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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수정 중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안밀
작품등록일 :
2020.03.27 08:37
최근연재일 :
2020.04.18 12:00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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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6,461

작성
20.04.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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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작가의 자존심

DUMMY

난 작가의 얼굴을 볼 수 없다.

표정이나 몸짓 같은 것도 볼 수 없다.

오로지 들을 수 있는 것이라곤 목소리뿐.


[그럴싸하지 않냐?]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아니. 전혀.”

[별 볼 일 없는 편의점 알바가, 잘나가는 SNS 인플루언서라니! 매력 있는 것 같은데?]

“매력은 개뿔. 김재진을 죽일 년인데. 무슨 직업을 갖다 붙여놔도 별로여야 하는 거 아냐?”


이번에는 그가 반박했다.


[아냐. 매력적인 배경을 가진 매력적인 악역이 인기 있는 거라니까.]


빌어먹을. 매력이고 나발이고 다 부질없었다.

내가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집필에 참여한 건, 나와 재진의 생존 때문이었다.

그 이외의 것들은 하등 소용없었다.


“이건 불공평하지.”

[응?]

“밸런스 패치 좀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누구는 잘나가는 인플루언서고! 누구는 형사 찌끄래기나 하고!”


내가 대들자, 작가는 살짝 당황한 듯했다.


[야! 너도 로또 당첨 몇 번 시켜줬잖아! 지금 네 통장에 잔액이 얼마인 줄은 알아?!]

“로또 당첨되면 뭐해! 일하라고 쓰지도 못하게 하면서!!”

[나중에 쓰시라고. 거참 성격 한번 급하네. 누가 그 돈 뺏는다 그랬냐?]

“그리고 그 당첨금이 이야기에 반전을 주는 게 아니잖아? 있어도 있는 티가 안 나는데, 무슨 소용이야.”

[그···. 그렇긴 한데···. 잠깐만 좀 있어 보라고. 이 이야기만 마무리되면 넌 자유야. 제일 중요한 게 이 흐름을 뜯어고치는 거라니까 그러네.]

“고칠 생각이나 있는 거냐?”


내가 쏘아대자, 작가는 콧방귀를 꼈다.


[네가 내 위대한 생각을 알겠냐.]

“대충 알 것 같은데? 악역에 힘 빡! 주다가 뇌절치고 이야기 말아먹지 않으려나?”

[야 이새끼야!]

“아 그러니까···. 김재진이랑 송채은 못 만나게는 하지 않을 테니까, 이쪽에서도 방어할 수 있는 무언가를 달라 그거지.”

[음···. 방어?]

“그래. 방어. 별 거지 같은 엔딩을 피할 수 있는 방어기제 말이야.”


작가에게는 그저 텍스트겠지만, 나와 재진에게는 인생 그 자체였고,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눈앞에 훤히 보이는 죽음을 앞에 두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놈에게서 그 방안을 뜯어내야 했다.


[좋아. 설정이 자꾸 붙으면, 내가 피곤해지긴 한데···. 네 말을 한번 믿어볼게.]


잠시 고민하던 그가 결국 승낙했다.


[뭘 원해?]

“그 전에.”

[응?]

“내가 뭘 할 수 없지?”

[아하. 제약부터 말해달라? 네가 절대 못 건드리는 것들을 말해달란 거지?]

“그렇지”


작가는 재밌다는 듯 낄낄 웃었다.


[제일 중요한 것 하나. 너 이외의 인물들은, 지금 이 모든 것들이 허구임을 몰라야 한다.]

“그거야 들었으니까. 혹시나 내가 말하게 되면 어떻게 되지?”

[폭망.]

“오케이. 그럼 다른 건?”

[네 요령껏 이야기를 수정하는 건 오케이. 하지만 이야기 자체를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 그 말은, 송채은도 모자라 우릴 죽인 박유철까지 만나야 한다는 소리인 거지?”

[그렇지. 언젠가는 만나야 해. 남주 김재진, 여주 송채은, 악역 박유철. 이 세 사람이 만들어내는 처절한 인간군상이 이야기의 주된 내용이니까.]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그 잘난 이야기에는 내가 없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좋아. 규칙이라는 거지.”

[세 번째. 조연인 너는 항상 뒤편에 있어야 한다.]

“흠. 조연에게 조연이라고 그러면 듣는 조연이 기분 나쁜데?”


내 투덜거림에, 작가는 작게 웃었다.


[어쩔 수 없어. 넌 조연이니까. 근데 너무 막 그렇게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어. 나는 작가고, 너는 형사고, 박유철이 연쇄살인마 인 것처럼···. 그냥 주연, 조연도 하나의 역할일 뿐이야. 아주 상대적인 거지.]

