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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왕립도서관의 호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이무슨
작품등록일 :
2021.05.12 11:30
최근연재일 :
2021.06.2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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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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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이단자(2)

DUMMY

사람이 빠진 법정 안은 조촐해졌다.

옆에 선 두 신관 외에 재판장이 끝이었다.

평소에는 이것보다 사람이 더 많지 않나.

내가 재판장 안을 자꾸 살피니 옆에 선 신관이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처음에 이단 제보가 들어오면 심문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만 때가 때고, 제보 받으신 분이 대공의 후계자라 저희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제보도 잘못 들어올 수도 있고, 사실이라도 적정한 선에서 형벌도 조절하고. 흠. 지금 이 재판장 안에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마나신께 약간의 성의를 보이면-.”

“크흠.”


아하. 돈 달라고 과한 친절을 베푸는 거였구나.

계속 손을 비비고 있던 이유가 있었네. 추워서 그런 줄 알았더니.

그럼 같은 죄로 사형 받은 사람은 돈을 주지 않는 사람이고 방금처럼 황무지 개척을 선고 받은 자들은 돈은 준 사람인가.

어쩐지 혹독한 형벌에도 웃고 있더라. 사형을 피해서 좋아했구나.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재판장도 내 주머니 털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미안한데 어쩌나.


“제가 돈이 없어서.”


난 아직도 도서관 빚을 갚고 있는 중이다. 없어. 없다고.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차용증이랑 다 준비를.”


얼마나 빼먹으려고.

궁금해서 금액 한번 봤다가 차용증을 덮었다.

미쳤나봐. 금액이 도서관 일 년 치 예산이잖아.

내가 차용증을 덮자 재판장이 싸늘해졌다.

신관은 아무 말 없이 덮어둔 차용증을 가져갔다.


“뭐, 시작해볼까요.”


재판장은 시들해져서 서류를 뒤적거렸다. 신관이 마법서 한 권을 가져왔다.

<진실의 서>. 마수의 봉인서 중 가장 유명한 서적이다.


“이쪽에 손을 올리고 맹세의 구절을 읽어주십시오.”


책 첫 페이지에 하도 사람들이 손을 올려 때가 타있었다. 그 위에 손을 포갰다.

서문에 적힌 구절은 간단했다.


“내 말에 거짓이 있다면 내 몸으로 응당한 결과가 있을지니 오로지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한다.”


옆에서 신관 둘이 마법서에 마나를 계속 주입했다.

마법서에서 나온 빛이 함께 법정을 휘감았다.

이 마법서가 활성화하는 동안 내 말에 거짓이 있다면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재판장은 길게 하품을 했다. 예의를 차릴 필요도 없다는 건가.


“어~ 이름과 하고 있는 일이 뭡니까.”

“로소입니다. 하고 있는 일은 왕립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법서는 반응이 없었다.

재판장은 지루한 표정으로 서류를 넘겼다.


“원래라면 이단 재판 전에 심문을 받고 와야 했는데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적당히 할게요.”


재판장은 내가 돈을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어있을 때와는 다르게 정말 일하기 싫은 티가 팍팍 났다.


“당신은 이단자나 반역자입니까?”

“아뇨.”


그때 마법서가 강렬한 빛이 나며 마수처럼 보이는 빛이 등장했다.

재판장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마수형태의 빛 무리는 그냥 멀뚱히 내 앞에 서 있다가 법정을 돌고 다시 마법서 안으로 들어갔다.

한 신관이 마법서를 빠르게 넘기며 마법서 안에 설명을 찾았다.


“그, 원래라면 거짓을 고하면 맹세를 어긴 자를 공격을 가합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만.”

“여기 적혀있네요. 진실은 말했으나 스스로 의심하는 경우···라고 합니다.”


허허. 마나교를 엎어버리고 싶긴 하지. 그러기 위해서 왕녀랑 손잡고 일하는데.

