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

스토리 수정 중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안밀
작품등록일 :
2020.03.27 08:37
최근연재일 :
2020.04.18 12:00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302
추천수 :
3
글자수 :
76,461

작성
20.03.28 22:38
조회
32
추천
1
글자
11쪽

나는 조연이다.

DUMMY

머리가 띵한 느낌이었다.

앞뒤 이야기도 없이 어느 공간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실제로 난 차 안에 떨어졌다.


“야. 윤 형사! 잠 깨 이 자식아!”


재진이었다. 그가 날 툭툭 쳤다.

너무나도 익숙한 광경이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차 안. 아무렇게나 던져진 햄버거 포장지.

뻑적지근한 허리까지. 똑같다.

우리는 잠복근무 중이었다.


“뭐···. 뭐야.”

“잘 만큼 잤잖아. 적당히 하고 일어나시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재진은 죽었다. 연쇄살인마 박유철과 그의 여자 송채은의 손에 말이다.

하지만 재진은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살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난 작가랑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지금 이곳과 이 상황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스토리를 수정한다는 것이 이 말이었나.

그 얼굴 없는 작가가 그랬다.

이야기를 갈아엎고 다시 시작하자고.

난 재진의 목을 더듬었다.

그러자 놈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존나 소름 돋게 이게 무슨 짓이야?!!”

“너···. 진짜 괜찮아?”


재진이 내 손을 툭 쳐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 괜찮다 이 자식아!!”

“김 형사···.”

“꿈꿨냐? 오그라들게 왜 이래?! 뭐 포옹이라도 해주랴?”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었다.

이 새끼. 살았구나. 살았어. 정말. 정말 다행이다···. 되뇌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어왔다.


[야야. 너 진짜 막 끌어안고 그러면 안 된다? BL은 사양이야!]


와우. 정신병이라도 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머릿속에서 환청이 들려왔다.


[환청 아냐. 넌 실제로 내 말을 듣고 있는거야.]


생각만으로도 대화 할 수 있는 건가?


[맞아. 정신병이라니! 귀에 통신기 하나를 꼈다고 생각해. 그게 좋겠지?]


뭐. 좋을 대로 해. 재밌네. 무슨 첩보 영화 스파이라도 된 것 같아.


[비슷하지. 네가 잘하면 진짜로 영화가 될 수도 있지.]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내가 픽 웃자, 재진은 날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둥, 잠복을 하도 했더니 정신줄을 놨다는 둥.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 투덜거림이 참 감사했다. 그도, 나도 다시 살았음에 감사했다.

이제 허무하게 죽는 건 사양이었다.


“이 새끼는 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재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도 허리를 쭉 펴내며 어렵사리 기지개를 켰다.

주위를 살펴보았다. 익숙한 곳이었다.


[맞아. 딱 1년 전 내용으로 돌아왔어. 넌 지금 박유철을 잡기 위해 박재진이랑 함께 잠복근무 중이야.]


내 기억이 맞다면, 거의 반년 넘게 이렇게 살았던 것 같은데···.


[에이. 그렇게 말하면 네가 너무 무능해 보이잖아. 괜찮아. 너한테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지만, 독자들한테는 아주 찰나의 순간이거든.]


너무하네. 형사들의 애환을 그렇게 후려치기 하다니. 조금 더 이야기를 풀어주지 그래?


[안돼. 넌 영화 보는데, 주인공이 하루 온종일 회사에서 일하는 것만 보고 싶냐?]


그게 재밌다면야. 얼마든지 볼 수도 있지.


[와! 너 진짜 나빴다. 나 지금 돌려 까는 거야? 이거 왜 이래! 나도 각 잡고 쓰면 일상물로도 재밌는 이야기 쓸 수 있거든?!]


글쎄. 내가 기억하는 이 스토리의 엔딩은, 영 재밌지 않던데. 완전 독립영화 스타일의 찝찝한 엔딩 아니야?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 싫어할걸?


[나쁜 새끼. 이렇게 뼈를 때리네.]


이야기를 시원시원하게 빼봐.


[대체 내 이야기가 어떻게 바뀌어야 시원시원할 것 같은데?]


이 지긋지긋한 잠복을 끝내봐. 김재진이랑 난 지금 연쇄살인마 박유철을 쫓고 있잖아. 시원한 사이다 패스가 되려면 범인을 잡아야 하지 않겠어?


[에이···. 그건 안돼.]


대체 왜?


[우린 지금 이야기의 첫 부부분에 와 있어. 악역이 초장부터 죽어버리면 나는 어쩌라고?]


