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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수정 중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안밀
작품등록일 :
2020.03.27 08:37
최근연재일 :
2020.04.18 12:00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301
추천수 :
3
글자수 :
76,461

작성
20.03.27 08:46
조회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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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고구마 엔딩

DUMMY

가슴에 칼이 박혔다.

그러자 내가 살아온 모든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으···. 으윽···.”


그중 가장 역겨운 기억 하나가 날 집어삼켰다.


“송채은···. 네가···. 어떻게···.”


날 내려다보며 싱긋 웃는 저 씨발년.

이 모든 것은 다 저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재진의 여자친구. 송채은.

그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역대급 여자 주인공이었다.


“미안해요. 지혁씨···.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으니까, 날···. 우리를 너무 원망하지 말아요.”


송채은은 검은 볼캡을 쓴 남자에게 팔짱을 꼈다.

남자의 이름은 박유철.

그는 연쇄살인마고, 난 그의 스물세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그래도 혼자 가지는 않게 해줄게. 음. 곧 올 때가 됐는데···.”

“엇. 저기 온다.”


힘겹게 시선을 돌려 송채은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재진이 달려오고 있었다.


“윤지혁!!! 윤지혁!!! 어딨냐고!!! 대답해 이 새끼야!!!”


미친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저렇게 큰 소리를 내는 건가.

그의 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내가 못 듣는 건가, 그가 멀어지는 것인가.

후자이길 간절히 바랐다.


“숨어.”


송채은이 박유철을 재촉했다. 둘이 맞잡은 손. 역했다.


“저 새끼의 어디를 찔러줄까? 머리? 목? 심장?”

“그래도 지내온 정이 있으니까···. 아프지 않게만 부탁해.”

“총도 살살 쏘면 안 아프다던데, 칼도 그러려나?”

“글쎄. 잘 모르겠으니, 자기가 한번 해봐. 나도 궁금해졌어.”


손에 시뻘건 피를 묻힌 두 연놈이 칭하는 대상은, 내 파트너 김재진이 틀림없었다.


“도···. 도망···. 가···.”


남아있는 모든 생명력을 짜내, 재진의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외쳤다.

아니. 그건 외침이라기 보다 읊조림에 가까웠다.

그마저도 빗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송채은은 어둠에 몸을 숨기며, 비릿한 미소와 함께 손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녀의 시선이 박유철과 닮아 있었다. 살인마의 것이었다.


“지혁아!!!”


결국 그 지독한 놈은 날 찾아내고 말았다.

그는 피로 붉어진 빗물 웅덩이를 보며 절규했다.

난 이미 글렀다.

하지만 그는 살아야 했다.

나는 조연이었으나, 그는 주인공이었다.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 그래야만 한다.


“여기···. 여기 있어···. 제발···. 제발 도망···.”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모습을 보인 볼캡의 살인마.


“크억!!!”


내 죽음에 정신이 나가버린 김재진.

뒤에서 다가오는 살인마를 알지 못했다. 답지 않게. 왜···.


“드디어···. 이날만을 얼마나 기다렸나 몰라!”


확인사살이라도 하는 듯, 박유철은 재진의 목에 꽂힌 칼을 비틀었다.

얼굴에 뜨거운 것이 튀었다.

앞이 보이질 않았다.

무거워졌다. 재진이 내 위로 쓰러진 듯하다.

남자 주인공이 죽었다.

조연은 주연의 죽음을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어그러진 이야기. 어두워지는 세상.

나는 그렇게 죽었다.

이 세상에 후회만 가득 남긴 채,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가치 없는 죽음이었다.

스토리는 비극적 엔딩으로 끝나버렸고, 세상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




시공간을 초월한 곳.

눈을 뜨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無)의 세계였다. 순백을 닮은 하얀 곳이었다.

공허가 주는 공포가 두려워 가만히 있으니,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이걸로 괜찮나?]


없음의 공간. 그 공간에 무언가 생겼다.

날 향한 질문이 그곳에 있었다.

질문이 있으니 답을 했다.


“아니. 괜찮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었거든···.]