“상대적이라고 그래도···. 어찌 됐든 난 뒤로 빠져있어라 그 말이잖아?”

[맞아. 정 뭣하면 넌 너 스스로 널 주인공이라 생각해도 좋아.]

“그게 무슨 소리지?”

[캐릭터들을 네 뜻대로 움직이는 흑막 같은 거? 오. 흑막! 괜찮은데?]

“흠···.”


날 띄어주기 위함인 건지, 작가는 근사한 단어를 발견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제약은 그게 끝이야?”

[음. 아마도? 작가 특례가 조금 과하다 싶으면···. 네게 준 권한을 줄이긴 할 건데, 아직까지는 뭐.]

“작가특례라···. 재밌네.”

[난 모든 걸 할 수 있어. 넌 그런 나에게 안되는 것 이외에 모든 걸 요구할 수 있고. 물론 전제조건은? 탈주는 불가능하다! 라는 거지. 다 때려치우고 여행 간다고 한 번만 더 그래 봐라! 확 그냥 해고해버린다?]

“좋아. 내가 너한테 뭘 요구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볼게. 필요할 때마다 이야기하면 되지?”

[응. 언제든지. 난 항상 네 말을 듣고 있어.]


조연인지, 흑막인지.

뭐가 됐든 간에 인생 2회차···. 아니. 스토리 2회차 시작이다.

다 뜯어고칠 테다.




/




작가 버프로 잘 먹고 잘사는 것도 좋았지만, 어찌 됐든 가장 중요한 건 엔딩 장면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뭘 확인해 보려고?”


재진과 함께 사건 현장을 찾았다.

연쇄살인마 박유철이 시신을 유기한 한 골목이었다.


“그냥 이것저것. 놓친 거 없나 해서···.”

“저번에도 왔었잖아. 그때랑 뭐 크게 다른 게 있겠냐.”

“혹시 모르지. 그때는 못 보고, 지금은 볼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박유철을 잡기 위해, 우리는 자주 사건 현장을 찾았다.

재진과 내가 죽던 그 순간에서야, 우리는 박유철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정말로 어려웠다.


희대의 연쇄살인마 박유철.

그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건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

자그마치 2년이나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시점으로는 1년이 조금 넘었다.

그 첫 시작은, 어느 한 골목길에서 발견된 나체의 젊은 여자였다.

팔다리가 꽁꽁 묶인 채 쓰레기더미에 버려져 있었다.

깍지 낀 손가락을 이리저리 꼬아 문양을 만든 게 특징이었다.

놈의 시그니처였다.

그런 희생자들이 한 달에 한 명씩, 서울 전역에 걸쳐서 나왔다.

열 번째 희생자가 나올 때까지, 놈의 윤곽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신이 도왔던 걸까.

열한 번째 피해자가 기적적으로 놈에게서 탈출해, 경찰에 신고했다.

목숨을 건 신고였다.

경찰은 증언을 토대로 연쇄살인마의 신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별다른 직업도, 별다른 특이사항도 없는 평범한 남자. 34세. 박유철.

흐릿했던 연쇄살인마의 정체가 드러났다.

하지만 피해자는 곧 희생자가 되었다.

정확히 두 달 뒤, 그녀는 다시 박유철의 타깃이 되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뒤로는 한 달에 두 명씩. 아주 규칙적으로 희생자들이 나왔다.


[그때는 그랬지.]


너. 그거 되게 의미심장한 말인데?


[뭐···. 그렇다고.]


작가의 말이 무척 묘했다.

재진은 번화가의 뒷골목에 자리한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가 물었다.


“왜 한적한 곳이 아니라···. 이런 곳에 유기했을까?”


회귀 전의 나는 뭐라고 대답했던가.


[내가 그걸 알면, 형사 말고 무당했지! 라고 그랬었음. 내가 기억함. 완전 빼박 조연 대사 아니냐?]


날 놀리는 듯한 작가의 말이 좀 짜증 났다.

뭐 어찌 됐든 간에, 그때는 하나도 몰랐지만, 지금은 알았다.

박유철이 왜 이런 곳에 시신을 유기했는지 말이다.


“경고하는 거야.”

“응? 무슨 경고?”


난 골목 초입에서 빛나는 휘황찬란한 간판들을 보며 읊조렸다.

사람들이 무수히 지나갔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 그게 네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뭐 그런 거지.”

“미친. 사이코패스인가. 과시욕인데?”

“맞아. 과시욕. 그 새끼는 그런 새끼야.”


왠지 모르게 차분해지는 머리와 달리, 입은 멋대로 떠들고 있었다.


