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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안밀
작품등록일 :
2020.03.27 08:37
최근연재일 :
2020.04.18 12:00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306
추천수 :
3
글자수 :
76,461

작성
20.04.0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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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베테랑

DUMMY

뻔하디뻔한 클리셰를 위해 등장한 소매치기.

놈은 꽤 빨랐다.

대로를 질러 주택가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는 게 보통 놈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직 형사인 내가 소매치기 하나 잡는 게 일이겠는가.


“작작 하자?”


끽해야 스무 살 갓 넘었을 것 같은 앳된 놈이었다.

놈은 송채은의 명품가방을 든 채로, 뒷걸음질 쳤다.

놈은 잘못 든 길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했지만, 그 길목에는 내가 있었다.


“비!! 비켜!!! 꺼지라고!!”

“어린 놈의 새끼가! 어디 어른한테!!”


난 습관적으로 뒷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허전했다.


“아이씨···.”


내 모든 행동은 형사의 것과 다름없었지만, 나에게 형사의 아이템은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작가의 힘이 있다 한들, 민간인에게 갑자기 공권력을 쥐여주는 건 이상하지 않는가.


[잘 아네.]


송채은이 근처에 있는 마당에, 재진을 부를 순 없었다.

그리고 그를 오라 가라 하기엔, 너무 사소한 문제였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훈방처리였다.

코너에 몰려 덜덜 떨고 있는 놈에게 손짓했다.


“야 너. 이리 와 봐.”

“내가 왜!!”

“이 자식이!!”


놈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꼬질꼬질한 행색을 보아하니, 살기 팍팍한 놈인 듯 했다.

뭐. 이런 잡범죄 저지르는 놈들치고, 떵떵거리며 사는 놈이 어딨겠냐마는.

난 놈에게서 송채은의 가방을 낚아챘다.


“내놔!!! 당신 뭐야!!! 형사야?!!”


순간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놈이 내 신분증을 까볼 건 아니겠지만, 공무원 사칭은 곤란했다.

난감한 상황일 때는 윽박지르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너 이 새끼. 누가 이딴 짓 하면서 살랬어! 사지가 멀쩡하면 일을 해서 돈을 벌란 말이야 이 자식아!!”

“남이야 어떻게 살던 당신이 뭔 상관이야?!!”

“눈 안 깔아?!”


내가 봐도 내가 참 꼰대 같았다.

하지만 꼰대 하면 또 훈계 아니겠는가.

훈방은 못 해도 훈계는 할 수 있었다.


“너 이번만 내가 딱 봐준다. 한 번만 더 눈에 띄면 당장 서로 끌고 갈 줄 알아! 알았어?!!”


놈은 분한 듯 씩씩거렸다.

현장에서 바로 잡은 놈을 놓아주려니, 배알이 꼴렸다.

하지만 저놈은 필요에 의해서 갑자기 나타난 엑스트라였다.

이쯤 하면 됐다.

중요한 건 내 손에 들린 송채은의 가방이다.

소매치기 놈을 피해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숨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적한 시간이라, 거리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가방을 살펴보았다.

명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익숙한 마크는 알았다.

이 가방 하나가 내 월급을 훨씬 웃돌 거란 생각을 하니 절로 헛웃음이 났다.


[어디 네 월급을 그딴 가방 하나에 비벼?]

“내가 월급이 어딨어?”

[없긴 왜 없어! 임대료 따박따박 받아먹으면서 살 놈이! 아 진짜 부럽다···. 나도 너처럼 살고 싶다 정말.]

“살던가 그럼.”

[···. 갑자기 널 확 죽이고 싶어진다.]

“에이. 왜 이러실까. 농담인 거 알면서.”

[건물주는 몰라도 집주인이라도 해보게, 네가 좀 잘해봐라. 응?]

“그러려고 열심히 하고 있잖냐.”


난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바닥에 쏟아부었다.

지금 누군가가 내 모습을 보면 경찰에 신고할지 모르겠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바닥에 쭈그려 앉아 여자 가방을 뒤지고 있는 모습이라니.

참 폼 안 났다.


[폼 같은 거 다 부질없다. 실속이 중요하단 말이야.]

“실속?”

[이 세상 모든 것은 결국 결론으로 귀결되지. 과정이 어쩌고저쩌고···. 그런 거 다 필요 없어. 나 봐봐! 리메이크 전에 이야기 얼마나 재밌었어! 근데 엔딩이 마음에 안 드니까, 망설임 없이 바로 엎고 다시 리메이크하잖아!]


한번 물꼬가 트이니, 작가는 계속 푸념을 늘어놓았다.

난 송채은의 물건을 하나하나 살피며 적당히 대꾸해주었다.

자질구레한 화장품이 많았다.

여자들은 대체 왜 이걸 다 들고 다니는지 의문이 들었다.

입술은 하나인데 왜 립스틱은 세 네 개나 들고 다니는 걸까.


[나···. 어제 편집자한테 전화 왔다? 리메이크 중이라고 말했어.]

“뭐라든데?”

[···. 묻지 마라. 하···.]


뭐래. 자기가 먼저 말 꺼내 놓고 묻지 말라니.

