 편안했다.


“미안하지만, 난 너에게 이번 주 로또 번호를 알려줄 수가 없다.”

‘뭐래.’

“쏴리.”


자까가 공을 물고 와, 날 향해 눈을 반짝였다.

다시 한번 공을 던져주니, 열심히 쫓아갔다.


‘됐고. 밥이나 먹자. 물어볼 것도 있고.’

“뭘 물어봐?”

‘고기나 사줘라. 건물주 클래스가 있는데 삼겹살로 때울 건 아니지?’

“짜식. 날 뭐로 보고!”


그렇게 저녁 약속이 생겼다.

안 그래도 재진을 봐야겠다 하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난 일단 송채은에게 집중했으나, 강력반 형사 재진은 박유철에게 집중했다.

거기다 재진은 송채은의 남자친구이기도 했다. 아마도 세컨이겠지만.

송채은에 대한 주변인 중 하나였다.

이래저래 들을 말이 있을 것 같았다.




/




“적어도 소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


재진은 볼멘소리를 했지만, 그의 젓가락은 바쁘게 움직였다.

얼마 전 알게 된 오피스텔 근처 소 곱창 집이었다.

부추에 야무지게 싸 먹는 게, 누가 보면 며칠 굶은 사람인 줄 알겠다.


“너 이 자식. 곱창이 얼마나 맛있는데!”

“너무했네! 너무했어.”

“자꾸 그러면 엔빵한다?”

“어휴! 입에서 살살 녹네! 녹아!”


재진은 넉살 좋게 곱창을 두 점 더 입에 밀어 넣었다.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식당의 아주머니도, 주변의 여자들도. 심지어 남자들의 시선까지 끌 정도로, 재진은 훤칠한 모습이었다. 딱 주인공 그 자체였다.


“근데 뭘 물어본다는 거야?”

“박재철.”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희생자가 한 명 더 나왔어. 한강 변에서 발견됐지.”

“어땠어?”

“똑같았어. 피해자들의 손을 꼬아서 시그니처를 만들었지. 거기다 하나 더 찾아냈어. 네가 그때 거울 조각을 찾아내지 못했더라면···. 이번에도 그냥 놓치고 말았을 거야.”

“또 거울이 깨져 있었나?”

“아니. 소지품을 아무리 찾아봐도 거울이 없더라고. 아니···. 애초에 소지품이라고 할만한 게 거의 없었어. 잠시 운동을 나왔던 모양이야. 가방도 없었어.”

“거울이 없었다고? 그럼 뭘 찾아낸 건데?”


재진은 젓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거.”

“핸드폰?”

“응. 액정이 깨져있었어.”

“뭐가 됐든 꼭 사인은 해야 한다 그건가? 징한 새끼.”

“모르지 뭐. 박유철에게 저항하느라 우연히 깨진 건지, 아니면 박유철이 고의로 깬 건지. 네가 또 하나의 시그니처가 있다고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이번에도 그냥 지나쳤을 거야. 굉장히 사소한 거잖아?”

“그렇지.”

“근데 그뿐이야···. 그 이후로 진전이 없어.”


시그니처를 하나 더 알아냈다 한들, 보나 마나 수사는 지지부진할 것이다.

재진과 내가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는 건, 박유철이나 송채은도 마찬가지란 소리였다.

우리의 악역들은 더욱더 악독해지고, 더욱더 똑똑해졌을 것이다.


[너무 겁먹지는 마. 그건 너와 김재진도 마찬가지니까.]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건지.


[진심을 매도해버리면, 내가 좀 서운하지.]


말과는 달리, 작가의 목소리는 몹시도 즐거워 보였다.

재진은 바삐 움직이던 젓가락을 내려놓고선 진지한 얼굴을 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네가 나간 뒤로 일이 더 안 풀리는 기분이야.”

“왜. 나보다는 최 선배가 훨씬 나을 텐데?”

“하···. 그 자식 말도 마. 대체 왜 강력반에 있는지 모를 놈이라니까.”


재진의 한탄에 피식 웃었다.

이제 나 대신에 재진은 최 선배와 함께 박유철을 쫓고 있었다.