얼탱이없네.

나 그럼 계속 여기에 죽치고 있어?

작가인 너랑 무시무시한 편집자가 원하는 게 정말 그런 거야?


[이 자식이···. 날 협박하네?]


협박이라니. 무슨 그런 서운한 소릴.


[좋아. 박유철은 아직 양보 못 하지만, 잠복은 끝내줄 수 있지.]


작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재진이 날 툭툭 쳤다.


“야. 야!! 저거 뭐야?!!”


재진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괴한 하나가 여고생의 입을 틀어막은 채,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 장면을 발견하기 무섭게, 재진과 나는 차 밖을 튀어 나갔다.


“거기 뭐야!!!”


내가 놈을 향해 소리를 버럭 지르니, 당황한 놈은 여고생을 밀치고선 냅다 뛰기 시작했다.

전속력으로 뛰었다.

가로등을 지나쳐, 벽돌 담벼락을 지나쳐, 모퉁이를 꺾었다.

숨이 가빠왔다.

다시 한번 모퉁이를 꺾는 순간, 길은 세 갈래로 갈라졌고 놈은 보이지 않았다.


[왼쪽.]


작가가 시키는 데로, 제일 왼쪽 골목으로 뛰었다. 얼마나 뛰었을까.

다시 한번 길이 갈라졌다.


[그대로 직진하시고!]


머릿속에 정답지가 들어 있는 기분이었다.

작가가 아니었다면, 이 빌어먹을 골목길을 헤매느라 진즉에 놈을 놓쳤을 거다.

놈의 뒤통수가 보였다. 잡힐 듯 말 듯 했다.


“야 이 새끼야!! 거기 안 서?!!”

“너 같으면서겠냐 이 씹새야!!”

“저 새끼가!!”


가로등 불빛에 슬쩍 나타난 놈의 얼굴.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는데, 잘 보이질 않았다.

목소리도 익숙한 기분이었다.


“거기서!!”


놈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씨발!!”


날 따돌리기 위해 쓰레기봉투 더미를 던졌다.

재빨리 피했으나, 그동안 놈은 나와의 거리를 벌렸다.


[더 빨리 뛰어.]


지금도 존나 뛰고 있는 거라고!


[조금만 더.]


잡힐 듯 안 잡힐 듯, 놈은 날 약 올리는 듯했다.

길의 폭이 점차 넓어졌다. 주택가를 지나쳤고, 작은 상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헉!!”


한참을 열심히 뛰던 놈이 화들짝 놀랐다.

제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제야 나도 가쁜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재진이었다.

지름길로 온 걸까. 난 온몸에 땀이 흥건한 채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지만, 재진은 남자가 봐도 멋있는 모습으로 놈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왠지 모르게 허탈한 기분이었다.


“현 시각으로 귀하를 형사소송법 제212조에 따라 영장 없이 현행범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체포구속적부심을 법원에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재진은 미란다 법칙을 고지하며 놈을 일으켜 세웠다.

흔치 않은 광경에 하나둘 구경꾼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범인을 검거한 재진에게 있었다.

왠지 모르게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이며 체포된 놈에게 시선을 주었다.

눈이 마주쳤다.


“어? 너 이 새끼!! 언제 나왔어!!”

“···.”


상택이네 김종준이었다.

놈은 입을 꾹 다문 채 내 시선을 피했고, 난 놈의 뒤통수를 때리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보는 눈이 많았다.


“너 아까 뭐라 그랬어. 씹새?!!”

“잘못 들으셨겠죠.”

“지랄한다. 너 들어가서 보자?”

“싫은데요.”

“하···.”


연쇄살인마 박유철을 잡기 위해 잠복근무를 하고 있던 우리 둘은,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상택이네는 여자를 납치해 이곳저곳에 팔아넘기는 놈들이었다.

염전이나 술집이면 다행이었다.

통나무 장사꾼들이랑도 친하게 지내는 터라, 질이 나쁜 놈들이었다.

우연히 잡은 것 치고는 대어였다.


[만족해?]


음···.


[왜?]


기분이 그냥 그래. 다시 옛날처럼 돌아왔구나 싶어.


[설마 너. 삐쳤냐?]


뭐? 내가?


[뺑이 친 건 넌데, 멋있는 장면은 김재진이 가져가서 아쉬워?]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흠···. 그런 소릴 하면 내가 미안해지는데···.]


뭐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러나 싶지만···. 그냥 좀···. 잠시 욕심났나 봐. 신경 쓰지 마.


[신경을 안 쓸 수가 있나! 내 새끼 기분이 안 좋다는데, 당연히 신경 쓰이지.]


