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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도서관의 호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이무슨
작품등록일 :
2021.05.12 11:30
최근연재일 :
2021.06.2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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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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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실습생(1)

DUMMY

“이 거위들이 선물이라고요?”

“내 수작이지. 골렘이야.”


희미한 마나가 그제야 느껴졌다. 골렘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외견이었다.

그런데 골렘은 갑자기 왜.


“영지에서 쓰는 골렘들인데 등록된 유저 외 다른 이가 영지를 침입하면 달려가서 소리를 쳐. 아주 시끄러워서 도서관에서는 두 마리정도가 딱이야.”

“그래봤자 거위인데요 뭐. 그치?”

“꾸악.”


거위들은 내게 관심 없다는 듯 두리번거렸다. 지켜야 곳을 인지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 골렘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내게 말해. 내가 변신이랑 골렘은 끝내주게 잘하거든.”

“저랑 정 반대네요. 전 변신이랑 골렘 과목은 정말···.”

“오니아님께서 가만 두고만 보셨을 리가 없는데.”

“하.”


이게 왜 안 돼? 안될 리가 없잖아. 하며 초면에 미친 듯이 날 굴리던 스승의 모습이 떠올랐다.

굴리던 중 내 원인을 파악했는지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보통은 그 원인을 나한테 말해주지 않나.


“무슨 상황이 벌어졌을지 눈에 선하네. 같이 간단하게 저녁이라도 할래?”

“아직 근무시간이라 다시 2관으로 돌아가야 해요.”

“난 저녁 만찬도 마다했는데, 에스코트는 안 해주는 거니?”


오릴리 백작은 입을 빼죽 내밀었다. 할머니, 이러지 마세요.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바쁘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래도 아쉬운 걸. 그럼 다음에 내 영지로 초대하마.”


오릴리 백작은 아쉽다는 듯 인사하고 바로 떠났다.

2관으로 내려가자 리콜 팀장은 대출과 반납만 하고 있었다. 배가할 도서가 잔뜩···.


“계약은 끝났나보군. 그럼 올라가기 전에 한 가지 전달사항이 있네.”

“뭔가요.”


퉁명스럽게 대답이 나갔다. 이렇게 배가할 도서가 많은데 하나도 안 꽂았다니.

일단 책 더미를 비슷한 서가 위치끼리 분류했다.


“오늘 오전에 마법 아카데미와 협약을 맺었지. 학생들 요청으로 한 달 동안 도서관에서 실습을 하는 내용이야.”


리콜 팀장이 일 내용을 말한다는 건. 불안했다. 설마.


“로소 선생님에게 당장 업무가 없으니 실습을 진행하도록 하게.”

“실습··· 뭘 진행해야 할까요. 저 아직 1년도 안되었는데.”

“일단 계획서를 제출해서 결재 받게.”


그래도 이번에는 오늘 오전에 계약을 했으니 마감까지 여유가 있겠네.

실습이라고 했으니 방학까지 몇 달 남았으려나.


“다음 주에 실습생들이 오니 그 전까지 계획서를 제출해주게.”


터무니없는 일정에 기가 막혀 헛웃음이 터졌다.


“실습생들은 수업 안 듣는데요?”

“마법 아카데미의 졸업 학기 학생은 자신의 진로에 따라 실습을 허용한다고 하더군.”


아 그랬었지. 나도 졸업한지 7년이 넘었으니 잊어버렸다. 리콜 팀장은 헛기침을 했다.


“그러니 실습생들이 와서 바로 근무 할 수 있는 계획을 짜보게. 가장 최근에 들어온 사람이 잘 알거 아닌가.”

“제가 업무 없어서 시키는 거라면서요.”


포장에 실패한 리콜 팀장은 괜히 철망 너머 이용자들을 바라봤다.


“크흠. 그리고 도서관 2주년 겸 연말 파티를 다다음 달에 개최할 예정이라네. 일정은 미리 비워두게.”

“알겠습니다.”


리콜 팀장은 사무실로 올라갔다. 생각해보니 연말 파티인데 초겨울에 파티 하네.

