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님의 서재입니다.

왕립도서관의 호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이무슨
작품등록일 :
2021.05.12 11:30
최근연재일 :
2021.06.23 19:50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3,653
추천수 :
241
글자수 :
291,890

작성
21.05.12 19:00
조회
356
추천
11
글자
11쪽

골렘(1)

DUMMY

책은 비싸다.

마법서는 대체로 더 비싸고, 실용마법서의 경우 평민들의 1년 생활비정도 된다.

그 이상 비싼 책도 수두룩했다. 내 손에 있는 이 책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저기 쌓여있는 책도! 그러니 내팽겨 치면 안 된다.

계속 되새기지 않으면 던지고 싶었다.

한 권당 한 뼘 두께의 책이 쌓여서 내 키를 넘어도 난 저걸 다 꽂아야 한다. 이를 악 물었다.


“망할.”


도서관 문을 열자마자 책을 찾는 사람들로 붐볐다.

점심시간에는 얼마 없는 여유를 즐겼다. 오후에는 책들이 반납되어 쌓였다.

빈손이 된 사람들은 다시 책을 찾았다. 서가위치는 금방 외워졌다.


한 손은 수정구, 다른 팔에는 들기 버거운 마법서를 잡아 몸을 띄웠다.

둥실 떠올라 제일 높은 칸에 꽂았다. 나 제대로 꽂고 있는 거지?

책 먼지가 그새 손에 또 묻어있었다. 매끈한 수정구는 주머니에 조심히 넣었다.


“레시아 놈, 파인드 마법이랑 배가만 하면 된다고? 하루 종일 배가 밖에 못하잖아!”


까마득하게 크고 긴 복도에 내 외침만 허무하게 울렸다.

철망 데스크 뒷문을 열면 복도가 나온다. 오른쪽에는 창문은 커다랗게 나있었다.

햇볕이 닿지 않게 나무 덮개로 닫혀있어 마나를 머금은 마석들이 등의 역할을 했다.

왼쪽에는 짧은 아치형 복도에 책이 차 있었다.

갑자기 복도 끝 문이 벌컥 열리더니 레인이 소리를 질렀다.


“로소 선생, 책 먼저 찾아!”

“네네.”


데스크에 앉아있는 레인이 시키면 나는 대답을 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봐? 물어볼 시간을 줘야 하잖아.

투덜거리며 꽂던 책을 데스크에 쿵 내려놓자 레인이 인상을 팍 썼다.


“아직도 못 꽂았어? 서가 배치도도 못 외워?”

“외웠지만 이 넓은 곳을 뛰어다니며 꽂으라는 겁니까?”

“이동마법을 쓰라고. 일단 이거 먼저 찾아.”


이미 땀으로 번들거리는 마법도구는 미끄러웠다. 책이 많을 때는 꺼내기도 힘들었다.

레인이 준 양피지 조각더미 중 파인드 마법진 위에 한 조각을 올렸다.

마법도구로 쓰는 수정구가 깨지지 않게 조심스레 마나를 주입해 마법진에 맞게 마법을 운용했다.

저 멀리서 마법서가 힘없이 비실거리며 날아왔다.


“얼씨구? 점심시간에 밥 안 먹었어?”

“말 시키지 마라, 구슬 깨진다.”


날아오는 마법서를 낚아채 레인에게 쪽지와 함께 돌려줬다.

파인드 마법은 마나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데 수정구가 터지지 않게 용량 맞추다 보니 내 머리가 터지려한다.

철망 너머로 본인의 이름을 호명하기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쪽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아니, 사람들이 이렇게 책을 많이 본다고? 알겠습니다. 일하겠습니다.


“다했으면 이제 배가하자.”


레인이 매정한 소리를 했다. 파인드 마법에 매진해서 마지막 한 권을 이용자에게 넘겼네.


“좀 쉬면 안 되나요?”

“네 옆에 책들 다 꽂아야 집 간다.”


