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1 화 – 쓸데없는 말을 들어버렸다.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11 화 – 쓸데없는 말을 들어버렸다.
슬슬 노을이 드리우고 있는 저녁.
오후 내내 구경한다고 돌아다녀 살짝 지친을 그들은
마을 축제용 특제 꽃향기가 나는 주스를 마시며 여관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골목길을 지나고 있었는데,
유독 많은 인파가 눈에 보였다.
벨드라엔은 잠시 멈칫했다가
어찌어찌 건물 벽 쪽으로 붙어 일행들을 방패 삼아 지나가면 사람들한테 안 부딪히고 갈 수 있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벽 쪽에는 류안, 벨드라엔이
리아인, 쌍둥이 제우와 네우는 경호하듯이 그 둘과 인파 사이에 자리해서 움직였다.
어느 정도 골목길을 지나다가 어느 가게 문을 지나고 있을 때쯤,
“다음 손님 들어오십시오.”
?????
가게 문이 열리면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동시에 갑작스러운 인파의 움직임에 다섯 명은 밀려 튕기듯 가게 안으로 들어가게 됐고 가게 문은 닫혔다.
정말 얼떨결에 들어간 가게.
그렇게 다들 가게 안에서 벙쪄있을 때,
가장 먼저 정신을 가다듬은 리아인은 흠칫했다.
어두운 실내를 밝히는 붉은색 양초.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듯이 바닥에 깔려 흐르는 옅은 흰 연기.
오컬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장식들.
주술가게 혹은 점술가게.
판타지 세계에서 이런 가게에 가면 꼭 쓸데없는 것들을 알게 되고,
큰 사건에 엮이거나 휘말리게 되면서
더 나아가서는 어마어마한 대형 사건으로 커지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던가.
‘여기서 한시라도 빨리 나가야 해.’
리아인은 얼른 류안을 데리고 가게 밖으로 나가려 했다.
벨드라엔은 이미 점술가 방으로 들어간 상태이지만,
쌍둥이 둘이 알아서 잘 데리고 나올 터이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아랍풍의 귀족 옷을 멋들어지게 입은 짙은 갈색 피부의 남성이 리아인의 앞에 섰다.
리아인은 그 남성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기절시킬까?’
축제 중인 마을에서 시끄럽게 사고 일으키기 싫었던 리아인은 앞을 막는 이놈을 전류 공격으로 감전시켜 기절시킨 후,
조용히 나가기로 하고 손에 적당히 전류 파편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갈색 피부의 남성이 웃으며 리아인의 전류 파편을 모으고 있는 손을 양손으로 감싸듯 잡으며 말했다.
“손님, 곧 차례가 옵니다. 조금만 얌전히 기다려주십시오.”
리아인은 순간 당황했다.
손에 모으고 있던 전류 파편이 사라진 것이다.
리아인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한번 보고는 갈색 피부의 남성도 힐끗 본 후,
대기석 소파에 앉아 있는 류안 옆에 가서 얌전히 앉았다.
“언령[言令].”
류안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그 말에 갈색 피부 남자가 순간 당황하다가 바로 웃는 표정을 지으려 했으나,
뒤이어 들린 말에 그러지 못했다.
“이곳이 영역인가? 영향력이 꽤 크게 펼쳐져 있네?”
영역과 영향력.
이 두 단어로 생각나는 존재 ‘신’.
리아인, 쌍둥이 제우와 네우가 동시에 갈색 피부의 남자를 봤고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래서 ‘인형’을 두르고 있어도 힘을 제약 없이 쓸 수 있는 것인가?”
아무렇지 않게 눈앞의 갈색 피부 남성 정체를 간파한 것에 다들 놀라는 와중에,
류안은 벨드라엔한테 이것저것 물어볼 생각을 하며 점술가가 있는 방문을 봤다.
갈색 피부의 남성이 의도한 것인지 안내한다는 명목으로 벨드라엔한테 스스럼없이 다가갔었고
벨드라엔은 자신의 몸에 남성이 내민 손이 스치기라도 할까,
‘인형’을 들키지 않게 이리저리 몸을 피하다가 또 얼떨결에 점술가의 방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대기실보다 더 어둡고 수정구와 양초만이 있는 탁자를 가운데 둔 채,
전형적인 점술가의 옷을 입은 자와 마주 보며 앉은 벨드라엔은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힘들지 않나요?”
잔잔하게 울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벨드라엔은 전형적인 점술가의 ‘찔러보기’인가 싶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고
대답이 없자 점술가는 다시 말했다.
“도망 다니기 힘들지 않은지 여쭤보았어요.”
벨드라엔은 ‘도망’이란 단어에 살짝 움찔했지만,
이것 또한 찔러보기 일 것이라 여기고 내색하지 않았다.