화장품을 다시 가방에 넣고선, 지갑을 열어보았다.

얄팍한 지갑이었다.


“와우.”


모바일 페이가 되는 이 시기에, 두둑한 지갑이라는 말은 촌스러운 단어였다.

손바닥보다 작은 지갑 안에는 백만 원짜리 수표 세 장이 들어있었다.


“얘 뭔데 이렇게 돈을 많이 들고 다녀?”

[글쎄.]

“혼잣말이다. 혼잣말. 이야기해줄 거라고 기대도 안 했어.”

[그래. 슬슬 적응해야지. 잘하고 있어.]


작가는 참 얄밉게 웃곤 했다.

그 웃음 속에 음흉함이 깃들 때마다 한 대 치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내가 작가에 대해 아는 건 목소리 뿐이었다.

지갑 사이사이를 뒤지다, 명함을 발견했다.


“흠···.”

[뭐 좀 찾았나 보다?]

“헬스트레이너 명함인가 본데···?”


핸드폰을 꺼내 명함에 적힌 장소를 검색했다.

강남의 한 헬스장이었다.

명함 뒤편엔 흉측스럽게도, 웃통을 훌렁 깐 남자가 있었다.


“그 뭐냐. 그···. 뭐라 그랬지?”

[뭐가?]

“그 김재진이 말한 거 있잖아. 그 송채은···. 뭐라더라···. 어려운 말이었는데···.”

[설마···. 인플루언서 그거 말하는 거냐.]

“어어! 맞아 맞아!!!”

[에휴···.]

“송채은이 뭐 연예인 비스무리한거라 PT 받는 건가?”

[글쎄.]


작가는 답을 안 했지만, 이미 그의 어조엔 즐거움이 가득했다.

재진의 말에 의하면, SNS에서 잘 나가는 뭐 유명인 이런 거라 그랬다. 아.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재진도 잘 모르고 있었다. 송채은이 무엇을 하는지 말이다. 난 명함을 사진으로 남기고선, 모든 짐을 가방에 넣었다.


“바쁜 김재진 대신에, 송채은의 뒤를 캐보겠어.”

[뒤를 캔다고?]

“너한테 물어봐도 안 알려 줄 거 아냐.”


내가 볼멘소리를 하니, 또다시 작가가 웃어 젖혔다.


[새끼. 삐쳤냐?]

“삐치긴 뭘 삐쳐?!”

[삐쳤네.]

“아니라고!!”


나도 모르게 발끈하니, 작가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한참을 웃던 작가는, 간신히 웃음을 갈무리하며 내게 말했다.


[뭐 없어 보이게 뒤를 캐고 그래.]

“뒤를 캐봐야 지금 송채은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할 거 아냐.”

[너 이제 형사 아니잖아. 뒤 안 캐도돼.]

“그럼?”

[앞에서 대놓고 캐보자!! 재밌겠다!!]


아직 형사의 직감이 남아있는 걸까.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



울타리를 넘어 빠르게 뛰쳐나간 내가 가방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들어오니, 몇몇은 손뼉을 쳤고 몇몇은 환호를 보냈다.

일단 난 옆 테이블 사람에게 잠시 맡겼던 자까의 목줄부터 챙겼다.

자까는 날 기다렸다는 듯 다리에 비비적거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 쓰다듬어주었다.


가방을 가져다주니, 송채은은 의외라는 듯한 눈으로 날 훑어내렸다.

그 시선이 참 고까워 심기가 언짢았다.


“고마워요.”


내 죽음에 일조한 여자가, 나한테 고맙다 했다.

그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주···.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

뭐라 딱 형용할 수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불쾌한 쪽에 가까운 듯했다.

내게 고맙다고 말하는 저 여자가, 내 죽음에 일조한다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애초부터 이 이야기는 로맨스가 아니었다.

내가 오글거리는 로맨스 속 주인공이더라면, 이 사건을 빌미로 여자가 밥이나 커피를 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액션 스릴러 장르였으며, 심지어 난 조연일 뿐이다.


송채은은 고맙다는 성의 없는 인사만 남기고선 자리를 떠났다.

평범한 시민이었다면 괜히 찾아줬다 싶었겠지만, 저 여자는 내 타깃이었다.

보람은 없어도 타깃에 눈도장 찍는 건 괜찮지.


어찌 됐든 난 이 일을 통해, 송채은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 수 있었다. 인위적으로 말이다.

계획은 이랬다.

송채은이 다니는 헬스장에 등록한다.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고 있는 송채은.

그 옆자리에 다가가, 우연인 것처럼 인사한다.

친분을 쌓는다.


하지만 작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회원님. 자꾸 이렇게 요령 피우시면 한 세트 더 들어갑니다?”


지금 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송채은의 지갑에서 헬스장 트레이너의 명함을 발견한 그 날 이후, 지체 않고 헬스장에 갔다.

난 더이상 형사도 아니겠다, 웬 운동인가 싶어서 등록만 하곤 러닝머신이나 탈 생각이었다.


“여덟···. 흠···.”

“아 왜 안 새는데요!”

“여덟···.”

“아아아아악!!!”

“아홉···.”

