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화 - 차원 이동 당했다. 젠장.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1 화 - 차원 이동 당했다. 젠장.
맑은 하늘 아래 울창한 숲속 가운데,
나뭇잎들 사이로 햇살이 고등학교 동복을 입은 채 땅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소년의 얼굴을 비추었고,
그 햇살에 소년은 서서히 눈을 떴다.
그러자,
저 멀리 마수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코끝에는 비릿하고 역겨운 피 냄새가 스쳐 지나갔다.
“하··· 하, 하···.”
소년은 짧게 실소를 흘리다 멈추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꿈이 아니네···.”
소년은 이 믿고 싶지 않은 상황에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았다.
그런 소년의 주위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마수들의 시체가 즐비해 있었다.
“아, 젠장. 또 야? 또 이러냐고.”
소년은 처음이 아니라는 듯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짜증이 한가득 묻어 있었다.
"대체 이번에는 어떤 짜식이야? 내가 그 짜식들이 하는 짓이 질려서 정말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이제껏 숨죽이며 조용히 지내려고 얼마나 노력했었는데···."
소년은 계속해서 중얼거렸고,
이제는 짜증을 넘어서 울분이 치솟아 올랐다.
소년은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자신을 공격한 마수들이나 마나인지 마력인지 뭔지의 흐름이 어렴풋이 느껴지고 있는 것을 보면 판타지 세계인 것은 알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이전 세계에서의 모습 그대로 인 것으로 보아
갑자기 목숨을 잃으면서 환생 또는 전생한 것이 아니었고,
빙의한 것도 아닌
차원 이동 당한 것이 확실했다.
참고로 설명을 하자면
이곳은 정확하게는 판타지 세계인 ‘가쉬’로
‘레쉬아’ 왕국의 국경 지역에 있는 마수들이 대거 주둔하고 있어 ‘마수의 숲’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평범한 고등학생 삶을 살고 있었던 소년.
'리아인'은 누군가로 인해 강제로 이곳으로 차원 이동을 당한 것이었다.
여전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리아인은 오늘 있었던 일을···.
아니,
자신의 삶을 되짚어 봤다.
분명, 이번 자신의 삶은 정말이지 특출날 것도 없이 평범하고 평범했다.
평범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금술도 좋은 편인 부모 밑의 외동아들로.
딱히,
큰 물욕 없이 적당히 문화생활도 즐기며 돈 걱정 없이 살아왔고,
잔병치레 없이 건강한 몸.
학교성적은 중상위권.
주위에 무관심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얌전히 지내왔기에,
학교 내에서도 별문제 없었다.
교우 관계?
붕어똥 마냥 저가 좋다고 들러붙어 있는 오컬트 마니아 친구가 한 명 있긴 했지만,
남과 엮이기 싫어했던 리아인으로써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런 사이였다.
특이한 점을 굳이 찾자면
리아인이 태어났을 때,
숨이 멎어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숨 쉬며 살아났다는 것 정도로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드문 일도 아니었다.
이렇기에 자신의 평범한 삶에 만족해 왔고, 노력해 왔으며, 앞으로도 평범하게 사는 것이 인생 목표였던 리아인이었다.
그런데, 빌어먹을 오늘.
오늘 아침에도 역시 평범한 고2 학생으로 오컬트 마니아 친구 놈과 같이 등교하고 있었다.
그러다 별생각 없이 근처 건물 옥상을 보게 되었고,
옥상 난간에 앉아있는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누군가는 마주친 시선에 놀랐는지 황급히 리아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리아인은 그 모습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가던 길도 멈추고, 평소 무덤덤한 표정만 하고 있었던 리아인의 미소에 놀란 오컬트 마니아 친구는
“왜? 왜 그래? UFO라도 봤어?”
오컬트 마니아답게 자기 기준대로 생각하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UFO – 미확인 비행물체.
‘뭐, 하늘을 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참고한다면 이 녀석한테는 상당한 관심 대상일지도···.’
라고 생각하던 리아인은 지금은 안 보이는 누군가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오컬트 마니아 친구 놈의 호들갑은 철저히 무시하고는 멈춰 섰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몇 걸음을 걸었을까.
리아인은 문뜩 이상하고 불길한 느낌이 든다고 인지하려던 그 순간,
자신의 발 주변으로 하얀빛이 맴돌기 시작하더니 그 빛에 반응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그의 몸을 덮치듯 감싸고는 형체가 흐릿하고 반투명한 손들이 뻗어 나와 그를 붙잡고는 그대로 바닥 아래로 끌고 가 버렸다.
* * *
빛과 함께 리아인이 사라진 자리.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던 오컬트 마니아는 저 멀리 들려오는 학교 종소리에 정신을 차렸고,
뒤이어 근처를 지나가던 아주머니의 ‘등교 안 하니?’라는 말에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각은 절대로 안 돼!”