신관의 말대로라면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 공격이 아니라고?

양 쪽에서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재판장은 흐트러진 자세를 똑바로 세웠다.


“반역자입니까.”

“아뇨.”

“이단자입니까.”

“아뇨.”


마법서는 옅은 빛이 났지만 아까 같이 마수가 직접 나오지 않았다.

재판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제가 더 궁금한데요.”

“당신에게 묻는 게 아닙니다!”


재판관의 고함을 들은 신관 둘은 서둘러 마법서를 뒤적거리며 열심히 사유를 찾았다.

나오지 않는지 시간이 갈수록 식은땀을 흘렀다.

결국 재판장에게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마법서를 혹사 시켜서···.”


그럴 리가 없다. 마수가 봉인된 마법서라도 해도 서적이다. 책이 지친다니.

법정 밖에서 누군가 문을 살짝 열었다.

문 틈 사이로 고개를 살짝 내민 건 수호 기사였다.

뒤에 안 그래도 진행해야할 이단 재판이 밀려있었지.

재판장은 내 서류를 정리했다.


“그럼 일단 오늘은 구금하고, 다른 날에.”

“그, 지금 구금 장소가 부족해서.”

“그럼 적당한 장소에 박아두세요. 혹시 도주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감시는 철저하게.”


재판장이 뭐라 휘갈겨서 신관에게 넘기고, 그걸 들고 신관은 뛰어 나갔다.

남아있는 신관은 마법서의 마법을 해제했다. 법정 안의 맴돌던 빛은 사라졌다.

재판장은 턱을 치켜들었다.


“그럼 다음에 뵙도록 하죠.”


늘 마법서 덕분에 진실인지 아닌지 나왔을 판결에서 알쏭달쏭한 결과가 나왔다.

재판장은 이제 돈줄이 아니라 이단자 일지도 모르는 날 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남아있는 신관은 나를 데리고 법정 옆의 작은 방으로 인도했다.


“장소를 물색하고 있으니 잠시 이곳에 기다리시면 됩니다.”


신관은 내 눈치를 살피더니 슬금슬금 밖으로 나갔다.

구금당하면 내일 도서관 근무 쉴 수 있으려나.

이런 생각을 하던 중 다른 신관과 수호 기사들이 들어왔다.


“어디로 가나요.”


수호 기사 하나가 머뭇거리더니 답해줬다.


“왕립 아카시아 도서관입니다.”


금서관의 격리실로 가겠네.

임시 구금되어있던 방을 나서자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이동했다.

격리실이 아닌 도서관의 지하 연무장으로 다 같이 집어넣었다.

구금자들을 연무장 위로 몰고 수호 기사들은 주위를 둥글게 지켰다.

실드는 안치려나.

연무장 위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이야기라도 할 차면 수호 기사가 위협적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저, 아직 이단이라 확정도 안됐는데.”

“조용히 해. 이단일지도 모른다는 딱지가 붙었으면 부끄러운 줄이나 알아야지.”


수호 기사 말에 다들 조용해졌다. 물어본 사람은 가장자리에 쭈구려 앉았다.

할 일도 없으니 하나 둘 눕기 시작했다.

잠드는 이가 점차 늘어나자 수호 기사는 연무장의 실드를 가동했다.

실드를 치는 동안 지키던 수호 기사 몇은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누우니 덜 풀린 피로가 몰려왔다. 나도 한숨 자야지.


“야, 로소. 로소 선생님.”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레시아가 있었다. 왜 실드 안에 있지.


“너도 잡혀왔냐.”

“사식 넣어주러 왔다.”


벌써 식사시간인가.

실드는 어느새 거둬졌다.

지하에 있으니 시간이 체감이 안 된다. 눈을 비비며 주머니를 받으려고 하자 레시아가 쓱 일어섰다.


“줬다 뺐기야?”

“여기 말고 다른 데에서 먹자고. 그래도 되죠?”

