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 화 – 달갑지 않은 만남.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7 화 – 달갑지 않은 만남.
마을 ‘데무스’에 도착했다.
그런데···
마을 분위기가 이상하리만치 너무 조용했다.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 같았다.
마차는 쌍둥이 둘이 맡고,
벨드라엔, 리아인과 류안은 환전소로 향했다.
헨즈 공작 가문에서 지원해 주는 여행자금을 받고,
겸사겸사 이 마을의 상태에 대해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환전소에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아이고야······
이곳 ‘데무스’에서 신[神] 두 놈이 영역싸움 중이란다.
이미 한차례 난리부르스를 쳤고,
지금은 소강상태.
알려진 신[神]들의 등급에 의하면
둘 다 중하위급 신이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인지 아직은 큰 피해가 없었기에
마을 사람들도 얼른 영역 정리하고 꺼져주었으면 하고 있었다.
신[神]의 영역싸움.
동물이나 종족들이 수가 많아지면 영역을 넓히기 위해 싸움을 하듯
신들 역시 수가 많아지면서 영역싸움을 하고 있었다,
영역싸움이라는 것이 그렇듯
신들의 영역싸움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
싸움에서 진 신은 영역에서 물러나 영향력을 거둬야 했고 권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서 신의 자격을 조금씩 잃게 되고 퇴물 신이 되는데,
최악의 경우
자괴감을 이기지 못해 소멸을 선택하기도 했기에······.
그리고 이런 영역싸움들 때문에
아주 오래 오래전,
‘대학살’이라 불리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하아──···.”
벨드라엔이 한숨을 쉬고 있는 사이,
리아인은 지도를 꺼내 들어 근처 마을을 알아보고 있었다.
신 놈들의 싸움에 옆구리 터지기 전,
이곳을 얼른 벗어나야 하니까.
그때.
“이야─ 이게 누구야?”
누군가의 목소리에 벨드라엔과 리아인은 목소리가 나는 쪽을 봤다.
환전소 건물 앞에 있는 광장을 가로지르며 다가오는 자가 있었다.
그자를 본 리아인은 알 수 있었다.
‘신이구나.’
벨드라엔의 앞쪽에 선 그자는
‘인형’을 두르고 있으면서도 옅은 빛을 발하는 흰색 바탕에 금색 자수로 화려하게 수 놓은,
누가 봐도 '내가 신이다'라고 뽐내지 못해 안달 난 듯한 옷을 입고 있었다.
끼이익─ 쾅! 철컥!!
화려한 옷을 입은 신을 본 환전소 직원은 다급하게 문을 닫고는 걸어 잠갔다.
어지간히도 저 신이 꼴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벨드라엔 오랜만이지? 그동안 잘 지냈어? 뭐야, 왜 말이 없어?”
벨드라엔한테 시비를 걸듯이 껄렁한 말투로 말하는 쓸데없이 화려한 흰색 옷을 입은 신은 계속해서 말했다.
“왜 이러실까? 왜 계속 아무 말이 없으실까? 서로 알던 사이인데, 인사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아, 한때 자신보다 낮은 등급의 신과는 말 섞기 싫은 건가?”
흰색 옷을 입은 신은 아차 한 척 놀라는 시늉을 하더니 또다시 말을 이었다.
“에이~ 걱정하지마. 이곳에서 영역싸움이 끝나면 ‘편안’의 권능을 가진 나. ‘페디로스’님은 예전의 너보다 등급이 올라갈 터이고, 나와 말을 했다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면 되니까.”
계속해서 신경을 긁으며 시비를 거는 신 ‘페디로스’의 말에 리아인은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편안’이 권능이라는 신이 이렇게 시비를 걸고 다녀도 되나 싶으면서
신이라는 것들이라고 유치한 것이 다를 것이 없구나 싶었다.
리아인은 페디로스를 한심하다는 듯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벨드라엔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리아인 역시 아무 말 없이 있었다.
왜 저리 시비를 거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디를 가나 저런 놈은 꼭 있었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리아인이 봤을 때,
벨드라엔의 행동은 적절했다.
지금 이곳은 저 재수 없는 신 페디로스와 또 한 명의 신이 영역싸움 중이었기에
같은 신인 벨드라엔이 저 시비에 넘어가 반응했다가는 잘 못 하면 ‘삼파전’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옆구리 터지는 것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방이 시비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대체로 시비를 걸던 놈이 제풀에 질리고 지쳐 그만두는데,
보통은 그러는데······
저 망할 신은 아직 시비를 걸 거리가 남았는지 끝도 없이 나불대고 있었다.