라고 소리치며 헐레벌떡 뛰어갔다.
그리고, 도착한 교실.
뒤이어 들어오는 담임선생님의
“뭐 해? 지각한 주제에 자리에 안 앉아?”
라는 잔소리에 오컬트 마니아는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오컬트 마니아의 옆자리.
리아인의 자리가 비어있었지만,
그 누구 하나 그 빈 자리에 의문을 갖지 않았고, 인지하지도 못한 채,
조례가 지나고 수업이 시작됐다.
그렇게 리아인은 그 세계에서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모든 흔적이 사라진 상태였다.
* * *
“크르르르-.”
리아인은 등 뒤에서 들리는 곰을 닮은 마수의 소리에 얼굴을 감싸고 있던 두 손을 내렸다.
겁을 상실한 것일까?
아니면 동족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일까···.
주위에 즐비해 있는 마수들의 시체를 보고도 서서히 다가오는 한 마리 마수를 보며 리아인은 한숨을 쉬었다.
리아인은 자신의 오른쪽 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손가락들을 서로 맞물리며 살짝 비볐다.
파직! 파직!
오른손에는 정전기인 듯,
금빛이 살짝 비치는 하얀 전류 파편이 생기더니 점점 파편의 수가 많아지며 손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곰을 닮은 마수는 리아인의 바로 등 뒤까지 다가왔고,
날카로운 발톱을 바짝 세워서는 그의 머리 쪽을 노리며 크게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쿠웅─!
리아인을 공격하던 마수는 그의 손에서 창처럼 뻗어 나온 백금빛의 전류 줄기에 의해 손이 휘두른 방향 그대로 몸이 두 개로 갈라지면서 쓰러졌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갈라진 마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피로 리아인의 온몸이 뒤덮였다.
“흐··· 흐··· 내가 이 힘을 또 쓰게 될 줄이야. 진짜 날 이곳으로 끌고 온 그 짜식 절대 가만 안 두겠어!! 아주 그냥 ㅈ······.”
리아인은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겨우 삼켰다.
‘뭐, 그 짜식을 요절내는 것은 만났을 때 얘기이고.’
정말 증오스러운 존재지만,
일부러 찾아다닐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웬만하면 절대 만나고 싶지도 않았던 리아인이었다.
그런 그는
한숨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며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돌아갈 방법도 찾기 힘들고, 갈 수 있다고 해도 차원을 넘었으니 이전 세계에서의 내 존재 흔적은 깡그리 사라졌을 것인데···, 어쩔 수 없지··· 이번에는 이곳에서 잘 적응하고 살아가는 수밖에··· 흐······.”
리아인은 피 칠갑을 한 채 실소를 흘리며 중얼거리다가 울분과 답답한 속을 하늘을 바라보며 달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그놈들이 날 건드리지 못하게
간섭할 수 없게
찾을 수 없게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하게 사는 거야!!
리아인은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럼,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돌아갈 수 없는 이전 세계가 아닌 이곳에서 적응해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굳이 생각할 것도 없이 가장 필요한 것은 당연히 ‘돈’이었다.
그럼,
이곳 세계에서 아무런 연고도, 인연도 없는 자가 돈을 벌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쉬운 방법.
그것은 바로 주인 없는 신전[神殿] 혹은 유적지[遺跡地] 털기.
그리고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예전 비슷한 판타지 세계에 끌려갔을 때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이곳은 마수들이 대거 살고 있다.
그러면 의심할 필요 없이 숲 깊숙한 곳 어딘가에 신전[神殿]이나 유적지[遺跡地]가 존재할 것이고
방향은 자신한테 덤비던 마수들이 튀어나왔던 쪽으로 가면 될 것이었다.
“자 그럼, 돈 벌러 가 볼까? 후-,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보겠네.”
리아인은 마수들이 튀어나왔던 쪽으로 가벼이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마수의 숲’ 안에서는 여러 가닥의 금빛을 품은 하얀 전류 줄기가 솟아올랐고,
마수들의 괴성과 비명이 끝없이 울려 퍼졌다.
* * *
‘마수의 숲’에서 성인의 보통걸음으로 하루 정도 걸어야 도착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제일 가까이 있는 마을 ‘페우’
페우 이곳은 국경 근처 마을이었고
용병과 모험가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그래서 환전소나 정보관리소가 크게 자리해 있었으며,
여관이나 식당, 상점, 시장 등등
상업 쪽으로 많이 발달해있었다.
아침 9시.
환전소가 문을 여는 시간.