“쫌!!!”

“아홉···.”

“끄아아아아악!!!!”


이 헬스장에서 가장 잘나가는 트레이너 오정혁. 그가 날 죽이고 있었다.

레그프레스 위에 올라서서는 이글이글한 눈으로 날 보았다.


“열.”


한 세트라는 이름의 두 세트를 했다.

미친놈이었다.

오정혁은 연쇄살인마 박유철보다 더 무서운 놈이었다!!


[엄살은.]


야. 너 나한테 왜 그래! 나한테 왜 그러냐고!! 누가 운동하고 싶댔냐고!!


[이왕 버리는 시간, 알차게 쓰라는 내 뜻도 모르고···.]


작가는 시무룩한 목소리를 했지만, 퍽 가식적이었다.

간신히 기구 위에서 내려왔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웬 PT냐고?

그렇다면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 보자.


난 송채은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에 헬스장에 당당히 발을 들였다.


“상담 좀 받고 싶은데요.”

“아 정말요! 이쪽으로 오세요!”


카운터를 보던 여자 직원이 싱긋 웃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니, 그 여자는 작가의 끄나풀이 틀림없었다.

사근사근한 말투와 태도로 나를 방심하게 해놓곤, 날 덩치 큰 트레이너 앞에 앉히곤 카운터로 돌아갔다.

영업용 미소와 함께 나를 반겼던 그 남자가 바로 오정혁이었다.

몸 선이 왠지 모르게 익숙하길래 불쾌해졌었다.

도대체 시커먼 남자의 몸 선을 왜 기억하고 있는 건가 싶던 와중에 작가가 힌트를 주었다.


[잘 기억해봐. 어디서 봤으니까 기억하는 거겠지.]


그제야 생각났다.

이 남자가 송채은의 지갑 속 명함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말이다.

헬스장 명함에 선명히 새겨져 있던 상체 노출남이었다.


“저랑 운동 살짝만 해보시면, 금방 근육 쫙-! 올라올 것 같은데요?”

“아뇨. 힘든 운동 할 생각 없어요. 그냥 등록만 할게요.”


누차 말하지만, 난 전직 형사였다.

형사의 귀는 팔랑이지 않았다. 단호히 거절했다.

하지만 놈은 베테랑이었다.


“어우! 좋습니다. 모든 분들이 PT 받으시는 건 아니니까요. 다시니다가 필요성 느끼시면, 언제든지 절 불러주시면 됩니다.”

“네. 그러죠. 뭐.”

“그러면 여기랑 여기, 여기 인적사항 적어주시고요.”

“여기요?

“네. 맞습니다. 환불 규정도 한번 확인 부탁드리겠···. 어!! 채은 님!! 왜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내게 공손히 설명하던 오정혁은 갑자기 어딘가를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익숙한 이름. 나도 모르게 홱 뒤를 돌았다.

송채은이었다.


송채은은 오정혁에게 인사를 하다, 날 발견하고선 멈칫했다.

나는 작은 고갯짓으로 그녀에게 인사했고, 그녀도 마지못해 인사했다.

어색한 눈인사를 마친 뒤, 송채은은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내가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니 오정혁이 슬며시 정보를 흘렸다.


“저분. 되게 예쁘죠.”

“예쁘긴 개뿔···.”


진심이었다.

내 눈엔 저 여자가 전혀 예뻐 보이지 않았다.

인플루언서인지 인플루엔자인지. 송채은이 대체 어떻게 유명해진 건지 도통 이유를 몰랐다.

물론 편의점 알바생이었던 때에 비하면 세련되지긴 했다.

그렇지만 썩···.

하지만 오종혁은 눈을 반짝이며 날 꼬시기 시작했다.

그 말속엔 묘한 자부심이 있었다.


“제가 저분 담당 트레이너입니다! 포털에 조금 검색해보시면, 송채은 트레이너로 제가 나온답니다.”

“아니···. 저 여자가 그렇게 유명해요?”

“음? 우리 회원님도 저분 알아보신 거 아니었어요? 계속 쳐다보시길래 아시는 줄 알았더니?“


난감한 질문엔 적당히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친구 여자친구랑 너무 닮아서 쳐다본 거였어요.”

“아···. 그러시구나···. 여튼 저분 굉장히 유명하신 분이에요!”

“일반인 아니에요?”

“네 맞아요. 옷 엄청나게 잘 입는 거로 유명한 SNS 스타예요. 아까 몸매 보셨어요? 그거 다 제가 만들었다니까요!”


이곳에서의 송채은이 얼마나 유명한지는 모르겠으나, 오정혁은 송채은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선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송채은의 트레이너라···. 잘 활용하면 괜찮을 것 같다.


“좋습니다.”

“네?”

“일단 3개월만 해볼게요.”


급작스러운 내 결정에 오정혁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런 그를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아서라 이 양반아. 내가 아니라 네가 낚인 거라니까.

앞으로 날 위한 정보원이 되어라!!

하지만 섣부른 판단이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이번엔 와이드 스쾃 가겠습니다.”


아무래도 날 죽음으로 내몰 범인은 박유철과 송채은이 아니라 트레이너 오종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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