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4 화 - 어딜 가라고···?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14 화 - 어딜 가라고···?
리아인은 옷가게에서 고심하고 있었다.
류안의 옷을 고르느라 고심하고 있었다.
류안이야 뭐,
평소처럼 멍하니 가게 손님용 소파에 앉아 점원이 내어 준 맑게 우려낸 차를 마시고 중이었고
음식은 먹을 수 없어도 맑고 투명하게 우려낸 차 종류는 무난히 마실 수 있었다.
그 시각,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은 공작 가문의 응접실에서 헨즈 공작부인과
어제 부인의 아들 헬리와 류안의 인연을 얘기하느라 마무리 짓지 못한 본론을 마저 얘기 나누고 있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후,
리아인은 드디어 옷을 다 골랐다.
여유를 잡아 평상복 다섯 벌, 거기에 더해 잠옷 한 벌.
리아인은 평상복 하나를 류안의 손에 들려주며 옷가게 안에 있는 탈의실로 밀어 넣었다.
같이 들어가서 도와줄까 생각했지만,
이내 과잉 간섭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가로젓고는 탈의실 문 앞에서 보초처럼 서 있었다.
잠시 후,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탈의실 문이 열리고 제대로 갈아입은 류안이 나왔다.
새로 입은 옷 목깃에 작은 붉은색 브로치가 달려있었다.
리아인은 류안이 벗어놓은 옷,
헬리라는 녀석이 준 옷과 함께 저 브로치를 없애고 싶었지만,
류안이 그동안 돌아다니며 줍줍한 것들이 아공간 마법이 새겨진 저 브로치 안에 들어있어서 애써 외면하고는 옷을 점원한테 소각해 달라고 부탁하려 했는데···,
행동이 빠른 점원은 이미 마법 세탁으로 순식간에 깔끔해진 옷을 류안한테 건네주고 있었다.
리아인은 어쩔 수 없이
공작 가문의 저택에 돌아가기 전 류안한테서 저 보기 싫은 옷을 받아내 자신의 손으로 능력으로 직접 없애기로 계획했지만,
이 역시 류안이 이미 붉은색 브로치의 아공간 안에 옷을 넣어버리는 바람에 실행조차도 못했다.
그리고 보니,
류안이 브로치의 아공간에 뭘 넣는 것은 봤지만 꺼내는 것은 아직 못 봤다.
리아인의 시선에
류안이 ‘왜?’라는 표정을 짓자.
리아인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류안과 함께 옷가게를 나와서는 공작 가문 저택으로 향했다.
왠지 삐진 듯해 보였지만,
왜 그런 것인지 류안은 알 수 없었다.
무표정으로 공작 가문 저택으로 온 리아인의 얼굴이 종이 뭉친 것처럼 구겨졌다.
‘내가 지금 뭘 들었지? 어딜 가자고?’ 갑자기? 뜬금없이? 왜?’
리아인은 벨드라엔한테 지금 일어난 이 상황에 변명이라도 해보라는 눈빛을 쏘아붙였고,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는 벨드라엔을 대신해 쌍둥이 제우와 네우가 설명을 해주었다.
“왕실 내에서 조사 중인 실종사건들이 있는데, 헨즈 공작 가문에서 그 일을 맡고 있었다고 하네. 에피 친구들의 실종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고 버려진 창고에서 발견된 흔적들이 심상치가 않은 것 같고···, 그래서 그것을 본 우리들의 얘기를 왕실에서 직접 들어보고 싶어 한다고 해.”
‘아···, 어쩐지 그래서 그렇게 빨리 조사를 명한 것이군.’
리아인은 쌍둥이의 설명에 생각보다 빨리 조사가 시작된 것이 이해됐다.
“근데, 이제 겨우 실종사건 하나가 드러난 것인데, 굳이 우리한테서 얘기를 직접 들을 필요가 있나?”
“어, 그게··· 왕실 내에서는 아직 비밀로 하고 있고···. 이 이상한 실종사건 중에서 실종자를 찾은 것은 우리가, 류안이 처음이라고 하네···.”
리아인은 팔짱을 끼고 눈을 감으며 잠시 생각했다.
왕실에서 직접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
왕궁이 있는 수도로 가야 한다.
왕을 만나야 할 수도 있다.
“흐음─···.”
리아인은 감았던 눈을 떴다.
“그래서 언제 가야 하는데?”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은 리아인이 죽일 듯 엄청나게 째려보며 거절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별 거부 없이 같이 수도에 가는 것을 승낙하는 것을 보며 안심했다.