많은 용병과 모험가들이 환전소 건물 앞에서 문 열기 전부터 대기하고 있었으며
환전소가 문을 열자마자,
용병과 모험가들은 차례차례 순서에 맞혀 질서정연하게 환전을 해서 갔고,
바쁜 오전 시간이 지나갔다.
오후,
환전하러 대기하던 자들도 많이 줄어들어 한가해진 그때.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남자가 환전소로 다가왔다.
피 칠갑을 하고 환전소로 온 사람.
‘리아인’이었다.
환전소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그 모습을 잠깐 힐끗거리며 바라봤지만,
이내 관심 없다는 듯 제 할 일을 했다.
환전소 직원도 한번 힐끗거릴 뿐,
그 역시 별일 아니라는 듯 제 할 일 했다.
리아인은 자신한테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이 상황이 아주 맘에 들었다.
퉁─!
리아인은 아공간 마법 주머니에서 작지 않은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고는 접수대 위에 올려놓았다.
환전소 직원은 접수대 위 주머니를 살펴보더니,
이내 놀라고 말았다.
다양한 크기와 색의 보석들과 장식.
최고급 마정석과 가공하지 않은 마석들.
그리고,
화려한 빛이 감도는 어른 손바닥 크기 정도인 마수의 비늘 수십 개.
길드나 단체도 아니고,
개인이 혼자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보물을 환전하러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환전소 직원은 자신의 직무도 잊은 채 멍하니 그 보물들을 바라보며 굳어있었다.
“환전 부탁드립니다.”
리아인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환전소 직원은 주판을 꺼내 들고는 손가락으로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며 보물 종류에 따라 가치를 계산하고 나서 그 가치에 맞춰 돈을 준비했다.
리아인은 그 모습을 찬찬히 지켜봤고,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직원의 표정이나 준비되고 있는 돈을 보면 자신이 갖고 온 보물들 가치가 상당히 높은 것 같았기에 흡족해했다.
무엇보다 ‘이것도 돈으로 바꿀 수 있나?’ 하는 호기심에 챙겨 온 ‘마수의 비늘’이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환전되는 것을 보며 기분 좋으면서도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이무기 닮은 마수를 상대할 때 좀 더 신경 쓰고 살살하는 것인데··· 아깝네···’
마수의 숲에 있던 이무기를 닮은 마수는 리아인의 전류 공격을 온몸으로 맞고 쓰러져 비늘 대부분이 타거나 부서졌었는데,
그중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비늘이 ‘자개’와 비슷해 보여서 챙겨온 것이다.
참고로 ‘자개’는 공예품이나 장식용으로 쓰기 위해 가공한 조개껍데기이다.
환전을 끝내고 받은 돈을 모두 아공간 마법 주머니에 넣던 리아인은 그 주머니에서 예비용으로 남겨놓았던 보석 하나를 꺼내서 환전소 직원한테 슬며시 건네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로 오는 과정에서 ‘신분패[身分牌]’가 부서져 버렸어요.”
리아인은 환하게 미소지으며 말했지만,
온몸이 피 칠갑 되어 있어서인지 소름이 돋게 만들었고 공포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한 장면 같았다.
하지만,
환전소 직원은 이런저런 진상들을 많이 접해 온 베테랑 우수직원에 눈치도 수준급이었기에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리아인의 미소에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고객님 같은 분들을 위해 임시 신분 패를 발급해 드리고 있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리아인.”
“그럼, 소속은···?”
리아인은 다시 보석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고
환전소 직원을 슬쩍 보석을 챙기더니,
“예, 성함만 있으시면 충분합니다.”
그러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리아인의 이름이 새겨진 금속 재질의 신분 패를 제작해 건네주었다.
말이 임시용 신분 패였지,
이런 금속 재질의 신분패면 마을과 마을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국경도 넘을 수 있을 정도였다.
‘오호오─, 이 직원 일 너무 잘하는데?’
리아인은 흡족해하며 신분패를 챙겼고
마지막으로 ‘팁’이라며 환전소 직원한테 금화 한 닢을 손가락으로 튕겨 건네주었다.
환전소 직원은 그 금화를 한 손으로 잽싸게 받아 내고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여전히 영업용 미소진 얼굴로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것을 본 리아인은 환전소 접수대 옆에 놓여있는 마을 관광 지도를 하나 집어 들고 유유히 환전소를 나왔다.
환전소 건물 밖 근처 골목길.
그곳에 그런 리아인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리아인은 그 시선을 느꼈지만,
무시하고는 일단 옷가게로 갔다.
딸랑─.
“어서 오세요.”
가게 문 종소리와 함께 들어 온 리아인의 모습에 옷가게 점원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적당한 옷가지를 들고 와 그한테 보여주었다.
리아인은 자신의 피 칠갑한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제 할 일하는 옷가게 점원을 보며 다시 흡족함을 느끼고는 적당한 옷 세 벌을 사서 나왔다.