‘도망자’로 여행이라는 명칭 아래 떠돌아다니는 것에 딱히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자신의 뒤치다꺼리 하느라 고생하는 쌍둥이 둘한테 미안함이 커서 좀 그렇긴 했지만···.
“이제 곧 도망 다니지 않으셔도 되겠네요. 당신 앞에 검은 천사가 나타날 테니까.”
벨드라엔은 점술가를 봤다.
점술가는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검은 천사가 내가 아는 천사라면 오래전 사건에 휘말려 멸족되었어.”
벨드라엔은 굳은 표정으로 말하다가 ‘아차’ 싶었다.
찔러보기에 말린 것 같아 자신이 한 말에 점술가가 어떤 말을 할지 예의주시하며 경계했다.
“맞아요, 오래전 ‘대학살’이 일어났던 그때 안타깝게도 멸족되었죠.”
점술가는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이’들이 그 천사를 대신하고 있는 거고요.”
그 말에 단순히 찔러보기가 아닌 것을 인지한 벨드라엔의 굳었던 표정이 진지해져 갔다.
“하지만, 검은 천사는 ‘천사’가 아니에요.”
“?????”
“당신이 해야 할 일, 가야 할 곳을 알려 줄 존재이자, 스스로 채운 제약의 족쇄를 풀어 줄 존재. 검은 천사의 곁에 있으세요.”
평온한 목소리로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던 점술가는 잠시 멈추더니 강한 어조로 마지막 말을 했다.
“보호하세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지키세요.”
말을 끝낸 점술가는
좀 전까지 상냥하게 미소를 짓던 것과는 다르게 무표정한 얼굴로 탁자 위 수정구 위에 손을 올렸다.
벨드라엔은 그녀의 행동에 뭔가 심각한 말을 하려나 했으나,
점술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음 손님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이었다.
수정구는 통신 장치였던 듯,
갈색 피부의 남성이 문을 열고는 정중한 자세로 말했다.
“손님 이제 대기실로 나오셔도 됩니다.”
그 말에 벨드라엔은 어, 어 거리며 의자에서 일어나 대기실로 나갔다.
그런 후,
갈색 피부의 남성은 리아인을 보며 말했다.
“손님 차례가 되었습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언령[言令]의 영향 탓인지
리아인은 미간을 구기면서도 점술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고,
갈색 피부의 남자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리아인은 점술가를 힐끗 내려다보고는
좀 전까지 벨드라엔이 앉아 있던 의자에 팔짱을 끼고 털썩 소리가 날 정도로 불량스럽게 앉았다.
그런 리아인을 점술가는 무표정한 얼굴로 봤다.
“신의 손길을 거부한 뒤틀린 아이.”
류안 덕에 이들의 정체를 아는 리아인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신기하네요. 그런 뒤틀림으로 어떻게 멀쩡히 살아 있죠? 본인의 삶은 물론이고, 심지어 주변인들의 삶까지 뒤틀어지게 해서 무너지게 되었을 텐데···.”
점술가의 거침없는 말에
리아인의 눈빛은 싸늘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듣기 싫었던 목소리와 함께 심연 깊은 곳에 묻혀 놓았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노을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하늘을 붉게 물들인 거대한 불길에 삼켜져 있는 마을.
그 마을을 배경인 듯 뒤로하고 서 있는···
불길에 의해 하늘처럼 몸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나
입은 웃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리아인은 잊고 싶은 기억에 눈을 질끈 감으며 인상을 구겼다.
그 모습을 본 점술가는 말을 이었다.
“당신의 뒤틀림을 가려 준 존재는 누구인가요? 당신 곁에 있는 ···인가요?”
그 말에 리아인의 움찔하며 눈을 떴고
눈동자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당신한테 ‘손길’을 내밀지 않았는데···.”
시종일관 무표정한 표정으로 말하던 점술가의 얼굴에 급격히 놀람이 서렸다.
“당신··· 설마······.”
콰당──!!!
더 이상 듣기 싫은 리아인은 거칠게 의자를 뒤로 넘어트리면서 일어났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당히 하지? 참는대도 한계가 있어.”
리아인은 서늘하고 날카로운 살기를 품은 눈으로 점술가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주먹 쥔 손에는 백금빛 전류 파편들이 거칠게 튕기고 있었다.
점술가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멈추고,
가만히 리아인을 봤다.
리아인은 점술가의 시선을 무시하고는 몸을 문 쪽으로 옮겨 손잡이를 잡고 돌려 문을 열었다.
그러자,
갈색 피부의 남성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손님,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리로 돌아가서 마저 얘기를······.”
“죽기 싫으면 비켜!!!”