“넌 누구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다 대고, 그의 정체를 물었다.

아니. 정체가 없는 듯한 목소리였다.

저 멀리서 아득하게 들려오는 게, 괴이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신의 목소리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응? 왜 날 모르지?]


내 질문이 의외였을까. 그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모습을 보여야, 내가 널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할 거 아냐!”


버럭 성질을 냈더니, 작은 웃음소리가 들어왔다.


[뭐래. 너랑 내가 어떻게 만나.]

“그게 무슨 소리지?”

[넌 그곳에 살고, 난 이곳에 사니까 만날 수 없지. 네가 날 궁금해하는 것처럼, 나도 널 만나고 싶어.]


그의 말이 영 이해가 안 돼 인상을 팍 썼다. 그제야 그가 자기소개를 했다.


[난 작가야. 너 왜 날 모르는 척해. 우리 잘 아는 사이잖아.]

“작가?”

[서운하네. 남주 김재진도, 여주 송채은도, 악역인 윤재철도 다 알면서, 왜 나는 기억 못하는 건데? 우린 늘 함께했잖아.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나 조금 서운해.]


잔뜩 시무룩해진 목소리. 죄책감이 들어서였을까.

어렴풋하게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았다.

곰곰이 생각하니 늘 누군가와 함께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이제 정신이 좀 돌아오나 보네.]

“기분이 좀···. 좀 그래. 이상해···.”

[그럴 만 해. 나도 그러니까.]

“왜 이런 걸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말을 하니, 누군가의 눈에는 미친놈처럼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왜냐면···. 이야기가 거지같이 끝나서 그래. 칼에 찔린 건 괜찮아?]


그제야 떠오른 마지막 기억에, 난 황급히 몸을 더듬었다.

옷은 멀쩡했고, 상처도, 핏자국도 없었다. 이상하리만큼 깔끔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여기 뭐, 천국 같은 그런 건가? 여기선 신을 작가라 그래?”

[음···. 뭐 비슷한 것 같은데···. 그게 정확한 설명인지는 모르겠다.]


자신을 작가라 칭하는 남자는 자신 없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난 이제야 이해되는 상황에 모든 걸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 뭐. 호칭이 무슨 상관이야. 내가 천국에 가는 게 중요하지.”

[저기 있지···.]

“응?”

[ 너 편할 대로 상상하는 건 좋은데, 팩트를 하나 말해주자면. 난 널 천국에 못 보내. 할 수 있다 한들, 보낼 생각도 없고.]


남자의 단호한 말에, 나는 내가 살아온 흔적들을 되짚어보았다.

나쁜 짓 한 건 없었나. 착한 일은 많이 했나. 천국행 티켓을 얻을 만큼 잘 살았었나.

셀프 체크 결과. 큰 결격사유는 없었다.

그럼 반박을 해야 했다.


“아 왜!”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천국에 간다고? 가긴 어디를 가. 마저 끝내고 가야지!]

“뭘 끝내. 죽었잖아.”

[아니 그러니까···. 이렇게 끝낼 거냐고. 작가인 내가 만족을 못 했는데, 어딜 감히 네가 가네마네 하고 있어.]

“하 진짜···. 대체 뭐라는 건지···.”

[에휴. 나도 너처럼 별생각 없으면 좋겠다.]

“이봐!!”


진심으로 날 부러워하는 그 말에, 버럭 성질을 냈다. 그가 다시 한번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참 묘했다. 사랑이 가득한데, 살기도 가득한 그런 느낌이었다. 좀 오싹했다.


[아직 이야기 안 끝났어. 개연성을 따지다 보니 이야기가 거지같이 끝나긴 했지만···. 이대로 마무리 지으면 나 편집자한테 완전히 깨질 것 같아.]

“편집자?”

[응. 무시무시한 남자가 있어. 나한테 고구마 맛 사이다를 내놓으라며 협박하는 미친놈이지]

“고구마 맛 사이다? 그게 뭔데? 라면 맛 나는 쌀밥 뭐 그런 건가?”