“···대신 한명이 감시 차 따라가겠습니다. 이동 마법은 삼가주십시오.”

“당연히 그래야죠.”


실드 안에 깨어있던 몇몇이 부러운 눈으로 날 쳐다본다.

로비의 창문 밖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레시아가 온실과 연결된 통로로 나가려하자 수호 기사가 막아섰다.


“도서관에 아직 사람들이 남아서 일하는데 최대한 안 보이는 곳으로 가고 싶어서 그래요. 근무지에서 이런 일로 괜히 눈에 띄었다가 무죄인데도 괴롭잖아요. 안 그래요?”


레시아는 수호 기사에게 돈을 슬쩍 찔러줬다. 수호기사는 순순히 비켜섰다.

어쩐지 순순히 보내준다 했더니 다 돈이었네.

온실 근처로 가자 적당히 정원이 보이는 자리에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임시휴관 때 이쪽에서 식사했었거든. 참, 수호 기사님도 이쪽에서 식사하실래요?”

“감사-.”


수호 기사는 말을 끝까지 맺지 못했다.

레시아는 깔끔하게 베어낸 수호 기사의 목이 바닥에 뒹구는 모습을 가만 쳐다봤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봤다. 무슨 일이지.

내 주머니를 뒤졌지만 압수당했던 도구가 있을 리 없었다.

레시아는 모가지를 주워 머리카락을 헝클였다.


“이러면 나랑 비슷해 보일까.”

“너, 무슨 짓이야. 윽.”


레시아는 수호 기사의 목을 단번에 베어내던 검으로 날 공격하기 시작했다.

레시아는 배, 가슴, 팔, 목 어디 할 것 없이 날 찌르고, 벴다.

급하게 손으로 막았지만 금세 너덜너덜해졌다. 펜던트로 급한 상처만 막았다.


다른 수호 기사가 이동 마법을 썼었으니 이 수호 기사에게 마법 도구가 하나 있을 지도 모른다.

시체에 잠깐 시선을 둔 그때 검이 내 가슴언저리를 깊이 찔렀다.


“최대한 장기는 피하려고 그랬는데 미안하다.”


웃고 있으면서 눈썹만 살짝 내리면 미안한 표정이 되냐.

왼쪽 가슴에 박아둔 검이나 치우고 말하던가.

레시아는 수호 기사의 갑주를 벗기며 이곳저곳을 뒤적였다.


“너 상대하다 뺏길까봐 마법 도구는 다 두고 왔거든. 조금 느리게 타겠지만 직접 태우면 되니까.”


등유를 꺼내 수호 기사의 몸뚱이와 모가지에 뿌렸다.

수호 기사의 검은 뽑아 내 인근에 던져 놨다.

레시아는 성냥을 꺼내 불을 붙여 시신에 던지자 타올랐다.

내 숨이 넘어갈 듯 꼴딱거렸다.


“그래도 넌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니까 참 다행이야.”


손 하나 까닥하기 힘들고, 눈앞이 흐려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뿌연 레시아 형체가 어디론가 연락을 했다.


“네, 말씀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각성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레시아의 연락구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멀게 들렸다.

웅얼거리는 소리는 어디서 듣던 목소리였다.


“그럼 저도 우디 왕국으로 데리고 가주시는 거죠?”


레시아가 내가 죽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박힌 칼은 절대 빼주지 않으면서 내가 죽어가는 지 확인했다.

안 그래도 죽어가고 있다, 새끼야.


“메리님.”


머리가 띵해지는 동시에 내 몸이 타오르는 게 느껴졌다.

불에 휘감겨 시야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을 때 내 머릿속을 깨트리려는 듯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급하긴 하셨나보네, 레시아를 이용해서 죽이다니. 그래도 각성은 멀었어.


내 머리 위에서 단지 마나를 담은 목소리로 말했을 뿐인데 괴로웠다.

머리를 감싸며 쭈그려 앉았다.