그건 나중에 물어봐야지.

몇 시간 사이 잔뜩 쌓인 도서를 배가하고, 대출 반납하니 금세 마감이었다.


“···이거 뭘 적어야 하냐.”


전체 도서관 업무에 대해 숙지한 것도 아니고, 뭘 해야 실습생들이 좋아하는 지도 모르고. 한참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크리스틴 선생님!”


역시 크리스틴은 아직 퇴근을 안 하고 있었다.

2관에서 뛰쳐나온 날 보고 크리스틴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또 쥐가 나왔나용!”

“아뇨, 아뇨. 크리스틴 선생님이 도서관에 자세히 알 거 같아서요.”


실습 계획서에 대해 말하자 크리스틴은 한숨을 쉬었다.


“실습 나와도 월급 듣는 순간 안 오겠지만 그래도 힘내보죵. 뭐가 궁금하신데용.”

“첫날에는 견학 및 각 팀에 인사하고 간략한 도서관 업무에 대해서 설명할 거예요.”

“정석으로 가시는 군용.”

“그럼 다른 방법이 있나요?”

“로소 선생님처럼 바로 일 시작하기.”


그건 끔찍한 결과밖에 없었다. 미리 받은 실습생 목록을 보여줬다.

어, 뒤페이지까지 있네. 생각보다 실습생 수가 많았다.


“A반, B반으로 나눠서 1관과 2관 업무를 해보고, 반대로도 해보고. 한 5일씩 해보면 좋겠죠?”

“실습생 목록은 미리 저한테도 주세용. 그래야 허가서를 만들죠. 그 다음은용?”

“그 다음은 온실이랑 단델리온 선생님이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실습 해보고···.”


크리스틴의 눈치를 보며 쓱 웃었다. 난 이 이상 도서관의 다른 업무는 잘 몰랐다.

크리스틴은 바로 내 신호를 캐치해줬다.


“로소 선생님은 오자마자 일만 하셨죵. 자꾸 뭔가 일이 터져서 그때 소개하기도 그렇고 해서 넘어갔는데 로소 선생님한테 이런 업무를 맡기다니 리콜 팀장님은 그새 까먹으셨나 봐용.”

“레시아 선생님한테 조금 배우긴 했는데요. 필요한 부분만 배워서.”

“그 선생님은 묻는 거에만 대답하는 건 여전하시네용.”

“평소에는 딱히 그러지 않는데.”


크리스틴은 2층의 구석을 가리켰다.

세미나실과 공동 연구실의 반대편에 있던 장소였다.


“필사실은 한 번도 안 가보셨죵? 그 분도 끝나면 바로 가시는 분이라 지금은 안 계실 텐데요. 필사실은 한 번 가보세용.”

“필사면 그냥 베끼는 거 아닌가요?”

“거기서는 복본이 없는 도서의 복본을 만들고, 같은 종류의 문서를 한 곳에 모아서 책으로 엮는 일을 주로 하고 있어용.”


그게 그냥 책 만들고 있는 거 아닌가.


“전에 로소 선생님이 불태운 책 중에 몇 권은 리콜 팀장님의 기억에 의존해 재제작 중이랍니당.”

“복구도 하네요···.”

“정말 다행이죵? 자체 제작덕분에 로소 선생님에게 간 빚이 조금 덜어졌다구용. 필사실에 놀러 가면 일제히 깃펜이 각각 움직이는데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는 일정해서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용.”


다음으로 크리스틴은 관장실, 사무실을 지나서 있는 문을 가리켰다. 구석이었다.

다른 3층의 문들에 비해 소박한 무늬의 문이었다.


“수서실이에용.”

“수서실은 큐 팀장이 소속. 맞죠?”

“필사실도 수서팀 밑에 들어가 있죵. 거긴 도서 구입부터 목록, 장비까지 하고 있어용. 겨울이 오고 있으니 곧 신착 도서 자료관에 내려가겠네용!”

“목록? 장비? 목록은 그 책 제목 나열한 거 말인가요. 장비는··· 갑옷?”