그는 강력반 형사답지 않은 성정을 지닌 남자였다.

오로지 연금만을 보고, 가늘고 길게 사는 남자였다.


“이러다가 영영 못 잡는 게 아닐까 걱정이야.”


우리는 소주잔을 부딪쳤다.

투명한 소주잔에 고뇌가 녹아있었다.

재진의 고뇌는 안개 속의 연쇄살인마였고, 나의 고뇌는 생존이었다.


“야.”


그를 불렀다. 재진은 곱창을 하나 먹으며 날 보았다.


“연애는 잘되냐?”

“뜬금없이 갑자기 뭔···.”

“그냥. 궁금해져서.”


재진에게는 뜬금없는 질문이었으나, 내게는 동일 선상에 있는 이야기였다.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의아할 법도 하건만, 그는 별 의심 없이 내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것도 잘 안돼···.”

“왜?”

“모르겠어···. 그것도 기분 탓인가. 괜히 멀게만 느껴져서···. 좀 불안해.”

“너한테 잘 맞춰준다면서?”

“응. 보고 싶을 때 보고, 전화할 수 있을 때 전화해. 근데 그 이외의 시간은···. 뭘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나 또한 그걸 알고자 했다.

송채은이 과연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알아내야, 이야기를 앞질러 갈 수 있었다.

연쇄살인마 박유철의 조력자인 송채은.

그 여자의 행적을 알아야, 박유철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조만간 헤어지는 거 아니냐?”


일부러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킬킬거렸다.

내가 깐족거리니 재진은 버럭 화를 냈다.


“아니거든?!”

“벌써 권태기네 권태기야.”

“아니라고!!”

“확실해?!”

“야!!”


재진의 잔에 내 잔을 부딪혔다.

그리고 슬쩍 흘렸다.


“아니 그렇잖아···. 연애라는 게 한 사람만 노력한다고 잘 되는 건 아니잖아? 연애랍시고 하는데, 남자친구란 놈은 일 때문에 바쁘다고 도통 볼 수가 없어요! 전화도 마음대로 못해! 어디 뭐 놀러 가지도 못해!”

“···. 오랜만에 만나서 이렇게 뼈 때리기 있냐?”


자세히 들어볼 것도 없었다.

형사라는 직업은 연애나 결혼에 특화된 직업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장에선 기피 대상에 가까웠다.

재진도 그걸 잘 아는 모양이었다.

재진이 형사가 아니었다면, 그는 진즉에 결혼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한번 시간 내서 서프라이즈를 해보는 건 어때?”

“서프라이즈?”

“어. 말없이 깜짝 나타나서 놀라게 해 주는 거지!”

“어음···. 여자들은 그런 거 싫어하지 않나?”


재진이 형사라 한들, 결혼이 쉽지 않을 뿐이지 연애를 못 해봤다는 뜻은 아니었다.

내 말에 재진은 미심쩍은 듯 눈매를 가늘게 했지만, 지금 그는 형사가 아니라 연애 문제에 고민 중인 가련한 남자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연애 중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 있다.

모쏠 친구에게 연애 상담하기.


“아냐 아냐. 엄청나게 좋아할 걸? 가끔씩 그런 이벤트가 있어야 좀 리프레쉬 하지 않겠냐?”

“그···. 그런가···?”

“그렇대도!! 아무 연락도 하지 않고 갑자기 딱! 나타나는 거지.”

“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최악의 계획에 혹하게끔, 쐐기를 박아야 했다.


“꽃다발 하나 딱! 들고, 집 앞에서 멋있게 딱!! 기다리는 거지!!”

“괜찮을까? 안 싫어하려나···?”

“전혀 전혀! 날 믿어 보래도!!”


자고로, 자기를 믿어보라는 사람의 말은 믿으면 안 됐다.

하지만 재진은 그랬다.

그리고 그는 아직 몰랐다.

로또와 주식으로 대박 맞은 친구가 사들인 건물이, 여자친구가 사는 오피스텔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로써 난 집 앞에서 송채은의 사생활을 관찰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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