지겹다, 정말.
“아─ 불쌍해서 어쩌나? 너의 아이들은 무슨 죄일까?”
벨드라엔은 그 말에 움찔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어, 저 신자식 선을 넘는데?’
리아인은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애들은 무슨 죄야?”
페디로스는 리아인과 류안을 힐끗 보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도망자’여도 ‘퇴물 신’이어도 영향력은 키우고 싶었나 보네. 새로운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면··· 응? 뭐야? 아직 ‘손길’은 주지 않았네?”
리아인과 류안을 잠깐 흘겨본 페디로스는 벨드라엔을 다시 봤다.
“하긴, 지금 넌 손길을 주기가 좀 그렇지? 그래도 후보로 점찍어 두고 싶기는 했나 보네,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 말이야.”
자신은 ‘신의 아이’가 아닐뿐더러,
류안까지 누군가의 ‘아이’ 취급하는 것을 보니
리아인은 기분이 매우 나쁘고,
짜증이 났다.
리아인은 벨드라엔을 힐끔 쳐다봤다.
벨드라엔이 양손 주먹을 꽉 쥔 채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보였다.
그런 벨드라엔를 본 저 입을 꿰매버리고 싶은 신.
페디로스는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입을 계속 놀리려고 했다.
그러던 중,
그 입을 막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쓰지 못하는 권능, 왜 갖고 있어?”
류안의 목소리였다.
리아인과 벨드라엔은 이제껏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던 류안의 말에 고개를 돌려 류안을 봤고
페디로스는 황당함과 불쾌감에 소리치며 말했다.
“뭐? 지금 뭐라고···? 감히 인간 따위가 신인 나한테 그따위 망발을···.”
“제대로 쓰지 않을 권능, 없어도 되지 않아?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분노한 페디로스가 뭐라고 말하든
류안은 전혀 상관하지 않으면서 말했고,
그 말에 페디로스는 더 분노했다.
“이··· 이··· 지금 나의 권능을 나, 페디로스의 권능을 낮잡아 보는 것이냐? 내가 권능을 사용하면 네놈들의 ‘편안’을 거둬들일 수도 있다! ‘편안’이 없는 삶이 어찌 되는지 알고는 하는 소리냐?”
‘오──.’
리아인은 신기했다.
신이라는 자가 협박하는 것이야 흔해 빠져 신기할 것 없었지만,
류안이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어디에 가서 말싸움해도 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권능이 저런 식으로 쓰이는 거야?”
류안은 진심으로 궁금해 벨드라엔을 바라보며 물었고
벨드라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페디로스는 류안과 벨드라엔의 말과 행동이 더더욱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여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 정말 권능을 사용할까 생각했지만,
일단은 참았다.
‘영역싸움’ 중인데 쓸데없이 힘 낭비를 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곧 있으면
염탐하러 갔던 자신의 ‘아이’들이 돌아올 것이고
숨어서 자신의 뒤통수를 노리고 있을 그 신과 다시 한바탕해야 하는데,
벨드라엔이 변수로 작용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얼른 다른 곳으로 쫓아 보내야 했다.
‘젠장, 저 자식을 상대로 기분전환이나 하려 했는데, 오히려 기분 잡쳤어.’
페디로스는 류안을 잠시 힐끗 보더니,
“내가 자비를 베풀도록 하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인간이 내뱉은 실수이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겠어.”
가식적인 아주 인자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벨디라엔을 향해 말했다.
“더 이상 이곳의 영역을 흩트리지 말고, 바로 이 마을을 떠나도록 해.”
리아인은 정말로 기가 찼다.
‘네 녀석이 말 걸지만 않았어도 바로 떠날 예정이었어.’라고 말해주고 싶던 그때.
“그쪽이 말 걸지만 않았으면 바로 떠날 수 있었을 것인데··· 왜 말 걸었어?”
류안이 말했다.
팔짱을 끼고 한 손은 턱에 대며 갸웃거리다가
뭔가 알았다는 듯이 턱에 댄 손을 다른 손바닥에 내리치더니.
“아─! 혹시 말 상대가 필요했던 거야? 심심했어?”
“저··· 이··· 이···.”
류안의 말에 페디로스는 분노에 차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와──아─!!!”
리아인의 감탄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고
벨드라엔은 묘한 얼굴로 류안을 봤다.
류안은 정말 악의 없이 순수하게 궁금해 나름 추측해서 한 말일 뿐이었지만,
리아인은 류안의 말과 행동이 정말 너무나 맘에 들었다.