“빠를수록 좋다고는 했지만,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고 해서 이삼일 후 출발할 예정이야.”
“응? 빠를수록 좋다며 그럼, 텔레포트 하면 되지 않아? 수도는 경계 때문에 힘들다고 해도 그 근처 도시나 마을로 가면 빠르잖아.”
리아인의 말에 쌍둥이는 잠시 주저 거리다가,
“아··· 그게 수도로 오면서 지나치는 도시나 마을 상황도 살펴보면서 오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해서······.”
리아인은 벨드라엔을 봤고,
그는 그 시선을 여전히 피하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시찰도 하면서 오라는 것이군. 만나기 전부터 아주 그냥 부려먹으려 드네···.’
이곳 ‘피스링’과 수도는 꽤 거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중간중간 들리게 되는 도시나 마을도 꽤 될 터인데···.
리아인은 기가 찼지만,
수도로 가기로 했고,
고생은 저 쌍둥이와 벨드라엔이 할 테니까.
특히, 심적 고생은 벨드라엔이 무진장 할 것이다.
리아인이 수도로 함께 가기로 한 것은
처음부터 거절하면 저 망할 신이 껌딱지처럼 매달릴 것이 분명했기에
일단은 같이 가는 척 하면서
왕실과 벨드라엔, 쌍둥이 둘을 엮어버려 수도에 떨궈놓고 후, 류안과 단둘이 조용히 은밀히 빠져나오기 위해서였다.
“흐─···.”
리아인의 웃는 모습에 음흉함이 엿보이면서
벨드라엔과 쌍둥이는 움찔했다.
“아, 중요한 것을 안 물어봤네. 공작부인 아들인 ‘헬리’도 같이 가는 건가?”
헨즈 공작부인이 인연이라면서 같이 가라고 딸려 보낼 것 같아 불안했다.
“응? 아, 아니. 우리 다섯 명끼리만 가. 헬리는 같이 가고 싶은 눈치였지만, 자신은 따로 할 일이 있다고 엄청나게 아쉬워했어.”
다행이었다.
수도로 가는 동안이나
수도에 도착한 후에도 어지간하면 만나지는 않을 것이기에.
류안과 누군가가 엮이는 것은 절대 사양이었다.
리아인 얼굴의 음흉한 미소가 더 짙어졌다.
* * *
‘피스링’에 온 후 일주일.
마을 축제는 오늘로 폐막이었다.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 리아인과 류안은 수도로 떠나기 전,
더 필요한 것들이 있나 상점가를 둘러보았고
잠시 쉴 겸 들린 차와 디저트를 파는 노점에서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렇잖아, 위험해 보여도 어디 그런 싸움 구경이 흔한가?”
노점 한쪽에 앉은 모험가로 보이는 남자가 며칠 전 들렀다는 마을 ‘데무즈’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렇지, 나라도 숨죽이며 구경할 듯.”
“그래그래. 그래서 기대하면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이건 뭐···.”
모험가 남자는 노점 자리가 만석이라 합석한 다른 모험가 여자와 그새 친해졌는지 서로 맞장구치면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역시 ‘신의 영역싸움’은 뭐가 달라도 다른 거야?”
“음··· 뭐, 다르긴 했지···.”
모험가 남자는 기가 찼다는 듯 얘기했다.
“원래 그런 것인지··· 그건 싸움이라고 할 수도 없었어.”
모험가 여자는 뭔가 대단한 상식 이상의 싸움인가 싶어 잔뜩 기대하며 얘기에 집중했다.
“참나, 잘난 척 엄청나게 해대던 신이 힘을 하나도 못 쓰고 상대방 신한테 제대로 얻어터졌어.”
“엥?”
“이야~ 힘도 쥐뿔도 없으면서 뭘 믿고 상대방한테 그렇게 깝죽거린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더라고.”
기대하고 듣고 있던 모험가 여자는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그 ‘데무즈’마을 사람이 하는 말이 전반전에서는 나름 대등하게 싸웠다고 해. 후반전에 그렇게 어이없게 깨질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하데.”
모험가 남자는 웃긴다는 듯 계속 얘기했다.
“그 왕창 깨진 신이 참 웃긴 것이 자존심은 또 얼마나 높은 건지···. 진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 페디로스님이 제대로 권능을 발휘했다면 너 같은 것은 상대가 못 돼.’라면서 자꾸 권능, 권능 거리는 모습이 찌질하게 보이고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어.”
모험가 남자는 한숨을 쉬고는 마지막을 얘기했다.
“계속 자신의 이름을 외치던 그 신은 결국 함께 있던 세 명과 쫓겨나듯 사라졌지.”