그건 안 돼. 지금 일하는 한이 있더라도 퇴근은 늦어져서는 안 된다.

내가 왜 탈출을 감행했는데. 저녁이 있는 삶!

그거 안 잔다고 안 죽는다 해도 잠은 잘 수 있는 삶! 억지로 일어나자 다리가 시위하듯 후들거렸다.


“그리고 저기 책 수레 있는데 뭐 하러 그렇게 들고 다니냐?”

“그걸 왜 이제야 알려줘?”

“네가 안 물어봤잖아.”


내가 저게 뭔 줄 알고 물어봐.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녀석이다.

이번에는 책 수레에 책을 쌓고 이동하기 위해 수정구를 조심스레 꺼냈다.


“어린 애도 와서 보네.”


철망 너머로 열 살쯤 된 아이가 발을 흔들며 제 몸뚱이만한 마법서를 읽고 있었다.

어려울 텐데 열심히 읽네.

다른 좌석도 살피자 평범하게 책 읽고, 필사하는 사람이 다수였다.

그리고 단연 눈에 띄는 건.


“브라이트 선생, 저쪽에 책 탑을 쌓은 사람은 뭐죠?”


심지어 남자는 의자에 앉지도 않고 옆에 지키듯 서있었다.

레인이 열람석을 살펴보더니 속삭였다.


“신경 꺼.”

“모르면 물어보라고 할 때는 언제고.”


레인이 혀를 찼다.

마침 2관을 들어와 데스크 앞을 막 지나는 귀족 어린이에게 턱짓을 했다.

아이는 책이 쌓여있는 열람석 쪽으로 갔다.

옆에 서있던 남자가 의자를 살짝 빼주자 아이는 거드름 피며 의자에 앉으려했다.

쿠당탕.

아이가 바닥에 굴러 떨어져 시끄러운 소리가 2관을 울렸다.

쿠션까지 놓여 높은 의자는 아이에게는 한 번에 앉기 힘들다.

아이는 이를 악물고 자리를 지키던 남자에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쿠션은 빼!”

“알겠습니다, 도련님.”


두 사람은 소리 낮춰 말한다고 해도 조용한 2관에 울렸다.

혼자 마나 포션을 홀짝이는 레인과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저렇게 자리 미리 잡아 놔도 되나요?”

“평민인 네가 가서 뭐 하려고? 아서라, 고위 귀족 자제니까.”


콧방귀를 뀐 레인은 브라이트 후작가의 후계자로 고위 귀족들의 사교활동 중심에 서있었다.

그걸 위해 마법 아카데미에서부터 부지런히 제 사람들을 모아 활동을 했다.

브라이트가 둘째로 후계자가 되어서 더 바쁘게 움직인 감이 없잖아 있었다.

덕분에 마법 아카데미의 몇 없는 평민들은 숨죽이고 다녀야했다. 아무렇지 않아 하는 나에게는 결투도 많이 걸고.

그런 브라이트의 소후작님이 몸 사릴 정도의 자제라면 아무개 공작가일 것이다. 공작···.


“으.”

“머리 뒷골 당기냐, 마나 포션 줘?”

“아니, 스승님 생각나서 머리 아파졌어.”

“그래도 미리 마셔, 좀 있으면 바빠질 테니까.”


레인은 시큰둥하게 데스크 아래에 쌓여있는 박스에서 마나 포션 하나를 꺼내줬다.

왜 친절하냐.


*


그래, 저 놈이 친절한 이유가 있었다. 마나 포션를 하나 더 마실 새 없었다.

빠른 도서관 마감을 위해 마법 쓰고, 또 쓰고 계속 쓰다 보니 마나가 고갈난 줄 도 몰라 눈앞이 핑 돌았다.

취업사기다, 사기. 도서관이래서 가만히 앉아 있을 줄 알았는데.

지쳐 주변을 살피니 열람석을 가득 메우던 인파가 반 이상 나갔다.