리아인의 협박 어린 말에도
갈색 피부의 남성은 비키지 않고 있다가 움찔했다.
리아인의 손에 모인 백금빛의 파편들이 더욱 거칠어지던 순간,
무엇인가가 리아인의 살기와 능력에 반응하며 이상한 기류를 뿜어내기 시작하더니
그 이상한 기류는 점술 가게 안에 있는 신들을 향해 날카로우면서도 찌를 듯이 흘러갔다.
위험하다─!!!
갈색 피부의 남성과 점술가, 벨드라엔은
자신들한테로 흘러오는 이상한 기류에 본능적인 위험경보가 울렸다.
그러던 그때,
“리아인.”
격해진 감정에 이성을 잃은 듯했던 리아인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가오는 류안을 보며 정신 차렸다.
류안은 그런 리아인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는 성난 강아지를 달래듯이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나갈까?”
류안의 물음에 리아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류안과 리아인의 모습을 보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모두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던 와중에.
리아인의 서늘하고 날카롭던 살기와 그의 손에서 파직 거리며 거칠게 튕기던 백금빛의 전류 파편들
그리고,
위험경보를 울리게 했던 이상한 기류는
어느새 사라져 없었다.
류안과 리아인은 가게 문을 열고 나가려 하던 중,
점술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신전. 버려진 신전을 찾으세요. 그곳에서 ···을 찾아 선택하세요. 그리고 인지하세요!”
그와 동시에
류안의 머릿속에 점술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부디 깨달아 주세요.
점술가는 그렇게 둘한테 간절히 외쳤으나
리아인과 류안은 무시한 채 곧장 점술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둘의 눈에 보인 광경.
“하─!!”
리아인은 헛웃음 터트렸다.
아주 재미있는 상황이 그의 눈에 보였기에.
자신들을 점술 가게로 밀어 넣었던 그 많던 인파들이 지금은 그 누구 하나 보이지 않았다.
텅 빈 골목길만이 보였다.
리아인은 점술 가게에서 벨드라엔과 쌍둥이가 나오든 말든
류안을 데리고 여관으로 향했다.
축제고 뭐고
당장 이 마을을 떠날 생각이었다.
* * *
모두가 나가고
갈색 피부 남자와 점술가만이 남은 점술 가게.
“저자가 ‘---’인가요?”
갈색 피부 남자의 물음에 점술가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글쎄요··· 아직은 알 수가 없네요. 선택에 따라 미래는 바뀌는 것이라······.”
점술가는 생각에 잠겼다.
인간과도 같은 소년의 모습을 한 채,
자신의 ‘아이’도 아닌데 뒤틀린 아이의 곁에 있는 신.
신의 과거와 미래를 허락 없이 보는 것은 금기이기에 볼 수 없었지만,
어떤 자를 통해서 엿본 미래.
다시 재현되는 그 사건 안에 ‘뒤틀린 아이’와 ‘---’가 같이 있는 것이 보였고,
그 둘이 무엇을 하는지 보였다.
“괜찮겠습니까? 일부 신들의 횡포가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는데···.”
갈색 피부의 남성은 잠시 말을 멈추다가 다시 이었다.
“거기에 그 조직에서는 자신들의 뜻을 펼쳐줄 ‘절대자’를 찾고 있습니다.”
“푸하하──.”
점술가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절대자요? 이제껏 존재하지도, 존재한 적도 없는 자를 어떻게 찾을지 궁금하네요. 아, 어쩌면 지금도 무수히 생기고 있는 미래 중에는 절대자가 나타날지도 모르겠군요.”
점술가는 터진 웃음을 겨우 참아가며 계속 말했다.
“그럼, 미리 경고해 주고 싶군요. 곧 존재를 드러낼 ‘---’의 눈 밖에 나지 않게 조심하라고 말이죠.”
이 말을 끝으로 점술가는 참았던 웃음을 다시 호탕하게 웃으려 했지만,
휘청.
점술가가 쓰러질 듯 휘청였고
갈색 피부의 남성은 그런 점술가를 부축하며 걱정스레 물었다.
“무리하신 것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네··· 좀 무리했나 봐요. 반동이··· 생각보다 큰 것 같네요.”
점술가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허공···
아니, 그 너머를 잠시 바라봤다.
“후우··· ‘방’에 가서 쉬어야겠어요.”
갈색 피부 남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콰직─! 파스스스─······.
그녀의 ‘인형’.
점술가의 모습을 한 ‘인형’이 반동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부서지며 신의 몸체가 드러났다.
갈색 피부의 남성도 몸에 두르던 ‘인형’을 거두어 신의 몸체를 보였고
두 신은 점술 가게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텅 빈 점술 가게는 어둠만이 깔렸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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