크리스틴은 고개를 저었다.

도서관에서 흔히 쓰는 용어 같은 데 모르고 있었네. 얼굴이 달아올랐다.


“목록은 로소 선생님이 말한 거랑 비슷해용. 데스크 앞에 두고 있는 목록이용. 하나만 만드는 게 아니라 저자순, 제목순, 주제별 등등 찾기 쉽도록 목록으로 만드는 작업이에용.”

“주제별?”

“책 등에 번호가 붙어 있잖아용. 그게 주제별로 모아둔 거예용. 덕분에 서가에는 비슷한 주제끼리 책이 붙어있어용.”

“배가 할 때 보고 꽂는 그 번호 말이죠?”


하긴 도서관에 새 책이 들어왔는데 무작위 숫자를 부여 할 리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 비슷한 주제로 책을 무더기로 빌렸으면 같은 서가에 쭉 꽂게 된다.


“그게 다 법칙이 있다구용.”

“그러면 각각 일주일 씩 실습하면 될까요.”

“필사는 짧게 잡고 수서실을 더 길게 잡으세용. 그쪽이 할 일 많아서 인력 투입되면 대 환영할 거예용.”


대충 계획이 나왔으니 이제 각 실에 양해를 구하면 된다.


“크리스틴 선생님, 감사합니다.”

“오, 그러면 인재 꼭 데리고 오는 거예용! 로소 선생님의 어깨가 무겁다구용.”

“꼭!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래 애들이 졸업하고 도서관에 들어오면 편해질 수 있어!

패기 있게 2관에 다시 들어가 계획서를 쓰기 시작했다.

업무 알아보기 쉽게 도식화하고, 자료실 업무를 미리 적어서 유인물로 나눠주자!

일지도 써야 했으니 일지 양식도 미리 맞추자!

후임이 들어올 수 있다니 의욕이 넘쳤다.


*


어디서 잘 못했을까.

첫 날 도서관 곳곳 견학 시키고, 각 팀 업무에 대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도 했다.

첫 주에 1관, 2관에서 배가와 대출 반납 시킨 게 잘못인가.

2주차에 도서관의 다른 업무를 맛보기 해주겠다고 온실에 타라곤 선생님을 만나게 한 게 잘못인가.


“선생님, 그래서 저 이제 뭐해요?”


아직 앳된 얼굴의 실습생이 물었다. 3주차에 홀로 남은 실습생이었다.

명찰에는 ‘리프 드랜저’라고 적혀있었다.


“필사실에 3일 정도 일하다가 수서실에서 일 배울 겁니다.”

“···선생님.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위로 해주나 싶었는데 리프 드랜저는 돌연 짓궂게 웃었다.


“딱 봐도 일 많은 거 티 나는데 누가 오고 싶겠어요. 돈도 쥐꼬리만큼 주잖아요?”

“···그럼 넌 왜 남았는데?”

“전 이거 이수 못하면 졸업 못해서요.”


도망 못가야 도서관에서 사람이 일할 수 있나.

내 전적이 생각나며 눈물을 삼키며 실습생을 데리고 필사실에 들어갔다.

아직 도서관 운영시간 시작하기 전이라 그런지 깃펜은 모두 각 책상위에 누워있었다.


“안녕하세요, 실습생 담당 로소입니다. 앞으로 삼 일 동안 일할 실습생이에요.”

“안녕하세요~. 잘 부탁해요.”


깃펜 밑에 양피지를 하나씩 두고 있던 필사실 담당 선생님은 인사를 받다 움찔거렸다.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다가 내 곁에 와 속삭였다.


“분명 인원 수 많다고 들었는데 다들 어디 갔어요?”

“다 도망가고 한 사람 밖에 없어요.”


끙 앓는 소리를 낸 필사실 담당 선생님은 자신의 뒤편에 쌓인 책 더미를 봤다.


“인력- 아니, 실습생들 온대서 일거리 많이 준비했는데.”