이때다 싶어 헐레벌떡 마나 포션을 꺼내 마시자 레인이 혀를 찼다. 오늘의 관내 대출 리스트를 나에게 줬다.


“관내 미반납도서 리스트 열람석에서 확인하고-.”


콰과광!

거대한 소리가 쏟아졌다. 잽싸게 귀를 막았지만 더 이상의 폭음은 나지 않았다.

하급 수정구를 꺼내 바람의 마법으로 주변에 피어나는 먼지 구름을 가볍게 쓸었다.

열람석은 엉망진창이었다. 창가에 우뚝 선 조형물이 보였다.


“2관에 저런 게 있었나.”

“있을 리가 있냐.”


레인은 자신의 아티팩트인 케인을 들었다.

영상구로 보이는 수정구에 대고 레인은 어디론가 이 상황을 전달했다.

나도 정신 차려 주저앉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며 로비로 보냈다.

연락을 끝낸 레인도 철망 밖으로 나와 대피 못한 사람들을 입구로 쫒아 냈다.

그동안 서가와 책상, 의자 등으로 얼기설기 얽혀 만들어진 조형물은 무너지지도 않고 서 있었다.


“마법서가 폭주한 거야? 어떤 마법서를 꺼낼 때도 폭주할 정도의 마나는 느끼지 못했는데?”

“고의적으로 마법서에 마나를 주입한 거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 텅 빈 2관 중앙에 서있는 레인 옆에 따라 붙었다.

조잡한 조형물을 자세히 살폈다. 찾았다. 레인도 조형물의 핵을 찾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골렘이 도서관에 생길 리 없지.”

“골렘의 핵이라면 왼쪽 튀어나온 서가 아랫부분에 있어. 핵은 말대로 마법서 같은데 자연적으로 쌓기는 많지만, 고의적이라기엔 누적된 마나의 양이 작아.”

“어떻게 알아?”

“내 눈에는 보인다, 보여. 브라이트 선생이야말로 어떻게 살펴봐서 저것도 못 찾아?”


진짜 못 봤을 확률이 컸지만 하루 내 날 괴롭힌 레인 놈에게 책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티격태격하는 사이 열람석과 창가의 낮은 서가로 이뤄진 골렘이 왼팔을 휘둘렀다.

뒤로 뛰었다. 골렘이 따라 오려는 듯 몸부림을 쳤지만 바닥과 골렘의 오른 하단이 붙어있었다.

빨리 끝내려고 수정구에 마나를 응축시키는데 레인이 붙잡았다.

덕분에 귀여운 구슬이 손바닥 위를 위태롭게 크게 굴렀다.


“마, 망할 브라이트 선생아! 떨어트릴 뻔 했잖아!”

“너 어차피 불로 지져버리려고 했잖아. 안 돼.”

“왜? 다 나무로 만들어져있는데 그냥 태우면 끝나.”


레인이 턱 짓으로 가리킨 곳을 봤다.

자세히 보니 골렘이 몸부림치며 일부 날아간 열람석의 책상이 철망에 처박혔다.

사각지대에 누가 숨죽이며 떨고 있었다. 아이였다.

귀족 아이는 진작 나간 걸 확인했으니 아까 발 흔들며 즐겁게 책 읽던 다른 아이다.

레인 이 자식, 아이한테는 계급 따지지 않고 다정하구나. 새삼 다시 봤다.


“저쪽의 책은 원본이다. 아직 반납이 안 들어왔더니 저쪽에··· 젠장.”


취소다. 바닥에 걸레짝이 된 책들 사이로 아직 멀쩡한 책 몇 권이 굴러다녔다.


“야, 애는 안 보이냐?”

“그 녀석보다 저 책이 더 귀해. 심지어 다른 책도 골렘에 휘말렸군. 아깝게 됐어.”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골렘이 바닥을 뜯을 기세로 움직였다. 골렘의 주의를 끌고 레인을 붙잡았다.