신을 제대로 약올린 것이었기에.
그러나,
이제는 류안을 말려야 했다.
이 이상 일이 커지는 것은···
쉽게 죽일 수 없는 상대와 부딪히는 것은 피해야 했다.
“류안, 상대할 가치가 없는 자는 그냥 무시해.”
리아인은 류안의 한쪽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귓가에 소곤거리듯 나지막하게 말했다.
“상대할 가치?”
류안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은 지켜봐 줄 가치가 없다는 거야?”
리아인은 류안의 뜻밖의 물음에 순간 당황했다.
“당연히 없지! 저딴 신을 왜 지켜봐? 오히려 네 시선이 아까워! 절대 하지 마!!!”
리아인은 강렬하게 말리며 말했고,
류안은 그 말에 수긍했다.
류안은 분노로 씩씩거리는 페디로스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말했다.
“지켜봐 줄 가치가 없는 신. 페디로스.”
류안의 직설적인 말에 리아인, 벨드라엔, 페디로스 모두가 놀랐다.
세 명의 시선이 모두 자신한테로 모인 것을 보며
류안은 페디로스 가까이 가서는 그의 가슴팍 쪽으로 한 손을 뻗으며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지켜봐 줄 가치가 없는 자는 존재할 가치가 없는 자. 존재할 가치가 없는 자의 권능 또한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고
눈동자 색이 옅은 청회색으로 변해갔으나
변한 류안의 눈동자 색을 인지한 자는 없었다.
그때,
눈에 보이지 않는 묘한 기류가 광장에 흘렀다.
그 기류는 류안의 손끝에서 시작해서는
황당함과 분노를 넘어 너무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지 못하고 굳어 있는 페디로스의 몸을 감싸듯 훑고는 사라졌다.
일순 시간이 멈춘 듯, 공간이 분리된 듯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기류였으나
페디로스는 알 수 없는 오싹함을 느꼈고
벨드라엔 역시 착각인가 싶은 서늘함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두 명의 신의 깊숙한 내부에서는
신으로서의 경고가 울리며 알 수 없는 공포감이 스쳐 지나갔다.
류안이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눈동자 색은 평소의 짙은 회색이었다.
류안은 뻗었던 손을 거두고 광장 저 끝에서 다가오는 자들을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리아인과 벨드라엔한테 말했다.
“여기 계속 있을 거야? 다른 마을로 가는 것 아니었어?”
리아인, 벨드라엔은 류안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 광장 끝에서 다가오고 있는 쌍둥이를
정확하게는
쌍둥이 네우가 말들을 끌며 걸어오고 있었고, 쌍둥이 제우는 페디로스의 ‘아이’인 듯한 세 명과 서로 으르릉거리며 다가오는 그들을 봤다.
참고로
쌍둥이 둘은 마차를 정착할 수 있는 여관을 찾던 중이었지만,
마을 전체에 퍼져있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
이유를 알 수 없는 오싹함.
이런 상황에서 이 마을에 머무르는 것은 안 될 것 같아 마차를 도로 끌고 벨드라엔한테 온 것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페디로스의 아이들과는 만났으며 사이가 좋은 관계가 아니었기에 서로 으르릉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신의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신한테로 향했다.
뭔가 얼이 빠진 듯 멍하니 있는 페디로스한테 아이 중 한 명이 다가가 그에게 귓속말로 뭐라 하는 것이 보였고
그로 인해 정신을 차리는 페디로스가 보였으나,
벨드라엔은 쌍둥이 제우와 네우를 보면서 이내 관심을 끊었다.
쌍둥이 둘은 마부석에 올라타고 나서
벨드라엔, 리아인과 류안이 마차 안에 탑승하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마차를 출발시켰다.
그렇게 떠나는 마차 뒤로
뭐라 뭐라 욕하듯 소리치는 페디로스와 그를 말리는 아이들이 보였지만,
이 역시 신경 쓸 일이 아니었기에 무시했다.
그 후,
이 마을에서 일어난 ‘신의 영역싸움’도 어떻게 됐든 전혀 관심 없었다.
그러다
이다음의 마을에서 일주일쯤 머무르고 있을 때,
지나가던 어떤 모험가를 통해
마을 ‘데무스’에서 일어난 ‘신의 영역싸움’ 결과에 대해 흘려들을 수 있었다.
결과만 먼저 말하자면
너무나 싱거운, 싸움이라고 할 수도 없는
페디로스의 일방적이 ‘완패[完敗]’였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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