“적당히 봐주세요. 얘도 도망가면 나중에 아예 실습생이 없을 지도 몰라요.”

“알았어요. 적당히 해볼게요.”


과연 잘 버텨줄까.


“헐, 나 이거 이 책 알아요. 유명 소설이잖아요. 최신 권이네. 아싸.”

“잠깐잠깐, 함부로 만지지 마!”


필사실 담당선생님이 실습생을 잘 버텨줄까.

뒷걸음질로 필사실을 빠져나왔다.

실습생들 도망갔다고 수서실에도 미리 일러줘야겠다 싶어서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어 로소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실습은 3일 뒤 아닌가요?”


수서실 내에서 일하고 있던 선생님은 다급하게 일정을 적어둔 스케줄러를 살폈다.


“실습생이 한명 밖에 안 남아서 미리 말씀드리려고 왔어요.”


실습생이 도망갔는데 창피는 내 몫이었다. 수서실 선생님도 허탈한 듯 허허 웃었다.

수서실 선생님에게서 시선을 돌리자 책들이 보였다. 수서실 내부는 처음 들어와 봤다.


“책이 좀 많죠?”


좀이 아니었다. 수서실 내부는 책 수레로 가득했다. 책 수레에도 책이 가득했다.

벽마다 서가가 있었고, 거기에도 책이 차있었다.

수서실의 책 수레 하나를 훔쳐서 팔아도 몇 년은 거뜬히 살 수 있을 양이었다.


“그나저나 실습생이 없다니 아쉽네요. 일거리가 잔뜩 있었는데.”


각 실마다 일거리는 왜 이렇게 많나.

도서관아 사람 좀 뽑아줘라. 마법사라고 일이 다 마법으로 처리 되지 않는다.

도망간 실습생들이 떠올랐다. 그래, 사람을 뽑고 싶어도 못 뽑았을 수도 있지!

내가 하도 수서실 내부를 보고 있으니 수서실 선생님이 말했다.


“수서팀에 관심 있으면 다음 주에 실습생과 같이 큐 팀장님 수업 받으세요. 큐 팀장님 좋아하시겠네.”

“그래도 되나요?”

“안될 거 뭐 있나요. 실습생 담당인데. 담당자 신분으로 가면 되죠.”


고민도 잠깐이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도서관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으면 부끄럽다.


“그럼 저 미리 리콜 팀장님께 말씀 드리고 오겠습니다. 소중한 실습생이 도망가면 안 되니까요.”


작가의말

좋은 주말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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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반역자(3) 21.06.20 18 2 13쪽
47 반역자(2) 21.06.19 16 0 13쪽
46 반역자(1) 21.06.18 16 0 13쪽
45 스파이(2) 21.06.17 18 0 13쪽
44 스파이(1) 21.06.16 19 1 13쪽
43 연무 대회(3) 21.06.15 19 2 13쪽
42 연무 대회(2) 21.06.14 26 2 13쪽
41 연무 대회(1) 21.06.13 35 3 12쪽
40 연초 마나교 행사(3) 21.06.12 29 2 14쪽
39 연초 마나교 행사(2) 21.06.11 32 3 13쪽
38 연초 마나교 행사(1) 21.06.10 38 3 15쪽
37 왕립도서관 2주년 파티 21.06.09 45 5 13쪽
36 책의 마수(2) 21.06.08 42 4 14쪽
35 책의 마수(1) 21.06.07 43 5 14쪽
34 실습생(2) 21.06.06 39 4 13쪽
» 실습생(1) 21.06.05 42 4 12쪽
32 납품 계약 21.06.04 39 5 13쪽
31 종전 기념 축제 21.06.03 47 5 13쪽
30 악몽 21.06.02 39 4 13쪽
29 불타는 보육원(2) 21.06.01 29 4 13쪽
28 불타는 보육원(1) 21.05.31 30 4 13쪽
27 쥐구멍(3) 21.05.30 38 5 14쪽
26 쥐구멍(2) 21.05.29 31 4 14쪽
25 거대 마수(2), 쥐구멍(1) 21.05.28 33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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