얘기를 끝까지 들은 모험가 여자는 뭐 이런 싸움이 있나 싶었고
신의 영역싸움이라 기대했는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는 것이라 그런지
사라지지 않는 허탈감을 접시 위에 있는 쿠키를 집어 입에 넣고 으적으적 씹어먹으며 함께 삼켰다.
옆자리에서 얘기를 모두 듣고 있던 벨드라엔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러다 모험가 남자가 덧붙인 얘기에 그의 표정은 더 묘해졌다.
“그리고 보니, 그 페디로스인지 뭔지 하는 신이 사라지면서 하는 말이 자신의 권능이 사라졌다고 울부짖었어.”
“뭐? 신의 권능이 사라지도 해?”
“그걸 일개 인간인 나한테 물어본다고 아나?”
“하긴, 그러네. 미안해.”
“미안하긴 무슨··· 하. 하. 하.”
모험가 남자는 호탕하게 웃었고
뒤이어 두 모험가는 자신들의 모험담을 서로 주고받으며 꽁냥꽁냥 거렸다.
커플 탄생인 건가?
옆자리에서 남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벨드라엔은 생각에 잠겼다.
‘신의 권능이 사라져?’
순간 어떤 말이 떠올랐다.
‘존재할 가치가 없는 자의 권능 또한 존재할 이유가 없다.’
류안이 페디로스한테 한 말.
벨드라엔은 슬며시 류안을 보고는
곧 헛웃음을 흘렀다.
‘내가 지금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신의 권능을 없애다니··· ‘대학살’ 때 ‘---’인 그자도 권능만 없애버리지는 못했어.’
오래전 일어난 ‘대학살’을 잠시 떠올린 벨드라엔의 표정에 씁쓸함이 일순 스쳤지만
고개를 가로저으며 털어내고는.
‘페디로스 이 멍청한 것이 권능을 남용해 반동으로 일순 잃은 것이겠지···’
합당한 추론을 내렸다.
그러다가,
벨드라엔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류안의 모습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에 소름이 돋은 리아인이 류안이 앉은 의자를 자기 쪽으로 끌어오면서 벨드라엔과 거리를 두게 했고,
쌍둥이 둘도 같은 심정인지 벨드라엔한테서 슬금슬금 멀어지며 거리를 두었다.
그러는 동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고
마을 광장에는 폐막을 장식할 볼거리.
대형 나무 탑에 점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 볼거리를 뒤로하고는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 리아인과 류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마침 지나가던 자신들이 머물렀던 여관의 가게 주인과 시선이 마주쳤다.
저 가게 주인이 또 류안한테 무슨 오지랖을 부릴까 걱정이 밀어닥쳤는데,
걱정한 것이 무색해질 정도로
가게 주인은 류안한테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이 고개 인사만 하고는 가던 길을 갔다.
리아인은 순간 딴 사람인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의 모습에 의아함이 들었지만,
내일 수도로 떠나면 더 이상 만날 일 없으니 신경을 껐다.
* * *
다음 날.
수도로 떠나는 리아인과 류안,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을 위해 준비된 마차가···
엄청났다.
큰 덩치의 네 마리 말이 끄는 여행용 대형마차.
그 안에는 다섯 명이 충분히 누워 잘 수 있는 2층 구조의 침대,
편히 쉴 수 있는 소파와 탁자,
1인용 샤워실, 마법 세탁기, 야외에서 취사 준비를 할 수 있는 갖가지 도구들 등등.
···방음 마법과 냄새 제거 마법이 걸려있는 화장실도 있었다.
웬만한 ‘카라반’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수행원이나 호위기사 없이
오로지 다섯 명을 위한 마차였다.
헨즈 공작부인은 처음에는 걱정하면서 자기들끼리 간다는 그들한테 수행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몇 명의 호위기사는 어떻게든 같이 보내려 했지만,
쌍둥이 제우와 네우가 보여준 실력을 보고는 수긍하며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조심히 잘 다녀와요.”
헨즈 공작부인은 언제든지 다시 와도 된다는 의미로 배웅을 했고,
그 옆에서 헬리도 배웅하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렇게 좀 과한 배웅을 받으며
그들의 여행용 마차는 수도를 향해 출발했다.
* * *
출발은 순조로웠다.
수도로 가는 길에 첫 번째로 들린 마을에서는 딱히 이렇다 할 일이 없었다.
류안도 특정한 곳을 본다거나 하는 것이 없이 멍하니 있었다.
그래서 별일 없을 것이라 안심했다.
방심했다.
젠장.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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