그다음은 여관.
용병과 모험가들이 많이 모이는 곳답게 다양한 가격대와 규모의 여관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저렴한 가격의 여관들이 많이 있었지만,
리아인은 보통 1인실의 세배 정도 비싼 욕실이 있는 1인실을 빌렸다.
왜냐고?
금전적 여유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공용 목욕탕은 세계가 두 쪽이 나도 가기 싫었으니까.
3살 때쯤이었나?
이전 세계에서 아버지였던 사람이 처음으로 대중목욕탕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질겁한 표정으로 온갖 쌩떼를 부리며 거부 의사를 표현한 리아인이었다.
그의 부모는 평소 조용하고 얌전하던 아이가 그런 모습을 보이자, 귀엽다면서 그 쌩떼를 받아 주었다.
욕실에서 개운하게 씻고 나온 리아인은 사 온 옷 세 벌 중 하나를 골라 입었다.
누가 보면 ‘코스튬’하냐고 물어볼 듯한 옷.
하지만,
판타지 세계인 이곳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옷이었다.
리아인은 옷을 입느라 생긴 정전기로 이리저리 삐친 자신의 옅은 갈색 머리카락을 대충 손으로 쓸어넘기며 정리한 후,
아직 해가 지지 않아 환한 창문 밖을 잠시 보고는 여관 밖으로 나갔다.
잘 살아가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함과 함께
그 돈을 잘 쓸 줄도 알아야 했고
그러려면 이곳의 화폐가치를 정확히 파악해 두어야 했다.
만원의 가치가 있는 줄 알았는데 천원의 가치이면 엄청 난감한 사항이 벌어질 것이고,
반대의 경우도 좋지 않았다.
질 나쁜 놈들한테 잘 못 걸려 호구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럼,
그 화폐가치를 파악하기 좋은 곳이 어디냐
바로 ‘시장’이었다.
특정 물품 혹은 정해진 물건만 파는 상점보다는 온갖 다양한 물건들을 파는 시장이 알맞았다.
거기에 서로 다른 가게에서 같거나 비슷한 물건들도 팔기 때문에 가격 비교도 할 수 있다.
리아인은 음식 노점상에서 산 군것질들을 하나하나 집어 먹으면서 시장 안을 돌아다녔고,
가판대에 놓인 각종 물건과 그 가격표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행히 이곳의 화폐가치는 판타지 세계에서 흔히 쓰이는 가치와 별 차이 없었다.
금화 한 닢 – 백만원.
은화 한 닢 – 만원.
동화 한 닢 – 천원.
자잘한 잔돈개념으로 쓰이는 철제 동전.
귀족들이 주로 쓰는 자기앞수표.
그렇게 시장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사이
해가 지고 완전히 어두워진 저녁.
리아인은 여관 자신이 빌린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벌러덩 대자로 누웠다.
알아두어야 할 것들은 알아 났고,
돈도 넉넉히 있고,
모자라면 또 신전[神殿]이나 유적지[遺跡地] 털면 되고···.
이제 모험? 아니,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며 평범하게 살면 되었다.
한곳에 오래 정착하면 꼭 이상한 사건에 엮이거나 휘말려 개고생을 하게 되기에 이곳에 한 2, 3일만 있다가 다른 곳으로 떠나기로 하고 눈을 감았다.
‘아, 그 녀석 내가 갑자기 사라져서 놀라지 않았을까? 날 찾아다니고 있지 않을까나?’
경험상 이전 세계에서는 자신의 존재, 흔적이 모조리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리아인은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찾고 있을 누군가를 떠 올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 * *
다음 날.
흔하디흔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어제 환전소에서 나올 때부터 리아인을 미행하던 두 사람.
양아치 둘은 리아인의 양옆으로 빠르게 다가오더니 그의 양쪽 팔을 각각 붙잡고는 그대로 근처 어두운 뒷골목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잠시 후.
파직─!
어두운 골목 안쪽에서 전류가 틔는 소리와 함께 백금빛이 아주 짧게 번쩍하더니,
리아인이 유유히 걸어 나왔다.
그의 뒤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몸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 채 바닥에 기절한 양아치 둘이 있었다.
설령 저 양아치 둘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정당방위인데 신경 쓸 것 없었다.
어두운 뒷골목을 벗어나자 햇살이 리아인의 두 눈을 비췄다.
그 햇살에 눈이 부셨는지 리아인은 한 손을 들어 눈 위에 그림자를 만들고는 괜스레 하늘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이내 발걸음을 옮기려 하던 그때.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에 리아인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익숙한,
자신이 알고 있는 늘 느껴왔던,
지켜보는 시선이었으니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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