작가는 묘한 목소리로 낄낄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걸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축 처지는 기분이라, 입을 꾹 다물곤 운전을 했다.


“윤 형사.”

“응?”

“괜찮아?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 별거 아냐. 괜찮아.”


그 말이 거짓말인 걸 아는 작가는 피식피식 쪼갰다. 참 얄미운 웃음소리였다.




/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털썩 쓰러졌다.

고단한 하루였다.

현행범으로 잡혀들어온 김종준을 보고선, 팀장은 몹시도 좋아라했다.

둘이 한 조가 되어 놈을 잡았으나, 대부분의 칭찬은 놈의 손에 수갑을 채운 재진에게 돌아갔다.

익숙했다. 난 조연이고, 그는 주연.

주연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당연했다.

애초부터 조연으로 타고난 나는 한 발짝 뒤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걸 수긍하며 살았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무서웠다.

시간을 되돌려, 이야기의 첫 자락에 서 있는 나는 정체 모를 욕심에 시달려야 했다.

작가가 속삭였다.


[야.]

“왜?”

[불만이 있음 나한테 이야기해. 애꿎은 지면 할애하지 말고.]

“지랄.”

[헐! 지랄이라니! 널 만든 나에게 그런 소릴 하면 안 되지!]

“네가 나만 만든 건 아니잖아?”

[그···. 그렇지···.]

“생각해보면 참 이상해. 이야기를 리메이크하고 싶었으면, 재진이랑 하면 되지. 왜 나한테 그러냐? 아. 김재진한테도 네 목소리가 들리는 건가?”

[아니. 내 목소리는 오로지 너에게만 들려. 아! 그걸 안 말했다!]

“뭘? 뭘 말해?”


작가는 손뼉을 짝 쳐내더니, 아주아주 중요한 거라는 사족을 덧붙이며 내게 주의를 줬다.


[이 이야기가 소설 속이라는 건, 너와 나만 아는 비밀이야. 김재진이 알면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려. 자기가 소설 속 주인공인 걸 알게 되면 충격받아서 미쳐버리고 말거야.]

“뭐···. 트루먼 쇼 그런 거처럼?”

[그래! 잘 아네!]

“알 게 뭐야 그딴거···. 이야기 안 해. 걱정하지 마.”


누군가가 지금 내 모습을 본다면,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을까 싶었다.

머릿속에서 들리는 남자 목소리와 노닥거리는 내 모습은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삐쳤네. 삐친 게 확실해.]

“그런 거 아니라고.”

[좋아. 오늘 하루를 열심히 보냈으니, 상을 줘야지.]

“상?”

[옷 입어. 나가게.]


담배나 피자 싶어, 못이기는 척 겉옷을 입고 나왔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내 의지와는 달리 어딘가로 향했다.

그 느낌이 퍽 괴이해 소름이 돋았지만, 작가는 자기를 믿으라 했다.


[저기야.]


헐. 설마.


[작가가 조연에게 주는 출연료야. 이번 리메이크를 위한 수당이라고 쳐. 그러니까 앞으로도 열심히 뛰어다녀라?]


미친!!!


[3, 6, 13···.]


잠깐!!! 기다려!!! 기다리라고!!!


발걸음이 다다른 곳은 로또방이었다.

작가가 부르는 번호를 놓칠세라, 황급히 사인펜을 빼 들었다.

로또방 사장은 상기된 내 얼굴을 보고선, 마지못해 웃어주었다.

남들에게는 일주일짜리 행복이겠지.

하지만 모든 걸 할 수 있는 작가와 함께하는 나에겐 백지수표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좋냐?]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덜덜덜 떨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스토리 수정 중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 엔딩 20.04.18 22 0 13쪽
13 치트키 20.04.17 12 0 12쪽
12 변화 20.04.17 14 0 13쪽
11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내 친구도 믿었기에. 20.04.15 16 0 13쪽
10 백스페이스 20.04.14 14 0 12쪽
9 입조심 +1 20.04.13 14 1 11쪽
8 은밀하게 과감하게 20.04.11 21 0 12쪽
7 베테랑 20.04.09 20 0 13쪽
6 밸런스 패치 20.04.07 21 0 12쪽
5 상대적 개연성 20.04.05 17 0 12쪽
4 작가의 자존심 20.04.02 18 0 12쪽
3 분량은 채워야한다. 20.03.31 22 0 12쪽
» 나는 조연이다. 20.03.28 33 1 11쪽
1 고구마 엔딩 20.03.27 59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