내 말이 어이없었는지, 남자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맞아. 뭐 그런 거지. 네가 이대로 죽어버린 이야길 보내면···. 그 남자가 집까지 쫓아올지도 몰라. 그래서 그 남자가 쫓아오기 전에, 이야기를 다시 뜯어고쳐야 해.]

“아까부터 자꾸 이야기니, 작가니, 조연이니 주연이니 그러는데. 대체 무슨 소리야?! 비유 뭐 그런 건가?!”

[뭔 개소리야···. 야. 윤지혁. 정신 차려. 내가 글을 좀 생생하게 쓰긴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진짜 사람은 아니잖아.]


혼란스러웠다.

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긴 했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라던데, 난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평범한 가정, 평범한 유년 시절, 지루한 취직 활동. 단조로운 일상.

굴곡 하나 없는 내 이야기엔 드라마가 없구나.


서른이 넘어가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꽤 재미없는 놈이구나.

세상이 커다란 스크린이라면, 난 지나가던 행인 1785번 정도 되겠구나 라는 생각.

영화 속 강력계 형사는 항상 멋진 역할만 맡아서 하던데, 내가 직접 되어보니 모두가 주연은 아니구나.

얼굴이 안 나와도, 목소리가 안 나와도 이야기에 전혀 지장 없는 그런 조연이구나 싶었다.


[맞아. 그랬지. 넌 정말 완벽한 조연이었어.]

“설마···. 내 생각까지 읽는 거야?”

[그럼. 네가 뱉어내는 지문 하나하나 다 보고 있는걸?]

“맙소사···.”

[정신 차려. 난 네 정체성에 대해 같이 고민해 줄 시간이 없어! 편집자가 쫓아온단 말이야!]


그의 재촉이 문제였을까.

정신을 멍하게 하는 이 하얀 공간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이때까지 내가 품고 살아왔던 가치관이 문제였을까.

내가 살던 그곳이 정말로 이야기 속이었다면, 내 모든 망상이 진실이었단 말인가?

그리고 그 말인즉슨···. 난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었고, 그건 곧 내 통찰력을 좋다는 말 아닌가?

조연 나부랭이지만, 칭찬할 거리가 하나 정도는 있다는 사실에 피식 웃고 말았다.


“역시 그랬던 거야···. 난 조연이었네.”

[미안. 널 딱히 미워한 건 아니야. 나도 내 역할이 있다 보니···. 난 내가 만든 모든 캐릭터를 아끼지만, 모든 캐릭터에 주연 자리를 줄 순 없어.]


그의 목소리에 미안함이 가득 묻어나왔다.


“딱히 널 뭐라 하는 건 아니었어···. 그냥 내가 살아왔던 삶이 조금 허무해져서 말이야.”

[나도 허무해. 이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버릴 줄은 몰랐어. 김재진은 내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 만든 캐릭터인데···.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김재진.

훤칠한 키와 외모. 그 누구보다도 정의에 헌신적인 형사였다.

누구든 그에게 호감을 느꼈고, 그는 항상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 나와는 달랐다.


“그 새끼가 왜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린 줄 알아? 시작부터 잘못됐었어. 뭐든 술술 풀린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단 말이야.”


내 이야기가 아니었으나, 내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재진이 아니었더라면 난 죽지 않았을 테니까.

철저한 인과관계에 기반한 내 목숨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시작부터 잘못됐었다니···. 그렇게 팩폭을 때리면 내가 좀 많이 아픈데?]

“뭐···. 사실은 사실이니까. 뭐 어때. 사실은 사실이지만, 이거 사실이 아니라 그랬잖아. 나 이야기 속 조연이라며?”

[흠. 나에겐 소설 속 이야기지만, 너에겐 사실이었으면 좋겠는데······.]


그의 목소리에서 진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뭐래···. 됐고. 나 이제 뭐 하면 되나? 진짜로 천국 안 보내줄 건가?”

[안된다니까 그러네.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 지을 순 없어. 그러니까 우리 다시 한번 해보자!]

“응? 뭘 다시 해?”

[스토리 수정 좀 하자고. 준비됐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상하게 잠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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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조연이다. 20.03.28 3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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