[워우. 잠깐! 저기요? 스포 때리면 안 된다 너. 대사 예쁘게 해라?]


작가의 경고가 끝나기 무섭게, 재진은 날 툭 치며 웃었다.


“뭐냐. 너 나 몰래 그 새끼랑 친구 먹었냐? 번호는 땄냐?”


다행스럽게도 농담조로 받아들인 듯하다. 십년감수했다.

진지함은 날려버리고, 장난스러움을 가져올 때다.


“맨날 박유철 신상만 보고 있으니까, 존나 친근해. 같이 사는 기분이야.”

“오. 너도? 야. 나도.”


우리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와 난 쿵짝이 잘 맞았다. 그랬기에 직장동료 사이를 넘어, 이토록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BL은 안된다.]


···. 덤앤더머같은. 뭐 그런 거다.


그와 난 주변을 한참을 훑어보았으나, 그때도 그랬듯 지금도 특별한 건 볼 수 없었다.

결벽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박유철은 현장에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뭐 없는데? 이만 가자.”


지금의 윤지혁 형사와 김재진 형사는 아무것도 몰랐다.

간헐적으로 들어오는 제보를 쫓을 뿐이었다.

하지만 일 년 뒤의 윤지혁 형사는 박유철의 주거지를 알았다. 그게 바로 지금의 나다.


[뭐! 알면 뭐 어쩔 건데! 지금 당장 김재진이랑 박유철 잡으러 가게?]


미리 잡으면 끝 아닌가.


[음···. 안 되겠다. 지금 이 시간부로, 박유철의 주소를 옮길 거야. 네가 아는 옛날주소로 찾아가면 박유철 절대 못 만나게 할거야. 개연성을 잊으면 안 돼. 알았어?]


에이씨···.


쉽게 갈 수 있나 했더니, 작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옛날에는 미처 못 보고 지나갔던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니까.


“잠깐.”

“뭐.”

“여기···. 뭐지?”


난 재진을 슬쩍 밀어냈다.

그의 발밑에 하수구가 있었다.

별다른 거 없는 평범한 사각 맨홀이었다.


“이게 뭐?”

“나와 봐.”


맨홀 뚜껑을 열었다.

재진은 날 보며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쳐다보았다.

하지만 내 시선은 하수구에 있는 작은 조각에 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제 존재를 드러내는 손톱만 한 거울 조각이었다.

그걸 집어 들었다.


“그게 뭐야? 유리야?”

“아니. 거울이야.”

“뭐 그런 게 떨어져 있냐. 깨진 거울 보면 안 좋다고 그랬는데.”

“안 좋지···. 여기서 발견된 피해자도 안 좋았고···.”

“엇. 그러고 보니! 여기 피해자가 발견된 곳이네? 여기 하수구 위에 버려져 있었잖아.”

“맞아.”

“너 기억 안 나냐? 네가 그때 막 그랬잖아. 이 쌍놈의 새끼는 예의도 없는 새끼라고! 넓고 넓은 바닥 놔두고, 하수구 위에다 유기했다고 난리 폈던 거.”

“기억나지.”


작은 거울 조각.

일 년 전의 우리는, 이 거울 조각을 발견조차도 못했다.

상당히 최근에야 알게 된 또 하나의 시그니처였다.

너무나도 사소한 것들이라 알지 못했다.

박유철이 여자들을 죽이기 전에, 희생자의 소지품 중 거울을 깨뜨린다는 것을 말이다.

손거울. 혹은 화장품에 딸린 거울.

하다못해 거울로 된 핸드폰 케이스까지도 깨져 있었다.

납치 혹은 살해 과정에 격렬한 몸부림이 있었을 테니, 소지품들이 박살 나 있어도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았다.

피해자가 스무 명을 넘어가는 시점에서야 알았다.

잔뜩 꼬아놓은 손가락은 과시용 시그니처였고, 피해자의 거울을 깨는 행위는 은밀한 시그니처였음을.


“그래서 그 거울이 뭔데?”


재진이 물었다. 난 씩 웃으며 그의 손 위에 거울 조각을 올려주었다.


“놈의 또 다른 시그니처야..”

“뭐···. 뭐라고?!!”

“아주 중요한 증거지.”


잔혹한 연쇄살인마를 잡을 증거였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는 증거기도 했다.


[제법이다?]


흠. 놈의 주소는 바꿔도, 중요한 시그니처는 안 바꾸겠다? 그 뜻인 건가?


[어. 있어 보이잖아.]


작가와 난 전체적인 스토리를 뜯어고치는 어려운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작가는 설정 욕심을 놓지 못했다.

변하지 않은 그 몇몇 설정은 작가의 자존심이었으며, 나를 위한 힌트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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