=괜찮아. 곧 살아나니까.


내 옆에서 종이를 쓸어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거대한 눈과 마주쳤다.

붉은 눈. 흘러내리는 붉은 머리카락. 그리고.


=이번에 살아나면 꼭 기억했으면 좋겠네.


내 얼굴이 있었다.


=힘내서 내가 있는 곳까지 와.


바닥이 쑥 꺼지더니 의식이 아득해졌다.


*


“아이고 삭신아.”


하고 일어났을 때 법정에서 포박된 상태로 사방에서 사람들이 날 쳐다보고 있을 확률을 구하시오.

무슨 꿈을 꾼 거 같은데.

멍한 머리를 거칠게 흔들었다. 머리 위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침 일어났군요. 죄인 로소는 이것을 알아보겠습니까?”


어디서 봤던 신관이 내 눈앞에 펜던트를 들이밀었다.

펜던트는 무게 때문에 제자리를 핑그르르 돌았다. 한 면에 그려진 장미.

고개를 끄덕이자 주변에서 탄식이 일었다.


“이도교들이 쓰는 문양을 당당하게 펜던트에 새겨 들고 다녔습니다. 이보다 더한 증거는 어딨습니까.”

“이 재판은 레시아 그레이스 남작 살해 혐의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신관은 이의제기한 자의 말을 묵살하며 내 펜던트를 높게 들었다.


“이 펜던트는 미등록된 아티팩트며 아직도 효과가 뭔지 알 수 없습니다.”


효과가 뭔지 알았으면 펜던트는 증거품으로도 나오지 않았겠지.

착용한 상태에서 착용자 마나로만 운용되니 마나가 부족한 이들은 그 펜던트가 어떤 마법이 각인되어있는지 모를 테다.

치료 마법이라는 걸 알았다면 증거로도 안 나오고 꿀꺽했겠지.


“또한 죄인 로소는 이단교 교주 메리의 아들이라 밝힌 사실을 많은 이들이 같은 증언을 하였습니다.”


신관은 비틀린 웃음을 짓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를 숨기려고 레시아 그레이스 남작을 살해한 겁니다.”

“그럼 나도 죽이려고 했게? 이거나 보고 말해.”


큐 팀장이 삐딱하게 앉아 수정구를 내밀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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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이단자(1) 21.06.21 20 1 12쪽
48 반역자(3) 21.06.20 18 2 13쪽
47 반역자(2) 21.06.19 16 0 13쪽
46 반역자(1) 21.06.18 16 0 13쪽
45 스파이(2) 21.06.17 19 0 13쪽
44 스파이(1) 21.06.16 20 1 13쪽
43 연무 대회(3) 21.06.15 19 2 13쪽
42 연무 대회(2) 21.06.14 26 2 13쪽
41 연무 대회(1) 21.06.13 35 3 12쪽
40 연초 마나교 행사(3) 21.06.12 30 2 14쪽
39 연초 마나교 행사(2) 21.06.11 32 3 13쪽
38 연초 마나교 행사(1) 21.06.10 38 3 15쪽
37 왕립도서관 2주년 파티 21.06.09 45 5 13쪽
36 책의 마수(2) 21.06.08 42 4 14쪽
35 책의 마수(1) 21.06.07 44 5 14쪽
34 실습생(2) 21.06.06 39 4 13쪽
33 실습생(1) 21.06.05 42 4 12쪽
32 납품 계약 21.06.04 39 5 13쪽
31 종전 기념 축제 21.06.03 47 5 13쪽
30 악몽 21.06.02 40 4 13쪽
29 불타는 보육원(2) 21.06.01 29 4 13쪽
28 불타는 보육원(1) 21.05.31 31 4 13쪽
27 쥐구멍(3) 21.05.30 38 5 14쪽
26 쥐구멍(2) 21.05.29 31 4 14쪽
25 거대 마수(2), 쥐구멍(1) 21.05.28 33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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