아이에게 골렘의 눈이 닿지 않을만한 곳에 마법으로 이동했다.


“아가! 움직이면 골렘이 널 볼 테니 가만히 있어!”


아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인이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아주 꼴값을 떨어.”

“너는 소후작이라는 놈이 애를 지킬 생각은 안하고 마법서부터 챙겨? 아주 가관이다. 네가 관리할 영지 꼴 안 봐도 영상구다!”


저주 아닌 저주에 레인은 날 죽일 듯이 노려봤다.


“마법서가 더 비싸. 그리고 애가 죽어도 몇 푼 위로금 쥐어주면 오히려 더 감사하다고 할지도 모르지.”

“돈도 많은 집안이. 쫓겨났냐?”


저 싸가지 없는 놈의 얼굴 갈기면 소원이 없겠다.

아니, 그런 쓸데없는 거 생각할 시간에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이 쪽으로 이동마법 쓰면 도착 후 딜레이 때문에 골렘에게 공격을 받을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레인과 양동 작전이 필요했다. 머릿속으로 작전을 구상했다.


“내가 골렘을 공격할 테니-.”


퍽 퍽퍽

말 좀 들어라! 어른 주먹 크기의 물방울이 책상 골렘의 표면을 촉촉하게 적셨다.

많은 마나에 비해 터무니없는 물방울 크기였다. 그러나 골렘의 시선이 레인 쪽으로 쏠리기 충분했다.

내가 구상했던 작전과 달랐지만 골렘의 이목을 끈 지금.

지체 없이 아이 앞으로 이동마법을 써 도착했다. 사각지대에 맞춰 몸을 최대한 찌그린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말을 걸ㅇ,


쾅!


갑자기 날아와 부딪친 의자 때문에 입 한번 못 떼보고 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몸뚱이에 맞아서 다행이었지 머리였으면 큰일 날 뻔했다.

정말 이놈이고 저놈이고 나 말 좀 하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왕립도서관의 호구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지 안내 21.06.23 25 0 -
공지 오후 7시 50분 연재합니다. (21.05.31) 21.05.31 19 0 -
공지 1-5화 수정했습니다. (21.05.26) 21.05.26 25 0 -
51 이단자(3) 21.06.23 21 1 12쪽
50 이단자(2) 21.06.22 16 1 12쪽
49 이단자(1) 21.06.21 20 1 12쪽
48 반역자(3) 21.06.20 18 2 13쪽
47 반역자(2) 21.06.19 15 0 13쪽
46 반역자(1) 21.06.18 16 0 13쪽
45 스파이(2) 21.06.17 18 0 13쪽
44 스파이(1) 21.06.16 19 1 13쪽
43 연무 대회(3) 21.06.15 19 2 13쪽
42 연무 대회(2) 21.06.14 26 2 13쪽
41 연무 대회(1) 21.06.13 35 3 12쪽
40 연초 마나교 행사(3) 21.06.12 29 2 14쪽
39 연초 마나교 행사(2) 21.06.11 32 3 13쪽
38 연초 마나교 행사(1) 21.06.10 37 3 15쪽
37 왕립도서관 2주년 파티 21.06.09 45 5 13쪽
36 책의 마수(2) 21.06.08 42 4 14쪽
35 책의 마수(1) 21.06.07 43 5 14쪽
34 실습생(2) 21.06.06 39 4 13쪽
33 실습생(1) 21.06.05 41 4 12쪽
32 납품 계약 21.06.04 38 5 13쪽
31 종전 기념 축제 21.06.03 47 5 13쪽
30 악몽 21.06.02 38 4 13쪽
29 불타는 보육원(2) 21.06.01 29 4 13쪽
28 불타는 보육원(1) 21.05.31 30 4 13쪽
27 쥐구멍(3) 21.05.30 38 5 14쪽
26 쥐구멍(2) 21.05.29 30 4 14쪽
25 거대 마수(2), 쥐구멍(1) 21.05.28 33 6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